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50화 (50/102)

제 50화. 꽃샘추위도 두렵지 않은 더위

조용한 건우의 집 앞. 시린 발을 꼼지락거리던 우리가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집안에서 희미하게 번지는 초인종 소리가 멈추기도 전에 현관문이 열렸다.

건우는 급히 달려나온 모양새였다.

문고리를 잡은 건우가 우리를 살폈다.

맨발에 슬리퍼, 품에 가득 안고 있는 샛노란 바나나 다발.

건우의 얼굴은 제법 심각해졌다.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한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피난길의 서막인가.

“쫓겨났습니까.”

“네. 문도 잠가버렸어요. 고작 슬리퍼 하나 신었는데.”

우리는 투덜거리면서 슬리퍼를 바라봤다. 우리의 발가락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비상식량입니까.”

“비상식량이요?”

“그거.”

심각하고도 진지한 얼굴로 건우가 바나나를 가리켰다. 도망치는 순간에도 달랑 비상식량만 가지고 나오다니.

우리를 위해 준비해야 할 물건을 생각하던 건우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우리와의 동거는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갑작스럽게 동거를 하더라도 문제가 있었다. 괜히 미순의 화만 돋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근차근 미순의 허락을 받는 것만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건우는 우선 놀란 우리를 달래고 천천히 앞일을 생각할 요량이었다.

“이거 비상식량 아니고 저희 엄마 선물이요.”

우리가 바나나를 내밀면서 말했다.

“……예?”

“저 좀 잘 봐달라는 의미로.”

“지금 그 말은…… 허락하셨다는 겁니까.”

건우는 대뜸 던져진 희소식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네. 공개 동네 연애를 본격적으로 즐기라는 신의 계시인가 봐요.”

장난스러운 농담조로 우리가 말을 이었다. 밝은 빛이 번지듯 건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내심 앓았던 속이 말끔해졌다. 벅찬 기운이 가득 차올라 건우를 뒤덮었다.

감격스러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건우가 우리를 안으려던 순간이었다.

“잠시만요!”

우리는 두 팔을 벌린 건우를 막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지금 정말 안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데.”

“바나나 터져요.”

“터지면 큰일이기는 하죠.”

능청스럽게 대꾸한 건우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천천히 번졌다. 순식간이었다. 우리는 건우의 매력적인 미소에 넋을 잃었다.

햇볕 한 줌 없는 복도가 찬란하게 빛나는 것만 같았다.

차가웠던 발가락조차 뜨거워지는 열기에 한껏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침을 삼키는 우리의 목구멍조차 뜨겁기만 했다.

짙어지는 심해의 빛깔처럼 건우의 눈동자는 힘껏 우리를 끌어당겼다.

“그럼…….”

건우는 우리를 번쩍 안아 올렸다. 불쑥 높아진 높이에 우리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누가 듣기라도 할까.

우리가 서둘러 한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가 조심스럽게 입술에서 손을 뗐다.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돌았다. 벌이라도 서는 것처럼 우리는 머리 위에 바나나를 이고 있었다.

절대로 바나나가 터지게 놔둘 수는 없다는 듯.

“저 무겁죠.”

“가볍습니다.”

“그러기엔 팔에 핏줄이 엄청 솟았는데요.”

우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건우의 팔을 봤다. 퍼런 핏대가 울끈불끈 솟아있었다.

쫙쫙 뻗은 핏줄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매력 포인트입니다.”

단조롭고도 평온한 말투였다. 일말의 동요조차 없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우리는 건우의 말에 수긍한다는 것처럼 고개만 천천히 끄덕거렸다.

“차장님.”

우리는 꽤 비장하게 건우를 불렀다.

“큰일이에요.”

“무슨 큰일.”

“아…… 눈빛, 딱 이 눈빛!”

우리가 요망한 건우의 눈빛을 빤히 바라봤다. 불순한 기운을 머금은 건우의 눈빛을 당해낼 재간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불끈 솟는 열기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의 입술이 버석하게 말라 갔다.

피할 수 없어도 도망치는 것이 최고기는 하지만…….

“하고 싶어요.”

피할 수 없으면 부딪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들뜬 우리의 목소리가 약간 올라갔다.

음흉한 미소가 발딱 솟구쳤다.

우리가 바나나를 머리에 얹은 채로 한 손으로는 건우의 목을 안았다.

“방금 뭐라고.”

거침없는 우리의 습격에 건우는 짐짓 놀란 얼굴이었다.

“한 번 해야겠어요.”

“하고 싶다는 게.”

“일종의 변신 합체죠.”

“합체는 대충 알겠는데 변신은 대체 뭡니까.”

우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짐승으로의 변신.

유혹적인 말이 우리의 목구멍을 맴돌았다.

뜨겁게 쏟아지는 우리의 눈빛은 건우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

“어쨌든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열심히 장어 구운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너무 저돌적인 거 아닌가.”

“숨겨진 저를 찾으려면 이만큼은 저돌적이어야죠.”

우리의 목소리가 건우의 입술에 흐무러졌다. 건우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입술을 적신 우리의 말에 뜨겁게 달아올랐기 때문이었다.

건우의 입술을 비집고 색정적인 미소가 흘렀다.

“잘됐습니다.”

건우는 유혹적인 눈길로 우리를 바라봤다.

“오늘 밤잠 설칠까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나직한 건우의 목소리가 너울거렸다. 그야말로 선전포고였다.

오늘 단단히 준비하라는.

멈췄던 건우의 걸음이 움직였다. 활짝 열렸던 현관문이 천천히 닫혔다.

조용히 현관문이 잠기는 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잘 잘 수 있을 것 같네.”

뇌쇄적인 빛이 건우의 눈동자에 너울거렸다.

“고우리 덕분에.”

강력한 한방. K.O.

눈빛만큼 건우의 말재간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밀고 당기기라니. 우리는 끝없이 벌렁거리는 마음을 붙잡고는 건우를 바라봤다.

건우의 눈길이 스치는 곳마다 화끈거리는 것만 같았다.

‘장어 덕분인가. 장어가 드디어!’

넘치는 장어의 기운이 스몄는지도 몰랐다. 우리의 슬리퍼가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우리는 넘실거리는 욕망을 품은 건우의 눈동자만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건우의 숨결이 우리의 신경을 건드렸다.

톡톡. 간지럽고도 뜨겁게.

“근데 왜 쫓겨난 겁니까. 허락도 받았는데.”

“늦게 오라고 하시던데요.”

“아…….”

건우는 미순의 넘치는 뜻을 간파했다는 얼굴이었다.

“감사하기는 한데. 어머님께서 하나 간과하셨군요.”

“뭘요.”

“여기가 호랑이 굴이라는 걸.”

건우가 우리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여전히 바나나를 머리에 얹은 채로 우리는 사위를 둘러봤다.

건우의 집은 침 삼키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만큼 조용했다. 더는 방해물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한 줌의 바람도, 차가운 냉기도 없었다. 후끈거리는 방바닥과 넓은 창을 타고 미끄러지는 햇빛만이 방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건우가 거실 탁자에 있던 리모컨을 들었다. 건우의 손길에 커튼이 너른 창을 가렸다.

거실을 적신 빛은 커튼에 가려 순식간에 연해졌다.

“제 생각에는 저희 엄마는 미리 아셨을 거예요.”

우리가 테이블 위에 바나나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한다는 걸.”

우리는 제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모든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는 것처럼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지만 우리의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었다.

우리의 입술 사이로 가늘게 흐르는 숨이 조용히 떨렸다.

“그래서 왔습니까.”

“네. 호랑이 잡으러 왔습니다.”

그것도 바나나 먹는 호랑이.

“자신 있습니까.”

“없을 이유도 없죠.”

“잡아먹힐 수도 있는데?”

“그전에 제가 잡아먹으면 되니까.”

우리가 질 수 없다는 것처럼 대답했다.

코끼리를 삼키는 보아뱀도 있다는데!

까짓 호랑이를 잡지 못할까.

벌렁대는 마음을 붙잡은 우리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봉긋 피어올랐다.

“그럼 가실까요.”

우리는 안내라도 하는 것처럼 두 손을 들고는 침실을 가리켰다.

“고우리씨.”

우리에게 다가선 건우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잔잔하게 넘실대는 파도처럼 덤덤하고도 고요하기만 했다.

긴장보다는 기대만이 적적히 흘렀다.

“오늘 집에 못 보냅니다.”

건우가 약간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건우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농익은 색기가 우리의 마음을 건드렸다. 말초 신경까지 예민해지는 기분이었다.

관능적인 눈빛에 우리의 여유가 무너지고 있었다.

‘고우리! 릴렉스.’

우리가 잘은 심호흡을 연달아 작게 뱉어냈다.

건우가 알지 못하게.

그런데도 쿵쾅거리는 마음은 누그러들 줄을 몰랐다.

‘내가 유혹 왕이라고. 흔들리지 말라고! 내가 고유혹이다. 고유혹!’

우리는 속으로 속삭였다. 최면을 걸고 있었다. 그간 썼던 소설 속의 매혹적인 주인공이 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주인공들처럼 차분하고도 유혹적이게.

마음을 다잡던 우리는 짐짓 뒤로 물러났다.

건우의 늪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오묘한 분위기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평정심이 필요했다.

우리는 허리춤에 손을 댄 채로 뒤로 몸을 젖혔다.

상상 속에서는 한껏 유혹적인 포즈였지만 실제로는 꼭 허리에 담이라도 걸린 모양새였다.

“꼭 뭐…… 집에 들어갈 필요가 있나요.”

우리가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긴장해야겠네.”

건우는 담담한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섰다.

정말, 바짝.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손톱만큼 작은 틈을 비집고 달뜬 숨결이 흘렀다.

“잡아먹히기는 싫어서.”

건우의 나직한 목소리가 우리의 입술에 녹아들었다.

“잡아먹는다면 모를까.”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이 펄펄 끓는 아스팔트에 녹는 것처럼 빠르고도 진득하게.

“……!”

유혹의 주도권은 건우에게로 넘어갔다. 우리의 눈빛은 간절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고정하시옵소서, 바나나 서방님!

건우의 뜨거운 숨결이 우리를 천천히 적셨다. 우리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열기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듯이.

우리의 온 신경은 건우에게 집중됐다. 건우가 쏟아내는 열기가 우리를 잠식해갔다.

우리의 입술 위로 무르녹는 건우의 숨결이 짙어졌다.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호랑이 잡아먹기에 실패했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게 낫겠습니다.”

“뭐가요.”

우리가 건우를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잡아먹는 거.”

건우의 목소리는 잔잔했다. 약간의 여유마저 돌았다. 매혹적인 미소가 건우의 입가를 물들였다. 그냥, 연한 미소였다. 보통의 날과 다를 것 없는 미소.

그런데 고요함과 어우러진 미소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우리의 기세가 허망할 만큼 쉬이 꺾여버렸기 때문이었다.

‘못 당하겠어. 무리라고.’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기 일보 직전.

우리는 백기를 들었다. 건우를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 이제는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버텨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게, 내 취향입니다.”

건우의 말이 우리를 잡아당겼다. 건우는 커다란 손으로 우리의 머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우리의 머리칼이 건우의 손등 위로 흘러내렸다.

건우가 제 쪽으로 살짝 우리를 당겼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 있던 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열기를 품은 입술이 포개졌다. 힘이 축 빠진 입술. 건우는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건우의 움직임에 우리의 입술이 느릿하게 벌어졌다. 혀끝을 맴돌던 달뜬 숨소리가 우리의 입안을 적셨다.

“아…….”

두 사람의 입술이 엉켰다. 건우는 타는 갈증을 풀어내려는 것처럼 우리를 깊이 탐했다.

휘몰아치는 건우의 기운에 우리가 휘청거렸다. 두 사람의 숨결이 끈적끈적하게 뒤섞였다.

숨을 쉴 작은 순간조차 허용되지 않을 만큼 건우의 진한 향기가 연달아 들이닥쳤다.

부단히 건우를 받아내던 우리가 뒤로 밀려났다. 후끈거리는 열기에 우리는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소파에 막혀 우리의 걸음이 멈췄다. 중심을 잃은 우리는 그대로 소파에 앉아버렸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고우리씨.”

“……네.”

우리의 목소리가 느리게 번져나갔다. 째깍째깍. 분침 소리만 크게 흘렀다. 건우의 시선은 우리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한 손으로 소파를 짚은 건우가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섰다. 잘은 숨결에 밀려나듯 우리의 몸은 뒤로 기울었다.

“마음의 준비는 잘 했습니까.”

“네…… 뭐.”

두 손으로 소파를 짚은 우리의 팔이 후들거렸다. 건우의 입술을 피해 한껏 뒤로 젖힌 몸의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웠다.

우리는 소파를 꽉 눌러 손에 힘을 주었다. 그야말로 우리는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쉬지 않고 넘실대는 매혹적인 건우의 유혹을.

“지치지 않길 바라죠.”

“…….”

“지금부터가 시작이니까.”

건우의 낮은 목소리가 진해졌다. 서슴없이 밀려드는 건우를 피해 뒤로 몸을 젖히던 우리의 손이 삐끗했다.

“오와씨!”

굵직한 비명과 함께 우리는 소파에 누운 꼴이 돼버렸다. 느닷없이 뛰쳐나온 중년의 남성만큼 굵은 목소리에 우리는 민망해졌다.

입술을 살짝 깨문 우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건우는 가만히 우리를 바라봤다.

건우의 이성은 녹아내리고 있었다. 위험할 정도로. 도저히 욕망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절제의 미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눈앞에 있는 우리에게 욕심이 났다. 찬란하게 빛나는 우리의 모든 것이 탐났다.

전부 탐하고 싶을 만큼.

“본래 이렇게 급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직한 건우의 말끝이 휘청거렸다. 우리에 대한 생각 말고는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의 공간을 침범하고 싶었다. 우리의 모든 곳에 살고 싶었다.

숨결, 감각, 귓가. 그 전부에 녹아버리고 싶었다.

우리의 온기가 탐났다. 평생을 속죄하면서 지옥에 살겠다고 다짐한 건우였지만 사실은 빛이 고팠는지도 몰랐다.

다정스러운 눈길과 손길에 미치도록 갈증이 났을지도.

고혹적인 건우의 눈빛은 우리를 힘껏 빨아들였다.

“조급해집니다.”

“…….”

“당신이 꼭 신기루 같아서.”

건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애초에 불가능한 다짐이었다.

어둠에 갇히겠다니.

애정을 거부하는 사람은 사실 누구보다 애정을 갈구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 줌의 빛이 다가오길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면서.

“가끔은 불안하기도 하고.”

“뭐가요.”

“내 불운이 옮길까봐.”

“차장님하면 운이죠. 우선 저도 만나셨고 직급도 높으시고. 또…….”

우리가 너스레를 떨면서 머리를 굴렸다.

“저도 만나셨고.”

“그건 말했는데. 또 없습니까.”

“있죠. 많죠. 그러니까 애정도 듬뿍 받는 중이시잖아요.”

우리는 테이블에 있던 바나나를 가리켰다. 건우가 고개를 돌렸다. 말끔한 테이블 위에 있는 유난히도 길쭉한 바나나는 탐스러울 만큼 보기 좋게 익어있었다.

노란 윤기를 흘리면서.

바나나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눈길이 뒤엉켰다.

순식간에 묘한 분위기가 두 사람을 뒤덮었다. 건우는 우리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우리의 심장이 쿵쿵거렸다. 건우와의 거리가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건우의 허리를 잡았다. 두 사람의 몸은 한순간에 밀착됐다.

“정말.”

“…….”

“안달 나.”

건우의 숨이 우리의 입술에 녹았다. 모든 체취를 빨아들일 것처럼 건우는 우리의 입술을 삼켰다.

달았다. 온 신경이 멈출 만큼.

건우의 입술이 벌어졌다. 열기가 쏟아졌다. 주체할 수 없는 본능에 집중한 건우는 저돌적이었다.

건우의 허리를 잡은 우리는 바짝 힘을 주었다. 살포시 눈을 감은 우리는 건우를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떨리는 건우의 숨결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주위는 조용해졌다.

시계조차 숨을 죽인 것처럼 보였다.

“하…….”

입술의 작은 틈새를 비집고 간간히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우리의 손길에 건우의 옷이 약간 구겨졌다.

건우의 체취를 품은 숨소리가 우리를 적셨다. 건우는 거침없이 우리를 깊이 파고들었다.

우리의 보드라운 볼을 쓸어내리던 건우의 손길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목선을 타고 내려간 손은 앙고라 카디건에 멈췄다.

보슬보슬한 감촉의 카디건이 건우의 손길에 소파 아래로 떨어졌다.

두 사람의 입술이 잠깐 떨어졌다.

“네…… 뭐. 더우니까.”

우리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여유를 부리려고 애를 쓰는 모습도 건우는 마냥 예쁘게만 보였다.

건우가 우리에게 가볍게 입을 맞췄다. 여전히 두 사람의 숨결은 고르지 않았다.

“난방이…… 어우.”

우리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건우의 손길이 지나가는 곳마다 예민해지고 있었다.

부드럽게 내려온 건우의 손은 우리의 니트 밑단에 머물렀다.

우리의 살결에 건우의 손길이 스쳤다. 보드랍고도 간지러운 손길이었다.

“계속 더워질 것 같습니다.”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의 귓가를 간질였다.

“적어도 여기는.”

소파에 덜렁 누워버린 자신의 모습을 상기하던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건우의 말대로 끝없이 불타오를 것이었다.

적어도 소파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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