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화. 바나나 건우의 탄생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머금은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올라갔다.
우리의 온 신경은 제 손목에 집중됐다.
길쭉한 건우의 손가락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나, 하나…….
모든 손가락의 마디가 우리의 마음을 간질였다.
엘리베이터 앞만을 바라보던 우리는 굳은 침을 삼켰다.
손목이 간질거리는 것만 같았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간질거림은 짙어졌다.
우리는 곁눈질로 건우를 봤다.
건우의 표정은 한 줌의 흔들림도 없이 무덤덤하기만 했다.
손가락 하나로 이렇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니!
‘정말 이 남자, 요물이다.’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의 마음이 펄떡거렸다.
우리의 시선을 느낀 건우의 입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핸드폰만을 보고 있던 미순은 뒤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스킨십의 현장은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저 제 발 저린 도둑처럼 우리만 잔뜩 긴장한 얼굴로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진한 침묵은 엘리베이터를 금방이라도 집어 삼킬 것처럼 보였다.
색정적인 건우의 미소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세차게 뒤흔들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심각한 얼굴로 메시지를 확인하던 미순이 일순간 뒤를 돌았다.
“엄마!”
갑작스러운 습격에 화들짝 놀란 우리는 비명을 질렀다.
“왜 이렇게 놀라.”
미순이 수상하다는 얼굴로 우리를 봤다. 갑자기 엄마를 부를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증거를 찾는 탐정처럼 미순은 잽싸게 우리를 훑었다.
“아니. 엘리베이터에 모기가 있어서.”
벌렁거리는 마음을 붙잡으면서 우리는 모기를 잡는 시늉을 해댔다.
짝짝!
요란한 박수소리가 갑작스럽게 엘리베이터에 번졌다.
우리의 손길을 따라서 미순의 눈길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있는 가상의 모기를 전부 다 잡아버릴 기세였다.
없는 모기까지 만들어내면서 변명에 애를 쓰는 우리의 모습이 건우는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토끼 작가님. 정말 못 말리겠네.’
건우는 자꾸만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는 미소를 누르느라 애를 썼다.
“이 추운 날씨에 모기는 무슨 모기야.”
눈에 보이지 않는 모기를 쫓던 미순의 말이 허를 찔렀다.
의미 없는 박수만 쳐대던 우리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췄다.
거짓말도 꼬리가 길어지면 잡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변명거리를 찾는 우리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찬찬히 움직이던 우리의 눈길이 건우에게 머물렀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달라는 간절한 눈빛이었다.
“지구온난화라.”
나직하게 번진 건우의 말에 미순의 시선이 건우에게로 움직였다.
“날이 따뜻해져서 모기가 가끔 있는 것 같습니다.”
건우가 서둘러 뒷말을 덧붙였다. 잠자코 건우의 말을 듣고 있던 우리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의 말에 무조건 공감하다는 세찬 끄덕임이었다.
“따뜻해지기는 했죠. 요새 얼음도 녹는다고 하고.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가슴 아프더라고.”
“예. 심각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일회용품도 그만 써야하는데. 근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구온난화로 갑작스럽게 열을 올리던 미순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미순에게서 모기의 존재는 순식간에 관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미순은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을 떠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핸드폰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미순이 제 이마를 쳤다.
“토요일에 반상회가 있어서 다들 올 수 있는지 궁금해 하더라고요.”
“반상회 말입니까.”
“네. 바쁘겠지만 그래도 참석하면 좋을 것 같아서.”
미순이 핸드폰을 흔들어대면서 말했다.
꼭 참석하라는 강력한 눈빛까지 흩뿌려댔다.
“이웃끼리 친하게 지내면 좋을 것도 같고.”
미순은 인심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눈썹을 꼼지락거렸다.
어서 대답을 내놓으라는 무언의 채근이었다.
우리가 곁눈질로 건우를 봤다. 우리는 건우가 반상회에 참여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도쿄에서도 남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는 것만 같았던 건우였다.
그런데 반상회라니.
시간을 뺏는 일을 건우가 선택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도란도란 작은 반상에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는 건우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모이니까 거리도 가깝고.”
“아…… 고우리 대리 집에서 합니까.”
“좋지. 뭐. 바로 아래고. 계단 몇 개만 내려오면 되는데.”
미순은 있는 힘을 다해 건우를 유혹했다.
“점심도 우리 집에서 하고요. 맛있는 걸로 대접할게요.”
“필요한 건 없습니까.”
“몸만 오면 되니까 편히 와요. 어째, 참석하는 걸로?”
미순과 우리의 시선이 동시에 건우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은 건우의 대답에 집중했다.
우리는 거절의 답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고 미순은 거절을 거절할 생각이었다.
“예. 참석하겠습니다.”
건우는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단숨에 대답했다.
반상회 참여에 미순은 반갑다는 것처럼 제 두 손을 힘차게 부딪쳤다.
“잘됐네. 그럼 참여하는 걸로.”
미순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미순이 단체 문자로 건우의 참석을 알리는 동안 우리가 급히 건우의 팔을 잡아당겼다.
‘왜요. 왜 우리 집에 온다는 건데요.’
우리가 눈에 잔뜩 힘을 주고는 맹렬하게 건우를 쳐다봤다.
건우가 집으로 오는 순간부터 아슬아슬한 순간의 연속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연애 초기부터 미순에게 헤어짐을 강요당하고 싶지 않았다.
“차장님 바쁘시잖아요.”
“괜찮습니다.”
“프로젝트도 있고 저희 화보 촬영 내용도 있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건 반상회 끝나고 논의하죠.”
건우는 우리의 말에 단숨에 대적했다.
“……둘이서.”
건우가 우리에게 바투 다가서고는 말을 이었다.
묘한 미소를 흘리는 건우는 반상회에는 별다른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번지는 건우의 목소리에 우리는 손목에 열이 도는 기분이었다.
건우의 잔향이 온 신경을 톡, 건드리는 것 같기도 했다.
빠르게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미순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우리의 옆에 있던 캐리어를 끌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우리가 뒤를 돌아 건우를 봤다.
건우를 갈망하는 마음은 여전히 쿵쾅거렸다.
“일단은 쉬세요. 차장님.”
“예.”
두 사람 사이에는 메마른 사무적인 인사만 돌았다.
“토요일에 보죠.”
건우는 반상회에 참여하겠다고 마지막으로 못을 박았다.
고개를 숙여 미순에게 짤막하게 목인사를 끝낸 건우를 품은 엘리베이터가 닫혔다.
엘리베이터는 무심하게 올라갔다.
16층. 엘리베이터 위에 새겨진 숫자가 우리는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정말 와서 어쩌려고.
“고우리.”
현관문을 연 미순이 우리를 불렀다.
“뭐하고 있어. 얼빠져서.”
“아니. 차장님은 왜 불렀어. 불편하게.”
“다 너 위해서 그런 거지.”
“불러서 뭐 어쩌려고.”
“이 엄마가 다 생각이 있어. 걱정 말고 얼른 들어가자. 너 좋아하는 계란말이도 해놨지.”
미순은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자신만만한 미순의 모습이 우리는 오히려 불길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데.”
“잘 보이면 좋잖아. 그래도 명색이 직장 상산데.”
미순은 캐리어를 열심히 끌면서 대답했다.
“이번 반상회에는 바나나 좀 잔뜩 준비해야겠네.”
알 수 없는 다부진 말까지 날리면서.
“바나나는 왜.”
“왜는.”
뒤를 돌아본 미순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돌았다.
“뇌물.”
미순의 얼굴에 벙글 미소가 솟았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들어가는 미순을 보면서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좀체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준비하는 미순에게 건우는 바나나를 좋아하는 잘생긴 위층 총각으로 진하게 박혀버렸다.
그야말로 건우는 미순에게 바나나 건우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
저녁을 먹은 우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짐을 정리한 뒤 샤워를 했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물이 하루의 피로를 녹아내리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우리가 욕실을 나섰다. 후끈한 열기가 욕실의 문을 타고 넘실거렸다.
따뜻한 김을 내뿜으면서 우리는 제 방으로 향했다.
얼굴에 로션을 바르던 우리의 시선이 제 목덜미로 향했다.
군데군데 남은 건우의 흔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붉은 꽃이 핀 것처럼 건우의 흔적은 목덜미를 군데군데 적시고 있었다.
우리는 목덜미를 쓸어내릴 때마다 손끝이 찌릿찌릿거렸다.
건우의 숨결이 아직도 묘한 여운을 남겼다. 말캉한 입술에서 번지는 잔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아…… 진짜 골치 아프겠네.”
로션을 바른 우리가 방 한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목덜미를 가릴 스카프를 찾을 요량이었다.
“이게 무슨 고생이야.”
우리는 방 한 구석에 있던 수납 정리함을 힘겹게 꺼내면서 궁싯거렸다.
플라스틱으로 된 수납함을 제 품에 끼고는 우리는 바닥에 앉았다.
건우가 남긴 붉은 흔적을 가리려면 수십 장의 스카프가 필요할 지도 몰랐다.
말끔하게 정리해뒀던 스카프를 뒤적거리던 우리의 손이 멈췄다.
스카프 속에 숨어있었던 손수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무늬 하나 없는 투박한 손수건이었다.
합동 장례식장에서 누군가가 건넸던 손수건.
“어디 있나 했었는데. 여기 있었네.”
우리가 손수건을 살폈다. 손수건은 여전히 흠집이나 얼룩 하나 없이 말끔했다.
누군가 무심하지만 다정스럽게 손수건을 던져주었던 그날처럼.
손수건을 바라보던 우리는 해묵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너는 왜 안 울어.’
‘내가 엄마를 지켜야 된대. 그래서 안 울 거야. 절대로 안 울어.’
합동장례식장에서 바닥만 바라보던 어린 우리는 주문이라도 거는 것처럼 말했다.
미순을 잘 지켜야 한다는 주변의 말에 우리는 힘겹게 눈물을 눌러 담고 있었다.
울음을 참는 어린 우리의 작은 주먹은 부들부들 떨렸다.
‘바보냐.’
‘네가 뭘 안다고…….’
‘울고 싶을 땐 그냥 우는 거야.’
발끈한 우리가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남자는 우리에게 손수건만 툭 던져주었다.
우리가 본 것은 유난히도 큰 키와 남자의 널찍한 등뿐이었다.
건조한 남자의 말에 우리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비만 내렸어도…… 그럼 다 꺼졌을 텐데. 비 때문에…….’
순식간에 어린 우리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대던 어린 우리는 흐릿해지는 남자의 뒷모습만을 바라봤다.
힘차게 손수건에 코를 풀어대던 우리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었다.
어린 우리는 그 남자를 다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샅샅이 장례식장을 지켰다.
하지만 그날은 우리가 남자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는 남자가 장례식을 스쳐지나가던 조문객일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제 손에 있던 손수건을 바라봤다. 우리에게는 특별하고도 소중한 손수건이었다.
남자가 무심히 던진 말이 없었더라면 평생을 슬픔 속에 살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슴팍에 고여 있는 눈물에 아파하면서.
‘잘 살아야지.’
손수건을 바라보던 우리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우리는 잘 살아내고 싶었다. 그날 펑펑 쏟아냈던 눈물만큼.
우리는 스카프 위에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내려놨다. 그리고는 수납 정리함의 뚜껑을 닫았다.
“작업이나 해야겠네.”
수납 정리함을 제자리에 다시 미뤄둔 우리가 손을 풀었다.
우리는 책상에 앉아 건우의 피드백이 적힌 종이를 뒤적거렸다.
도쿄에서 느꼈던 간질거리는 마음을 담아 10화를 끝낼 생각이었다.
우리는 달달한 오렌지 주스로 목을 축였다.
「그녀는 그의 것을 탐냈다. 그녀의 간절한 손길에 그에게서는 한없이 열기가 피어올랐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우리의 방에 퍼졌다.
빠르게 울려 퍼지는 키보드 소리 속에서 우리는 도쿄에서의 기억을 더듬었다.
달뜬 숨소리로 끝없이 흔들렸던 밤.
「단단한 기운과 열기가 끈적끈적하게 그녀를 적셨다. 아득해졌다. 모든 것들이 진공 상태에 빠져든 기분이었다. 떨리는 숨결만이 선명하게 귓가를 적셨다.」
우리의 목이 버석하게 말라왔다. 두 주인공의 방에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또렷하게 보이는 두 주인공의 모습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우리는 마른 침을 삼켜댔다.
「“당이 좀 필요할 겁니다. 오늘은 당신을 재울 생각, 없으니까.”」
남자의 대사를 쓰던 우리가 주스를 마셨다.
꼭 스스로가 당을 충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달달한 오렌지 향기가 우리의 입술을 촉촉하게 적셨다.
「그가 달달한 사탕을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스칠 때마다 그녀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살짝 벌어진 그녀의 입술 사이로 사탕이 빨려 들어갔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추가하던 우리의 손은 거북이처럼 느려졌다.
「그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는……. 그는……. 그는…… 모르겠다.」
말줄임표의 끝에 우리의 마음이 덧붙었다.
두근거리던 도쿄의 밤은 선명했지만 남자주인공의 마음이 어땠는지 우리는 쉬이 감이 잡히지 않았다.
좋았다, 욕정이 치밀었다, 달콤했다.
숱한 동사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날 차장님 마음은 어땠을까.’
처음으로 우리는 건우의 마음을 상상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힘을 쥐어짜내도 건우의 마음이 쉬이 짐작되지 않았다.
우리는 딱딱한 키보드 위로 얼굴을 묻었다.
“이것만 완성되면 바로 올릴 수 있는데. 아…… 생각아. 생각아!”
우리는 멈춘 생각을 채근해댔다. 하릴없이 생각을 불러대던 우리의 핸드폰이 달달 떨렸다.
책상을 뒤흔드는 진동에 놀란 우리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핸드폰을 살피던 우리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건우의 메시지였기 때문이었다.
-잘 쉬고 있습니까.
짤막한 물음이었다.
-네. 차장님…….
답장을 하려던 우리의 손길이 멈췄다. 차장님은 금지라던 건우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네. 건우씨는요.
어색함을 담은 우리의 메시지가 건우에게 날아갔다.
“건우씨라니……. 완전 어색해 죽겠네!”
제 메시지를 바라보던 우리는 몸서리를 쳤다.
건우라는 말이 여전히 어색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건우씨라는 말이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꽤, 연습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이름 불러주니까 좋네.
건우의 답장은 그 어느 때보다 빨랐다.
빙글 미소를 짓는 건우를 상상하던 우리의 미소도 점점 깊어졌다.
우리가 답장을 보내려고 할 때였다. 메시지가 답답했는지 건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요. 차장님.”
냉큼 전화를 받은 우리가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아…… 그래도 들킬까봐.”
-들키면 안 됩니까.
“죄송해요. 들키면 좀 곤란할 것 같아서요.”
-설마.
건우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대답했다.
-어머님께서도 제가 다른 성적 취향 가지고 계신 줄 알고 계신 겁니까. 그럼 해명을…….
“아뇨. 아뇨. 절대로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실은…….”
우리는 인연을 멀리서 찾아야 한다는 역술가의 경고를 건우에게 전달했다.
건우는 잠자코 우리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우리는 역술가의 말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왜 하필 그런 허튼 소리를 해서는!
“그래서 죄송한데 당분간은 집에서도 비밀연애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비밀 연애를 부탁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끝없이 작아졌다.
-정면 돌파는 소용없을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엄마가 너무 단단히 믿고 계셔서.”
-그럼 다른 방법을 좀 강구해보죠.
“저도 생각해보고 말씀 드릴게요.”
시무룩한 우리의 목소리가 퍼졌다.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우리가 화제를 돌리려던 찰나였다. 밖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저희 문자로 해요. 문자로.”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던 우리가 다급하게 말했다.
은밀했던 밤의 대화는 삽시간에 끝이 났다.
우리는 괜스레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늉을 하면서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어머님이라도 깨셨습니까.
건우의 답장을 보던 우리가 핸드폰을 들고는 슬그머니 방문을 열었다.
우리가 방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둠 속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가 사라졌다.
핸드폰을 꽉 잡은 우리가 어둠에 사로잡힌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