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38화 (38/102)

제 38화. 질투라는 것이 폭발한다

프로젝트를 재고한다는 말의 위력은 대단했다.

오전부터 끈질기게 건우에게 전화를 걸어대던 문규가 회사로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벼랑 끝에 선 토끼 커플의 요란한 재등장이었다.

건우는 팔짱을 낀 채로 로비를 서성대는 문규를 봤다. 문규의 뒤에는 잔뜩 심통이 난 소희가 서 있었다.

문규에게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온 모양새였다.

하지만 사과를 할 마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문규가 소희의 손목을 살짝 잡아끌었다.

“당장 사과하고 끝내자.”

“왜요. 저희가 갑이잖아요. 사과하려면 그 불여우가 해야죠.”

“소희야. 차부장한테 쪼이는 거 너도 봤잖아. 그냥 한 번만 눈 딱 감고 사과해.”

“싫어.”

소희가 이를 악물고는 대답했다. HJ그룹까지 끌려왔다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한 얼굴이었다.

“제발. 소희야.”

“싫다니까.”

문규는 소희의 두 팔을 붙잡고는 애걸복절하고 있었다.

‘남의 회사까지 찾아와서는. 상당히 거슬리네.’

건우의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토끼 커플을 바라보는 건우의 눈빛은 시베리아 벌판의 바람만큼 차갑고도 싸늘했다.

“나 진짜 사과하기 싫다고.”

소희의 두 볼이 가득 부풀었다. 죽어도 우리에게 사과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은 거처럼 보였다.

상부의 압박에 문규는 쩔쩔매고 있었지만, 소희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것처럼 굴었다.

회사 일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우선적이었다.

토끼 커플을 보던 건우의 입술을 타고 조소가 흘렀다. 두 사람의 등장이 탐탁지 않았다.

자칫 우리가 발견했다가는 기분만 상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두 사람을 내쫓을 마음을 먹고는 굳게 닫혀 있던 게이트를 나섰다.

멀리서 풍기는 위압감에 문규의 고개가 절로 게이트 쪽으로 돌아갔다.

“아. 차장님! 강차장님!”

문규가 두 손을 번쩍 들면서 건우에게 알은 체를 했다.

“드디어 나오셨네. 여깁니다. 여기요. 차장님!”

문규는 카페로 걸음을 돌리던 건우의 앞을 막아섰다.

문규의 눈빛에서는 이대로 건우를 보낼 수 없다는 다부진 의지가 느껴졌다.

“갑자기 이직을 하셨을 리는 없겠고.”

“강차장님도 참. 무슨 그런 농담을.”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저희 쪽에서 추가로 결정난 내용도 있고. 또…… 고대리님은?”

문규는 고개를 내빼고는 건우의 주위를 살폈다.

“용건만 말씀하시죠.”

“고대리님을 좀 뵀으면 좋겠는데.”

“저한테 말씀하시죠.”

“사과를 전달 드리는 건 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문규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의외군요.”

“네?”

“예의에는 관심 없는 분이실 줄 알았는데.”

건우가 무심하게 툭, 내뱉은 말에는 뼈가 있었다. 살벌한 건우의 눈빛에 문규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문규는 건우의 덤덤하고도 쓴 소리를 맞받아치고 싶었지만 프로젝트 성사만을 생각하면서 솟구치는 말들을 전부 집어삼켰다.

“아하하…… 무슨 농담을 살벌하게. 하하!”

멀뚱멀뚱하게 생각을 비워나가던 문규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순수하고도 편안한 웃음은 아니었다.

설마 웃는 사람 얼굴에 침을 뱉지 않을 거라는 적당히 계산된 웃음이었다.

“농담, 아닙니다.”

고도로 계산된 문규의 넉살 좋은 웃음은 건우의 말에 말끔하게 두 동강 났다.

정말로 댕강.

문규의 설마가 현실이 된 것이었다.

문규의 눈 아래 두툼하게 오른 살집이 떨렸다. 웃는 얼굴에도 침을 뱉는 놈이 있었다니!

“차장님. 우선은 안쪽에서 저희 성운백화점 입장을 좀 들으시고…….”

문규가 가방에 있던 제안서를 꺼내서는 건우에게 내밀었다.

“주시면 검토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 일단 여기까지 왔는데 직접 이야기를 좀. 날도 춥고요. 입구라 바람이…… 어우.”

문규는 두 팔을 쓸어내리면서 추위를 한껏 어필했다.

“난방 잘 돌고 있습니다.”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서 있던 건우는 문규의 말을 칼같이 잘라냈다.

건우는 문규를 힘들게 굴리고 싶었다. 그동안 우리를 힘겹게 한 만큼.

우리에게 상처를 준만큼. 건우와 문규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를 만나려는 자와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자의 대격돌이었다.

“추가 결정 사안은 보내주시면 확인해보고 연락드리죠.”

건우가 문규에게 손을 내뻗었다. 준비한 자료를 두고 당장 꺼지라는 까칠한 눈빛까지 날려댔다.

문규는 우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연결고리를 이대로 내어줄 수만은 없다는 것처럼 제안서를 제 품에 꼭 끌어안았다.

“저희는 사과 꼭 하고 가야겠습니다.”

문규가 소희의 손목을 거칠게 끌어당기면서 말했다.

“누굴 위한 사과입니까.”

“그야…….”

“본인들을 위한 사과 아닙니까.”

건우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고대리 기분은 생각해봤습니까.”

“그건!”

“사과 받는 사람의 마음은 조금도 존중하지 않으면서 사과라니.”

건우가 실소를 흘렸다. 건우는 다짜고짜 회사를 쳐들어온 문규의 까만 속내를 단박에 눈치 챘다.

놓친 물고기에 대한 집착과 성공에 대한 야욕이 뒤범벅돼 지독한 냄새를 뿜어냈다.

코끝을 찔러대는 문규의 악취에 건우는 거북했다.

“추가로 결정된 사안 보내지 마시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받지 않겠습니다. 그게 뭐든.”

건우는 문규와 우리가 연결된 마지막 연결고리를 싹둑 잘랐다.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플랜B로 재빨리 방향을 트는 것이 낫다는 판단만 짙어졌다.

“그럼.”

건우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사무실로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한 문규가 마침내 터져버렸다.

끓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 문규가 건우에게 달려들었다.

멱살을 잡은 문규의 손등에 퍼런 핏대가 섰다.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문규의 품에 있던 자료들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뜨거운 콧김을 쏟아내는 문규는 약이 오를 대로 올랐다.

화를 주체하지 못한 문규의 손은 바르르 떨렸다.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려버릴 기세였다.

도발적인 문규의 손길에도 건우는 별다른 반응을 보지 않았다.

문규의 손을 털어내지도 않았다. 가만히 폭주하는 문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직급 좀 있다고 으스대는 것 같은데. 잘난 척 좀 그만해.”

문규가 이를 악물고는 바락바락 말했다.

건우를 쏘아보는 눈에는 한껏 힘이 들어갔다.

“미친 새끼. 우리는 내가 더 잘 알아.”

“정말 잘 압니까.”

“5년이야. 무려 5년을 사귀었다고.”

문규의 말에도 건우에게서는 진한 여유가 돌았다.

“꽤 길었네.”

“……?”

“의미 없는 시간.”

차가운 건우의 목소리가 흘러내렸다. 건우는 먼지를 털어내듯 옷깃을 잡은 문규의 손을 가볍게 털어냈다.

치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 문규의 얼굴이 마구잡이로 구겨졌다.

“성문규 주임님. 이만 돌아가시죠.”

“못 돌아가.”

문규의 말에 건우가 한 걸음 문규에게 다가섰다.

맹수만큼 날카롭고도 서늘한 눈빛이 문규의 온몸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건우를 경계하던 문규의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렀다.

긴장한 문규의 목구멍은 금세 버석해졌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소희는 멀찍이 뒤로 물러났다.

남의 회사 로비에서 무슨 망신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희는 핸드백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로비를 지나는 HJ그룹 직원들도 호기심 넘치는 눈길로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억지로 끌고 오더니. 쪽팔리게!’

문규를 보던 소희는 짜증스럽게 인상을 찌푸렸다.

소희는 그저, 쪽팔렸다. 문규는 발에 밟혀 쭈그러진 물병처럼 건우의 기에 파삭 눌려버렸기 때문이었다.

한 눈에 봐도 모든 형세는 건우에게로 심하게 기울어져있었다.

“조용히 돌아가시죠.”

“나는 댁하고 말하고 싶지 않다니까. 고대리 데려와.”

“성문규 주임님.”

“우리하고 말하게 당장 데려오라고.”

“권유 아니고 경고입니다.”

건우는 문규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사람 건드리지 마.”

“…….”

“다치고 싶지 않으면.”

위협적인 말이 문규의 귓가를 적셨다.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큼 선득한 말이었다.

당황한 문규는 애꿎은 목덜미만 세차게 긁어댔다.

구릿빛 목덜미에 얇은 생채기가 생길 만큼.

“그럼 가시죠.”

건우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나직이 말했다.

“차장님!”

건우의 귓가에 우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무룩해지려던 문규의 표정이 단숨에 의기양양해졌다.

건우가 흐트러진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는 뒤를 돌았다.

“무슨 일입니까.”

“급히 논의 드릴 사안이 있어서요.”

로비가 시끌벅적하다는 말을 듣고 헐레벌떡 내려온 우리가 가쁜 숨을 삼키면서 말했다.

“지금 올라가서 논의하죠.”

건우는 우리의 의도를 간파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적당히 일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건우가 게이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우리를 끌고 건우가 사무실로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문규가 바닥에 있던 종이를 대강 주워들고는 소희의 손목을 끌었다.

문규의 힘에 이기지 못한 소희의 걸음이 움직였다.

우악스러운 문규의 손길에 소희의 손목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문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게이트로 들어가려는 우리의 앞을 막을 수만 있다면.

“시간 좀 내주시죠. 고대리님.”

문규가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저희 백화점에서 내부적으로 결정한 사항도 있고 또…….”

문규가 급히 소희의 등을 떠밀었다.

“우리 소희가 사과를 하고 싶다네요. 그날 일.”

문규는 소희를 채근했다.

덜렁 우리의 앞에 선 소희는 입술만 샐쭉거렸다.

“성주임님.”

“네네.”

“주임님은 역지사지를 잘 아시는 것 같은데 아직 소희씨는 모르는 것 같네요?”

소희를 보던 우리가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신경을 자극하는 우리의 말에 소희도 질 수 없다는 것처럼 눈을 치켜떴다.

우리와 소희 사이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사방을 뜨겁게 불태울 엄청난 불꽃.

“사과 할 마음 없으시죠. 소희씨.”

정확한 사실 폭격이었다.

“억지로 여기까지 왔을 거고.”

“…….”

“사과하기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뜨끔한 소희가 연달아 움찔거렸다. 문규가 건우의 앞에서 찌그러졌듯 소희도 우리의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팔짱을 끼고 있던 우리가 약간 몸을 숙여 소희의 얼굴을 살폈다.

“말했죠. 우리 레벨 차이 난다고.”

우리가 무심히 툭 말을 던졌다.

“괜히 심술부리지 말고 돌아가요. 가짜 사과는 나도 사양이라.”

우리는 덜렁 제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문규의 어깨를 밀었다.

얼이 빠진 얼굴로 휘청거리듯 뒤로 밀려난 문규가 우리를 봤다.

우리만 등장하면 만사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5년 동안 사귄 정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망신이라니…….

“고우리. 너 정말…….”

“저기요!”

궁상맞은 토끼 커플이 동시에 우리를 불렀다.

“공과 사는 구분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분노에 찬 소희의 도발이었다.

게이트에 사원증을 대려던 우리의 손길이 멈췄다.

우리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역지 지랄밖에 답이 없나.’

소희를 바라보던 우리의 사원증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저희는 공과 사를 잘 구분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사과도 하러 왔고, 추가 결정 사안도 가져왔고!”

소희가 문규의 손에 있던 종이를 뺏어 들고는 소리쳤다.

소희의 손에서 구겨진 종이가 힘없이 흔들렸다.

“근데 뭐가 문제죠.”

“그거.”

우리가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는 소희에게 다가섰다.

“문제를 모르는 게 문제죠.”

“아니. 그럼 들어나 보죠. 대체 뭐가 문제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시는지!”

“지금처럼 심하게 진상도 부리고 계시고.”

따발총처럼 조급하게 말을 뱉는 소희와는 달리 우리는 평온해보였다.

원한다면 갖가지 문제들을 전부 밝혀주고 말겠다는 의지마저 우리의 눈동자에 스쳤다.

“사과는 아직 안 하셨고.”

“그건…….”

“추가 결정 사안도 엉망으로 가져오셨고요.”

우리는 정리도 되지 않은 채로 어지럽게 쥐어진 종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맞는 말만 골라 내뱉는 우리의 말에 소희는 별달리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말문이 막히게 하는 레벨 차이였다.

“거기다가 절 뭐라고 부르셨더라.”

“…….”

“저기라도 하셨나요.”

소희의 얼굴은 불만으로 퉁퉁 부었다.

“제가 그쪽 때문에 회사에서 얼마나 곤혹을 겪었는지 알기는…….”

“관심 없어요.”

우리는 소희의 한탄을 대번에 잘랐다. 불만을 품은 소희의 코가 씰룩거렸다.

소희는 분노에 찬 눈빛을 맹렬하게 쏘아댔지만 우리를 위협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소희는 억울해 죽을 것만 같았다.

우리와 한바탕을 한 그날.

문규에게는 토끼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소희에게는 5년 차 커플을 단숨에 갈라놓은 희대의 악녀라는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이었다.

가는 곳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지경이었다.

‘얄미워!’

전쟁 같은 회사생활을 견디는 소희는 우리가 괘씸했다.

누군 죽을 것만 같은데!

“사회생활 잘하세요. 소희씨.”

“잘하고 있거든요.”

“되게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종일 욕만 먹고.”

“……?”

“저기, 소희씨가 좋아하는 썩. 은. 토. 끼. 떡. 이.”

문규를 가리키면서 말하던 우리가 뒷말에 힘을 주었다.

그야말로 1방 2킬의 현장이었다.

토끼 커플의 얼굴이 동시에 붉으락푸르락 여러 색깔로 바뀌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소희는 문규에게 크게 한방을 날려버리라는 눈빛을 쏘아댔다.

“고대리님…….”

“그럼 결정은 끝났네요.”

말허리를 자른 건우가 문규의 말문을 꽉 막아버렸다.

네 사람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혔다.

“콜라보,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저희 성운백화점만한 곳이 없을 텐데요.”

“많습니다.”

건우의 결정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추가 연락은 사양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일정이 바빠서.”

“강차장님!”

“조심히 돌아가시죠.”

간절한 문규의 외침에도 건우는 우리와 함께 나란히 게이트를 통과했다.

게이트에 막힌 문규는 울상이 됐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문규는 다리를 높게 들고는 게이트를 통과하려고 했지만 경비에게 덜미를 잡혔다.

“아니. 저는 여기 미팅 일정 때문에…… 저기 강차장님, 고대리님!”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까지도 우리와 건우는 문규를 외면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단단히 닫힌 문에 로비를 타고 들리던 북적거리는 소리가 일순간 사라졌다.

“성운백화점 콜라보는 정말로 물 건너갔네요.”

우리의 허탈한 목소리가 퍼졌다.

“그만한 장소가 없었는데 저 때문에…….”

“후회됩니까.”

“솔직히…… 네.”

짐짓 고민하던 우리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나는 입장을 바꿀 생각, 추후도 없습니다.”

“공과 사는…….”

“구분 못하겠습니다.”

건우가 우리의 말을 부드럽게 가로챘다. 두 사람의 시선은 허공에서 엉켰다.

건우는 부드러운 눈길로 가만히 우리를 바라봤다. 성운백화점을 포기하는 것은 그다지 이성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고효율을 반쯤 포기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우리 일이라면.”

그런데도 건우는 후회가 되질 않았다. 도리어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조금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우리와 함께라면…….

정신없는 길에도 한껏 신날지도.

“아…… 저도 모르겠어요. 후련해요. 골치는 아프게 됐지만.”

고개를 들고는 천장을 보던 우리가 고개를 내렸다.

“그래도 잠깐 후회 좀 많이 해야겠어요.”

우리가 벽에 이마를 대고는 한껏 후회했다.

“최선을 다해 후회 하는 중입니까.”

건우의 말에 다시 앞을 바라보던 우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열심히 후회를 하는 우리의 얼굴은 심각해졌다가 힘이 빠졌다가를 반복했다.

‘대박 카드를 버리다니!’

우리가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죄송합니다. 그만 후회해야 하는데.”

“계속해요.”

우리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건우를 봤다.

“맘껏 후회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

“그러니까 후회되면 그냥, 맘껏 후회해요.”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울고 싶음 그냥, 우는 거지.’

건우의 말을 듣는 순간. 손수건을 던져주던 남자의 말이 귓가를 스쳤다.

우거진 숲을 끝없이 맴도는 메아리처럼 아주 선명하게.

“왜 웃습니까.”

우리의 입가에 잔잔히 번지는 미소를 보던 건우가 물었다.

“누가 좀 생각나서요.”

“누굽니까.”

건우가 우리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생각났다는 사람이 진심으로 누군지 알고 싶다는 눈치였다.

건우의 도발적인 습격에 우리가 슬쩍 옆으로 비켜났다.

하지만 우리를 놔주지 않겠다는 듯 건우의 걸음도 덩달아 옆으로 한 발자국 움직였다.

“회삽니다, 차장님.”

“누군지 궁금해서 그럽니다.”

“설마 지금 질투하시는 거예요?”

약간 격양된 건우의 목소리에 우리가 물었다.

“예.”

건우는 조금의 주춤거림도 없이 대번에 대답했다.

건우의 눈빛은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정체도 모를 녀석에게 맹렬하게 솟구치는 질투를 숨길 수가 없었다.

불타오르는 건우의 눈빛은 스프링클러를 터뜨릴 수 있을 만큼 어마무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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