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화. 억지로 잡은 인연은 탈이 난다
떨어진 손수건을 살피던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합동장례식장에서 받았던 손수건과 똑 닮은 손수건이었다.
재질, 색깔, 무늬 하나 없이 단조로운 것까지.
무엇 하나 다른 것이 없는 같은 손수건이었다.
‘설마. 그때 그 사람인가.’
손수건을 집은 우리가 사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기대에 찼던 우리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우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어쩌면 한 번은 만날 수 있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기쁨을 표현하는 것만큼 슬픔을 내보이는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그 사람이.
우리는 흐트러져있는 손수건을 잘 갰다.
“되게 낡았네.”
잘 접힌 손수건에는 낡은 기운이 감돌았지만 얼룩 하나 없이 말끔했다.
군데군데 빛이 발한 부분만 빼면 수납장에 있던 손수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주전부리와 손수건을 들고는 계산대로 걸어갔다.
편의점 주인이 익숙하게 바코드를 찍어댔다.
“봉투 필요하세요?”
“아뇨. 괜찮아요.”
계산을 끝낸 우리가 편의점 주인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저쪽에 떨어져 있었는데 누가 잃어버리신 것 같아서요.”
“어머. 어머! 큰일 날 뻔했네.”
손수건을 받아든 중년의 편의점 주인은 놀란 얼굴로 두 손을 마주쳤다.
하마터면 큰일이 벌어질 뻔했다는 얼굴이었다.
“고마워서 어쩌죠. 괜찮으시면 저희 호빵이라도 드릴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뭐라도 드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사양하지 말고 드세요. 비싼 것도 아니라.”
편의점 주인이 따끈한 호빵을 꺼냈다. 열기를 품은 찜기에서는 모락모락 열기가 피어올랐다.
“저희 어머님이 애지중지하는 손수건이거든요.”
편의점 주인이 호빵을 정성스럽게 담으면서 말했다.
“예전에 불이 났을 때 크게 고생하셨거든요.”
“불이요?”
“네. 예전에 저쪽 동네 건물에 불이 났거든요. 그때 생명의 은인이 준 손수건이라고. 덕분에 살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손수건에 머물렀다.
무늬 하나 없는 손수건은 참 많은 비밀을 품은 것처럼 보였다.
“소중하시겠네요.”
“예. 말도 마세요. 매일 품에 꼭 품고 계신다니까요. 부적처럼.”
편의점 주인은 계산대에 놓여있는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들면서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참 주책이죠. 나이 들면 이렇다니까요.”
“괜찮습니다.”
“아무튼 감사드려요. 잘못 없어졌다가는 집안이 발각 뒤집힐 뻔했는데.”
편의점 주인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표정이었다.
다행이라는 것처럼 우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돌았다.
편의점 주인이 손수건을 계산대 아래에 있던 수납장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벌써 계산했습니까.”
주차를 끝낸 건우가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그럼요. 이것저것 좀 샀어요. 차장님 초콜릿이라도 하나 더 살까요.”
“괜찮습니다. 단 건 별로라.”
“사양하지 않으셔도 돼요. 단 거 좋아하시는 거. 제가 다 아는데요.”
건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 음식보다는 담백한 음식을 좋아했고 군것질거리는 거의 입에 대본 적이 없는 건우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화이트 초콜릿으로 하나 더 고를게요.”
“그거 더 먹고 싶었던 거, 아닙니까.”
“아…… 들켰네요. 역시 차장님은 속이기 어렵다니까요.”
냉큼 진열대에 있던 화이트 초콜릿을 가져온 우리가 깔깔 웃었다.
“이것도 더 계산할게요.”
“그것까지 서비스로 드릴게요.”
편의점 주인은 벙긋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에게 호빵과 초콜릿을 내밀었다.
“죄송해서…….”
“그냥 작은 성의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래도.”
“정 마음에 걸리시면 자주 와주시고요.”
우리는 결국 호의를 거절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건우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두 여자만 번갈아 쳐다봤다.
한가득 호빵이 담긴 봉지는 제법 묵직했다. 건우는 우리의 손에 있던 짐을 가져갔다.
“감사합니다.”
깍듯하게 인사를 한 우리는 건우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차가운 바람에 우리의 긴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듯 흩날렸다.
찬기를 깊게 빨아들이던 우리가 옷깃을 여몄다.
“다시 겨울된 것 같아요.”
그야말로 꽃샘추위가 기승이었다.
겨울바람의 드센 기운에 눌려버린 봄 향기는 제대로 기운을 뻗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봉지 속에 있던 호빵을 하나 꺼냈다.
따뜻한 온기가 손을 타고 전해졌다.
“하나 드세요.”
“괜찮습니다.”
“에이. 같이 먹어야 맛있죠.”
우리의 말에 건우가 호빵을 받아들었다. 건우가 호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오랜만이었다.
민우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몇 년 동안 입에도 대지 않았던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맛있죠.”
“예. 맛있습니다.”
호빵에서는 김이 솔솔 피어올랐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건우를 보던 우리도 호빵을 한입 물었다.
달콤한 팥이 입안을 진하게 적셨다. 피곤함도 말끔히 사라질 만큼 우리의 기분은 들떴다.
고작 호빵 하나 나눠먹는 일도 즐겁게만 느껴졌다.
“와! 강건우. 어디 갔다가 이제 와.”
공동현관 앞을 서성거리던 성민과 마주치기 전까지는.
“네가 왜 여기 있냐.”
“너한테 문자 남겼잖아. 나 오늘 좀 재워달라고.”
“내가 왜.”
“너무 야박한 거 아니냐고. 우리 사이에.”
추위에 굳어버린 손을 쥐었다 펴면서 성민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불만 가득한 성민의 말에도 건우는 심드렁했다.
그저 성민이 적당한 타이밍에 빠져주기만을 바랐다.
우리와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너 전화는 왜 씹냐.”
“데이트 중이라.”
진지한 건우의 말에 성민은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는 건우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즈니스로 얽힌 계약 연애를 하는 모습이라면 모를까.
“일하고의 데이트냐. 빨리 문이나 좀 열어봐. 나 얼어 죽을 것 같다고. 동사직전이야.”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확실히 야박해. 근데 묘하게 매력 있다니까. 가자. 이 형님이 주전부리도 사왔다.”
성민이 해맑은 웃음을 날리면서 손에 있던 봉지를 흔들었다.
맥주병이 부딪히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혼자 집에 가서 마셔라.”
“왜. 안주도 내가 낼게. 나 진짜 아버지하고 엄청 싸워서 못 들어가.”
애걸복걸을 하는 성민의 코끝은 빨개져있었다. 맹렬하게 들이닥치는 찬바람을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건우를 채근하면서 제 팔을 쓸어내리는 성민의 몸은 오들오들 떨렸다.
멋을 위해 추위를 포기한 자의 최후였다.
성민의 얇은 외투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찬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성민의 모습에 건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매몰차게 성민을 내쫓을까도 심히 고려했지만 관뒀다.
“들어오세요.”
처음 그날처럼 성민에게 문을 열어주는 우리의 관대함에 굴복한 것이었다.
“감사…… 어! 맞죠. 건우하고 마트에서 뵀던.”
공동현관에 들어선 성민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여기서 또 뵙네요. 저 그때 그 건우 친구, 한성민입니다.”
“안녕하세요. 고우리입니다.”
두 번째 통성명이었다. 성민은 반가운 얼굴로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성민의 손을 바라보던 우리가 목인사로 악수를 대신했다.
기가 막힌 우연에 성민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야근하셨나보네.”
“야근 냄새라도 나나요.”
“편안한 차림은 아니신 것 같아서. 딱히 다른 일 없으시면 술 한 잔 어떠세요. 제가 술을 좀 많이 사와서.”
성민이 봉지를 가볍게 흔들면서 물었다. 술병이 부딪히는 소리가 건우의 신경을 긁었다.
건우가 두 사람에게 돌진을 하기도 전에 공동현관문이 닫혔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건우의 손은 가히 신경질적이었다.
건우는 금방이라도 문을 부술 것만 같은 기세였다.
단숨에 우정을 날려버릴 만큼 건우에게는 어마어마한 냉기가 솟구친 것이었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건우가 급히 우리의 옆에 섰다.
꼭 우리만을 지키는 용맹한 전사처럼.
“피곤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건우가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는 물었다. 원하는 답은 정해진 것처럼 보였다.
“왜. 그래도 동료끼리 한 잔하고 좋잖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 할 일이고.”
“같이 마셔요. 우리씨. 제가 맛있는 안주도 대접하겠습니다.”
성민은 너스레를 떨었다. 새로운 사람의 참여는 술자리에 활력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절한 성민의 눈빛에 우리도 호기심이 일었다.
성민에게 건우에 대해 넌지시 물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고.
“약속하신 거예요. 제가 굉장히 잘 먹거든요.”
“말씀만 하시면 전부 주문해드리겠습니다.”
잠자코 우리와 성민의 대화를 듣던 건우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폭발을 목전에 앞둔 화산처럼.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건우는 성민에게 가라는 눈빛을 쏘아댔지만 성민은 호탕하게 웃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성민은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건우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낼 작정이었다.
술에 취한 자신을 몰아낼 만큼 냉정한 건우가 아니라는 것을 성민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건우의 집 현관문이 열렸다.
“우선은 가볍게 치킨부터 시킬까요.”
성민이 핸드폰을 흔들면서 우리에게 물었다. 그 모습을 보던 건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야밤에 무슨 치킨을…….”
“야식은 치킨부터죠.”
성민의 말을 제지하려던 건우의 말을 우리가 가로챘다.
찰떡같이 죽이 맞는 죽마고우처럼 우리와 성민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거실에 있던 테이블 위로 금세 술상이 차려졌다.
맥주병을 든 우리가 어서 오라는 것처럼 건우에게 손짓했다.
“비켜봐.”
건우가 우리의 옆에 바짝 붙은 성민을 발로 툭 치면서 말했다.
“왜. 저쪽에 자리도 넓은데.”
성민이 널찍한 반대편을 가리켰다.
“이쪽 기운이 더 좋아서.”
“기운이 어디 있다고.”
“있으니까 가라. 내 집이다.”
건우는 뒷말에 잔뜩 힘을 주었다.
내 집이라는 말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없을 것처럼 보였다. 성민은 건우의 집에서 내쫓길까. 시무룩한 얼굴로 옆으로 비켜났다.
건우는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쫙 펴고는 냉큼 우리의 옆에 앉았다.
“자. 그럼 저희 건배부터 할까요.”
성민이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주도했다. 세 사람이 건배를 하려던 찰나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치킨을 영접하러 달려 나가는 성민의 걸음은 재빨랐다.
성민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건우가 우리에게 바짝 붙었다.
“적당한 때에 데려다주겠습니다.”
“괜찮아요. 아직 첫잔도 못했고.”
우리가 술병을 들면서 말했다. 안절부절 못하는 건우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제법 재밌었다.
우리는 자신이 변태일지도 모른다고 확신했다.
건우의 질투를 자꾸만 불러일으키고 싶은 욕망이 쉴 새 없이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피곤하니까.”
“아뇨. 치킨 다리 한쪽이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우리가 고소한 치킨 냄새를 깊게 빨아들이고는 말했다.
성민은 치킨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진지한 얼굴로 치킨을 바라보던 건우가 재빨리 다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노골적으로 우리의 앞에 다리를 밀어주었다.
“이 상황 어떻게 해석해야하는 거냐.”
성민은 황망한 얼굴로 우리의 앞에 있는 치킨 다리를 봤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기분이었다.
“레이디 퍼스트.”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건우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말문을 막아버리는 대답이었다.
두 다리를 양보하지 않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매몰찬 사람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성민에게 다리를 내밀었다.
하지만 성민은 도저히 다리를 받아들 수가 없었다.
다리를 받기라도 하면 건우가 당장이라도 집에서 내쫓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성민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시어머니에게 소박이라도 맞는 기분이었다.
“근데 출판사 하고 계신다고 하시던데.”
민망한 기류를 바꾸려 우리는 재빨리 화젯거리를 만들어냈다.
“하나 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되게 싫어하시지만.”
“왜요.”
“이왕이면 본인 따라서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셨거든요. 그래서 약간 충돌이 있지만 만족합니다. 책 나오면 뿌듯하고.”
성민은 거실 한 쪽에 있는 책을 보면서 벙긋 미소를 지었다.
성민에게서는 제 출판사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끝없이 터져 나왔다.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면서 살아야죠.”
씩 미소를 지은 성민이 단숨에 술을 비웠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에 모든 것을 털어버린 성민의 용기가 부러웠다.
안정을 포기하고 도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술 떨어졌다.”
봉지를 뒤적거리던 성민이 커다란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혼자 이야기만 하다가 술도 다 마시고. 나가서 사오겠습니다.”
“아뇨. 제가 사올게요.”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난 성민을 말렸다. 비틀거리는 모양새가 심상찮았기 때문이었다.
“밤길도 위험하고.”
“네가 밤길 걱정은 왜 하냐. 같이 가죠. 고대리님.”
“아니. 그래도 내가…….”
“내가 나갈 테니까 집 잘 지키고 있어라.”
건우는 부드럽게 성민의 말을 가로챘다. 성민의 어깨를 묵직하게 두드린 건우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가만히 집이나 지키고 있으라는 미묘한 위압감과 경계 섞인 눈빛이 건우에게서 터져 나왔다.
“가죠.”
건우가 소파에 있던 우리의 외투를 챙겨주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오징어를 뜯는 성민이 대충 손을 흔들었다.
어서 다녀오라는 손짓이었다.
성민의 배웅을 받으면서 두 사람은 집을 나섰다.
“미안합니다. 괜히 불편하게.”
“아뇨. 괜찮아요. 차장님하고 더 오래 있어서 좋기도 하고.”
“그렇습니까.”
“그럼요. 그래도 친구 분이 있으니까 잘못 발각돼도 할 말도 많고요. 적어도 증인은 확보했으니까.”
우리가 닫힌 현관문을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거기까진 생각 못했네.”
치밀한 우리의 생각에 건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아파트를 나섰다. 편의점에 있던 장바구니를 들고 술 몇 병을 담았다.
심심한 입을 달래줄 안주거리도 바구니에 담겼다.
계산을 끝내고 편의점을 나선 우리가 뒤를 돌았다.
“저 잠깐 숙취해소제라도 사올게요. 혹시 모르니까.”
“같이 가죠.”
“아뇨. 술도 무거운데 금방 다녀올게요. 바로 코앞인데.”
우리가 뛰어가듯 빠른 걸음으로 편의점에 들어갔다.
계산대 한 편에 있던 숙취해소제를 계산하고는 가게를 나섰다.
옅은 어둠 속에 서 있을 우리의 목덜미를 스치고 선득한 바람이 불었다.
일순간 우리의 발걸음이 약간 느려졌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짙은 그림자가 스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불안한 기운을 품은 바람이 우리에게 휘몰아쳤다.
건우에게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가로등 아래에 서 있던 건우를 보던 우리의 눈이 커졌다.
도로를 이탈한 차가 건우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는 옅은 가로등 불빛 아래에 서 있던 건우를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것 같은 기세였다.
“차장님!”
놀란 우리가 건우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편의점을 바라보던 건우가 우리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민우가 들고 있던 둥근 랜턴에서 쏟아지던 빛만큼 커다란 헤드라이트 불빛이 자신을 집어삼키려하고 있다는 걸 모른 채로.
‘인연을 멀리서 찾으라고 그러더라고.’
미순의 말이 설핏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안 그러면 사고나 구설수에 괜히 휘말릴 수도 있다고.’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억지로 인연을 잡아서 탈이 나는 거라고 그랬다니까.’
우리는 건우를 향해 내달렸다. 건우에게 돌진하는 차는 경적소리도 내지 않았다.
아주 조용히 건우에게 달려들 뿐이었다.
헤드라이트에서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불빛이 건우의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우리는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건우를 살려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입술을 꽉 깨문 우리가 손을 내뻗었다.
우리의 손에 있던 숙취해소제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우리의 손끝이 건우의 팔에 닿았다.
환한 빛만큼 건우의 얼굴에 새겨지는 그늘도 짙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차장님!”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차에서 삑삑거리는 소리가 밤하늘을 뒤덮었다.
희뿌연 연기가 어둑한 허공을 타고 올라갔다.
쉬지 않고 곧장 인도를 넘어선 차의 보닛이 심하게 찌그러졌다.
차의 뒤쪽에 있던 빨간 미등만이 위태롭게 깜빡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