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32화 (32/102)

제 32화. 잘 지키겠습니다, 내 사람

주방에 작게 난 창이 열려있었다.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식탁에 있던 빵 봉지가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흔들렸다.

우리가 안도의 숨을 뱉어내면서 방으로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작게 열린 방 문틈 사이로 민우의 모습이 보였다.

놀란 우리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만 떨어뜨렸다.

밝은 불빛이 흐르는 방에는 분명 교복을 입은 민우가 서 있었다.

우리의 아랫입술과 손끝이 떨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죽었는데. 왜 자꾸 눈앞에 보이는 건데…….

우리의 걸음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앞으로 나아가던 다리가 후들거렸다.

우리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보였다. 뜨거운 콧김이 우리에게서 흘렀다.

떨어진 핸드폰을 잡은 우리가 고개를 든 찰나였다.

캄캄하던 거실에 불이 켜졌다.

“뭐하고 있어.”

미순의 말에 순간 우리의 마음에 안도가 돌았다.

핸드폰을 든 우리가 제 방을 봤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본래 아무도 없었다는 것처럼.

“왜 그래. 얘가 얼이 빠져서.”

미순은 제 방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우리를 보고는 말했다.

“아냐. 그냥…… 놀라서.”

“이상한 소리 말고 오늘은 일찍 자. 피곤할 텐데.”

우리의 시선을 따라가던 미순은 화장실로 향했다.

우리는 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피곤해서 헛것이라도 본 것일 것이었다.

평생 가위에 눌려보지도 않았는데 귀신을 볼 리가 없잖아.

우리가 크게 날숨을 내뱉고는 방문을 열었다.

민우라도 있을까. 우리는 괜스레 방 이곳저곳을 살폈다.

하지만 민우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확실히 꿈이라고 생각했다. 피곤했던 것뿐이라고.

“차장님 동생이 있을 리가 없잖아. 동생은 갑자기 무슨…….”

두려움을 떨치려는 것처럼 우리가 크게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우리의 핸드폰이 울었다.

“엄마!”

깜짝 놀란 우리가 핸드폰을 멀찍이 침대로 던져버렸다.

자라보고 놀란 마음 솥뚜껑을 보고 다시 놀란 격이었다.

허탈한 웃음이 우리의 입술을 비집고 흘렀다. 스스로가 봐도 자신이 웃기게만 보였다.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면서 우리는 침대에 있던 핸드폰을 잡았다.

‘진짜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우리가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정말 들켰습니까.

건우의 걱정스러운 문자가 핸드폰에 떴다.

-아뇨. 잠깐 놀라서……. 안 들켰어요.

-다행이네.

-아무튼 죄송해요. 차장님. 여기서도 비밀이라.

우리가 침대에 슬쩍 앉고는 답장을 보냈다.

민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괜히 신경이 쓰였다.

마치, 민우가 주변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습니다. 스릴 넘치고 좋네. 아무튼 잘 준비하고 있었습니까.

우리는 건우에게 자신의 놀란 마음을 말하려다가 관뒀다.

건우가 밤잠을 설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뇨. 피드백 주신 걸로 수정 좀 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커서가 깜빡거리고 있는 제 노트북을 보면서 답장을 보냈다.

-잘되고 있습니까.

-아뇨. 장면을 좀 쓰는데 문제가 있어서요.

-무슨 문제.

침대에서 일어난 우리가 널브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산 넘어 산이었다.

고민만 잔뜩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비밀 연애로 골머리를 썩는 것도 모자라서 커서까지 속절없이 깜빡거리고 있다니.

-스킨십 장면을 좀 쓰고 있는데. 남주가 잘 안 서져서요.

한 손으로 대강 메시지를 날리고는 마우스를 딸깍거리던 우리가 뒤늦게 핸드폰을 봤다.

건우에게서 답장이 날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핸드폰을 보던 우리의 표정이 굳었다.

“진짜 미쳤냐. 고우리.”

우리가 관자놀이를 긁적거리다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누가 봐도 모호한 오타였다.

뭐가 안 서는데!

우리는 정말 말문이 막혔다.

기가 막힌 오타에 당황했는지 칼같던 건우의 답장이 날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읽기는 읽었는데.”

우리는 핸드폰에 거의 코를 박았다. 분명히 건우가 자신의 메시지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건우도 당황을 했을 것이 뻔했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물어도 되나. 현자 타임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몰랐다.

-아뇨. 오타가…….

우리가 메시지를 작성할 때였다.

-그런 문제는 보통 컨트롤이 되지 않습니까. 소설에선.

진지한 건우의 대답이 날아들었다. 한참을 생각해서 쥐어짜낸 대답이었다.

두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있던 우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쪽팔려 죽겠네. 정말.”

우리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다시금 고개를 들어도 건우의 답장이 선명하게만 보였다.

우리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우선은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잘 서는…… 음……. 그럼 방법…….

말줄임표의 대잔치가 벌어졌다.

건우도 차마 말을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뇨!

우리가 서둘러 건우에게 답장을 보냈다. 오해가 빠르게 번지는 것만을 막고 싶다는 간절한 손길이었다.

-절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오타예요.

-정말 오타예요!

-오타요!!

당황한 우리의 메시지가 쉬지 않고 건우에게 날아갔다.

우리는 초조한 얼굴로 컵을 들었다. 남아있던 주스를 모두 들이켜도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다.

책상에 조심스럽게 컵을 내려놓은 우리는 방금 전의 실수가 정말 실수였다고 건우에게 잘 전달되길 바랐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바람이 잘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건우의 답장은 짤막하기만 했다.

그냥, 무덤덤하게 보이기도 했다.

“뭐야. 진짜 끝이야?”

단조로운 답장을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다른 말이 남아있을지도 몰랐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는 것일 수도.

우리는 세상에 있는 와이파이를 전부 터뜨려버릴 기세로 열심히 핸드폰을 흔들어댔다.

참으로 거친 손길이었다.

핸드폰에 집중하던 우리는 팔꿈치로 책상에 있던 잘못 액자를 쳤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액자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액자는 산산조각이 났다.

핸드폰을 흔들던 우리의 손놀림이 멈췄다.

확실히 불길한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눈길이 느릿하게 바닥으로 향했다.

액자 유리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우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밤에 유리조각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운도 없네.”

우리는 큼지막한 유리를 치우면서 액자를 들었다.

잘은 유리 조각이 별처럼 쏟아졌다.

깨진 액자 속에 있던 사진을 우리는 조심스럽게 빼냈다.

아버지 성원과 함께 찍은 사진에 흠집이라도 날까.

우리는 사진에 있던 유리조각을 털어냈다.

우리는 가만히 사진을 바라봤다. 정말 간만에 마주하는 사진이었다.

책상에 뒀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사진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진 속의 성원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소방차 앞에서.

그 누구보다 눈부시게 해맑은 미소였다.

“……아빠.”

주홍빛 활동복을 입고 있는 성원을 보던 우리가 아빠를 불렀다.

오래간만에 불러보는 말이었다.

합동장례식이 끝난 이후로 우리와 미순의 시간은 모두 하염없이 흘러갔다.

단 한 사람.

“우리 아빠만 그대로네.”

성원의 시간만 빼고.

성원은 같은 시간 속에 갇혀버린 것만 같았다. 우리는 코끝이 싸해지는 것만 같았다.

성원의 손을 바짝 잡고 있는 어린 자신의 모습이 괜스레 그리워졌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제 손을 봤다. 성원의 손을 잡았을 때의 온기는 잊은 지 오래였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모녀는 성원의 손을 잡아볼 수가 없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성원의 사체는 망가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숨을 깊게 내쉬던 우리가 서랍 속에 사진을 넣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성원의 사진을 잘 보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서랍을 닫았다. 이제 남은 것은 유리조각을 치우는 일뿐이었다.

“아! 아…….”

널브러진 유리 조각을 치우던 우리의 입술 사이로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우리의 손가락을 타고 붉은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별처럼 반짝거리는 유리 조각이 순식간에 순홍빛으로 물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가 베인 검지를 꾹 누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아릿한 기운이 손끝을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면서 책상에 있던 티슈로 대강 손을 감았다.

“운도 없게. 아파 죽겠네.”

새빨간 피는 휴지에 빨갛게 젖어들었다.

강한 힘으로 지혈을 하면서 우리는 재빨리 남은 유리 조각을 치웠다.

물로 적신 휴지로 말끔하게 바닥까지 닦아낸 우리는 상처 난 부위를 물로 씻어냈다.

침대에 앉은 우리는 베인 검지에 약을 발랐다. 벌어진 틈을 타고 피가 연하게 흘렀다.

우리는 꼼꼼하게 검지에 밴드를 붙이고는 베인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난데없이 연달아 들이닥친 불운의 습격에 우리는 시무룩해졌다.

“아…… 몰라. 쉬자. 쉬어.”

우리는 노트북을 끄고는 침대로 몸을 날렸다. 푹신한 침대가 우리를 끌어안았다.

-저 먼저 잘게요. 내일 뵙겠습니다!

우리는 급히 건우에게 끝인사를 날렸다. 우리가 손을 들고는 베인 손가락을 바라봤다.

오타부터 베인 손가락까지.

머피의 법칙이 시작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머피의 법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열심히 잠을 자고 내일을 기다리는 것.

아침의 햇볕에 불운이든 걱정이든 사라질 것이었다.

우리가 베개를 끌어와 머리에 댔다. 눈을 감고 우리는 잠에 들려고 애를 썼다.

욱신거리는 검지의 아픔을 잊기 위해 노력하면서.

하지만 우리의 검지는 쉬지 않고 쓰라렸다.

꼭 잠으로는 불운을 떨치기 어렵다는 것처럼.

***

우리는 출근 준비로 바빴다. 구운 빵을 입에 가득 쑤셔 넣고는 열심히 블러셔를 발라댔다.

건우의 흔적을 가릴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는 가방을 들었다.

구두를 구겨 신던 우리의 핸드폰이 울렸다. 건우의 전화였다.

“네.”

우리는 문고리를 잡으면서도 뒤를 돌았다.

주방에 있는 미순이 나오기라도 할까. 우리의 목소리는 한껏 낮아져있었다.

-출근 준비는 다 끝냈습니까.

“네.”

-잘됐네. 그럼 출근합시다.

우리는 건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설마……!

-15층입니다.

건우의 말에 우리가 헐레벌떡 현관문을 열었다.

스피드가 절대로 필요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주방을 향해 대강 인사를 날리고는 현관문을 잽싸게 닫았다.

건우는 덤덤한 얼굴로 여유롭게 서 있었다.

“차장님.”

“강건웁니다.”

“아니. 알겠어요. 건우씨. 됐죠. 그럼 가요. 얼른.”

우리가 급하게 건우의 손목을 낚아챘다. 건우의 걸음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우리와 달리 건우는 별로 조급한 기색이 없었다.

들킬 테면 들켜보라는 묘한 배짱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는 초조한 얼굴로 열심히 엘리베이터 버튼을 연달아 눌러댔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말 빠르게.

“다시 한 번 연습해보죠.”

“아뇨. 차장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고…….”

“습관은 중요하니까.”

건우가 우리에게 바짝 다가섰다. 고집을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는 다부진 몸짓이었다.

“지금은 우리 둘뿐이잖습니까.”

우리는 도무지 위층에서 내려오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우리의 간절한 손짓에 반응이라도 한 것처럼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차장님.”

“차장님은…….”

“일단은 둘이 아니라 셋이니까.”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턱 짓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건우의 입술 사이로 허탈한 웃음이 흘렀다.

자신과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남학생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는 남학생을 얼른 타라는 것처럼 뜨거운 눈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단정하게 교복을 입은 남학생을 보던 건우가 살짝 눈길을 피했다. 민우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해사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손수건을 내밀던 민우의 모습이 자꾸 선명해지는 것만 같았다.

‘형. 이거 선물.’

‘무슨 선물인데.’

‘대회도 잘 끝내고 생일도 축하하고. 뭐. 겸사겸사.’

‘학원이나 잘 나가. 괜히 아버지 속 썩이지 말고.’

손수건을 받으면서도 건우는 민우에게 학원 타령을 해댔다. 그게 바른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학원 때문에 민우가 죽게 됐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남학생의 얼굴 위로 건우는 민우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건우가 짐짓 뒤로 물러났다. 토악질이라도 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어디선가 매캐한 연기 냄새가 코끝을 찔러오는 것만 같았다.

남학생은 제 핸드폰만 쳐다봤다.

남학생은 눈에 잔뜩 힘을 주면서 늦었다는 것을 무언의 메시지를 날려대고 있었다.

“다음 걸로 타죠.”

건우가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지각…… 괜찮으세요?”

지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하려던 우리의 말이 멈췄다.

건우의 낯빛이 창백해졌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질 겁니다.”

흐릿한 미소를 던지는 건우의 얼굴을 조금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미안해요.”

우리는 남학생에게 어색한 웃음을 던지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 손을 뗐다.

엘리베이터가 순식간에 닫혔다. 닫힌 문을 바라보던 두 사람 사이로 느린 침묵이 넘실거렸다.

벽을 짚은 건우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민우, 학원 갔냐. 거기 지금 불났다고.’

민우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살아있다는 미안함이 건우를 집어삼켰다.

‘지금 죽은 사람도 나오고 난리 났다고!’

우리는 가쁜 숨을 내쉬는 건우를 바라봤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과거에 들어가서도 현실에서도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절망했다.

말없이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가 스카프를 풀었다.

그리고는 건우가 그랬던 것처럼 스카프를 손에 둘렀다.

우리는 건우의 손을 잡았다. 건우의 떨림이 스카프 사이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건우의 손을 잡은 우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스파이 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 연애는 완전히 잊은 것처럼 보였다.

건우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만이 우리를 휘돌고 있을 뿐이었다.

“괜찮아질 거예요.”

우리가 건우를 보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웃어보였다.

“금방, 좋아질 거예요.”

건우는 우리를 바라봤다. 절망에 사로잡혔던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것만 같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처럼 거칠었던 숨소리도 평온하게 변해갔다.

“……예.”

묵직한 건우의 말이 조용히 흘렀다. 거짓말처럼 건우의 떨림이 멈췄다.

서로의 열기가 넘실거리는 동안에 엘리베이터는 한참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건우를 보고 빙글 미소를 머금었던 우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우리는 조용히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내딛었다.

열린 엘리베이터에서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미순을 알고 있는 이웃주민이라도 만났다가는 분명 곧바로 소문이 퍼졌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맞잡은 손을 보고 있던 건우가 우리의 손을 놓았다.

“미안합니다. 나 때문에 늦을 것 같네.”

“괜찮아요.”

우리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1층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 다쳤습니까.”

건우의 우리의 손가락을 보고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별 거 아니에요. 살짝 베여서.”

“병원 갑시다.”

“농담…… 아니시네요?”

가볍게 건우의 말을 넘기려던 우리가 말을 바꿨다.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건우의 얼굴이 사뭇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어째 차장님이 다치신 것 같네.

“예. 진담입니다.”

건우의 얼굴에는 웃음기조차 없었다.

우리를 끌고 병원에 가고 싶다는 간절함만이 건우의 눈동자에 넘실거렸다.

‘국보급 손인데…….’

건우는 다친 우리의 손가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차라리 제 손을 다쳤으면 싶을 지경이었다.

“정말 괜찮아요. 피도 멈췄고 멀쩡해요. 금방 아물 거예요.”

“흉이라도 지면 어쩝니까. 밴드는.”

“이것 말고 없어서. 이따 오후에 성운백화점 미팅 가기 전에 하나 사려고요.”

“당장 사러 갑시다.”

“그러고 싶은데 추가 제안서도 좀 손 봐야 할 것 같아서요.”

우리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미팅은 괜찮겠습니까.”

건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규와 마주치는 일이 우리에게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요.”

우리는 별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덤덤하게 대답했다.

“때린 사람이 다리도 못 뻗고 잔다고 하잖아요.”

“그래도…….”

“그래서 전 괜찮더라고요. 다리 잘 뻗고 잘 수도 있고.”

벙긋 미소를 짓던 우리가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작은 주먹은 묘하게 매섭게 보였다.

“덕분에 전투력도 최고치고요.”

“그럼 나도 잘 지키겠습니다.”

건우는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는 우리의 손길을 살며시 피하고는 우리에게 다가섰다.

바투 다가선 건우가 살짝 허리를 숙였다.

“내 사람.”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의 입술을 뜨겁게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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