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화. 나쁜 일이 벌어지면
차는 한쪽으로 기울어져있었다. 터진 에어백에 얼굴을 묻고 있던 운전자가 힘겹게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두 팔을 땅에 짚은 채로 운전석에서 기어 나온 운전자의 얼굴을 하얗게 질렸다.
사람이라도 쳤을까. 온몸을 휘감은 불안에 보닛 쪽을 확인하는 것도 두려워했다.
운전자가 눈을 질끈 감고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온전하게 정신을 차리려고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설마. 사람을…….’
자꾸만 나쁜 생각이 운전자를 덮쳤다. 운전자는 느릿하고 무거운 걸음으로 전봇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전자의 입술을 마른 벼처럼 바짝 말랐다.
누군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운전자를 옥죄였다.
헤드라이트 빛줄기를 따라서 운전자의 눈길이 흘렀다.
밝은 빛에는 먼지가 떠돌았다.
모든 것이 연기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그곳에 우리와 건우가 있었다.
건우는 우리를 안은 채로 전봇대 가까운 곳에 쓰러져 있었다.
운전자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저기요. 두 분 괜찮으세요?”
운전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찌뿌듯한 기운에 살짝 얼굴을 찌푸리던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건우의 팔에 손을 닿은 순간이 설핏 뇌리를 스치면서 지나갔다.
놀랄 만큼 빠르게 건우는 우리를 안고 돌진하는 차를 피해 몸을 날렸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날쌘 화살처럼 빠른 건우의 운동신경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찌그러진 보닛처럼 온몸이 망가졌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돌진한 차에 말을 잃은 우리의 심장만 펄떡거렸다.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처럼.
“차장님.”
제 머리를 붙잡던 우리가 건우를 불렀다. 건우는 미동이 없었다.
넘어지면서 어딘가 크게 다쳤을 수도 있었다.
‘강민우. 네가 왜…….’
둥근 랜턴 불빛으로 제 눈두덩을 찌르던 민우가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었는지도 몰랐다.
형이 다칠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도와달라고.
그래서 자꾸만 제 앞에 나타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민우의 경고를 알아채지 못했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막을 수 있었는데.
바보처럼.
다급하게 일어나 건우의 두 어깨를 잡은 우리의 아랫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아버지 성원을 보냈을 때도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한 번만 바꿔 먹어보자. 민정아.’
‘사양한다.’
‘와. 치사하게.’
성원이 화마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떡볶이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을 뿐이었다.
입술에 남은 흔적을 지우면서 살금살금 집에 들어섰을 때였다.
집은 캄캄했고 미순은 우리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성원이 죽었다고 했다.
고작 떡볶이 하나로 친구와 아웅다웅하고 있는 사이에.
폭발한 건물 속에서 성원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조차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차장님. 차장님!”
퍼런 핏대를 세우면서 공허하게 건우를 불러대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코끝이 싸해졌다.
다른 사람의 과거를 보는 것 말고 누군가를 치유하거나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 손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차장님.”
건우를 부르던 우리가 제 몸을 뒤적거렸다. 핸드폰이 절박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주책맞게도 우리의 눈에 차오른 눈물이 굵직한 비처럼 쏟아졌다.
“괜찮습니까.”
그 순간, 영영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건우의 눈꺼풀이 천천히 떠졌다.
한참을 방황하던 눈동자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였다.
“어디 다친 곳이라도…….”
펑펑 눈물을 쏟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건우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다정스럽게 물었다.
그 물음에 왈칵 눈물만 쏟아내던 우리가 건우를 안았다. 찬기는 조금씩 사라지고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코를 훌쩍거리면서 우리는 건우를 살폈다.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어디 다치신 데라도.”
“나는 괜찮습니다. 고우리씨는.”
“저도 괜찮아요.”
“다리는. 허리는요. 손목이라도……. 불편한데 있습니까.”
건우는 최대한 진정을 하고 있었지만 평소보다 말이 빨라졌다.
차에서 울려대는 빽빽거리는 소리조차 관심을 두지 못할 만큼 우리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만 괜찮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차장님.”
“그래도 일단은 병원 갑시다. 가서 자세히 보죠.”
“정말 멀쩡해요.”
“잠깐 놀라서 괜찮을 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선은 가죠. 병원.”
건우의 평정심은 이미 와르르 무너진 것처럼 보였다. 바지에 붙은 먼지조차 털어내지 못한 건우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우리가 건우의 손목을 잡고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풀린 우리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건우는 급히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우리를 잡았다.
우리는 건우의 품에 반쯤 안긴 모양새가 됐다.
두 사람은 바라보는 운전자를 어쩔 줄을 몰랐다.
일단은 두 사람이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얼굴이었다.
“일단은 제 차로…… 가시기는 어렵겠네요.”
차를 가리키던 운전자는 당황했다. 종잇장처럼 찌그러진 보닛은 회복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연달아 차체에서 피어오르는 뽀얀 연기에 세 사람은 짐짓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명함 주시면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명함. 예. 잠시만…….”
바지 뒷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운전자의 손이 떨렸다. 운전자도 아직 놀란 마음을 채 추스르지 못한 것 같았다.
낡은 가죽 지갑을 연 운전자가 건우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요. 언제든지. 아무 때나 막…… 예…… 전화하셔도 됩니다.”
“그러죠.”
건우는 명함을 챙겼다. 건우의 부축을 받으면서 우리는 근처 도로로 걸어갔다.
택시를 잡고 있는 건우를 보던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럽게 터진 골치 아픈 일에 머리칼을 넘기던 운전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갑자기 차가 급발진을 해서…… 예.”
한숨을 내뱉는 운전자의 사위에 옅은 입김이 번졌다.
“과실이라뇨. 브레이크고 뭐고 다 먹통이었다니까요. 사람까지 칠 뻔 했다고요. 내 참!”
수화기 너머로 웅얼거리는 소리에 운전자가 제 머리를 헝클면서 소리쳤다.
“아니. 차가 혼자 움직였다고요. 급발진 몰라요? 급발진!”
운전자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가로등의 노란 불빛이 지지직거렸다.
위태로이 흔들리는 불빛은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아슬아슬해보였다.
인도에 기우뚱하게 올라선 차를 보던 우리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억지로 인연을 잡아서 탈이 나는 거라고 그랬다니까.’
거짓말처럼 미순의 말이 우리의 귓가를 맴돌았다.
‘문디 머스마. 억지로 인연 잡는다고 뭣이 해결이 되겠노.’
무심했던 노파의 말도 덩달아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생기 없는 눈빛으로 운전자를 보던 우리가 건우를 봤다.
우리는 택시를 잡는 건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정말 억지로 잡은 인연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운명이니 인연이니. 처음에는 그저 바보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가벼이 넘겼던 그 말들이 우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택시를 잡은 건우가 뒷좌석을 열어주었다.
“조심히 타요.”
뒷좌석에 올라탄 우리는 나쁜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나쁜 일은 그야말로 놀라운 재주가 있었다.
흘러가는 말조차 간절히 붙잡게 만드는 재주.
희망보다 절망을 더 믿게 만드는 재주.
그렇게 사람을 홀려버리는 아주 나쁜, 재주.
***
택시는 응급실에 멈춰 섰다. 건우의 간곡한 고집에 백기를 든 우리는 수십 장의 엑스레이를 찍었다.
멀쩡한 채로 응급실에 들어와 아픈 행색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 우리는 안절부절 못했다.
침상에 걸터앉은 우리는 바닥에 긁힌 손등에 생긴 작은 생채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펄럭거리는 커튼 틈새로 바쁜 목소리들이 흘러들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건우는 초조한 얼굴로 좁은 곳을 이리저리 걸었다.
“차장님.”
“예.”
“근데 처음에 만난 의사분하고 아시는 사이세요?”
우리는 건우의 걱정을 잠재우려 말을 걸었다. 우리의 말에 건우가 일순간 멈추었다.
“주치의셨습니다.”
“…….”
“……선수 때.”
건우가 바람 빠지듯 피식 웃었다. 뇌리를 스치면서 제 선수 시절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수없는 부상에도 이를 악물고 버텼었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흥하겠다는 일념하나로.
건우가 고개를 돌렸다. 되돌아갈 수 없는 순간을 기억하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침전된 분위기를 깨고 커튼이 젖혀졌다.
차트를 들고 있던 의사가 건우에게로 다가섰다.
의사의 얼굴에는 정신없는 응급실의 기운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건우는 커튼을 치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강건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깨끗해. 뼈도 인대도. 무지하게 건강한 상태고.”
의사의 말에 건우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다친 곳이라도 있을까. 한참 마음을 졸였던 건우였다.
건우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긴장이 순식간에 탁 풀렸다.
“이쪽보다는 네 신경을 좀…….”
의사가 건우의 팔을 잡았다. 저릿한 기운이 삽시간에 건우의 팔에 번져나갔다.
“엑스레이 좀 찍어야겠네.”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심하게 부었네. 뼈에 금이라도 갔으면 큰일인데.”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건우의 손목을 살폈다. 푸른 멍이 건우의 손목에 올랐다.
붓기는 쉬이 빠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뼈에 금이 가거나 인대가 늘어났을 확률이 높았다.
더러는 신경에 손상이 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선은 엑스레이를…….”
“됐습니다.”
건우는 별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의사의 손을 뿌리쳤다. 그 순간 아릿한 기운이 손목에 돌았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아픈 기운이 저릿하게 내달렸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을 말아쥐었다.
지금 아픈 티를 냈다가 우리에게 괜히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다친 것을 분명 본인 탓으로 돌릴 것이 뻔했다.
적어도 건우가 아는 우리라면.
“강건우.”
“…….”
“너 인마, 이제 삼십 대야. 십대 아니고. 참으면 병난다.”
참고 견디는 것은 건우의 해묵은 습관이었다. 선수시절부터 쌓아온 고질적인 습관.
“검사 싫으면 나중에 받더라도 얼굴이라도 치료 좀 받아. 그게 뭐냐.”
“집에 가서 치료하면 됩니다.”
“자식이. 고집 여전하네. 여전해.”
대강 의사와의 대화를 끝내고 커튼을 잡으려던 건우가 멈칫 했다.
신발을 구겨 신은 우리가 힘차게 커튼을 젖혔기 때문이었다.
“엑스레이 찍어주세요. 치료도 해주시고요.”
우리가 건우의 팔을 잡고는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선생님 말씀처럼 시간 지난다고 바로 회복될 나이도 아니고.”
“정말로 멀쩡합니다.”
“그건 잘 살펴봐야 알죠. 그리고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연애가 깃든대요.”
“누가 그럽니까.”
“제가요. 그러니까 얼른 가요. 제가 특별히 같이 가드릴게요.”
우리가 두 손으로 건우의 너른 등을 떠밀었다. 우리의 손길에 건우도 백기를 들었다.
건우의 손목 상태는 의사의 말대로 그리 좋지 않았다.
우리를 안은 채로 넘어진 건우가 바닥의 충격을 그대로 흡수해버린 것이었다.
삐끗한 손목에는 약간 골절이 있었고 팔의 뒤꿈치를 지나가는 신경이 손상돼 건우의 팔을 아리게 만들었다.
건우의 고집에 반깁스 결정이 났다.
진통 주사를 맞은 건우의 고통은 조금씩 누그러들었다.
“2주 뒤에 경과보고 풀면 될 것 같으니까 잘 관리하고.”
건우의 손목을 꼼꼼히 살피던 의사가 말했다.
“건우 좀 잘 감시해주세요. 생각만큼 말을 참 안 듣는 녀석이라.”
“선생님.”
“왜. 맞잖아. 선수 때도 얼마나 꾹 참던지. 보통 사람들은 아프다고 소리라도 질렀을 텐데.”
“적당히 아파서 그랬습니다.”
“적당히는. 아무튼 무서운 놈이라니까요.”
의사가 건우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의사에게 건우는 예나 지금이나 아픔의 비명조차 소리없이 삼켜버리는 사람이었다.
이를 악물고 쓰린 몸과 마음을 참아내는 사람.
의사는 그 모습이 여전히 대단해보였고 안쓰러웠다.
“호출이네. 그럼 조심히 들어가요.”
의사가 다시 응급실로 돌아갔다. 반깁스를 하지 않은 손으로 건우는 도로에 손을 내뻗었다.
“제가 잡을게요.”
“아닙니다. 이쪽 손은 멀쩡합니다.”
건우가 도로로 내민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말했다.
“깁스 한 쪽도 상태가 심각한 것도 아니고.”
건우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 말을 덧붙였다. 걱정에 사로잡힌 우리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다시금 택시를 잡으려는 건우의 손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날름 도로를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그래도 제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우리의 손길에 택시 한 대가 멈췄다. 우리는 건우가 그랬던 것처럼 뒷좌석을 열어주었다.
히터에서 흐르는 훈훈한 바람이 두 사람을 따뜻하게 적셨다.
“고우리씨는 정말 괜찮습니까.”
“정말 괜찮아요. 바닥에 긁힌 것뿐인데요. 뭐.”
우리는 생채기가 난 손등을 힐끔 보고는 대답했다.
“그나저나 차장님이 큰일이네요. 깁스라니.”
우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건우의 팔을 봤다. 긁힌 손등은 도대체 비견할 수 없을 만큼의 부상이었다.
“금방 나을 겁니다.”
“도울 수 있는 거라면 최대한 도울게요. 차장님은 낫는 데만 집중하세요.”
우리가 불쑥 몸을 기울이고는 뒷좌석에 있던 안전벨트를 당겼다.
굵직하고 단단한 안전벨트가 우리의 손에 쭉 길어졌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건우의 뜨거운 숨결이 우리의 얇은 볼에 스몄다.
“최대한 돕겠다라…….”
우리의 말을 되새기는 건우의 나직한 목소리에 우리의 손길이 멈추었다.
분명히 묘한 속셈을 품은 말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뒤엉켰다. 색정적인 눈길, 뜨겁게 흐무러지는 숨, 그윽하게 번지는 향기.
그리고 좁은 차 안.
우리는 택시를 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몰려든 매혹적인 건우의 눈빛에 홀려 마음이 출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둘만 있는 차안이라면 무슨 사달이 나도 났을 것이었다.
“잘 활용해보죠.”
“뭘요.”
“뭐든 돕겠다는 말.”
악마의 미소만큼 유혹적인 미소가 건우의 입가를 적셨다.
안전벨트를 잡은 우리의 손이 꼼지락거렸다. 우리의 입술이 버석하게 말랐다.
‘아…… 거참! 키스하고 싶게.’
내적 욕망을 달랠 것인가. 분출할 것인가!
건우의 탐스러운 입술을 가만히 바라보던 우리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는 입맛을 다셨다.
룸미러로 택시 기사의 뜨거운 눈총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내 차안에서는 스킨십은 금지라는 강렬한 눈빛!
“확실히 옛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무슨…….”
“전화위복.”
달리는 차 안에서 나직한 건우의 목소리가 천천히 번졌다.
“화를 좀 당했으니 기어코 받아내야겠습니다.”
건우가 우리에게 다가섰다. 안전벨트를 잡은 우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행운.”
누가 있든 아랑곳하지 않고 건우는 금방이라도 키스를 날릴 것만 같았다.
룸미러로 보이는 운전기사의 번뜩이는 눈빛이 선명해졌다.
어떤 시선도 감당해낼 수 있기에 우리는 택시 운전기사의 경고의 눈빛이 신경 쓰였다.
우리는 건우의 가슴팍을 살짝 밀어냈다.
“도발입니까.”
“네…… 네?”
낮게 도는 건우의 목소리에 우리가 건우를 봤다.
“도발이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는 것 같은데.”
건우의 눈길이 살짝 아래로 내려갔다. 덩달아 우리의 눈길도 움직였다.
건우의 가슴팍 쪽을 바라보던 우리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우리의 손가락은 본능적으로 건우의 단단한 가슴팍에 볼록 솟아오른 정점을 꾹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성과 본능이 뒤범벅된 기묘한 현장이었다.
“도발…… 일수도 있겠네요.”
우리가 짐짓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건우의 가슴팍을 집요하게 탐하던 순간을 털어내지 못한 채로 우리의 눈길은 방황하고 있었다.
뒷자리에서는 묘한 적막만이 돌았다.
“초인종이라도 누르는 것 같네요.”
우리는 어색한 웃음을 터뜨리면서 단순한 농담처럼 상황을 넘기려고 했다.
“내가 아는 그 초인종 말입니까.”
“네. 띵동. 뭐…… 띵동이요.”
덧없이 방황하던 우리는 제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었다.
그야말로 진짜 초인종을 누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당황한 우리가 날리는 참담한 무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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