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37화 (37/102)

제 37화. 야근에도 실웃음이 흐를 때

우팀장은 조소를 흘리면서 종이만 매만졌다.

“아니. 왜 또 강차장님은 C조실까.”

“무슨 의미가 있겠죠.”

“의미는 무슨 의미.”

“어떤 의미라도.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잖습니까.”

담담한 건우의 말이 우팀장에게 날아갔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싸늘한 건우의 눈빛은 우팀장을 잠깐 얼어붙게 했다.

날이 선 건우의 눈빛에 우팀장은 기가 죽어 살짝 뒤로 물러났다.

“C조가 아주 박터지겠네.”

우팀장이 단전에 있던 용기까지 끌어 모아서는 빈정대듯 말했다.

“이거 뭐 나눠야 하는 거 아니야?”

“임의대로 나누면 제비뽑기의 의미가…….”

기업 문화팀 사원이 난감하다는 듯 대답했다.

원하지 않은 대답에 우팀장은 그저 불만스럽다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직급 높은 사람들이 죄다 C조로 들어가 있으면 게임이 되겠냐고.”

“그게 뽑기로 나왔으니까 어쩔 수 없을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아주 말대꾸네.”

우팀장은 혼잣말을 하는 듯 했지만 제 속에 있는 말을 대놓고 꺼냈다.

우팀장의 투정에 기업 문화팀 사원은 난감했다.

회사 생활을 전부 알지는 못했지만 팀원들을 쥐 잡듯 잡아대는 우팀장의 뿔난 성격만큼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신입 때는 말이야. 위에서 나오면 다 알겠다고 충성을 다 바쳤는데.”

“…….”

“하여튼 요즘 것들은.”

우팀장은 힘차게 혀를 차댔다.

“싸가지도 없고.”

사원을 바라보던 우팀장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로 돌아갔다.

이야기를 돌리고 돌렸지만 결국 우팀장의 표적은 우리였다.

묵묵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건우는 우팀장이 우리를 볼 수 없도록 커다란 몸집으로 우리를 가려버렸다.

불청객처럼 등장한 건우의 몸짓에 우팀장은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건우가 HJ그룹의 후계자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지만 우팀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후계자라면 기사나 비서 한 명쯤은 옆에 끼고 왔을 것이었다.

‘결국 너도 조무래기라 이거야.’

우팀장은 제 직감을 단단히 믿고 있었다. 건우를 보던 우팀장이 눈에 잔뜩 힘을 주었다.

기싸움에서 조금도 밀리고 싶지 않다는 깊은 바람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가볍게 받아내던 건우가 우팀장의 손에 있던 종이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욕심이 많으시네요.”

건우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늘, 남의 것만 탐내시고.”

건우의 말에 우팀장의 다혈질 성향이 불쑥 솟구쳤다.

“누가 보면 내가 놀부 심보라도 가지고 있는 줄 알겠네.”

“놀부라……. 닮으신 것 같기도 하고.”

“강차장!”

“농담입니다.”

불끈 화를 내려던 우팀장은 삽시간에 김이 빠졌다.

농담이라는 건우의 말꼬리를 잡다가는 제 꼴만 우스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C조.”

무심한 건우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건우의 말투에는 묘한 위압감이 넘쳤다.

건우에게 다시 한 번 압도된 우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들었다.

“기대되네요.”

“…….”

“……C조.”

건우가 옅은 미소를 흘리면서 기업문화팀 사원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마케팅1팀 강건우 차장입니다.”

얼떨떨한 얼굴로 종이를 받아든 사원은 C조에 건우의 이름을 적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우팀장의 얼굴은 심하게 구겨졌다.

‘아오! 어린 놈의 새끼가……. 얄미워 죽겠네.’

살살 속을 긁는 건우의 말에 우팀장은 열불이 치밀어 올랐다.

늘 뜻대로 굴러갔던 상황이 건우가 등장하고부터는 녹록치 않아졌다.

자신과 달리 평온해 보이는 건우의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팀장의 얼굴에는 불만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모든 심술을 부리고 다니던 놀부처럼.

“아니. 무슨 몰래카메라도 아니고. 전부 C조에 다 박아두고.”

입술을 쌜쭉거리던 우팀장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건우의 시선을 피하면서 우팀장은 괜히 주변만 둘러봤다.

다른 먹잇감을 찾아대는 하이에나처럼.

“다들 뭐해. 뽑았으면 돌아가서 일들 하지 않고.”

“…….”

“다들 워크샵 간다고 빠져서는. 뭣들 해. 일해. 일!”

우팀장은 애꿎은 직원들에게 빽 소리를 질러댔다.

종로에서 뺨을 맞고 한강에서 눈을 흘기는 꼴이었다.

괜한 화풀이를 날려대던 우팀장의 심술은 풀릴 줄을 몰랐다.

우팀장은 구시렁거리면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건우에게서 일보 후퇴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전력을 가다듬은 다음에 다시 도전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거드름을 피우듯 항상 팔자걸음으로 사무실을 헤집고 다니던 우팀장의 걸음은 삽시간에 공손해져 있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만큼.

“제발. 죽음의 C조는 피하게 해주소서.”

“육갑 커플에 우내시까지. 진짜 살벌하다. 살벌해.”

아직도 줄을 서 있던 직원들은 C조만큼은 피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누가 봐도 죽음의 조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C조야. 아! C조라고.”

“힘내세요.”

“망했어. C조라니.”

살벌한 C조에 걸린 직원들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면서 연거푸 탄식을 내뱉었다.

절망에 빠진 C조 조원들을 다독이는 따뜻한 손길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처절한 제비뽑기의 현장을 바라보던 우리는 건우와 함께 마케팅팀으로 걸어갔다.

“차장님.”

“예.”

“근데 진짜 신기하네요. 연달아서 C조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우리의 말에 건우의 걸음이 느려졌다. 건우는 약간 우리의 쪽에 몸을 기울였다.

주변을 살피던 건우의 모습은 수상해보이기까지 했다.

난데없이 가까워진 거리에 우리는 살짝 놀란 얼굴로 건우를 쳐다봤다.

여기는 회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눈빛으로 날려대면서.

“A조였습니다.”

“네…… 네?”

참으로 덤덤한 양심 고백이었다.

“C조 들고 계셨잖아요.”

“그건 강선영씨 조였습니다.”

“그럼 설마…… 바꾸신 거예요? 언제요? 보지도 못했는데.”

“수상한 짓은 혼란한 틈이라면 말끔하게 처리할 수 있죠.”

건우의 입가에 연한 미소가 돌았다. 우리의 뇌리를 스치면서 우팀장과 강렬하게 맞붙었던 순간이 지나갔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더니!

우리는 매혹적인 미소를 흩뿌리면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건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묘하게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짙은 근심도 연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마성의 뒷모습.

온기를 품은 건우를 보던 우리도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한 번 더 굳건하게 견뎌볼 요량이었다.

살벌하고도 달콤한, 죽음의 C조.

***

제비뽑기로 소란스럽던 사무실은 조금씩 조용해졌다.

밤 10시. 사무실에 남아있는 사람은 우리와 건우가 전부였다.

광고 콘셉트 방향과 레퍼런스를 덧붙이던 우리가 기지개를 켰다.

연달아 광고 영상을 보느라 눈이 시큰거렸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던 우리가 눈을 감았다.

아린 기운이 우리의 눈을 돌았다. 고요한 사무실에서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작게 들려왔다.

한없이 울리던 소리가 사라지고 느린 발걸음 소리만이 우리의 귓가를 간질였다.

“피곤합니까.”

건우의 말에도 우리는 쉬이 눈을 뜨지 못했다.

“아뇨. 눈이 좀 아파서요.”

“어떻게 아픕니까.”

“모니터를 계속 봐서 그런가 봐요. 좀 충혈이 돼서. 잠깐 눈 좀 감고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우리는 별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덤덤히 말했다. 시큰거리는 기운에 우리는 눈두덩을 살짝 눌러 마사지를 했다.

피로한 눈은 딱딱하기만 했다. 옆에서 부스럭대던 건우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한참 마사지를 하던 우리의 눈이 한결 편안해졌다.

우리는 마우스를 잡고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마지막 레퍼런스 영상만 하나 더 찾고 퇴근을 할 요량이었다.

미지근한 물을 마시면서 모니터를 보던 우리의 눈에 작은 빛이 들어왔다.

모니터에서 흐르는 빛은 아니었다. 우리가 살짝 엉덩이를 들고는 파티션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꺼져있던 탕비실에서 빛이 흘렀다. 문틈을 타고 흐르는 빛이 사무실을 연하게 적셨다.

그 빛을 보던 우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차장님이 켰나.’

우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장님?”

건우를 부르면서.

하지만 사무실에는 우리의 목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무실은 텅 비어있었다. 미리 탕비실의 불을 끄려 우리는 탕비실 쪽으로 걸어갔다.

밝은 빛은 꼭 헤드라이트처럼 환하게 빛났다.

대답 없는 정적의 끝을 따라서 우리가 천천히 다가섰다.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괜히 긴장한 우리는 굳은 침을 삼켰다.

찬란한 빛의 끝자락에서 우리의 걸음이 덜컥 멈췄다.

익숙한 얼굴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강…… 민우.”

분명, 민우였다.

“네가 왜…….”

우리의 말끝이 떨렸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붙잡으면서 우리는 민우를 빤히 바라봤다.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어쩌면 신기루를 보고 있는 걸지도.

신기루를 없애려는 것처럼 우리가 민우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민우는 헤드라이트처럼 둥근 랜턴을 들고 있었다.

우리를 바라보던 민우의 눈에는 불안과 슬픔이 뒤범벅돼 있었다.

밝고 유쾌한 얼굴은 아니었다. 진한 어둠이 뒷걸음질을 치는 민우를 삼키기 시작했다.

조금씩, 그리고 또 조금씩…….

“왜 자꾸 나타나는 거야.”

“…….”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거야?”

우리의 말에 민우가 둥근 랜턴을 껐다가 켰다. 마치 정말로 할 말이 있다는 것처럼.

눈두덩을 뒤덮는 그 빛에 우리가 손을 올리면서 눈을 감았다.

연하게 수그러든 빛에 우리가 천천히 눈을 뜬 순간이었다.

“거기서 뭐합니까.”

건우의 목소리에 우리가 뒤를 돌았다.

“여기…….”

앞을 가리키던 우리의 말문이 막혔다. 찬란한 빛줄기도, 민우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둠만이 휑뎅그렁하게 남아있었다.

‘민우라니. 그게 무슨. 꿈이겠지.’

우리는 잠기운을 쫓아내려는 것처럼 눈을 비볐다.

허깨비라고 생각했다. 피곤해서 헛것을 본 것뿐이라고.

멀뚱히 서서 떨리는 마음을 다잡던 우리가 뒤를 돌았다.

“여기서 물 좀 마시려고요.”

우리가 급히 말을 돌렸다. 민우라는 말은 건우에게 섣불리 꺼낼 수 있는 이름도 아니었다.

허둥대면서 탕비실의 문고리를 잡은 우리의 손이 멈칫했다.

혹시라도 민우가 다시 나타날까. 괜스레 두려웠다.

“근데 나중에 마셔야겠어요. 생각해보니까 일이 거의 다 끝나서.”

“얼마나 걸립니까.”

“아마 한 20분쯤.”

남은 업무를 떠올리던 우리가 대답했다.

“5분 안에 끝내죠.”

“5분은 좀……,”

“둘이면 충분하죠.”

건우가 부드럽게 우리의 팔을 잡아끌었다. 건우를 따라 걷던 우리는 뒤를 돌아봤다.

민우가 서 있던 곳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얼른 끝냅시다.”

건우가 황주임의 의자를 끌고는 우리의 옆에 앉았다.

탕비실을 보던 우리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서둘러 일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허깨비를 볼 만큼 피곤한 몸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뭐하면 됩니까.”

“광고 영상 레퍼런스 찾고 있었어요. 광고 톤이 비슷한 걸로 레퍼런스가 필요해서.”

“잘 이해했습니다.”

건우는 우리에게 바짝 다가갔다.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

건우는 우리의 목에 있던 스카프를 살짝 잡아당겼다.

느슨하게 묶였던 스카프가 풀렸다.

붉은 흔적이 보일까. 괜스레 우리는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우리를 보던 건우가 스카프로 책상에 있던 작은 생수병을 감쌌다.

“눈 감아봐요.”

“눈은 왜요?”

“기분 좋게 해주려고.”

얼떨떨한 얼굴로 우리는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뭐야. 이게. 빈 사무실에서의 은밀한 스킨십이냐고!’

눈을 감은 우리의 마음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달뜬 건우의 숨결과 촉촉한 입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락에 삼켜져 서로의 입술을 물지도 몰랐다.

열기를 품은 끈적끈적한 숨소리는 서로를 향해 넘실거리고 태초의 본능만이 녹아내린 손길이 서로를 헤집을지도 몰랐다.

그것도 회사에서!

갖가지 상상에 사로잡힌 우리의 입술이 꼼지락거렸다.

꼭, 컴온이라고 외치듯.

“……!”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차가운 냉기만이 우리의 눈을 타고 전해졌다.

“열기 좀 식히면 눈이 좀 편해질 겁니다.”

순식간에 파고든 민망함에 우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제발! 짜릿한 스릴을 기대했던 제 음란마귀를 용서해주소서!’

우리는 제 두 손을 맞잡은 채로 용서를 빌었다.

우리의 상상 속에서는 이미 대단한 일이 벌어진 직후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실웃음만을 흘렸다. 건우만 있으면 희미해졌던 직업병도 톡, 뛰쳐나오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잠재됐던 변태의 기운이 터져버린 걸지도.

“온도는 괜찮습니까.”

“아…… 네.”

“차가우면 말해요.”

“제가 지금 뜨거워서, 괜찮을 것 같아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말이었다.

“눈이요. 눈이 아직 뜨거워서요.”

우리가 재빨리 뒷말을 덧붙였다.

“잘 누르고 있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근데 이러면 5분 안에 일을 못 끝낼 것 같은데요.”

“충분합니다, 5분.”

건우가 우리의 마우스를 잡았다. 우리가 급히 눈에 대고 있던 생수병을 뗐다.

적당하게 차가운 기운이 우리의 눈을 적셨다.

빨개졌던 우리의 눈은 한결 편안해져갔다.

“찾는 건 제가…….”

건우는 말을 하던 우리의 입술을 삼켰다.

우리의 말들이 건우의 입에 천천히 녹아들었다.

벌어진 틈새로 열기가 묻은 건우의 숨소리가 스쳤다.

맞닿았던 두 사람의 입술이 느릿하게 떨어졌다.

“제가 하죠.”

“그래도 제…….”

“3분 남았네.”

건우가 손목시계를 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고집부리면 계속 늦어집니다.”

“…….”

“그러니까 잘 대고 있어요.”

우리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눈을 감은 우리는 차가운 생수로 눈두덩을 찜질했다.

열심히 레퍼런스 영상을 찾던 건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물들었다.

새빨개진 눈이 걱정돼 단숨에 편의점으로 내달린 보람이 있었다.

건우는 생수병에서 나오는 냉기가 우리의 열을 눌러주기를 바랐다.

고요한 사무실에서는 딸깍거리는 마우스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정확히 3분.

건우는 자신만만하게 말한 대로 우리의 일을 끝냈다.

“이만 갑시다.”

건우의 말에 우리가 시원한 생수병을 눈에서 뗐다.

우리의 눈에 뻗쳤던 핏발이 제법 수그러들었다.

우리의 컴퓨터를 끈 건우가 커다란 손으로 우리의 두 볼을 감싸고는 앞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당장 재워야겠네.’

우리의 눈에는 아직도 붉은 핏줄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글이고 일이고. 건우는 지금 당장 우리를 재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은 집에 도착하면 바로 자는 걸로 합시다.”

“그러고 싶은데 오늘 업로드 날이라…….”

“금집니다. 오늘은.”

건우가 단호하게 우리의 말을 가로챘다.

“소설하고 일. 전부 다.”

“그래도 무작정 자기는 좀 그런데.”

“그래도 잠만 자도록 해요. 오늘은. 알겠습니까.”

건우는 물러설 수 없다는 것처럼 물었다.

나직한 건우의 목소리에 밤을 새려던 우리의 마음이 흔들렸다.

건우의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굳셌던 다짐도 단숨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당연하죠.”

“잘 생각했습니다.”

건우가 커다란 손으로 부드럽게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건우의 입가에 연하게 번진 미소는 우리의 마음마저 들뜨게 만들었다.

“그럼 저희 바로 퇴근할까요.”

우리가 분주하게 가방을 챙기면서 물었다.

“그럽시다.”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건우도 퇴근을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서던 우리가 불을 껐다.

마케팅 팀 쪽에 남아있던 한 줌의 빛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리는 탕비실 쪽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둠 속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는지도 몰랐다.

쇠약해진 기운에 민우의 모습이 어른거렸을 뿐이었을 것이었다.

정말, 거대한 허깨비였는지도.

우리가 단단히 마음을 다잡았다.

“뭐 보고 있습니까.”

“아뇨. 아무것도요.”

탕비실을 보던 우리가 건우를 봤다.

“그냥 두고 나온 거라도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생각났습니까.”

“네. 없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는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건우를 향해 웃어보였다.

“잊고 나온 건.”

뒷말을 덧붙이는 우리의 말에는 자신이 없었다.

단단히 마음을 잡으려는 것처럼 우리는 힘껏 사무실 문을 닫았다.

하지만 둥근 랜턴에서 쏟아지는 환한 빛줄기를 쉽게 털어낼 수 없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퍼지던 노란 불빛이 우리의 머릿속을 한참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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