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화. 살벌하고도 달콤한 죽음의 C조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가 뜨거운 침을 삼켰다.
“미안합니다. 급하게 나오느라.”
건우가 단추를 채우면서 말했다.
“아뇨. 좋은……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좋다는 앙큼한 속마음이 엉겁결에 뛰쳐나올 뻔했다.
황급히 말을 바꾼 우리의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셔츠를 잠근 건우가 다정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봤다.
건우의 옅은 미소가 한껏 예민해진 우리를 자극했다.
“바로 출발합시다.”
“잠깐.”
우리의 말에 건우의 걸음이 멈췄다. 우리는 흐트러진 건우의 넥타이를 고쳐주었다.
우리의 손길 한 번에 마법처럼 건우의 넥타이가 단정해졌다.
건우는 고개를 기울이고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엄청난 고민이 단숨에 건우를 집어삼켰다.
대의를 위한 제비뽑기냐. 아니면 본능에 굴복이냐.
“이제 됐어요.”
우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넥타이를 쓸어내렸다.
건우가 깊은 내적 갈등에 빠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눈앞의 욕망과 멀리 놓인 보호.
건우는 두 가지를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무서울 만큼 솟구쳐 오르는 욕망은 건우를 저돌적이게 만들었다.
“미안한데 지금 바로 출발 못할 것 같습니다.”
건우가 커다란 손으로 우리의 두 볼을 감쌌다.
“이대로는 못 나갈 것 같아서.”
건우가 우리에게 다가섰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닿을 것처럼 가까워졌다.
열기를 안은 건우의 말은 진하게 우리의 입술에 녹아들었다.
“괜찮겠습니까.”
“이러다 늦으면 큰일이기는 한데…….”
넘실대는 달뜬 숨소리에 우리도 말끝을 흘렸다.
매혹적인 건우의 눈빛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우의 눈길에 넥타이 끝을 잡은 우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정말, 최강이다!’
제 소설 속 여자주인공들의 마음을 우리는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담하게 밀려들어오는 유혹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었다.
이만큼 매력적인 사람의 유혹이라면 더욱.
천천히 침을 삼키는 우리의 눈빛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시간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으니까.”
“그럴까요.”
“그럼요.”
“그럼…… 조절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가 얼결에 제 속마음을 뱉었다.
“허락한 겁니다.”
곧은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를 적셨다. 관능적인 눈빛이 우리의 숨결을 천천히 메워갔다.
짙어지는 숨소리가 끈적끈적하게 우리의 입술에 달라붙었다.
“……고우리, 네가.”
뜨거운 건우의 목소리가 너무 간지러워 우리는 건우의 넥타이를 살짝 잡아당겼다.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던 두 사람의 입술이 닿았다.
건우의 이성은 완벽하게 끊어졌다. 강렬한 본능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건우가 우리의 입술을 삼켰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강하고도 부드러운 건우의 숨결이 벌어진 입술을 타고 녹아들었다.
깊게 밀려드는 건우의 입술에 우리는 넥타이만을 질끈 잡았다.
우리의 손길에 단정했던 건우의 넥타이는 금세 풀어졌다.
“정말 멈출 수 있을까요.”
살짝 떨어진 입술 사이로 우리의 말이 흘렀다.
“그럴 수 있길 바라야죠.”
건우의 본능은 짙어졌다. 서로의 향기로 두 사람은 뒤범벅됐다.
건우는 약간 고개를 기울여 우리를 깊게 파고들었다.
도대체 멈출 수가 없었다.
환희와 열락만을 갈구하는 온몸을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열기를 품은 숨소리가 두 사람 사이로 흘러내렸다.
서로를 갈망하던 두 사람의 숨은 가빠졌다. 거침없이 파고드는 건우의 숨결을 우리는 무던히 받아내고 있었다.
건우는 살짝 우리의 입술을 깨물었다. 아찔한 감각에 우리의 입술은 조금씩 붉어졌다.
건우는 우리의 향기에 취했다. 입술을 촉촉하게 적시는 우리의 향기를 연달아 삼켰다.
사위에 번진 암흑을 밝히듯 피어오른 불빛에 건우의 온몸은 한껏 달아올랐다.
뜨겁게 맞닿았던 두 사람의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
가쁜 숨소리가 서로의 입술에 눅진히 젖어들었다.
“먼저 도발하신 거예요.”
본능에 사로잡힌 우리의 목소리가 작은 틈을 적셨다.
“차장님이.”
우리가 건우의 첫 단추를 잡았다. 톡, 작은 소리와 함께 단추는 힘없이 열렸다.
“분명 조절하실 수 있다고 했어요.”
톡.
“……예.”
“그러니까 믿을게요.”
그리고 또 톡…….
건우의 셔츠에 있던 단추가 우리의 손길에 풀어졌다.
건우는 별다른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쾌락을 간절히 바라는 우리의 손길마저도 마냥,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우리는 참을 수 없는 도발을 벌이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겠지만.
뇌쇄적인 미소가 건우의 입가에 녹아들었다. 우리의 손놀림에 단정했던 건우의 와이셔츠가 풀어졌다.
탄탄하고도 성난 건우의 근육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제때 돌아가야 돼요.”
우리가 제 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물론.”
건우의 나직한 대답과 함께 마지막 단추가 열렸다. 단추만 바라보던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건우는 일말의 주춤거림도 없이 우리의 입술을 삼켰다.
말랑한 감촉은 건우의 욕망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온전히 마시고 싶었다.
우리를 삼키고 삼키다가 우리에게 그대로 흡수되어버리고 싶었다.
아무렴, 좋았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너에게, 취해버릴 수 있다면 그냥, 좋다.
“고우리씨.”
전부를 내어서라도 지키고 싶을 만큼.
“정말…… 가만히 놔두기 힘드네.”
열기를 품은 건우의 말은 우리의 입술에 살포시 녹아들었다.
건우는 뜨거운 손길로 우리의 옷깃을 쓸어내렸다.
작은 손길에도 우리의 심장은 쉬지 않고 쿵쾅거렸다.
“가만히 놔두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끓는 욕망을 꼭 잡은 우리는 스스럼없이 속말을 뱉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아니…… 뭐. 제가 취급주의인 석고상이나 조각상은 아니니까. 정말…… 괜찮아요.”
혼이 빠진 우리의 얼굴을 보던 건우가 바람 빠지듯 웃었다.
“기대해요.”
“네…… 네?”
“지금부터 정말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니까.”
우리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달달하고도 매혹적인 기운이 끝없이 휘몰아쳤다.
“그러니까…….”
“무르기, 없습니다.”
건우가 부드러이 우리의 말허리를 잘랐다. 여유를 머금은 옅은 미소가 건우의 입가에 번져나갔다.
무르기가 없다면…….
우리는 말라버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입술에 남은 건우의 향기가 우리의 입안을 진하게 물들였다.
벌어진 입술 틈새로 달뜬 숨소리가 연달아 흘렀다.
불덩이만큼 뜨거운 열기를 품은 건우의 입술은 우리의 보드라운 얼굴선을 따라서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건우가 우리의 길고 하얀 목에 입을 맞췄다.
“아…….”
건우의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아릿한 감각에 우리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흘렀다.
하얀 살결에 군데군데 번졌던 붉은 흔적은 숨겨두었던 열기를 가득 뱉어냈다.
목에 입을 맞추던 건우의 입술이 조금씩 벌어졌다.
꿀꺽.
또 한 번 더 꿀꺽…….
우리의 체취를 삼키는 건우의 목울대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연해지던 붉은 색깔이 피어나는 빨간 꽃처럼 다시 진해졌다.
우리가 벌어진 건우의 와이셔츠 끝자락을 살짝 잡았다. 구김 없이 매끄럽던 와이셔츠 끝이 약간 구겨졌다.
단물을 삼키는 벌꿀처럼 건우는 꽃처럼 피어난 우리의 흔적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말캉한 입술의 감촉에 우리의 마지막 욕망까지 단박에 살아났다.
달아오른 온몸은 건우만을 갈구하고 있었다.
탐난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고우리.”
낮은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의 귓가를 간질였다.
건우의 손은 우리의 목선을 타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소복이 내린 흰 눈에 찍힌 발자국처럼, 우리의 목에 촘촘히 솟은 붉은 흔적들을 따라, 아주 천천히…….
느린 건우의 손길이 우리의 옷깃에 멈추었다.
건우는 우리의 블라우스에 있던 리본 타이를 잡았다.
단단히 매었던 리본 타이가 건우의 손길에 순식간에 느슨해졌다.
스르륵, 스르륵.
얇은 천이 부딪히는 소리가 느릿하게 번졌다.
“정말 큰일이네.”
꿀처럼 달콤하고도 끈적거리는 건우의 눈빛에 우리는 한없이 녹아내렸다.
“금방 반응해버려서.”
건우의 말에 우리의 심장은 더욱 빨라졌다.
쿵쾅, 쿵쾅, 쿵쾅…….
흥분한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놀란 마음을 달래면서 우리는 굳은 침을 삼켰다.
한껏 가깝게 붙어버린 몸에 두 사람은 서로의 굴곡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너무…… 쉽게.”
사람을 홀리는 말이었다.
우리가 옅은 숨을 내뱉으려던 순간이었다. 건우는 커다란 손으로 우리의 볼을 감싸고는 우리의 입술을 탐했다.
넘실거리는 열기에 밀려 우리가 뒤로 물러났다.
끝없이 슬금슬금 물러나던 우리의 걸음이 멈추었다.
우리는 거실에 있던 소파에 덜렁 누워버린 꼴이 됐다.
폭신한 기운이 온몸을 타고 전해졌다. 천장에서 솔솔 풍겨오는 바람과 두 팔로 소파를 짚은 건우의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고요한 적막의 틈으로 물이 떨어지는 소리만 연하게 들려왔다.
“차장님.”
“지금, 우리 둘뿐입니다.”
“습관이 덜 돼서…….”
건우를 보던 우리가 말끝을 흘렸다.
“곧 습관, 될 겁니다.”
우리는 건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소파를 짚은 건우의 팔에 퍼런 핏대가 섰다.
“내가 도와주겠습니다.”
“차장님이요? 어떻게……?”
“직접 겪어봐요.”
건우가 우리에게로 다가섰다.
“……지금부터.”
작지만 강한 목소리였다. 건우의 숨결이 천천히 우리의 귓불을 적셨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빨려드는 것만 같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만큼 아득히 먼 곳으로.
건우가 우리의 윗입술을 삼켰다. 달콤한 향기가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건우는 자신을 지독히 괴롭혔던 갈증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건우가 우리에게 밀려들었다. 우리의 향기를 담고 싶었다.
은은하게 번지는 그 향기 속에 녹아들고 싶었다.
그렇게 너에게, 온전히 물들고 싶다.
***
폭풍처럼 몰아치던 한낮의 열기가 누그러졌다.
연달아 들이닥친 건우의 열기에 지쳤는지 우리는 조수석에 곤히 잠들어있었다.
도로를 내달리던 건우의 차가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말끔하게 주차를 마친 건우가 우리를 봤다.
안전벨트를 잡고 있던 우리는 드릉거리면서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안전벨트 갑갑하겠네.’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는 조심스럽게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
‘계속 재울까.’
출장에, 미팅 준비에, 글까지……. 바쁘게 굴러가는 일상에 꽤, 피곤했을 것이었다.
건우는 재킷을 벗어 우리에게 덮어주었다. 조금이라도 우리가 더 눈을 붙이길 바랐다.
시동이 꺼진 차 안에서는 우리가 코를 고는 소리만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징징.
조용한 적막을 뚫고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백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에 우리가 꿈지럭거렸다.
우리는 졸린 눈을 가볍게 매만지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흐린 시야로 선영의 메시지가 보였다.
-대리님, 혹시 어디세요. 우팀장님이 그냥 있는 사람끼리 진행하자고 하시는데. 어쩌죠.
‘우팀장이 그냥 진행하자고…… 뭐?’
메시지를 보던 우리의 눈이 커졌다.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가 핸드백의 손잡이를 잡았다.
“차장님.”
“예.”
“당장 회사로 복귀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다급하게 말했다.
“여기 회삽니다.”
“아……!”
약간 고개를 숙여 주위를 살피던 우리는 뒤늦게 회사라는 사실을 깨달은 얼굴이었다.
우리가 조수석에서 내렸다. 다급한 걸음으로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회사 주차장이라서. 금방 올라갈게.
선영에게 답장을 보낸 우리가 초조하게 올라가는 숫자를 봤다.
2층, 3층, 4층…….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올라갔다.
쉬지 않고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우리가 잰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섰다.
부서별로 기업문화팀 쪽에 줄을 서서는 제비뽑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리님! 여기요!”
짧은 줄의 끝자락에 서 있던 선영이 냉큼 손을 들고는 우리를 반겼다.
“영업팀은?”
“뽑았어요.”
“그럼 우리 팀은……?”
우리가 다급히 선영에게 물었다.
“이제 막 뽑으려던 참이었어요.”
선영의 말에 우리의 입술 사이로 안도의 숨이 흘렀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징크스를 피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우리를 돌았다.
우리는 잽싸게 선영의 뒤에 줄을 섰다.
“선영씨. 고마워.”
“아니에요. 한 것도 없는데요.”
“선영씨 아니었으면 제비뽑기 놓칠 뻔했잖아.”
우리는 선영을 향해 빙글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담담한 얼굴로 서 있었지만 우리는 긴장감만큼은 털어내지 못했다.
그 어느 발표 때보다 마음이 두근거렸다.
우리는 멀리서 조소를 흘리고 있는 우팀장과는 다른 팀이 되고 말겠다는 열의만을 불태웠다.
“괜찮습니까.”
“네. 시뮬레이션도 다 돌려봤고.”
건우의 나직한 물음에 우리가 제 머리를 살짝 두드리면서 대답했다.
우팀장과 같은 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예 생각도 말기로 했다.
괜히 부정이 탈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하세요.”
선영이 제 순서를 양보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은 우리가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우리는 기업 문화팀에서 준비한 제비뽑기함에 손을 넣었다.
손끝에 온 기운을 담아 심혈을 기울여 작은 종잇조각을 잡았다.
‘제발…… 제발! 우팀장은 안 돼.’
간절함을 담은 손길로 우리는 종이를 펼쳤다.
[C조]
우리의 관심사는 오직 우팀장의 조였다.
기업 문화팀 사원에게 종이를 내민 우리가 목을 뺐다.
“마케팅1팀 고우리 대리요.”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서도 우리는 C조의 멤버를 훑는데 정신이 없었다.
디자인팀 홍경미 주임, 온라인팀 기은미 대리…… 그리고 영업팀 우종길 팀장!
난데없이 등장한 우팀장의 이름에 우리의 표정이 굳었다.
‘영업팀…… 우종길. 우팀장이 왜 거기서 나와!’
사원은 무심한 손길로 C조의 끝에 우리의 이름을 적었다.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모니터에 바짝 다가섰다.
C조, 우팀장.
눈을 비벼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불만스러운 마음에 우리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C 발라먹을 조!
왜 하필 우팀장이냐고!
“이거 확정인거죠.”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사원에게 물었다.
“네. 대리님. 확정인데 무슨 문제라도.”
사원은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얼굴로 우리를 봤다.
작은 희망을 갈구하던 우리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깊은 숨을 내쉬던 우리의 등을 스치고 불길한 기운이 스몄다. 우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뭐야. 이번에도 설마 고대리하고 같은 조야?”
모니터를 보던 우팀장의 표정도 구겨졌다. 서로를 경계하는 우리와 우팀장의 사이로 번쩍 불꽃이 튀었다.
지나칠 만큼 오버스럽게 한숨을 내뱉은 우팀장은 우리의 손에 있던 종이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C조]
선명하게 적힌 알파벳에 우팀장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단합을 구실로 우리를 괴롭힐 작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꽤나 합법적으로 우리를 굴릴 생각에 우팀장은 콧노래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아…… 또 고대리하고 같은 팀이네. 벌써 몇 번째야.”
“그러게요.”
“고대리가 워낙에 날 좋아해서. 거참!”
우팀장이 짧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면서 거만하게 말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우리는 이를 꽉 문 채로 인위적인 미소를 지었다. 모두가 거부하고 싶을 만큼 C조는 죽음의 C조로 변모했다.
덤덤한 얼굴로 우팀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아부 우팀장과 개대리 우리의 격돌은 직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무지막지한 두 사람 사이에 건우가 섰다. 여유로운 팔자걸음으로 우리에게 바짝 다가서려던 우팀장의 걸음이 멈췄다.
우팀장은 턱을 빳빳하게 들고는 커다란 그늘을 만든 건우를 올려다봤다.
‘자식. 키만 멀대같이 커서는.’
건우를 보던 우팀장은 험상궂게 인상을 구겼다.
“C조…… 잘해보죠.”
건우는 들고 있던 작은 종이를 우팀장의 코앞에 내밀었다.
[C조]
우팀장은 건우가 내민 종이를 가져갔다.
‘이 C발린 수박 같은 자식이……!’
건우를 보던 우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알파벳을 손으로 문질러봐도, 종이를 뒤집어 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세 사람은 죽음의 C조로 얽혀버린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