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34화 (34/102)

제 34화. 우리는 지금 연애 중

문규는 건우를 위협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풍겨대면서 미간을 좁혀댔다.

하지만 건우에게는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건우는 팔짱을 낀 채로 문규를 봤다. 여유로운 건우의 모습에 문규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차장님.”

“관심 간다고 했습니다.”

건우의 대답을 곱씹던 문규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혀를 굴리면서 입을 쓸어내리던 문규가 괜스레 손을 풀어댔다.

두둑거리는 소리로라도 강한 상남자의 분위기를 풍기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도 별달리 쓸모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이고. 강 차장님. 농담도 최고시네요.”

문규는 재빨리 태도를 바꿨다. 협박은 씨알도 먹힐 기색이 없으니 건우를 부드럽게 달래볼 참이었다.

“농담 아닙니다.”

“진담이십니까.”

“예. 고 대리님과 관련된 사항은 전부 저에게 말씀해주시죠.”

건우는 우리에게 다가서려던 문규의 앞을 막아섰다.

“공적인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

“전부.”

건우가 문규에게 한 발자국 다가섰다. 건우의 기세에 놀란 문규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강 차장님. 저희가 정말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내가 허락 못합니다.”

건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문규의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문규는 괜히 목덜미가 선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이보다 차가울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HJ그룹 되게 무섭네요. 무슨 상사가 프라이버시까지 컨트롤도 하고.”

“그럴 만한 관계니까 합니다.”

“그럴 만한 관계?”

건우의 말이 문규를 자극했다. 불길한 기운이 우리의 등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아무래도 모든 상황을 종료시킬 만큼 어마어마한 말이 건우의 입술 사이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연애 중입니다. 우리.”

문규와 우리의 시선이 동시에 건우에게 머물렀다. 우리와 문규의 입은 쩍, 벌어졌다.

비록 놀란 이유는 달랐지만 두 사람의 이성은 확실히 요동쳤다. 폭풍우를 삼킨 바다처럼.

“우…… 우리?”

문규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커졌다. 더 뒤로 물러난 문규가 제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성도 사랑할 수 있다니. 게이라면서!

건우를 바라보던 문규가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와…….”

문규의 입술을 헤집고 헛웃음만 연달아 쏟아졌다.

“강 차장님. 농담하시는 클래스가 다르시네. 진짜 깜빡 넘어갈 뻔했습니다.”

건우를 바라보던 문규가 말을 내뱉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농담, 안 합니다.”

“제가 들은 게 있는데요.”

문규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건우의 어깨를 툭, 쳤다.

제 입으로 말을 꺼내기 전에 스스로 실토하라는 채근의 눈빛까지 날려댔다.

문규의 촐랑거리는 손놀림에도 건우는 장승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분명 연애 취향이 좀 다르시다고.”

문규의 말에 건우가 우리를 봤다. 우리는 죄송하다는 것처럼 기도하듯 두 손을 붙였다.

“여자한테 관심도 없으신 거 잘 아는데요.”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죠.”

“역시. 설마…… 저한테 관심 있으신 건 아니시죠?”

문규가 건우의 팔을 쳐대면서 물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과한 손길이었다.

“그런데 고우리씨는 좋아합니다.”

“근데 저는 남자보단 여자가…… 예?”

제멋대로 쉬지 않고 떠들어대던 문규의 목소리가 삐끗했다.

불도저처럼 순식간에 밀려든 건우의 말에 문규는 얼떨떨한 얼굴로 눈만 깜빡거렸다.

“우리는 왜…….”

“고우리라서.”

“…….”

“그러니까, 건드릴 생각도 말았으면 합니다.”

건우의 말은 곧았다. 단 한 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을 만큼.

“건드리지 마.”

차가운 경고.

“내 여잔.”

바보처럼 맹한 얼굴로 서 있던 문규에게 날아든 그야말로 묵직한 빨간 경고 카드였다.

칼바람을 불러들이는 것처럼 건우의 눈길은 냉랭했다.

건우의 나직한 목소리는 힘껏 문규를 짓눌러댔다.

“수작 부렸다가는 나도 당신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니까.”

건우의 아우라에 눌린 문규는 비틀거렸다. 잔뜩 긴장한 문규의 목구멍은 메말랐다.

무슨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문규는 허망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건우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다음에 미팅 때 뵙겠습니다.”

문규는 달리 대답을 내뱉지 못한 채로 입만 뻥긋거렸다.

“고 대리님. 갑시다.”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으면서 건우가 우리와 함께 성운그룹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녹차는 드시고 가셔야죠! 고. 대. 리. 님.”

캐리어에 있던 아이스 녹차를 꺼낸 소희가 실수로 손이 미끄러진 척 일회용 컵을 기울였다.

고우리. 소희의 타깃은 명확했다.

하지만 소희는 건우가 우리의 앞을 막아설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일회용 컵에 들어있던 녹차와 얼음이 건우의 재킷과 와이셔츠에 와르르 쏟아졌다.

가히 골키퍼의 뛰어난 수비에 소희의 유치한 복수 작전은 실패로 끝나버렸다.

“……!”

건우를 보던 소희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호랑이의 기세에 눌린 토끼처럼.

얼음 창고가 뿜어내는 냉기만큼 차가운 눈길로 건우는 소희를 쳐다봤다.

건우의 기에 눌려버린 소희는 침을 삼키는 법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미치겠네…….”

우리는 다급한 손길로 건우의 젖은 와이셔츠를 털어주었지만 녹차는 빠른 속도로 건우에게 스며들었다.

우리가 급히 가방을 뒤적거렸다. 흔한 휴지 한 장 보이지 않았다.

가방의 바닥까지 탈탈 휘저은 우리가 사위를 둘러봤다.

“차장님. 잠깐만요. 카페에서 냅킨 좀 가져올게요.”

“괜찮습니다.”

“아뇨. 금방 가져올게요.”

우리는 내달리듯 카페로 걸어갔다.

멀어지는 우리를 보던 건우가 그제야 소희에게 다가갔다.

“실수입니까.”

“그러니까…….”

“고의겠죠.”

건우가 소희의 말허리를 대번에 잘라버렸다. 변명은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컵이 제멋대로 날아갈 리는 없으니까. 아닙니까.”

건우가 축축한 셔츠를 손으로 가볍게 털어내면서 물었다.

건우의 눈빛은 무차별적으로 들이닥치는 모래바람처럼 건조하고도 날카로웠다.

소희는 제대로 대꾸도 하지 못한 채로 입속의 살만 잘근 깨물었다.

“후회하는 눈치네.”

건우가 허리를 약간 숙이고는 소희와 눈을 마주했다.

“당연한 일이겠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소희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서는 날름 대답했다.

“목표는 내가 아니었잖습니까.”

“…….”

“고 대리한테 쏟으려고 했던 거. 똑똑히 보이던데.”

건우는 소희가 들고 있던 캐리어로 손을 내뻗었다. 놀란 소희가 캐리어를 떨어뜨렸다.

건우는 캐리어 속에 있던 냅킨을 집어 들고는 허리를 세웠다.

건우는 무심한 손길로 와이셔츠를 쓸어내렸다.

물기에 젖은 녹차가 옅은 향기를 흩뿌리면서 냅킨을 축축하게 적셨다.

“실…… 실수였어요. 그냥 손이 미끄러진 거라고요!”

말을 더듬거리던 소희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다치지도 않았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소희는 건우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

최대한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소희는 건우가 눈치라도 챘을까 걱정하는 마음만은 완벽히 숨기지 못했다.

“되고 말고는 내가 결정합니다.”

건우의 눈빛은 소희의 속내를 이미 모두 간파한 것처럼 차분했다.

“실수라니까요.”

“실수라…….”

말끝을 흐리는 건우를 보면서 소희는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로 실수였다면 먼저 사과를 했겠죠.”

“그건!”

“놀라서 허둥댔을 거고. 적어도 이렇게 가만히 서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놀라서…… 정말 놀라서.”

소희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빈 컵을 들고 있는 소희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제 속마음을 관통한 건우의 말에 소희의 심장은 하염없이 뛰었다.

“홍소희씨.”

“……네.”

“잘 알고 있었으면 합니다.”

건우는 성큼 소희에게 다가섰다. 그 바람에 소희의 얼굴에 큰 그늘이 졌다.

차가운 건우의 눈길은 쳐다보지도 못한 채로 소희는 애꿎은 컵만 만지작거렸다.

“잘못에는 대가가 있다는 걸.”

소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만큼 선득한 목소리였다.

호기롭게 녹차를 뿌려대던 소희는 어느새 콩알만큼 작아진 것처럼 보였다.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을 깨물면서 소희는 문규를 봤다.

간절한 도움의 눈길에도 문규는 냅킨을 가져오는 우리의 꽁무니를 쫓느라 정신이 없었다.

“잘못 인정하시죠.”

건우의 목소리가 소희를 차갑게 후볐다.

“똑바로 사과하고.”

우쭐대던 소희는 잔뜩 풀이 죽었다.

건우의 위세에 제대로 말대꾸도 하지 못하고 코만 벌름거렸다.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사과는 바로 해야죠.”

건우가 냅킨을 건네던 우리의 팔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나 말고.”

“…….”

“고우리씨한테.”

건우가 뒷말에 꽉, 힘을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소희는 앞니로 제 입술만 힘껏 눌렀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녹차에 흠뻑 젖은 우리를 보면서 통쾌하게 웃을 줄 알았는데…….

딱딱한 앞니에 눌린 소희의 입술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아…… 지금 사과하시는 타이밍인가요.”

소희를 보던 우리가 허둥거리던 몸짓을 가다듬었다.

우리가 팔짱을 꼈다. 제대로 사과를 받아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풍겼다.

소희의 얼굴빛은 붉으락푸르락 여러 색깔로 변했다.

“소희씨. 시간 더 필요하세요?”

우리가 힐끔 손목시계를 보면서 물었다.

“저희가 시간이 남아돌지가 않아서요. 화보 콘셉트 논의로도 좀 바빠서.”

“그러니까…….”

“계속 그러고 계실 거면 이만 갈게요.”

우리가 채근하듯 소희에게 물었다. 소희의 머릿속은 복작거렸다.

건우는 무서웠지만 우리에게는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개의 마음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침묵 속에 피어오르는 살벌한 기운에 소희는 미칠 지경이었다.

“저희 콜라보는 재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건우의 말이 묵직하고도 냉랭한 정적을 뚫었다.

문규는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건우의 팔을 잡았다.

콜라보가 간절하다는 눈빛을 날려대면서.

“강 차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콜라보는 왜.”

“대가입니다.”

“무슨 대가요. 저희 논의도 잘되고 있었잖아요.”

“말했잖습니까. 잘못에 대한 대가는 필요하다고.”

건우가 흠뻑 젖은 와이셔츠를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처음부터 손발이 맞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난 그런 모험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건우의 팔을 잡은 문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로비를 나서던 성운그룹 직원들이 네 사람을 힐긋거리면서 지나갔다.

“죄송합니다. 소희씨가 실수를 해서…….”

“고의였죠.”

“강 차장님 그렇다고 해서 콜라보를 재고하시는 건.”

“내 사람한테 함부로 하는 곳과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마음, 추호도 없습니다.”

“떨려서 그랬을 겁니다. 이해해주세요. 우리 소희씨가 큰 프로젝트는 처음이라서.”

문규가 서둘러 소희를 두둔했다. 살기 넘쳤던 눈빛과 발톱을 숨기면서 소희는 덜렁 문규의 뒤에 숨었다.

녹차 참사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겠다는 속셈이었다.

문규의 뒤로 얼굴을 숨긴 소희를 보던 우리가 헛웃음을 쳤다.

“우리 소희씨가 아직은 어려가지고. 맘 넓은 강 차장님이 이해 좀 해주세요.”

“멍청해서겠죠.”

대신 사과를 하는 문규의 말을 잘라내면서 우리가 말했다.

“고 대리님. 일단은 진정을 좀 하시고.”

중재를 하는 문규는 안절부절 못했다. 직설적인 우리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서울 만큼 사납게 돌진하는 범버카같은 우리의 말에 문규는 당황해 목덜미만 긁적거렸다.

“되게 어리신가봐요.”

“고우리.”

“기본 욕구에만 충실하신 것 같아서요. 꼭 신생아 같네.”

부드러운 미소가 우리의 입가에 번졌다. 문규의 간담이 일순간 서늘해졌다.

정말로 우리가 화가 났다는 것이 싸늘한 미소 속에서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문규의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고우리. 정말 완전 화났네.

용솟음을 치려는 용암처럼 정말 폭발 직전이다!

“홍소희씨.”

“네.”

“공과 사도 구분 못하면 회사생활 그만 둬야죠.”

빙글거리는 우리의 미소에는 강력한 펀치가 숨어있었다. 우리의 말에 소희는 휘청거렸다.

문규의 뒤에 숨는 것도 그다지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대적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소희는 연신 뜨거운 콧김만 쏟아냈다.

“사과, 하실 건가요.”

우리의 물음에도 소희는 꿍한 얼굴로 문규의 등만 바라봤다.

“아니면……”

크게 날숨을 내쉬던 우리가 캐리어에 있던 뜨거운 녹차를 집어 들었다.

“똑같이 해드릴까요.”

우리는 금방이라도 소희에게 녹차를 끼얹을 기세였다.

놀란 소희가 눈을 질끈 감고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쏟을 거면 찬 녹차로 하라고……!’

소희가 빽 내지르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되게 유치하기는 하네.”

우리의 말에 소희가 눈을 떴다. 소희가 급히 제 몸을 더듬거렸다.

녹차를 끼얹은 흔적도 없이 소희의 몸은 말끔했다.

“까불지 말아요.”

“…….”

“우리 레벨 차이도 상당한데.”

우리가 손에 들고 있던 녹차를 마셨다. 따끈한 녹차가 우리의 목을 촉촉하게 적셨다.

전세는 우리의 쪽으로 확실히 기울었다.

몰아치는 건우와 우리의 더블 공격에 소희는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얼굴이었다.

“사과, 하실 건가요.”

우리가 재차 물었다. 문규는 당장 사과를 하라는 것처럼 팔꿈치로 소희를 살짝 찔렀다.

일제히 쏟아지는 시선에 소희의 표정은 울상으로 변했다.

“사과할 마음 없으시면 그냥 가겠습니다. 말씀드렸지만 저희 일정이 밀려있어서요.”

“잠깐. 잠깐만 우리야.”

문규가 걸음을 옮기려던 우리의 손목을 잡았다.

“사과 할 거야. 그러니까 화내지 말고. 좀 들어주라.”

문규는 애걸하듯 말했다. 우리는 무심한 눈길로 문규의 손을 봤다.

자신만만하게 사람을 두고는 저울질을 하더니.

우리는 애걸복걸하는 문규의 손을 힘차게 떼어냈다.

“주임님. 뭐하세요.”

“우리야.”

“공과 사 구분 못하는 분이 여기도 계시네.”

우리의 말은 냉소로 물들었다.

“정말 역지사지네.”

“역지사지?”

“역시 지랄을 해야 사람들이 지랄을 멈춘다고.”

우리는 강약을 조절하면서 힘껏 말했다. 잠자코 우리의 뒤를 지키던 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고 있다는 것처럼.

‘역시. 내 작가님은 다르다니까.’

건우는 유려하게 터지는 우리의 역지사지 해석에 박수까지 칠 뻔했다.

“노선 변경했으면 잘 타세요. 성 주임.”

“고우리.”

“아련한 척도 하지 마시고요. 안 통하니까. 그럼 두 분 잘 사귀시고. 콜라보는 저희 쪽에서도 고려해보겠습니다.”

“고려는…… 아니, 사과할 거라니까요. 소희씨. 얼른.”

문규가 서둘러 소희의 등을 떠밀었다. 덜렁 앞으로 나온 소희는 여전히 뾰로통한 얼굴이었다.

제 시선을 피하는 소희에게 확실한 역지사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소희의 지랄을 멈추게 만들…… 역지사지!

“이보세요. 홍소희씨.”

문규의 같은 부서 사람들을 보던 우리가 소희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제대로 된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우리의 눈빛이 번뜩거렸다.

“제가 성 주임님한테는 이제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거든요. 두 분 진심으로 축복하니까 잘 사귀시고요.”

“…….”

“고생하세요.”

우리가 소희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크게 말했다.

“토끼가. 어우. 토끼도 그런 토끼가 없던데.”

우리가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토끼. 확실히, 이목을 끄는 단어였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말이기도 했다.

어쩌다 토끼를 만나서 5년이나 고생했는데!

문규의 동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규에게로 향했다.

한없이, 풀이 죽어 보이는 문규의 바지로.

“아…… 아니!”

문규가 두 손을 내저었다. 강한 부정만큼 강한 긍정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문규를 보던 건우도 바람 빠지듯 웃었다. 토끼의 슬픔을 약간은 애도하면서.

“바람나신 거지만. 정말 잘 어울리세요. 두 분.”

“……!”

“힘내세요. 파이팅.”

우리는 조금의 미련도 없다는 것처럼 토끼 커플을 스쳐지나갔다.

“그럼.”

건우도 작게 인사를 날리고는 우리를 뒤따랐다.

문규도 건우에게 비웃음을 날리고 싶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연히 화장실에서 만난 건우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필 재수 없게 커서는. 공룡 같은 새끼!’

문규가 온갖 짜증을 내면서 멀어지는 두 사람을 봤다.

바닥을 차는 문규에게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한 순간, 토끼 커플은 쓰레기 커플이 되어갔다.

5년을 사귄 애인을 버린, 그리고 남의 애인을 빼앗은 쓰레기 토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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