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48화 (48/102)

제 48화. 비밀 연애의 결말

건우의 끔찍한 과거에 들어온 우리는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힘을 내보자고 다짐했다.

완전히 인연의 끈을 묶기 위해 어차피 거쳐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생각했던 것보다 건우의 과거를 보는 시간이 조금 빨랐던 것뿐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다짐을 해봐도 우리는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분명히 끝없이 울어댈지도 몰랐다.

건우에게 남은 아픔이 너무도 선명해서.

우리가 단단히 마음을 잡을 것처럼 길게 숨을 가다듬었다.

“불이 장난 아니네.”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아직 건물 안에 사람이 엄청 있다니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어두운 밤.

매캐한 연기가 우리의 두 눈을 찔렀다.

건물을 집어삼킨 불은 하늘 높이 솟구쳤다.

거무죽죽한 하늘마저도 붉은 빛깔에 젖어들었다.

잔잔히 부는 건조한 바람은 불길을 점점 더 세차게 만들었다. 불은 쉽게 잡힐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커지기만 할 뿐.

사이렌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요란하게 동네에 울려 퍼졌다.

“강민우. 민우야.”

운동복을 입은 건우가 거리에 서 있던 우리를 스치면서 지나갔다.

건우는 죽을힘을 다해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그을음이 까맣게 피어오르고 있는 건물을 향해서.

“강민우!”

절절한 울부짖음이 차가운 허공을 갈랐다. 가쁜 숨을 고를 새도 없이 건우는 인파를 헤집고 들어갔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우리는 건우를 따랐다.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매캐한 연기는 강해졌다.

“제발.”

“……차장님.”

간절한 건우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건우와 자신만 있는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말도 안 돼. 거기 있을 리가 없잖아.”

건우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칼, 땀에 젖은 얼굴, 넋이 나간 눈빛. 끔찍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잔뜩 흐트러진 건우의 모습은 항상 적응할 수 없었다.

언제나 단단해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불타는 건물을 바라보던 건우의 입술이 조금씩 떨렸다.

지금의 모든 순간이 꿈이길. 건우는 간절히 기도했다.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던 건우의 걸음이 느려졌다. 불이 났다는 짤막한 말로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아니야. 학원은 무슨.”

건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힘없이 무너지는 건물처럼 건우의 마음도 녹아내리고 있었다.

건우는 민우가 건물 안에 있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끝없이 민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다른 곳에 있다는 말을.

“제발…….”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뜨거운 기운이 건우의 속을 태웠다.

일말의 희망은 무너지고 있었다. 건물을 바라보는 건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건조한 수화음만 연달아 건우의 귀를 때렸다.

건우는 무너지고 있었다. 정말, 빠르게.

밀려드는 슬픔에 숨조차 쉴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건우의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의 깊이에 우리의 다리는 후들거렸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우리는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네가 거기 왜 있는데. 인마.”

민우에게 전화를 걸던 건우의 손이 떨렸다.

“없잖아. 없던 거잖아.”

“…….”

“제기랄!”

짤막한 말과 함께 안내 목소리가 건우의 귓가를 찔렀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 후에는…….”

인상을 찌푸린 건우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완벽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화마가 삼켜버린 건물 속에 민우가 있다는 사실을.

“형 왔다고!”

건우가 핏대를 세우면서 소리쳤다. 건우는 이성을 잃은 것처럼 건물을 향해 나아갔다.

“우리 동생 좀 살려주세요.”

“학생, 위험하다니까!”

“안에 동생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건우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이 건우를 뒤덮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건우를 향해 손을 내뻗었지만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흔한 위로조차 해줄 수가 없었다.

과거에선, 정말 아무것도.

“들어가게만 해주세요.”

“어딜 들어가겠다는 거야.”

“안에 동생이 있다고요.”

건우는 간절한 손길로 경찰관의 손을 잡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대로 보낼 수 없다는 절박한 손길이었다.

건우는 당장이라도 불구덩이에 뛰어들 것처럼 보였다.

“안된대도 그러네.”

경찰관이 단호하게 건우의 손을 뿌리치면서 말했다.

“저기, 사람이……!”

경찰관이 놀란 얼굴로 입구 쪽에 있던 깨진 창을 봤다. 넘실거리는 불과 회백색의 연기를 뚫고 누군가 바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창문으로 몸을 내던진 누군가가 에어 매트 위로 떨어졌다.

희뿌연 연기가 걷히고 구급대원과 경찰이 에어 매트 쪽으로 내달렸다.

구급 대원의 부축을 받으면서 걸어가는 익숙한 얼굴이 우리의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크게 눈을 뜨고는 생존자를 쫓았다.

“왜 거기서…….”

깨진 창밖으로 나온 사람을 보던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조금 젊은 얼굴이었지만, 분명 노파였다.

편의점에서 마주했던 그 노파.

화상을 입었던 노파의 팔이 설핏 우리의 기억을 스쳤다.

“구급팀!”

“빨리!”

노파가 입을 막았던 손수건을 뗐다. 구급팀이 노파에게 달라붙었다. 화상을 입은 노파의 입술 사이로 고통스러운 비명이 흘렀다.

눈물과 연기가 노파의 얼굴에 눌어붙어 있었다.

두려운 기운이 노파를 지독히도 괴롭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툼한 담요가 노파의 몸에 둘러졌다. 노파의 입술과 손은 지독히도 떨렸다.

마치 물에 빠진 생쥐처럼.

노파는 무엇 하나 말하기도 힘든 모양새였다.

미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노파의 눈꺼풀마저 심하게 떨렸다.

“안에 아직 얼라가 있는데.”

노파는 건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기침으로 뒤덮였다.

“그 얼라가…….”

“저희가 찾을게요. 그러니까 걱정 말고 타세요.”

“빨리 안내해드려.”

구급차로 가면서도 노파는 연신 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단디 델꼬 와야 된데이.”

“알겠습니다.”

“꼭이다.”

노파가 구급대원을 보면서 단단히 말했다. 노파의 손에는 손수건과 작은 가죽 조각이 있었다.

우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노파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가가 내한테 맡긴 것도 있다 카이!”

“알겠습니다. 꼭 구조할게요.”

“약속했대이?”

“예.”

구조대원들의 다독거림을 받으면서 노파가 구급차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노파는 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힘찬 사이렌 소리와 함께 노파를 태운 차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는 노파가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노파가 민우와 스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멋대로 엉킨 실타래를 풀 수도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이 우리를 물들였다.

우리가 시야에서 사라진 건우를 찾는 순간이었다.

“차장……!”

펑. 그리고, 쾅.

엄청난 폭발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건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귀를 막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모두 반사적으로 건물에서 멀찍이 멀어져 있었다.

건물이 폭발한 순간. 그 짤막한 순간.

우리의 코끝이 싸해졌다.

우리의 볼을 타고 굵직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주룩주룩.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우리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우리는 제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았다.

‘근데 정말로 왜 우는 건데.’

건우의 감정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건우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눈물이 쉬지 않고 떨어지는 것인지 우리도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우리의 코를 찔렀다. 회색빛 연기가 끝없이 우리에게로 몰려들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도 정신없던 현장의 모습도 연기 속에 사라져갔다. 신기루처럼 나타났던 건우의 과거는 순식간에 형체를 잃었다.

모두, 사라졌다.

우리의 앞에는 자신의 방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건우의 모습만 또렷하게 보일 뿐이었다.

돌아왔다. 건우의 과거 밖으로.

다시 현실로.

“……봤습니까.”

건우의 물음에 우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굵직한 눈물은 여전히 우리의 얼굴을 적셨다.

건우는 무거운 침을 삼켰다. 제 과거의 고통이 우리를 울린 것만 같아 미안했다.

건우는 자신이 우리를 울리지 않기를 바랐다.

찢긴 상처에서 풍기는 고약한 향기와 아픔을 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통은, 한 사람만으로 충분하다.

“불이 났는데. 그랬는데…….”

힘겹게 말을 꺼내는 우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일단 쉬죠.”

온기를 품은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녹아들었다. 우리의 낯빛은 새하얬다.

건우는 우리가 뭔가 최악의 순간을 봤을 거라고 지레 짐작밖에 할 수 없었다.

“죄송해요.”

나직이 번지는 우리의 목소리가 건우를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바르르 떨리는 아랫입술은 우리가 느꼈을 고통이 얼마나 심한 것이었는지 알게 했다.

건우는 무리하게 우리가 위로의 말을 꺼내지 않기를 바랐다.

과거의 자신만큼 지금의 우리도 힘겨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고우리.”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도 우리는 넋이 나가보였다.

“우리야.”

다시 한 번 들리는 목소리에 우리가 고개를 들고 건우를 봤다.

“힘들면, 쉬어도 돼.”

건우의 말에 코를 훌쩍거리던 우리는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눈이 새빨개질 만큼.

정말 펑펑.

건우의 너른 품에 얼굴을 묻고 한참 눈물을 쏟아내던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코를 푸는 우리의 소리가 방을 뒤흔들었다.

우리는 한결 진정됐지만 눈은 심하게 부어있었다.

건우가 우리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다독거리는 손길이 유난히도 따뜻했다.

건우는 약간 고개를 숙이고는 우리에게 눈을 맞췄다.

“좀 괜찮습니까.”

“완전은 아니지만. 덕분에 좋아졌어요.”

“다행이네.”

건우가 부드러운 손길로 우리를 다독거렸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놀란 우리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됐기를 바랐다.

자신의 작은 다독임에 끔찍했던 자신의 과거도 모두 잊기를.

“차장님.”

굳은 침을 삼킨 우리가 건우를 불렀다.

“할머니를 봤어요.”

“어떤 할머니 말입니까.”

“그 편의점에서 뵀던…….”

우리가 말끝을 흘렸다. 건우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노파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분이 있었어요.”

“내 과거 속에 말입니까.”

“네. 그 분이 거기 있었어요.”

“거기라면.”

“동생분이 있었던 그 건물에.”

우리의 말이 무겁게 떨어져 내렸다. 건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노파가 민우의 마지막 모습을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건우의 마음이 출렁거렸다.

10년 넘게 알지 못했던 민우의 마지막이었다.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두려움이 건우를 뒤흔들었다.

“일단은 저희 편의점 가 봐요. 가서…….”

건우는 일어나려는 우리의 팔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민우의 마지막을 안다는 두려움이 기대를 잡아먹었기 때문이었다.

고통스럽지는 않았을까. 두려움에 떨지는 않았을까.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생생하게 전해질 그날의 일을 마주하는 일에 건우는 겁났다.

“차…… 장님?”

우리가 조심스럽게 건우를 불렀다. 깊은 생각에 잠겼던 건우가 우리를 봤다.

“아무래도 바로 가기는 좀 그렇겠죠.”

반쯤 일어난 채로 어정쩡하게 서 있던 우리가 건우에게 말했다.

그날의 일을 헤집는 것이 건우와 노파에게는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건우를 바라보면서 슬그머니 다시 앉았다.

건우는 달리 말이 없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제 팔을 잡은 건우의 손이 한없이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날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건우는 힘들어보였다.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나중에 저 혼자 가도 되고요.”

“아닙니다. 같이 가죠.”

“괜찮으시겠어요?”

“예. 괜찮습니다. 그럼 당장 이동하죠.”

건우는 쇠뿔도 단김에 뺄 생각이었다.

다시 생각 속에 잠기면 용기가 사라질지도 몰랐다.

건우는 흐무러지는 마음을 있는 힘을 다해 단단히 붙잡았다.

“그럼 저희 이동할까요.”

“예. 일단 제대로 준비 좀 하고.”

건우가 우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풀어진 단추가 걸렸기 때문이었다.

하나, 또 하나.

단추를 잠글 때마다 건우의 손가락이 우리의 살결을 살짝살짝 스쳤다.

보드라운 손길에 우리의 마음이 세차게 뛰었다.

작은 숨결이 스치고 차갑게 식었던 방의 열기는 다시 높아지는 것만 같았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얇은 살결을 비집고 흐를 것만 같았다.

길게 내뻗은 건우의 속눈썹을 타고 우리의 시선이 아래로 미끄러졌다.

오뚝한 콧날을 따라서 내려가던 시선은 금세 건우의 입술에 멈췄다. 체리처럼 붉은 입술이 우리는 마냥 유혹적이게만 보였다.

잘못 손만 스치지 않았더라면 불타는 낮을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짙은 아쉬움에 우리가 몸부림을 치던 순간이었다.

“……!”

닫혔던 우리의 방문이 벌컥 열었다.

정말로 벌컥!

옆을 본 우리의 눈이 커졌다. 미순은 우리의 블라우스에 손을 내뻗은 건우와 우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단추를 잡고 있는 건우의 손. 빨개진 우리의 눈.

필시 큰일이 벌어졌다고 미순은 확신했다.

“너…… 너!”

흥분한 미순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놀란 건우와 우리도 그대로 얼어붙었다. 세 사람은 박제된 것처럼.

멈춰버린 필름처럼 제자리에 굳어있었다.

“너…… 너…… 이 상놈의 자식. 지금 우리 딸한테!”

미순은 거칠게 장롱을 열고는 우악스럽게 옷걸이 하나를 꺼내들었다.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처럼 보였다. 새하얀 옷걸이를 들고 있는 미순의 손은 분노로 바들바들 떨렸다.

“기껏 바나나도 먹였는데 자식이! 내 딸한테 손을 대?”

분노에 찬 눈빛을 날리면서 미순은 건우에게로 달려들었다.

‘바나나가 힘을 불끈 솟게 만든다더니……. 이런 음흉한 늑대 같은 자식. 절대 용서 못 해!’

미순은 옷걸이를 거칠게 휘둘렀다. 미순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처럼 보였다.

거침없는 공격에 우리의 눈이 커졌다. 정말 무슨 사달이 나도 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미순이라면 가능했다.

“잠깐만!”

미순을 말리는 힘찬 우리의 목소리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미순은 나비처럼 날아올라 벌처럼 건우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렸다.

짝! 박수라도 치는 것처럼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쁜 손을 고쳐주고 말겠다는 다짐을 표출하듯 미순은 뒤이어 옷걸이를 휘둘렀다.

“아니라니까!”

우리가 놀란 얼굴로 미순의 앞을 막아섰다. 가만히 놔뒀다가는 미순의 손에 먼지가 풀풀 날 만큼 건우가 맞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미순의 손에 건우가 소멸될지도 몰랐다.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현장에서 딱 잡았는데. 현행범이야. 저 시끼.”

“단추가 풀려서 그랬다니까.”

“그걸 왜 저 시끼가 건드리는데!”

건우를 두고 대치를 하고 있는 우리와 미순의 사이로 짙은 긴장감이 흘렀다.

미순은 호시탐탐 건우에게 옷걸이 회초리를 날릴 빈틈만 노리고 있었다.

건우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비켜.”

미순은 축축하게 젖은 우리의 눈을 보면서 단단히 말했다.

우리를 울린 죄를 꼭 물고야 말겠다는 기세였다.

“확! 없애야 돼.”

“뭘 없애는데.”

“남자구실 못하게. 붙어있음 뭐하게. 몹쓸 생각이나 하지!”

봇물이 터진 것처럼 미순은 술술 험악한 말을 쏟아냈다.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조건 건우 앞을 막아선다고 끝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불안한 예감이 적중하기라도 하듯 미순은 팔을 벌린 우리의 빈틈을 찾아냈다.

미순의 눈빛이 희번덕거렸다.

“일단은 내려놓고…….”

“내리기는 개뿔!”

미순은 건우의 중심부를 향해 사납게 옷걸이를 내던졌다.

“안 돼!”

절박한 목소리와 함께 우리가 옷걸이를 막아냈다.

우리의 팔에 맞은 옷걸이가 침대 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거기 다치면 우리 큰일 난다고!

“지금 뭐하는…….”

“사귀어!”

아린 팔을 부여잡고는 우리가 소리쳤다. 미순의 분노와 폭주를 막을 수 있는 하나 밖에 없었다.

무슨 변명을 해도 미순이 듣지 않을 것이 뻔했다.

연애 공개.

그것만이 답이었다.

“뭐…… 뭐?”

“우리 사귄다고.”

우리의 폭탄 발언에 일순간에 사위가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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