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화. 비밀스러운 스킨십
매캐한 냄새가 우리의 코끝을 찔렀다.
불에 타는 냄새.
우리가 지독히도 싫어하는 냄새였다.
우리는 사방을 둘러봤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 푸른 잎이 우거져 있었다.
훗훗한 바람이 우리를 적셨다.
‘아……. 꿈인가.’
머리를 긁적대는 우리의 귓가에 흐릿하게 매미 소리가 돌았다.
우리는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매캐한 냄새의 끝에서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널찍한 마당과 단정하고도 멋스러운 기와집이 눈에 들어왔다.
앞마당에서는 붉은 불길이 일고 있었다.
위협적일 만큼 넘실거리는 불길에 우리가 짐짓 뒤로 물러났다.
열린 대문으로 어린 건우가 보였다.
꿈이 아니라면 건우의 과거일 수도 있었다.
‘잠결에 손이라도 잡은 거 아니야?’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우리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이었다.
“아버지.”
어린 건우가 아버지 태석을 말렸다.
“내놔. 다 태워버리게!”
태석은 건우가 끌어안고 있던 민우의 물건을 모조리 불길에 던졌다.
신발도 신지 못한 채로 뛰쳐나온 건우는 불길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맹렬해지는 불길에 쉬이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화기가 건우의 손끝을 뜨겁게 적셨다.
“아범아. 그만 해라.”
“놔두세요. 다 태워버릴랍니다. 그 중요한 대회도 모조리 출전도 안 하고. 이 물건이나 끌어안고서는!”
흥분한 태석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약한 새끼.”
불길 옆에 주저앉은 건우를 끌어내는 태석의 손길은 우악스러웠다.
“아범아.”
“죽은 사람 물건 붙들고 있으면 건우한테 괜히 민우 붙습니다. 다른 대회도 나가야 하는데…….”
태석의 아랫입술이 떨렸다. 울컥 솟는 마음을 누르는 태석의 눈이 새빨개졌다.
민우의 물건을 태우는 일은 태석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단을 내릴 때였다.
민우의 기억을 끌어안은 채 건우를 어둠 속에 살게 할 수는 없었다.
태석은 민우의 물건을 전부 불길에 넣었다.
민우가 즐겨 읽었던 책, 즐겨 입었던 옷, 매일 같이 쓰던 일기장. 그 전부를.
불길이 잡아먹은 물건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변해갔다.
민우의 영혼이 건우를 갉도록 놔둘 수는 없다는 태석의 다부진 의지였다.
“양궁, 하지 않을 겁니다.”
“강건우!”
“다시는 못해요.”
태석을 보는 건우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미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
도리어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와 태석의 눈빛만이 흔들렸다.
건우는 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안 합니다.”
건우의 말에 태석이 건우의 멱살을 잡았다.
할머니가 태석을 말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태석의 손등에 퍼런 핏줄이 섰다.
“다시 말해봐.”
“양궁 포기할 거라고요.”
“강건우!”
“제가 죽였습니다.”
건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선명하게 흘러내리는 말에 태석만이 휘청거렸다.
“민우는 제가 죽인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전부 제 잘못입니다. 제가…… 제가 민우 대신에 죽었어야 했는데.”
“이 자식이!”
건우의 말에 흥분한 태석이 건우의 뺨을 때렸다.
건우의 뺨에는 진한 손자국이 남았고 금세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흠칫 놀란 우리가 건우에게로 다가섰다.
하지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흔한 위로의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애비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
태석은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허공에 멈춘 태석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기다렸을 겁니다.”
“…….”
“불길 속에서. 저든 아버지든…… 누군가 오길 원했을 거라고요.”
건우의 눈에서는 굵직한 눈물이 툭, 떨어졌다.
건우의 말에 태석의 아랫입술도 하염없이 떨렸다.
“그런데 아무도 가지 못했죠.”
“강건우.”
“늘 그랬던 것처럼.”
허공에 멈췄던 태석의 손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우악스럽게 쥐었던 주먹에서도 힘이 풀렸다.
민우는 매일 기다렸었다. 졸업식, 생일, 운동회…….
부모의 손길이 필요할 때마다 민우는 늘 혼자였었다.
양궁 연습에 열을 올리던 건우와 건우의 성적에만 관심 있었던 태석.
할머니의 손길로도 채울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그런 민우는 마지막 순간에도 혼자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건우의 말에 태석은 달리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
건우는 태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양궁…… 관두겠습니다.”
굳은 눈물을 삼키면서 건우가 힘겹게 말했다.
“잘 살고 싶지 않습니다.”
“…….”
“아니. 잘 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건우를 봤다. 결정을 내려버린 건우의 눈빛은 곧았다.
무감한 얼굴로 건우는 넘실거리는 불길을 바라봤다.
“민우야. 민우야…….”
태석이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흐느낌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
며느리만큼 허망하게 가버린 손자의 죽음 앞에 건우의 할머니도 그대로 무너졌다.
적막하던 기와집은 삽시간에 눈물에 잠겼다.
“아이고……내 새끼. 내 새끼 불쌍해서 우짜노.”
할머니는 타들어가는 민우의 물건을 바라보면서 울부짖듯 말했다.
쉬지 않고 터지는 울음소리 속에서도 건우는 울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사라져버린 눈빛으로 솟구치는 불길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평생…… 지옥에서 살게.’
건우의 슬픔은 죽을 만큼 마음을 저몄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슬픔이었다.
순식간에 밀려드는 건우의 기운은 우리를 서 있을 수도 없게 만들었다.
활활 타는 불길에 뿜는 매캐한 냄새가 우리를 짓눌렀다.
황망하게 가버린 건우를 향해 우리가 손을 내뻗은 순간이었다.
차장님.
입을 맴돌던 말과 함께 건우에게 다가선 순간.
“……!”
불길의 옆에 민우가 서 있었다. 호텔에서 봤던 것처럼 슬픈 얼굴로.
한 줌의 재로 변하는 제 소지품을 바라보던 민우가 고개를 들었다.
일순간이었다.
민우와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
우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우리는 가쁜 숨을 몰아 내쉬었다.
꿈이었다.
벌렁거리는 마음을 붙잡던 우리가 침대를 봤다.
우리 때문에 덩달아 일어난 건우와 손을 맞잡고 있었다.
잠결에 건우의 손을 잡아버렸던 모양이었다.
“무슨…….”
건우는 악몽이라도 꿨는지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우리의 상처를 건드리는 꼴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 과거를 봤을지도 몰랐다. 두렵고 고통에 사로잡혔던 과거.
건우는 말을 아끼면서 우리를 꽉 안아주었다.
“고우리씨.”
건우가 우리의 등을 다독거렸다.
우리는 단단하게 굳었던 건우의 아픔이 흐무러져 녹아버리는 것만 같았다.
순간 폭풍처럼 밀려드는 아픔에 우리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대신 아파서 큰일이네.”
보드라운 건우의 손길은 우리의 마음을 쓸어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우리가 힘겹게 말했다.
“과거의 나는 몰라도 지금 나는 괜찮습니다.”
건우가 살짝 목을 숙여 우리와 눈을 마주쳤다.
축축한 눈길로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가 코를 훌쩍거렸다.
지옥에서 살겠다는 건우의 속삭임이 귓가를 맴도는 것만 같았다.
짙게 남은 매캐한 연기 냄새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혔다.
“고우리씨가 있어서.”
“…….”
“그래서 정말, 괜찮아.”
건우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다정스럽게 말했다.
남은 아픔을 견디는 우리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죄송해요. 괜히, 주책스럽게…….”
고개를 젖히고는 울음을 삼키던 우리가 힘겹게 말했다.
우리의 손등에 굵직한 눈물이 스며들었다.
건우는 말없이 우리를 더 꽉, 안아주었다.
형체도 없는 욕심이 건우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다시 잘 살아내고 싶었다. 천국에는 갈 수 없더라도.
우리의 옆에서 고요히 살아나가고 싶었다.
죄책감이나 슬픔은 접어둔 채로.
한바탕 폭풍처럼 울던 순간이 지나기 무섭게 우리의 배가 폭풍처럼 울어댔다.
꼬르륵, 꾸르륵, 쾅쾅!
굶주린 배의 성난 소리였다.
“밥 좀 먹어야겠습니다. 배고프네.”
건우는 소리도 없는 제 배를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건우가 협탁에 있던 룸 서비스 메뉴를 우리에게 건넸다.
중요한 문서라도 탐독하듯 메뉴를 보던 우리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얼른 먹어야겠어요. 현기증 날 것 같아요.”
우리는 신중하게 메뉴를 선택했다. 건우가 능숙하게 영어로 아침을 주문했다.
곧, 정갈한 일식이 책상 위에 올려졌다.
말끔하게 세팅된 장어 덮밥 세트를 보던 우리가 젓가락을 물었다.
양념이 된 도톰한 장어와 따끈한 밥이 균형을 이뤘다.
우리는 꿈결에 녹아들었던 아픔을 털어내면서 장어 덮밥을 깔끔하게 비워냈다.
오전 내내 호텔에서 쉬던 두 사람은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향했다.
두 사람을 태운 비행기가 하늘을 높이 날았다.
한참 평온하게 비행을 하던 비행기는 곧, 고도를 낮췄다.
“손님 여러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의 현재 시각은 오후 4시 25분입니다. 안전을 위해…….”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곧, 기체를 흔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했다.
흔들리는 기체에 우리는 비로소 한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새삼 온몸으로 느꼈다.
한국의 찬바람이 우리의 뺨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짐을 찾고 주차장에 주차한 건우의 차에 올라탔다.
영종대교를 힘차게 내달리던 차는 금세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건우와 1층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 앞에서 건우가 트렁크에 있던 우리의 캐리어를 끌어내리던 순간이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근데 어떻게 둘이 같이……?”
공동현관에서 나온 미순이 옷깃을 여미면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미순은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우리가 건우의 차에서 내리는 이유도.
두 사람이 나란히 캐리어를 끌고 있는 이유도.
“것도 같이 캐리어 끌고…….”
미순은 말끝을 잡아끌었다. 수상하다는 사실을 감지한 눈빛이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날리면서도 미순은 분명, 건우를 경계하고 있었다.
우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네 인연은 멀리서 찾아야 한다고 그러더라고. 그 점집 양반이.’
‘왜.’
회사에도, 집에서도.
‘안 그러면 사고나 구설수에 괜히 휘말릴 수도 있다나.’
건우와의 연애는 비밀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걸.
무조건.
정말, 무조건!
캐리어 손잡이를 잡은 우리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미순의 의심을 단숨에 지울 수 있는 적당한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돌아가라, 머리야. 제발…… 돌아라!’
우리의 머릿속은 금세 복작거렸다.
좋은 변명거리가 당장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는 괜스레 목에 두른 스카프를 매만지면서 미순을 봤다.
미순은 예상치 못하게 등장한 건우를 열심히 스캔하고 있었다.
마치, 형사가 용의자를 보는 것처럼.
“공항에서 만났어!”
가늘어진 미순의 눈을 보던 우리가 소리치듯 말했다.
거짓말을 급히 내뱉은 바람에 우리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차장님도 출장…… 가셨거든.”
“출장?”
“응. 도…… 쿄 말고 오사카.”
우리가 급히 말을 바꿨다.
의심의 눈초리에 눌린 우리의 말은 바람 앞에 있는 촛불처럼 흔들거렸다.
우리의 등줄기를 타고 굵직한 땀방울이 미끄러졌다.
“그죠, 차장님?”
우리는 팔꿈치로 건우를 툭, 치고는 물었다.
‘동조하시죠!’
동의하라고 소리라도 치는 것처럼 우리의 눈썹이 분주하게 꿈틀거렸다.
“차장니임?”
우리의 목소리는 퍽퍽하게 올라갔다.
건우는 별다른 대꾸 없이 춤이라도 추듯 들썩거리는 우리의 눈썹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진한 미소에 담긴 우리의 속마음을 조금도 간파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불길한 기운이 우리의 등을 타고 올라왔다.
동조를 하지 않을 것만 같은 불길하고도 무서운 촉!
우리의 레이더는 소름이 끼칠 만큼 조금도 틀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도쿄로…….”
건우가 내뱉은 첫말이 도쿄로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머릿속에 있던 경고등이 발동했다.
“제가 찾아가…….”
도쿄, 제가 뭘 찾아가……!
우리가 당황한 얼굴로 건우를 봤다.
건우는 한 톨의 거짓도 없이 진실만을 내뱉을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벙실대면서 건우를 보던 우리가 천연덕스럽게 건우의 발을 꾹, 밟았다.
억!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던 건우가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가 있는 체중을 모두 실은 탓에 건우의 발은 그야말로 얼얼할 지경이었다.
“도쿄 가고 싶으셨죠. 차장님.”
우리가 재빨리 건우의 말을 가로챘다.
“차장님이 도쿄를 무지하게 좋아하는데, 하필 내가 도쿄로 가서……. 차장님은 저기 오사카로 가고.”
“아니…….”
“아쉬우셨죠. 차장님. 도쿄 바나나! 참 좋아하시는데…….”
우리가 서둘러 손에 있던 종이봉투에서 작은 박스를 꺼냈다.
샛노란 박스에는 길쭉한 바나나 그림이 박혀있었다.
12개입의 바나나 스폰지 케이크가 들어있는 박스였다.
팀원들에게 선물로 줄 생각으로 급히 샀던 선물 세트는 건우의 입막음용으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제가 사왔죠.”
짙은 미소를 날리던 우리는 눈빛만으로 똑똑히 말하고 있었다.
어서 바나나를 받고 가시라고!
“사양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우리는 채근하듯 샛노란 박스를 건우의 앞으로 꾸역꾸역 밀었다.
“차도 태워주셨는데. 것도 우연히.”
우리가 뒷말에 잔뜩 힘을 주었다.
“아…… 예.”
우리에게 떠밀려 건우는 얼결에 박스를 받았다.
“어머! 바나나 좋아하시나 보네.”
미순의 얼굴에서 조금씩 의심의 기운이 옅어졌다.
“좋아합니다.”
“그래요?”
“예…… 무척, 좋아하죠.”
박스를 들고 있던 건우의 눈길은 우리만을 향해있었다.
단 눈빛에 우리는 속으로 발만 굴러댔다. 들키지 않는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고우리…….”
다정스럽게 우리를 부르던 건우의 말이 멈췄다.
찌릿한 우리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씨…… 대리한테 부탁 좀 했습니다.”
우리는 단숨에 씨대리가 됐다.
씨대리…….
묘한 향기를 흩뿌리는 말을 우리는 가만히 곱씹었다.
이상하게 건우가 투덜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체, 씨대리는 뭔데!
“그런 거였구나. 난 또…….”
마음을 놓은 미순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우리는 버석하게 말라가는 입술에 침을 바르면서 미순의 뒷말을 기다렸다.
한순간이라도 긴장의 끈을 쉬이 놓을 수가 없었다.
“우리 때문에 일본이라도 간 줄 알고.”
“……!”
순간 우리가 바짝 얼어버렸다.
혹한 추위가 몰아치는 시베리아 벌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주책스럽죠. 나이가 들수록 참……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말도 되지 않는 상상이었다는 것처럼 미순이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건우의 단정한 목소리가 번졌다.
“사람 일은 아무도…….”
“차장님, 농담도. 날도 추운데, 들어갈까요. 피곤도 하실 텐데.”
“괜찮습니다.”
“저는 굉장히 피곤해서요.”
눈에 잔뜩 힘을 주면서 우리가 꾹, 누르듯 힘 있게 말했다.
“그럼 차장님. 쉬세요.”
“어차피 같이 올라가야 됩니다.”
“왜……?”
“바로 위층에 살아서.”
건우가 검지로 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대꾸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도 주차는…….”
“1층에서 보죠.”
미순과 건우를 당장에 분리하려던 우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건우를 기다리겠다는 미순의 말에 세 사람은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우리는 널찍한 엘리베이터가 유난히도 좁게만 느껴졌다.
우리가 슬쩍 미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하기사…… 윗집은 안 되겠네.’
건우와는 절대로 안 된다던 미순의 말이 귓가를 맴도는 것만 같았다.
왜 점집 양반은 하필 문규의 바람을 찰떡같이 맞혀서.
용하다는 역술가가 죽도록 원망스러웠다.
미순의 뒤에 서 있던 우리는 앞만 보고 있었다.
작은 의심도 사지 않겠다는 다부진 얼굴이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짙은 침묵만이 짙게 번졌다.
모두가 자신만의 생각과 고민에 사로잡힌 모양새였다.
앞을 보던 건우가 부드럽게 우리의 손목을 잡았다.
그야말로 과감하고도 앙큼한 손길이었다.
‘비밀입니다.’
흠칫 놀란 우리를 보면서 건우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큰일 나요.’
우리의 말에도 건우는 싫다는 것처럼 살짝 고개를 저었다.
미순에게 들킬까. 우리는 소심하게 손목을 좌우로 움직였다.
걱정스러움을 담은 작은 몸부림이었다.
‘싫습니다.’
곧은 건우의 눈빛과 입 모양은 단단히 말하고 있었다.
절대로 놔줄 생각이 없다고.
건우의 보드라운 손길이 손목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미순이 뒤라도 돌아보는 날에는 비밀 연애를 들킬 것이었다.
묘한 불안함이 뒤범벅돼 우리를 끝없이 흔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