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33화 (33/102)

제 33화. 막장 상사와 막장 부하직원

우리를 바라보는 건우의 눈빛은 작열하는 태양처럼 빛났다.

건우가 뜨겁게 쏟아내는 열기가 우리를 뒤덮었다.

건우의 입술을 타고 흐르는 숨결이 텅 빈 공간을 뜨겁게 만들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와 건우를 향해 마중 나가는 입술만이 연신 씰룩거렸다.

“1층입니다.”

단조로운 기계음이 우리의 귓가를 때렸다.

건우에게 사로잡혀 아득해졌던 우리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저희 얼른 가…… 가는 걸로.”

괜스레 당황해 마을 더듬거리던 우리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급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바람에 두 사람을 이어주던 느슨한 스카프가 풀렸다.

꽉 맞잡았던 두 사람의 손이 떨어졌다.

벚꽃처럼 나풀거리던 스카프가 바닥에 떨어졌다.

스카프를 집은 건우가 먼지를 털어주었다.

우리는 건우가 내민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는 공동현관문을 나섰다.

성큼 다가선 봄을 시샘한 찬바람이 두 사람에 불어 닥쳤다.

“오늘 꽤 춥네요.”

우리가 옷깃을 여미면서 건우를 봤다. 우리의 목에 있던 스카프가 바람에 팔락거렸다.

스카프는 금방이라도 풀릴 것처럼 아슬아슬해보였지만 죽기 살기로 우리에게 붙어있었다.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가 우리에게 다가섰다.

“그럼 단단히 매줘야겠네.”

건우가 느린 손길로 우리의 스카프를 깔끔하게 매어주었다.

얇은 스카프 위로 스치는 건우의 손길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부드러운 건우의 손길에 괜스레 우리의 몸이 움찔거렸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럼. 절대 풀리면 안 되지.”

건우는 말끔하게 매어진 스카프를 뿌듯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건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녹아들었다.

꽃샘추위도 잊을 만큼 뜨거운 열기를 품은 미소였다.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의 입매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씰룩거렸다.

“이러다 진짜 다 들키겠어요.”

“열심히 유혹하고 있었는데. 들켰나.”

“아침부터 유혹은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차장님.”

“이정도면 양반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말에 건우는 단칼에 대답했다.

“이만큼밖에 못해서 미칠 지경이라.”

건우가 뒷말을 이었다.

손톱만한 꽃봉오리가 맺힌 가지를 뒤흔드는 바람처럼 건우의 나직한 말은 우리를 뒤흔들었다.

건우에게 빠져들듯 건우만을 바라보던 우리가 괜스레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래도 동네에서의 비밀연애는 금방이라도 들킬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보처럼 건우를 향해 헤벌쭉 웃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머지않아 누구에게든 발각되고 말 것이었다.

***

성운백화점 로비.

우리와 건우는 로비에서 출입증을 받았다.

입구에 있던 게이트를 통과한 우리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우리의 단정한 슬랙스 패션은 그녀를 무심하고도 프로페셔널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맹랑한 추위에 가라앉아버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우리는 문규가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복도는 황량하기만 했다. 건우가 문규에게 도착을 알리는 전화를 하려던 순간이었다.

우리가 건우의 손목을 잡았다.

“준비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화장을 고치면서 끓는 마음을 달랠 생각이었다.

문규와 마주할 생각만으로도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별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빙글 미소를 지으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로 들어선 우리는 핸드백에서 파우치를 꺼냈다.

“립스틱이…….”

우리가 빵빵한 파우치를 뒤적거렸다.

미리 준비했던 붉은 립스틱으로 내면의 차가운 기운을 한껏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복잡스러운 파우치를 뒤적거리던 우리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 미치겠다.”

빨간 립스틱을 집은 순간, 손가락에 있던 상처에 옅게 젖어든 딱지가 떼어져나갔기 때문이었다.

작은 핏방울이 손가락에 맺혔다. 우리가 급히 휴지로 피를 막았다.

“고…… 대리님?”

잔뜩 인상을 쓰고 있을 때였다.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우리의 귀를 강타했다. 설마!…….

“진짜 오셨네요?”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었다.

우리의 고개가 느릿하게 돌아갔다.

문규와 바람이 났던 소희가 팔짱을 낀 채 여유만만한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소희를 보던 우리의 속이 마구잡이로 뒤틀렸다.

붉은 립스틱도 장착하지 못한 채로 소희와 마주하다니. 정말 재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그럼요. 일찍 와야죠.”

우리는 쓰린 속을 누르면서 빙글 미소를 지었다.

“뭐. 미팅 준비는 잘 하셨어요?”

소희가 조소를 흘리면서 말했다. 부러 우리의 속을 박박 긁어댈 요량이었다.

“네. 그쪽은요.”

“저희야 뭐. 준비할 게 있나요. 프로모션을 받아주는 입장인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던데요. 지난번에 하셨던 프로모션 결과가 좋지 않다고 업계에 소문이 파다해서. 많이 힘드시죠.”

무덤덤한 말투로 우리는 소희에게 강한 펀치를 날렸다.

“그럼 저는 준비 좀 할게요.”

우리가 여유 있는 손놀림으로 파우치에 있던 립스틱을 들었다.

거울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우리가 막 붉은 립스틱을 바르려던 순간이었다.

“우리 성주임님이 그러셨거든요. 그거 다 경험이라고.”

소희가 우리라는 말에 잔뜩 힘을 주었다. 문규의 존재가 우리에게는 큰 타격이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립스틱을 바르지 못한 채로 소희를 쳐다봤다. 사력을 다해 힘껏 소리쳐주고 싶었다.

X랄!

“아직 저는 어리잖아요.”

소희가 재빨리 뒷말을 덧붙였다.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끌어다가 던질 기세였다.

우리는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면서 립스틱을 발랐다.

대답 없는 우리를 보던 소희의 얼굴에는 기쁜 승리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려서…….”

“나는 좀 다른 생각인데.”

립스틱을 파우치에 넣은 우리가 소희의 말을 뺏었다.

“소희씨. 떡 맛은 누가 잘 알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먹어본 놈.”

우리는 담담하게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했다.

“실패한 놈은 실패한 떡 말고는 모르죠.”

“……!”

우리의 말에 소희는 부들부들 치를 떨었다.

해일처럼 정신없이 몰아치는 우리의 말을 재치 있게 받아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채 던지지 못한 말만이 소희의 목구멍을 지겹게 맴돌았다.

“나도 실패한 떡을 먹어보기는 했는데 되게 맛이 없던데.”

우리는 선반에 있던 핸드백을 들었다.

“소희씨는 괜찮나보다.”

“저기요!”

“둘 다 썩은 떡이라서 그런가.”

우리가 차가운 조소를 흘리면서 뒷말을 흘렸다.

“고대리님!”

“네. 하실 말씀은 들어가서 하시죠. 곧 미팅 시작 시간이라.”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화장실을 나섰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발을 구르는 소희의 발소리만 연달아 들려왔다.

승자의 미소가 번졌던 우리의 얼굴이 조금씩 굳었다.

건우의 등 뒤로 발꿈치를 들고는 고개를 내밀고 있는 문규와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씩씩거리는 소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우리는 제 뒤에 서 있는 소희와 앞에 서 있는 문규를 번갈아 쳐다봤다.

무슨 사방에서 포위하는 것도 아니고.

헛웃음을 내뱉는 우리의 눈빛이 돌처럼 딱딱해졌다.

그야말로 막상막하의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막장

상사가 지랄하는 만큼

막장

하급자도 지랄하는 막상막하의 현장.

네 사람의 시선이 불규칙하게 뒤엉켰다.

우리는 차가운 눈길로 토끼 커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볼품없는 커플이라고 생각했다. 상대할 가치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큰 걸음으로 문규에게 다가섰다.

“반갑습니다.”

눈치 없는 문규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매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빙구 같은 미소였다.

“성주임님.”

“예.”

“저희 미팅 시간도 다 된 것 같은데 이동하시죠.”

“아…… 예. 이쪽으로.”

사무적인 우리의 말에 문규의 얼굴에서도 조금씩 미소가 사라졌다.

회의실을 안내하는 문규의 어깨는 축 쳐졌다.

시무룩한 문규가 곁눈질로 우리를 살폈다. 문규는 소희의 풋풋함만큼 우리의 익숙함이 제법 그리웠다.

문규의 모습은 꼭 조강지처와 첩을 저울질해대는 우유부단한 양반처럼 보였다.

연거푸 한숨만 내뱉던 문규가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네 사람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회의실로 들어섰다.

우리는 말끔한 테이블에 노트북을 내려놨다.

“차장님, 안쪽으로.”

우리는 두 손을 들어 공손히 안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안쪽이 따뜻하니, 고대리님이 들어가시죠.”

“그래도 안쪽이 상석이니까…….”

“그런 이유라면 괜찮습니다. 바깥쪽을 좋아해서.”

탁구공처럼 서로를 오가는 다정스러운 두 사람의 대화가 문규는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그때 고우리 전화 받을 때부터 신경 쓰이더니. 게이 새끼가.’

건우를 노려보던 문규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오시느라 힘드셨겠습니다.”

문규가 살가운 두 사람의 대화 중간을 비집고 들어갔다.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한없이 부드럽던 건우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딱딱해졌다.

날선 건우의 분위기에 깨갱한 문규는 어설픈 미소만 날려댔다.

“그럼 앉으시죠.”

“예.”

넓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코끼리파와 토끼파가 대치하듯 앉았다.

미팅 전에 몸을 풀듯 가볍게 나오는 흔한 날씨 얘기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경계의 눈빛만이 복잡스럽게 서로서로를 옭아매고 있을 뿐이었다.

“우선은 제안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세 사람의 앞에 제안서를 내밀었다.

“지난번보다는 조금 더 구체화된 내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음향 범위는 15킬로미터까지 나갈 수 있게 하시는 거죠?”

“네. 공연 때는 확실하게 집중을 시킬 필요가 있어서요. 음향 가능범위 말씀해주시면 조정해보겠습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우리는 주도적으로 미팅을 끌어갔다.

외부 프로모션에 대한 강점과 세부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성운백화점에 기대하는 내용들도 소상히 말했다.

“성주임님.”

“아…… 네?”

“백화점 채널에서 광고 진행하는 건 아직 내부 논의 중이신가요.”

우리는 아련한 눈빛을 날려대는 문규의 눈빛을 가벼이 피하면서 물었다.

“광고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워낙에 상부에서 이번 프로모션에 긍정적이라.”

광고는…….

우리는 머리를 벅벅 긁어대던 문규의 말을 되씹었다.

어수룩한 표정, 콧잔등에 송골송골 올라온 땀.

문규를 관찰하던 우리는 확신했다.

이번 프로모션에 긍정적이지만 할인 제공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말이 이어질 거라는 걸.

“식품 매장 할인 관련해서는…….”

“추가 설득이 필요하신가요.”

주저하듯 더듬거리는 문규를 보던 우리가 시원스럽게 물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진행해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쪽에서도 조율할 수 있고요.”

“그죠. 그죠.”

우리의 말을 날름 주운 문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할인율 조정도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부적으로 정해지시면 말씀주세요.”

“아…… 네. 바로 말해드릴게요. 고대리님.”

“추가 설득에 필요한 자료들도 필요하신 건가요.”

“주시면 저야 좋죠.”

문규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대답했다.

“저희도 레퍼런스나 기존에 했던 외부 프로모션 결과들 공유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설득, 잘 부탁드릴게요.”

우리가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초조하기만 했던 문규는 우리의 말에 큰 시름을 놓았다.

문규에게도 HJ그룹과의 콜라보가 중요했다.

별달리 성과가 없었던 지난날들을 타파할 수 있는 규모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고대리님. 걱정도 많으십니다. 그쯤이야. 제가 깔끔하게 설득하겠습니다.”

새우처럼 한껏 굳어져가던 문규의 허리가 곧게 퍼졌다.

문규는 두 주먹까지 불끈 쥐면서 의지를 불태웠다.

“성주임님.”

“네…… 네?”

“앞으로는 불가능한 부분 생겨도 그냥 편히 말씀해주세요.”

“괜히 미안해서…….”

소희를 힐끔 쳐다보던 문규가 말끝을 흐렸다.

징징거리는 소희에게 질려가던 문규였다.

얼마 전에는 잘못 우리의 이름을 불렀다가 대판 싸움까지 벌어졌었다.

그런 답답한 와중에 똑 부러진 우리의 모습은 문규에게 그저 단비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건우의 날선 경계에 묘한 질투심도 일었다.

고우리를 잘 아는 쪽은 이쪽이야! 소리를 버럭 질러대고 싶을 지경이었다.

제 마음이 우리에게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문규는 우리의 쪽으로 한껏 몸을 기울였다.

“미안하기는요.”

건우가 삽질을 하던 문규를 단단히 막았다.

“어차피, 서로의 이익이 우선이죠.”

“그래도 협업…….”

“둘의 이익이 잘 맞을 때나 가능할 겁니다. 그 협업.”

건우를 흘겨보던 문규가 슬금슬금 눈길을 돌렸다.

건우의 말은 일종의 경고였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다른 업체를 알아보겠다는 무시무시한 경고.

“그러니까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

“물론, 저한테.”

건우가 뒷말에 힘을 주었다.

“아…… 네. 뭐.”

문규는 대강 건우의 말을 넘겼다.

건우 모르게 우리에게 전화를 걸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가 뭘 어쩔 건데.’

검은 속내를 숨기면서 문규는 건우를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흘렸다.

한참 이어지던 미팅은 끝을 향해갔다.

우리의 설명을 따라 제안서가 막힘없이 쭉쭉 넘어갔다.

제안서의 마지막장을 넘긴 문규가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고대리님.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세요.”

“괜찮습니다.”

“그냥 들고 가셔도 되고. 여기까지 오셨는데.”

문규는 우리의 꽁무니를 쫓으면서 질척댔다.

반드시 건우의 철벽수비를 뚫고야 말겠다는 다부진 표정으로.

세 사람을 따라서 사무실을 나선 소희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문규를 봤다.

불타는 밤에 우리의 이름을 부르던 문규도 괘씸했고 심드렁하게 화장실에서 강펀치를 날리던 우리도 꼴 보기 싫었다.

소희는 우리를 골탕 먹이면서도 문규에게도 경고를 날리고 싶었다.

사람, 바보 만들지 말라고.

“커피 맛있는데, 드시고 가세요.”

엉큼한 속내를 숨기면서 소희가 우리에게 말했다.

“맑은 차도 팔까요.”

우리는 소희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물었다.

소희의 속내를 파헤치고 말겠다는 눈빛이었다.

“네. 차도 팔 거예요.”

“그럼 차로 부탁드려야겠네요.”

“커피는 싫어하시나 봐요.”

“속을 알 수 없는 커피는 참아요. 침 뱉어도 모를 만큼 커피가 워낙, 검잖아요.”

넌지시 던진 우리의 말에 소희의 얼굴이 굳었다. 속내를 들킨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놀라셨나보다. 가끔 그런 일들이 있어서. 농담이에요.”

“농담치고는 뼈가…… 있네요? 대리님.”

“설마요.”

우리는 소희의 말을 여유롭게 받아쳤다. 말로 우리를 이길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네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묘한 긴장이 엘리베이터를 휘감았다.

건우는 문규를 막아서고 있었고, 문규는 악착스럽게 우리의 쪽으로 몸을 기울여댔다.

관망하듯 서 있던 소희는 우리를 노려봤다.

소희의 모습은 마치 왕 노릇을 하고 싶어 호랑이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토끼처럼 보였다.

아랫입술을 깨무는 소희의 앞니가 사악하게 번뜩거렸다.

“1층입니다.”

낮은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제가 시킬게요.”

소희는 살짝 손을 들고는 말했다.

“우리 성주임님은 당연히 아메리카노 드실 거고, 나머지 분들은……?”

소희가 우리 성주임이라는 말에 잔뜩 힘을 줬다.

문규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만들겠다는 옹골진 말투였다.

“저는 녹차로 부탁드릴게요. 차장님은.”

“같은 걸로 하죠.”

건우의 말에 문규가 입술을 쌜쭉거렸다.

“소희씨, 나도 녹차로 줘.”

“주임님도…… 녹차요?”

“어! 아주 속 뻥 뚫릴 만큼 시원한 걸로.”

문규가 소희에게 카드를 내밀면서 말했다.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문규의 눈빛은 여전히 건우에게 꽂혀있었다.

카드를 받아든 소희가 카페로 걸어갔다. 그리 순수한 발걸음은 아니었다.

출정하는 군인처럼, 예사롭지 않은 소희의 모습에 우리는 단단히 마음을 잡았다.

“고우리 대리님.”

소희에게 신경을 쓰느라 우리는 문규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못했다.

“고대리님!”

문규가 목소리 톤을 높이고는 재차 우리를 불렀다.

“네…… 네?”

“무슨 생각을 골똘하게…….”

“아니에요. 그런데 하실 말씀이라도.”

“아…… 별거는 아니고. 사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 듣고 싶은 말 없는데요.”

우리는 문규의 말을 덜렁 잘라냈다. 회사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목구멍을 간질이는 말을 힘차게 내뱉었을 것이었다.

개수작은 부릴 생각도 말라고!

“성문규 대리님.”

우리의 1차 방어에 이은 건우의 2차 방어가 시작됐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모두 저한테 해주시죠.”

“저희 사이에 개인적인 일이라…….”

“그러니까 더 관심 가네.”

건우가 바람 빠지듯 픽, 웃었다.

낮은 건우의 목소리에는 묘한 위압감만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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