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45화 (45/102)

제 45화. 인연의 끈을 완전히 묶을 방법

길게 내뻗은 복도에 미순은 안쪽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미순의 시선에 보이는 거라고는 천연대리석으로 된 정갈한 복도에 걸린 그림 몇 점뿐이었다.

“안에 누구 있나 보네요.”

“손님이 있어서.”

“아…… 손님.”

미순은 건우의 말을 되씹었다.

‘분명 여자였는데.’

설핏 지나간 목소리의 정체가 미순은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뒤늦게 건우를 살피던 미순의 눈길이 빨라졌다.

대강 걸친 셔츠로 살짝살짝 보이는 단단한 몸과 헝클어진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어둑한 밤에 여자와 단둘이 있다니!

미순은 건우의 집에 있는 사람이 단순한 손님이 아님을 눈치 챘다.

“늦은 시간에 미안했어요. 그럼 좋은 시간 보내고 반상회 때 봐요.”

미순은 서둘러 끝인사를 날렸다.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 방해꾼으로 낙인찍히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거는 잘 마실게요.”

미순은 식혜를 가볍게 흔들면서 말했다.

“예. 조만간 뵙겠습니다.”

“들어가요.”

“들어가시면 가겠습니다.”

건우가 약간 고개를 숙이고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덩달아 미순도 인사를 건넸다.

연달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건우를 등지고는 미순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천천히 닫히고 있었다.

미순의 입술 사이로 안도의 숨이 흘렀다.

우리의 편한 사회생활을 위해 건우에게 잘해주기는 했지만 우리와 괜히 인연으로 얽힐까. 내심 걱정했던 미순이었다.

그런데 건우가 여자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미순은 괜한 걱정을 단숨에 털어내 버렸다.

‘그럼 그렇지. 여자친구가 없을 수가 없지.’

미순의 얼굴에는 한결 여유가 돌았다.

“이거 참. 추운데 들어가세요.”

“예.”

엘리베이터의 문이 완전히 닫히는 순간까지도 두 사람의 인사를 끝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그제야 건우는 활짝 열었던 문을 닫았다.

멀찍이서 귀를 쫑긋 세우던 우리가 슬금슬금 건우의 방을 나섰다.

“저희 엄마 갔어요?”

“예. 가셨습니다.”

건우의 말에 우리가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왜 오셨대요?”

“반상회비 걷으러 오셨답니다.”

“그거 말곤 이상한 건 없었어요?”

우리는 건우에게 바짝 다가서서는 물었다. 우리의 말에 건우는 곰곰이 미순과의 대화를 되짚었다.

달리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적이고도 단조로운 대화였다.

“설마 알고 기습하신 건 아닐까 해서요.”

“그러셨을 수도 있겠고.”

“공동현관에서 봤나. 누가 제보라도 했을까요. 아님 아…… CCTV?”

무언가 단단히 깨달은 것처럼 우리의 입이 벌어졌다.

“과한 추리 아닙니까.”

“절대로…… 아뇨.”

우리가 단칼에 대답했다.

사뭇 진지하게 추리에 열을 올리는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돌았다.

“차장님, 저희 뭐라도 했었나요.”

“뭐라도?”

“스킨십이요. 뭘 했었나? 뭐했지. 밖에서는 안 했죠? 키스도 아직이었죠?”

우리는 기억을 더듬거렸다. 스킨십의 현장이라도 미순이 목격했다면 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뻔한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건우는 희미한 기억을 되짚는 우리에게로 담담하게 다가섰다.

“아. 어머님께서 신신당부는 하셨습니다.”

“갑자기 무슨 당부요?”

우리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건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약간 몸을 기울이고는 우리와 눈을 맞춘 건우의 입가에 설핏 유혹적인 미소가 번졌다.

열기에 젖은 건우의 숨결이 우리에게 천천히 흘러내렸다.

“좋은 시간 잘 보내라고.”

나직한 건우의 목소리가 번져나갔다.

“그래서 잘 보내볼 참입니다.”

“……!”

“말씀은 잘 새겨들어야 하니까.”

건우는 저돌적으로 우리에게 들이닥쳤다. 참았던 욕망을 단숨에 터뜨린 것이었다.

달게 익어버린 숨이 우리의 입술에 뭉그러졌다.

커다란 손으로 우리의 얼굴을 감싼 건우는 숨소리마저 낮아졌다.

켜켜이 쌓이는 숨결이 서로를 갈망하고 있었다. 우리가 굳은 침을 삼키기 무섭게 건우는 우리에게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은 촉촉한 입술의 감촉이 선명하게 느꼈다.

정전기라도 오른 것처럼 우리의 달아오른 온몸이 찌릿했다.

“아.”

건우가 잘게 뱉은 우리의 숨을 삼켰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흐르는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달뜬 숨결이 끈덕지게 엉겼다. 진한 타액이 뒤섞이고 서로를 탐하는 눈길이 짙어졌다.

깊게 베어드는 건우의 향기에 우리는 아찔해졌다.

우리가 손을 건우의 가슴팍에 올렸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불끈 솟은 근육이 제 모습을 강하게 뽐냈다.

우리의 숨을 삼키는 건우의 목울대가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거칠어진 숨을 타고 우리가 맹렬하게 건우의 셔츠를 풀려던 순간이었다.

우리의 핸드폰이 울렸다.

“고우리씨 전화…….”

“괜찮아요. 잠깐 파업한 걸로 할게요.”

우리는 대번에 건우의 말을 삼켰다. 화끈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건우의 양쪽 뺨을 감싼 채로 우리는 대담하게 건우의 입술을 삼켰다.

“나는 좋은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건우의 손짓에 우리의 시선이 움직였다. 협탁에 있는 우리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엄마]

미순의 전화였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란 얼굴로 우리는 건우에게서 손을 뗐다.

우리가 허겁지겁 전화를 받았다.

-어디쯤 왔어? 밤도 늦었는데 마중 나갈까 해서.

“아냐. 다 왔어. 집 앞이야. 집 앞.”

-조심해서 오고.

“주무셔요.”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말이었다.

-너 오면 자게. 얼른 와. 엄마가 해줄 말도 있고.

“해줄…… 말? 무슨 말?”

-오면.

미순의 말에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필시, 미순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물 밖으로 뛰쳐나온 물고기처럼 우리의 심장이 펄떡거렸다.

“알았어. 금방 가.”

우리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전화를 끊은 우리가 협탁에 뒀던 외투와 가방을 들었다.

비장한 기운이 우리에게 돌았다. 핸드백을 들고 있던 우리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건우를 보는 우리의 눈빛은 단단해졌다.

“뭐라고 하십니까.”

“할 말이 있으시대요. 설마 눈치 채신 건 아니겠죠?”

건우는 미순의 의중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은 가볼게요.”

“오늘은 이대로 끝입니까.”

“네. 나머지는 나중에요!”

힘껏 대답한 우리가 급히 신발을 신었다. 그야말로 분주한 몸짓이었다.

다급한 몸놀림에 우리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건우의 손이 연신 움찔거렸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대충 외투를 걸친 우리가 인사를 했다.

“이대로 가면 들키겠습니다.”

“왜요. 어디 문제라도 있어요?”

“너무 풀어져 있어서.”

건우는 풀어 헤쳐진 우리의 외투 단추로 손을 내뻗었다.

건우의 부드러운 손길에 벌어졌던 단추가 천천히 잠겼다.

“잘 들어가요.”

아랫단에 있던 단추 하나.

“생각했던 결말은 아니라 아쉽지만.”

그리고 또 하나.

“오늘만 보내주는 겁니다.”

외투를 스치는 건우의 손길에 우리는 그저, 아쉬운 눈빛이었다.

풀어져 있던 단추가 전부 잠겼다. 우리의 매무새는 금세 단정해졌다.

건우가 우리의 옷깃을 쓸어내리면서 묘하게 마음을 돌던 미련을 털어버렸다.

“가서 연락 줘요.”

“네. 바로 연락할게요.”

인사를 마친 우리가 건우의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우리는 연신 뒤를 돌았다.

문고리를 잡은 채로 건우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아쉬운 인사와 함께 우리는 집으로 내려갔다.

‘할 말이 있다니. 무슨 말인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우리의 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건우와의 연애 사실을 미순이 알았다면 좋은 말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었다.

번호키를 누르는 우리의 손길은 천근만근이었다.

우리가 천천히 집으로 들어섰다.

“왔어? 피곤하지?”

“괜찮아. 근데 할 말이 뭐야.”

잘 갈린 딸기 주스를 건네받은 우리가 물었다.

주스를 마시면서도 우리는 미순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앉아봐.”

“무슨 일인데 그래.”

“윗집 총각, 애인 있더라.”

“애…… 인?”

우리의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임자 있더라고. 내가 좀 전에 일이 있어서 올라갔는데 분명 누가 있었거든.”

“그래서 봤어?”

“보지는 않아도 촉이 있지. 확실히 여자였어.”

미순의 눈이 번뜩거렸다.

‘엄마. 그 여자, 나야.’

추리에 열을 올리는 미순을 보던 우리는 미순의 눈치만 살폈다.

“그래에?”

우리가 말끝을 힘차게 올렸다.

누군가 건우의 집에 있다는 것에는 확신하고 있었지만 누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점쟁이 말만 아니었어도 괜찮은 사윗감이었는데.”

“사윗감은 무슨.”

“왜. 능력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잖아. 센스도 있고.”

미순이 거실 탁자에 있던 빈 유리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좋은 사윗감 후보를 놓쳤다는 아쉬움과 불운의 시작을 끊었다는 안도감이 연달아 미순의 얼굴을 휘감은 것처럼 보였다.

“나 먼저 씻고 잘게. 피곤하네.”

우리는 나오지도 않은 하품을 억지로 해댔다.

자칫 미순에게 다가가 팔불출처럼 건우가 최고의 신랑감임을 입이 닳도록 자랑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목구멍을 간질이는 칭찬들을 꿀꺽 집어삼켰다.

“너도 들어왔으니까 나도 자야겠다.”

미순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단단히 긴장해 조여졌던 우리의 마음이 풀렸다. 방으로 들어간 우리는 그대로 침대에 널브러졌다.

우리가 손을 내뻗어 핸드백에 있던 핸드폰을 꺼냈다.

-차장님. 저 잘 왔어요.

-별일은 없었습니까.

단번에 건우의 답장이 날아왔다. 가히, 화살보다 빠른 답장이었다.

-네. 다행히 없었어요. 진짜 긴장돼 죽는 줄 알았어요.

-수고했네.

찔끔 눈물을 흘리는 기본 이모티콘이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평소 건우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모티콘의 향연이었다.

-차장님. 저희 그냥 확 궁합이라도 볼까 봐요.

-궁합 말입니까.

-그냥…… 재미로요. 설득할 때도 유용할 것 같고. 요새 다들 재미로 많이 본대요.

말을 덧붙이는 우리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건우는 답장이 없었다.

우리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건우도 미순이 우리와의 연애를 걱정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으니, 궁합을 보자는 말에 괜히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의미는 아니…….

우리가 변명의 메시지를 보내려던 순간이었다.

-보죠.

갑작스럽게 날아든 건우의 답장에 우리의 손이 삐끗했다.

핸드폰이 이마 위로 툭 떨어졌다.

“아!”

외마디 비명과 함께 우리가 이마를 비벼댔다. 묵직한 핸드폰의 무게에 우리의 이마 중앙부가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난데없는 혹에 절망한 우리의 얼굴은 울상으로 변해갔다.

우리가 침대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봅시다, 궁합.

건우의 굵직한 메시지가 우리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다물어진 우리의 입술에 꾹 힘이 들어갔다.

원하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랐다.

참 끝내주는 궁합이라는 그런, 말.

***

다음날 퇴근한 두 사람은 용하다는 점집으로 들어섰다. 미순에게 불길한 이야기를 날렸던 점집이었다.

문규의 바람까지 맞춘 용한 점집이었으니 우리는 역술가가 미순의 반대를 해결할 무슨 해답이든 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우리는 어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일단 건우를 끌고 오기는 끌고 왔는데 해답이 없으면 어쩌나.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위압감을 주는 분위기도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우리를 보던 역술가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승으로 가야 할 녀석이 딱 붙었네.”

우리의 뒤를 노려보던 역술가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래서 두 분은 궁합이라도 보러 오셨나.”

“아…… 네.”

역술가의 말에 괜스레 뒤를 힐긋거리던 우리가 대답했다. 어둠 속에 서 있던 민우의 모습이 설핏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약간 당황한 우리와는 달리 건우는 덤덤한 얼굴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독히도 눌어붙은 향내가 우리와 건우의 코끝을 찔렀다.

“태어난 날짜하고 시간.”

역술가는 진지한 얼굴로 생년월일을 적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두 사람을 보는 역술가가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요.”

우리는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를 건네받았다.

날카로운 필체로 한자를 적어 내려가던 역술인의 표정이 굳었다.

사주팔자와 관상까지 살피던 역술인은 건우의 손금까지 살폈다.

아무리 살펴도 절대로 여자가 있을 수 없는 사주였다.

그런데 궁합이라니.

“고놈 짓이네.”

역술인이 무언가 알았다는 것처럼 무릎을 탁 치고는 중얼거렸다.

“억지로 붙은 인연인데 궁합이 나올 수가 있나.”

역술가는 군데군데 한자가 적힌 종이를 옆으로 밀었다.

맹렬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살피던 역술가가 연신 혀를 찼다.

“만약에 궁합이 나온다고 해도 흉이야.”

“흉이요?”

“서로 나쁜 일만 생긴다고.”

역술가가 단호하게 말했다. 달라질 것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역술가의 말에도 건우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방법은 없을까요. 모든 일에는 해결 방법이 있잖아요. 부적이나…….”

“알고 있잖아.”

“……네?”

“인연을 완전히 묶을 방법.”

묘한 역술가의 말을 곱씹던 우리의 뇌리를 스치고 편의점에서 만났던 노파의 말이 스쳤다.

‘그럼…… 인연을 묶을 방법은 없나요.’

‘그기야 기스 난 맴이 나으면 잘 무까질지도 모른다 카이.’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상처가 난 민우의 마음이 아문다면…….

우리가 고개를 돌려 건우의 손을 쳐다봤다. 역술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건우의 과거를 보는 것.

건우의 과거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굳은 침을 삼켰다. 누군가의 고통을 고스란히 보고 느끼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깊이의 슬픔이었다.

게다가 민우는 아버지 성원처럼 화마에 삼켜져 사라졌었다.

‘상처가 아물 수 있을까.’

우리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건우의 과거를 보는 일은 우리에게 특히 힘들었다.

성원의 사고 소식을 들은 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성원이 화마에 잡혀 세상에서 사라진 날. 마냥 즐겁게 떡볶이만 먹고 있었던 그날.

[고성원 소방교 사망]

텔레비전 뉴스에 찍힌 자막은 짧고도 무심했었다. 사망자를 알리는 단순한 보도였다. 성원은 세상을 떠났다.

추가 폭발 때문이라고 했다.

건우에게로 차마 손을 내뻗지 못한 우리의 손가락은 핸드백 위를 꼼지락거렸다.

불끈 솟았던 용기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겁쟁이처럼.

“궁합은 어렵겠고…….”

역술가가 말끝을 끌었다. 역술가의 눈길은 건우에게 머물렀다.

“사주라도 봐드릴까.”

역술가는 건우에게 바짝 다가서서는 물었다. 건우를 살피던 역술가의 눈이 조금씩 가늘어졌다.

우리의 주변을 돌던 민우와는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지만, 드문드문 얼굴은 닮은 구석들이 보였다.

‘형제라.’

역술가의 눈빛에 건우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뚫어질 것처럼 보였다.

“괜찮습니다.”

건우는 역술가의 시선을 무심히 털어냈다.

사주나 궁합에는 별달리 감흥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운동은 왜 관뒀나.”

“…….”

“계속했으면 잘 됐을 텐데. 부도 명예도 다 끌어 모았을 텐데. 이게 진짜 아쉽단 말이지.”

역술가가 건우의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를 들고는 혼잣말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건우의 주변을 돌던 건조한 기운이 짙어졌다.

“손보고 아셨습니까.”

건우는 역술가가 제 손에 남은 굳은살과 상처를 보고는 하는 말이라고 확신했다.

“그걸 봐야 아나. 얼굴만 봐도 다 보이는데.”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말이군요.”

“세상일을 다 설명할 수 있으면 재미가 있나.”

모호한 역술가의 말에 건우는 코웃음을 쳤다.

역술가의 추리가 대강 맞아 떨어진 것뿐이었다.

정말 우연히.

역술가의 말에 빠진 우리와는 달리 건우는 흔들림이 없었다.

“설명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죠.”

“그래서 관뒀나.”

“…….”

“동생 때문에?”

건우의 마음이 휘청거린 건, 단 한 마디였다.

동생.

그 작은 단어의 실린 무게가 순식간에 건우를 짓눌렀다.

“동생은 바라지 않는 일이었던 것 같은데.”

“그만 하시죠.”

“아니면 다른 죄책감 때문인가.”

“그만…… 하라고 했습니다.”

건우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불뚝 솟는 화를 삼키기가 버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건우의 속은 타들어 가는 것처럼 새까매졌다.

살짝 가빠진 숨결이 건우의 입술 사이로 흘렀다.

“갑시다.”

“아…… 네.”

건우가 일어났다. 덩달아 우리도 일어났다. 건우는 흐트러졌던 마음을 꽉 잡고는 점집을 나섰다.

건우를 바라보면서 핸드백을 뒤적거리던 우리의 손은 분주했다.

복채 없이 점집을 나서기에 마음이 찝찝했기 때문이었다.

“본 것도 없는데. 됐어.”

역술가가 우리가 건네는 복채를 사양했다.

“그래도 좀…….”

“돈은 됐고.”

역술가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빤히 우리를 쳐다봤다.

“그 녀석. 자기도 봤지?”

우리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말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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