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35화 (35/102)

제 35화. 이 죽일 놈의 19금병

건우와 우리는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우리가 운전석에 타려던 건우의 앞을 섰다. 낮은 채도의 조명이 두 사람을 은은하게 적셨다.

“차장님. 일단은 급한 대로 냅킨이라도.”

우리가 젖은 건우의 셔츠를 냅킨으로 꾹꾹 눌렀다.

건우의 속살이 슬몃슬몃 드러났고 탄탄한 근육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건우는 가만히 우리의 손길을 받아내고 있었다. 뜨거운 건우의 시선에 우리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축축하시죠.”

“참을 만합니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옷이라도 갈아입고 가시는 건 어떠세요. 찝찝하실 것 같아서요.”

“그게 나을 것도 같네.”

건우는 우리의 말에 무조건 수긍했다.

우리가 건우에게 축축함을 참고 회사로 바로 복귀하라고 했다면 당장 복귀했을지도 몰랐다.

건우의 속살을 누가 보기라도 할까. 괜스레 힐끔거리면서 주변을 살피던 우리가 건우의 재킷을 여며주었다.

“운전은 제가 할게요.”

우리는 건우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키만 주시면.”

“괜찮습니다. 내가 하죠.”

“괜히 찝찝하실 것 같아서요.”

“제안서 설명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조금이라도 쉬어요.”

건우가 운전석을 열었다. 우리는 운전석에 타려던 건우의 팔목을 낚아챘다.

“그런 거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기운이 꽤 팔팔 넘쳐서요.”

“잘 비축해두고 있어요.”

건우가 불쑥 우리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기운, 곧 빠질 것 같으니까.”

건우의 입가에 뇌쇄적인 미소가 돌았다. 묘한 긴장을 가지게 하는 나직한 목소리였다.

건우의 팔을 잡은 우리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아…… 매일 유혹이라니. 우리는 제 명에 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촉촉한 건우의 입술을 바라보던 우리는 본능적으로 입맛을 다셨다.

‘이 무슨. 변태 같이. 정신 차리라고. 고우리!’

꿀꺽. 굵직한 침이 우리의 목구멍을 뜨겁게 달궜다.

“그럼 갑시다.”

두 사람의 입술은 금방이라도 닿을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여름의 햇발만큼 뜨거운 열기를 품은 건우의 숨결이 잇달아 우리의 입술을 적셨다.

연달아 덮쳐오는 뜨거운 기운이 입술을 콕, 찌르는 것만 같아 우리의 입술은 자꾸만 꼼지락거렸다.

“……우리 집으로.”

매혹적인 한방이었다.

“네.”

우리는 운전석에 올라타는 건우를 보면서 다부지게 대답했다.

냉큼 조수석에 탄 우리는 안전벨트를 맸다.

건우가 부드럽게 시동을 걸었다. 우리는 힐끔 건우를 봤다.

색정적인 기운을 머금은 건우의 눈빛을 바라보던 우리의 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젖은 셔츠 사이로 설핏 보이는 살갗에 계속 눈길이 갔다.

불끈 솟은 근육과 흰 살결이 우리의 눈에 넘실거렸다.

핸들을 돌리는 건우의 손길에 탄탄한 근육이 성난 듯 움직였다.

넋을 잃고 건우를 보던 우리가 안전벨트를 꽉, 잡았다.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주차장을 나선 건우가 우리에게 물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건우의 매력적인 눈빛에 우리의 심장이 요동쳤다.

자신을 바라보는 건우의 눈동자에는 욕망이 넘실거렸다가 이내 사라졌다.

안전벨트는 잡은 우리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안 안전해!’

우리가 쿵쾅대는 마음을 붙잡으면서 앞을 봤다.

제아무리 안전벨트라도 무용지물인 것처럼 보였다.

건우, 앞에선.

‘정말 하나도 안전하지 않다고!’

앞창을 보는 우리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소설 속에 등장했던 격정적인 장면들이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타액, 거침없이 내려가는 손길과 보드라운 입술의 감촉까지…….

갖가지 상상이 막힘없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고우리. 미쳤구나. 벌건 대낮에!’

고개를 내젓는 우리의 얼굴은 벌게졌다.

“무슨 생각합니까.”

“안 했는데요.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

“얼굴이 터질 것 같아서.”

건우의 말에 우리는 급히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살폈다.

타는 불꽃만큼 우리의 두 볼은 새빨개져있었다.

화끈한 열기가 끝없이 우리의 얼굴에 녹아들었다.

우리는 괜히 격렬했던 상상을 건우에게 적나라하게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히터가 빵빵해서요.”

어색한 미소를 날리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히터의 탓으로 돌렸다.

우리가 히터를 건드렸지만 우습게도 히터에서는 한 줌의 바람도 흐르지 않았다.

“차장님.”

“지금 우리 둘뿐입니다.”

“그죠. 지금은 둘…… 이죠.”

우리의 말이 느릿하게 떨어졌다. 차안에는 순식간에 짤막한 침묵이 돌았다.

차창을 뚫고 들어오는 밝은 빛이 우리의 눈두덩을 찔렀다.

우리는 열기를 식히려고 약간 차창을 열었다. 작은 틈을 비집고 찬바람이 흘러들었다.

“근데 정말 콜라보는 어쩌실 생각이세요. 정말로 성운백화점을 버리실 생각은 아니실 것 같고.”

“대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성운백화점은요?”

“되도록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우리는 놀란 얼굴로 건우를 봤다. 초조해하는 문규의 태도를 봐서는 분명 사과를 해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적당히 사과를 받고 소희를 프로젝트에서 빼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속이 상하기는 했지만 성운백화점은 좋은 카드였다.

입지나 규모면에서 쉬이 버리기 어려운 카드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다른 대안을 찾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런데 되도록 다른 업체를 찾겠다니.

빨간불에 차를 멈춘 건우가 우리를 봤다. 초조함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대가는 치러야죠.”

건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건우도 우리가 걱정하는 바는 잘 알고 있었다.

건우에게도 성운백화점은 확실히 매력적인 카드였다.

하지만 제 아무리 매력이 넘쳐도 우리만큼은 아니었다.

건우는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이번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생각이 없었다.

“내 사람 건드렸으면 그게, 누구든.”

건우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우리뿐이었다.

“아무튼 옷 좀 빨리 갈아입어야겠습니다.”

“아…… 축축하시죠.”

“예. 심하게 젖어서.”

건우의 말에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가히, 본능만이 살아 숨 쉬는 눈빛이었다. 탄탄한 건우의 가슴팍을 보던 우리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죽일 놈의 직업병이었다.

기필코 모든 관능적인 것들을 관찰하고 마는, 19금병.

“차장님. 파란불이요.”

민망한 기운을 털어내면서 우리가 재빨리 신호등을 가리켰다.

“최대한 빨리 가죠.”

건우가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멈췄던 차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더는, 못 참을 것 같아서.”

관능적인 건우의 목소리에 우리는 그대로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건우의 차는 뚫린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했다. 건우의 모든 감각은 우리를 향해있었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처럼 건우의 세상도 우리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세상의 시작과 끝, 모두.

거기에는 우리만 있었다.

너만이 있다.

***

건우의 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멈췄다.

은밀한 비밀작전을 펼치는 첩보요원처럼 우리는 주위를 살피면서 건우와 함께 빠르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누가 본다면 엘리베이터가 마치 두 사람을 집어삼킨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우리의 조심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엘리베이터 벽에 붙어서는 건우와 멀찍이 거리를 뒀다.

16층에 내린 우리는 스카프로 얼굴을 가렸다.

조심스러운 행동이 오히려 눈이 튈 지경이었다.

도어락을 여는 경쾌한 소리에도 우리는 깜짝 놀랐다.

제 발 저린 도둑의 심장이 요동치는 꼴이었다.

조용한 적막을 가르는 도어락의 소리와 함께 건우의 집 현관문이 열렸다.

우리는 미끄러지듯 건우의 집으로 들어갔다.

“실례하겠습니다.”

우리의 작은 말이 허공에 돌았다. 우리는 검은 앵클부츠를 가지런히 벗고는 거실로 발을 내딛었다.

밝은 빛이 커다란 창을 타고 흘러들었다. 모던한 가구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겼다.

“물이라도 한 잔 하겠습니까.”

건우가 가방을 거실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괜찮아요.”

“냉장고에 있는 거라고는 물뿐이라. 대접하기도 마땅찮네.”

“정말로 괜찮아요. 아까 녹차도 살짝 마셨더니.”

우리가 볼록한 배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나중에 좋아하는 거라도 말해줘요. 미리 준비해놓겠습니다.”

건우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말만하면 텅텅 비어있던 냉장고를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올 일이 그다지.”

우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건우의 집을 빈번하게 드나들 일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었다.

한 두 번이면 몰라도 끝없이 건우의 집에 찾아들면 분명히 꼬리를 밝히게 될 것이었다.

워낙 좁은 동네라 괜한 소문이 빨리 퍼질 수도 있었다.

나쁜 소문은 언제나 빠르게 도는 법이었다.

우리는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올 일, 없을 것 같습니까.”

“네. 아무래도 좀……. 오지 않는 게 좋을 것도 같고요.”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죠.”

건우가 우리에게 다가서서는 빙글 미소를 지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사이로 켜켜이 고요한 숨결만 흘렀다.

조용한 방은 두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건우의 목울대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부드럽게 올라왔다.

작은 몸짓에도 두 사람은 강하게 반응했다.

건우의 색정적인 눈빛은 우리를 갈구하고 있었다.

벌건 대낮이라는 사실은 건우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건우는 욕망에 이끌리듯 우리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쌌다.

“다음 일은 늘, 예상하기 힘드니까.”

건우가 우리를 제 쪽으로 살짝 당겼다. 그 힘에 우리의 발걸음이 앞으로 약간 움직였다.

건우는 과일을 베어 무는 것처럼 우리의 입술을 덥석 삼켰다.

건우의 목울대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부드러운 입술, 달뜬 숨결.

그 모든 것이 건우의 모든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건우는 우리만을 갈구하고 있었다.

진한 과즙을 삼키듯 건우는 우리의 입술을 탐했다.

달콤하다. 그 말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말도 건우의 신경을 휘어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건우의 열기에 우리의 정신도 아득해졌다.

중력도, 소리도 없는 진공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내심 굳어버렸던 마음도 형체 없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서로의 감각만이 온전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아…….”

벌어진 우리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흘러내렸다.

건우의 입술은 우리의 둥근 턱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은은하게 번지는 달콤한 우리의 향기가 건우의 이성을 잘근 깨물었다.

건우는 미칠 것만 같았다. 입을 맴도는 우리의 향기를 모두 빨아들이고 싶을 만큼.

부드러운 손길로 건우는 우리의 스카프를 끌어 내렸다.

스카프는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창을 타고 들어오는 빛은 얇은 솜털이 돋은 우리의 목덜미를 쓸었다.

건우는 망설임 없이 우리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에 정신없이 물을 마시는 사람처럼 건우는 우리의 목덜미를 깊이 삼켰다.

살 것 같았다.

정말, 이제는 네가 있어야……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건우의 입술에 우리의 향기가 녹아들려던 순간이었다. 우리의 핸드폰이 세차게 울어댔다.

“차장님. 잠시만요.”

무던히 건우를 받아내던 우리가 슬쩍 뒤로 물러났다.

연달아 울어대는 핸드폰이 자꾸만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회사나 성운백화점 쪽에서 온 연락일 수도 있었다.

한껏 달아오른 두 볼을 쓸어내리면서 우리는 핸드백에 있던 핸드폰을 꺼냈다.

“누굽니까.”

건우가 넥타이를 끌어 내리면서 물었다. 욕망의 불꽃은 여전히 건우의 눈빛을 돌고 있었다.

불만을 품은 건우의 말은 천천히 번져나갔다.

그게 누구든 오붓한 시간을 방해한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목소리였다.

“선영씨요.”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닌…….”

“잠깐…… 잠깐만요.”

우리는 황급히 핸드폰을 가져가려는 건우를 막아섰다.

전화가 끊어지고 급히 메시지가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영의 메시지를 훑던 우리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복귀, 시급합니다!”

핸드폰을 내민 우리의 목소리가 커졌다. 미팅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했던 우리였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인데…….

건우는 궁금하다는 얼굴로 우리의 핸드폰을 봤다.

중요한 일의 정체를 캐낼 생각이었다.

-대리님, 대리님, 대리님!

선영의 메시지는 첫 문장부터 다급했다. 당장 답을 달라는 간절한 시작이었다.

-언제 복귀하세요?

-저희 워크샵 팀, 정한다는데. 제비뽑기래요.

-늦게 복귀하시면 우팀장님이 그냥, 저보고 뽑으라고 하시는데……. 괜찮을까요.

메시지를 훑는 건우의 눈길은 건조하기만 했다.

복귀를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우리를 봤다.

“제비뽑기, 직접 해야 돼요.”

우리는 출정하는 군인처럼 비장하게 말했다.

“꼭 직접 해야 합니까.”

“제가 징크스가 있거든요.”

“징크스라면.”

“다른 사람이 대신 추첨하면 우팀장님하고 꼭 팀이 돼서…….”

말끝을 흘리는 우리의 표정은 살짝 구겨졌다.

우팀장의 구령에 맞춰 노를 내저었던 카누, 팔에 굵직한 알이 생기도록 굴러댔던 볼링, 체력을 불사르겠다는 우팀장과의 계주…….

우팀장과 한 팀이었던 끔찍한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잘 뽑아서 차장님하고 같은 팀 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매번 으르렁대던 영업팀 우팀장의 기억을 털어내면서 빙글 미소를 지었다.

지독하게 얽히는 우팀장과의 기억으로 건우와의 시간까지 망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장 복귀하죠.”

“네…… 네?”

“금방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건우가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고리를 잡은 건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강선영씨한테 전달해요.”

“뭘……?”

“제비뽑기, 내가 직접 하겠다고.”

건조하기만 하던 건우의 말이 단단해졌다.

‘고대리는 본인한테 참 관대해.’

빈정대듯 우리에게 시비를 걸었던 우팀장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여전히 건우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손 한 번 스친 거 가지고 성희롱이라고 바락바락 상부에 보고하더니……. 본인은 욕구불만이야?’

우리의 손을 잡은 우팀장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건우는 울화가 치밀었다.

밤이 내려앉은 사막처럼, 건조하던 건우의 눈빛은 싸늘해졌다.

우팀장과 우리가 같은 팀이 되는 일은 무조건 막을 생각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차장님?”

우리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미동도 없는 건우를 불렀다.

“다른 생각 좀 하느라……. 빨리 갈아입고 나오죠.”

“천천히 입고 나오세요.”

“아뇨. 최대한 발리 나오겠습니다. 기운 좋을 때, 얼른 복귀해야 할 것 같아서.”

건우는 제비뽑기를 하는 시늉을 했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두 끌어 모아 기필코 원하는 방향으로 팀을 만들어버리고 말겠다는 의지의 손짓이었다.

“난 고우리씨하고 같은 팀 하고 싶어서 죽겠거든.”

낮은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를 홀렸다. 건우의 입가에 번진 옅은 미소마저도 색정적으로 느껴졌다.

목덜미를 적시던 건우의 숨결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건우가 남긴 흔적들이 계속 찌릿찌릿 제 열기를 드러냈다.

“그럼 편히 있어요.”

건우를 보던 우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니. 차장님 때문에 편히 못 있겠는데요!

“금방 나오겠습니다.”

건우가 방문을 열었다.

“지금 딱 좋은 것 같은데.”

건우는 빠르게 낚아채듯 맹렬하게 뽑기 연습을 했다.

제법 진지한 건우의 모습에 우리는 더욱 불안해졌다.

제비뽑기에 스피드는 조금도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튼 쉬고 있어요.”

건우가 제 방으로 들어갔다.

-회사, 금방 복귀해.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 좀 부탁할게.

거실에 남겨진 우리는 급히 선영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네! 대리님, 저만 믿으세요!

의지에 불타는 답장이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고맙다는 말을 날린 우리가 방을 쳐다봤다.

샤워라도 하는지 방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바닥을 때리는 물소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 직업병이냐! 변태력이냐!’

우리의 모든 신경은 일제히 건우의 방으로 향했다.

도무지 편히 있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연하게 들려오는 물소리에 우리는 열린 건우의 방만 아련하게 쳐다봤다.

우리의 간절한 바람을 들은 것처럼 건우가 방에서 나왔다.

대강 셔츠를 걸친 건우는 넥타이를 입에 물고 있었다.

급히 나오느라 단추도 채우지 못한 모양새였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탄탄한 근육들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냈다.

아련했던 우리의 눈빛에 순식간에 스파크가 튀었다.

위대한 욕정의 불꽃.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