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화. 우리의 앞에 나타난 그 남자
우리와 건우는 호텔로 들어섰다.
빵 냄새가 솔솔 풍기는 베이커리를 빠르게 지났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두 사람의 숨결은 고르지 않았다.
49층.
쉬지 않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만큼 두 사람의 심장도 빨라졌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두 사람은 객실 앞에 섰다.
4905호. 우리가 조심스럽게 문에 카드키를 댔다.
굳게 닫혔던 문은 힘없이 열렸다.
건우가 먼저 들어가라는 것처럼 문을 잡았다.
우리는 약간 고개를 숙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은 좀 씻을게요.”
우리가 어색하게 욕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건우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떨어졌다. 천천히 객실의 문이 닫혔다.
복도를 스몄던 빛도 사라졌다. 건우가 우리에게 바짝 다가섰다.
한껏 가까워진 거리에 우리는 그대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달뜬 숨소리만 현관을 진하게 물들였다.
건우가 살짝 몸을 숙였다.
건우의 숨소리가 우리의 귓가를 간질였다.
우리의 모든 시선은 건우의 입술로 향했다. 본능적인 눈길이었다.
금방이라도 건우의 입술을 집어삼킬 것처럼 우리는 천천히 건우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먼저 가겠습니까.”
건우의 입술을 갈구하던 우리의 걸음이 멈췄다.
건우는 우리가 들고 있던 카드키를 가져갔다.
벽에 꽂힌 카드키에 일순간 사위가 환해졌다.
‘키스가 아니라 카드키가 목적이었다니!’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건우를 봤다.
우리의 머릿속을 맴돌던 박력 넘치는 키스의 상상이 산산조각 난 현장이었다.
‘갑자기 무슨 바른 사나이십니까!’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우리는 덤덤한 말투로 최대한 재빨리 대답했다.
하지만 짙은 실망을 감추지는 못했다.
“먼저 갈게요.”
우리가 욕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알겠다는 것처럼 건우는 신발을 벗고는 슬리퍼를 신었다.
욕실의 문고리를 잡던 우리는 냉큼 건우의 손목을 잡았다.
건우의 걸음을 잡은 우리가 건우를 벽에 밀었다.
“무슨 신호입니까.”
건우의 얼굴에는 여유가 돌았다.
해볼 수 있으면 해보라는 표정이었다.
은근히 번진 건우의 미소는 우리의 속에서 들끓는 정복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얄밉다는 신호요.”
“뭐가 얄밉다는…….”
우리가 단숨에 건우의 말을 삼켜버렸다.
원초적인 본능에 충실한 결과물이었다.
입술이 스치면서 묘한 온기를 뿜어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작은 숨이 넘나들었다.
건우의 손목을 잡았던 우리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두 사람의 향기가 서로의 입술에 진하게 녹아들기 직전.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잘은 숨은 가까운 두 사람 사이를 휘돌았다.
유혹적인 미소가 건우의 입가에 번졌다.
건우는 한 손으로 부드럽게 우리의 머리를 감쌌다.
“바라야겠네.”
건우의 목소리가 천천히 흘렀다.
건우는 살짝 우리의 뒷머리를 눌러 제 쪽으로 당겼다.
“미워하지 말라고.”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 뜨거운 숨결이 건조했던 입술을 적셨다.
눅진한 향기와 말랑한 감촉이 흐무러졌다.
맹랑한 건우의 습격은 금방이라도 우리를 함락시킬 것만 같았다.
‘맹랑한 맹수였다가 바른 생활 사나이였다가!’
우리가 뒤로 몸을 내뺐다.
“당장 갔다 올게요.”
우리는 엄지로 욕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장에 만반의 준비를 마칠 생각이었다.
“기다리죠.”
건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우리는 날름 욕실로 들어갔다.
양치질을 하는 우리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힘껏 칫솔을 잡고 양치질을 하던 우리는 수납장에 있던 가운을 꺼냈다.
적당한 온도의 물로 샤워를 끝내고 물기를 대강 닦아냈다.
젖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가운을 입었다.
포근한 가운의 감촉이 온몸을 타고 전해졌다.
급히 슬리퍼를 신고 욕실을 나온 우리의 목선을 따라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남은 업무를 처리하던 건우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차장님. 씻으시면 될 것 같아요.”
우리가 열린 욕실 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건우의 시선은 여전히 우리에게 머물렀다.
솟구치는 건우의 욕망은 한 눈에 보일 만큼 도드라졌다.
건우를 유지시켜주던 평온함은 깨진 것처럼 보였다.
건우는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그래야겠습니다.”
건우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보드라운 목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건우의 손가락에 닿았다.
물방울은 열기를 품은 건우의 손가락에 깊이 스며들었다.
“잘 기다리고 있어요.”
건우의 목소리가 허공을 적셨다.
건우는 하얀 가운에 있던 허리끈을 잡았다.
손만 까딱하면 금세 풀어질 것처럼 보였다.
“금방 올 테니까.”
건우는 허리끈을 단단히 매어주었다. 흔들리는 제 마음을 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의 마음은 미세하게 떨렸다. 떨렸다.
처음이 아닌데.
처음처럼, 떨렸다.
“네. 저는 쉬고 있을게요.”
어색한 미소를 날리면서 우리는 냉큼 책상에 앉았다.
책상에 있던 원고까지 들고는 다른 곳에 신경을 집중한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우리의 온 신경 세포는 건우의 발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물소리가 났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우리가 욕실 쪽을 힐끔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바닥을 때리는 물소리도 평소와 다르게만 느껴졌다.
안도의 숨을 뱉던 우리가 책상에 있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타는 속을 잠재우려는 몸부림이었다.
“고우리. 진정 좀 하자고.”
우리는 제 가슴팍을 쓸어내리면서 조용히 말했다.
물병을 내려놓던 우리의 눈에 원고가 들어왔다.
[여자주인공의 떨리는 마음이 좀 더 드러나면 좋을 듯]
꼼꼼하게 적힌 건우의 피드백을 살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처음으로 서로를 갈망하는 장면이었다.
떨리는 여자주인공의 속마음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볼펜을 입술에 대고 있던 우리는 천천히 글을 적어 내려갔다.
[그가 그녀의 목덜미를 삼켰다. 아무도 없는 진공상태의 우주. 그녀는 그 광활한 우주를 걷는 기분이었다.]
글자를 적는 우리의 손길이 빨라졌다.
[들끓는 욕망은 그를 갈구하고 있었다. 야무진 그녀의 손끝은 그의 가슴팍을 쓸어내렸다.]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남자주인공의 얼굴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얼굴은 건우와 꼭 닮았다.
[삼키고 싶다. 귓불에 남은 당신의 잔향을. 당신의 숨소리를. 당신의 숨결을 담아내고 싶다. ……내 안에.]
쉬지 않고 글을 쓰던 우리의 귓가에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리에 수건을 두른 건우의 모습이 보였다.
한껏 달아오른 마음을 괴롭히는 모습이었다.
우리의 손에서 떨어진 볼펜이 책상을 굴렀다.
“뭐하고 있었습니까.”
탄탄한 상반신을 자랑하던 건우는 머리에 있는 물기를 털어내면서 물었다.
“소설 수정 좀…….”
우리는 말끝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을 삼키고 싶던 여자주인공처럼 건우를 갈망했다.
책상을 구르던 볼펜을 잡아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잡을 길은 없었다.
“워낙에 자세하게 피드백을 남겨주셔서……!”
말을 잇던 우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일어났다.
너른 창에 비친 건우의 모습 뒤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두컴컴한 구석에 흐릿하게 서 있는…….
‘강민우?’
흠칫 놀란 우리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소리를 내지를 수도 없었다. 우리의 아랫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왜 그럽니까.”
건우의 물음에도 우리는 펄떡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민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민우가 서 있던 곳으로.
“……!”
민우가 서 있던 곳에는 닫힌 옷장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면서 책상을 잡았다.
심장은 여전히 벌렁거렸고 놀란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굳은 침을 삼키면서 너른 창을 봤다.
민우는 없었다.
애초에 객실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고우리씨.”
“아…… 네. 귀신이라도 잘못 본 줄 알고…….”
우리는 대강 어두운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제 입으로 민우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괜히 건우의 마음을 심란하게 헤집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놀랐나보네.”
건우는 놀란 얼굴로 서 있는 우리를 품에 안았다.
등을 다독거리는 손길이 놀란 우리의 마음을 달랬다.
벌렁거리는 마음을 추스르면서 우리는 민우가 있던 곳을 가만히 바라봤다.
‘잘못 봤을 거야. 귀신은 무슨. 절대 아니야.’
우리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별일이 아니라고 넘길 참이었다.
그저 피곤해서 잘못 본 거라고.
“귀신은 걱정 말아요.”
“…….”
“혹시라도 보이면 내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건우가 농담조로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가벼운 농담에도 웃을 수가 없었다.
‘그 귀신…… 민우예요.’
우리는 목구멍을 간질이던 말을 깊게 삼켰다.
건우의 부드러운 다독임에도 우리는 민우의 얼굴을 결코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걱정스러운 눈길……. 분명, 속을 태우는 표정이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무척 슬퍼보였다.
민우의 얼굴이 자꾸만 우리의 마음에 남았다.
“많이 놀랐습니까.”
“괜찮아졌어요. 그냥 착각을 좀 해서요.”
“옷장 없앨까요.”
“절대 안 되죠. 기물 파손이라도 하면 보증금으로도 감당 못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일본에 계속 머무르죠. 열심히 일하면서.”
“호텔에서 거부할 걸요.”
“대환영할 것 같은데.”
“그리고 저는 한국이 좋습니다. 차장…….”
건우가 대번에 우리의 입술을 삼켰다.
“차장님이라는 말을 좀 바꾸죠.”
맞닿은 입술을 뗀 건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차장님을…….”
건우는 우리의 입술 사이로 흐르는 차장님이라는 말을 모조리 집어삼킬 기세였다.
전보다 깊게 파고드는 건우의 향기가 우리를 짙게 잠식해갔다.
“아니.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한숨을 돌린 우리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어쨌든 차장님은 싫습니다.”
“그럼 뭐. 강씨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죠.”
“진심이세요?”
진심이라는 것처럼 건우가 빙글 미소를 품었다.
“아니. 호칭은 상관없는데요. 습관이 정말 무서워요. 제가 잘못해서 업무를 보는데 차장님한테 호칭을 부르면 그땐 답이 없어요.”
건우는 다시 한 번 우리를 탐할 것처럼 바짝 다가섰다.
우리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처럼 목을 뒤로 빼고는 건우를 빤히 쳐다봤다.
“저희 연애. 회사에서는 비밀로 하고 싶습니다.”
“납득할 만한 이유는.”
“괜한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요.”
우리가 고집스럽게 제 의견을 내뱉었다.
모두 우리가 5년 동안 사귄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건우와 사귄다는 말이 돌면.
분명 온갖 말이 나돌 것이었다.
콩 심은데 팥이 나고 팥 심은데 콩이 날 때도 있었다.
세상은 진실보다 재미와 자극적인 말이 진실처럼 둔갑할 때가 많았다.
더욱이 눈앞을 도는 얄궂은 우팀장의 얼굴이 우리의 시름을 깊게 만들었다.
우팀장은 대단한 건수라도 건진 것처럼 아무 말이나 흘리고 다닐 것이었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아뇨. 분명히 있을 거예요. 다들 차장님한테 지대하게 관심이 많은 상태니까요.”
“왜죠.”
우리의 말을 건우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HJ그룹 후계자라는 소리가 있어서.”
우리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정체를 들킨 것을 건우가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자코 우리의 말을 듣던 건우가 바람 빠지듯 웃었다.
“다들 잘못 짚었네.”
“네?”
“아드님을 찾는 것보다는 따님을 찾는 게 훨씬 빠를 것 같은데.”
건우의 말을 곱씹던 우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딸이라면 설마…… 강선영씨!
“실제상황인가요. 차장님.”
“예.”
신입의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된 우리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우리 연애는 우선은 비밀로 해보죠.”
“…….”
“내가 얼마나 잘 숨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건우는 그다지 자신이 없다는 말투였다.
“의외로 약해서.”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던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건우의 뜨거운 숨소리가 우리를 얼음처럼 녹아내렸다.
“……고우리 참기는.”
건우는 우리의 입술을 머금었다.
단숨에 몰아치는 건우의 체취에 우리가 건우의 목에 팔을 둘렀다.
가뿐히 우리를 들어 올린 건우가 침대로 걸어갔다.
폭신한 침대가 우리를 감쌌다. 우리는 단단한 건우의 가슴팍을 매만졌다.
‘삼키고 싶다. 당신의 숨소리를.’
우리가 건우를 잡아당겼다.
‘당신의 숨결을 담아내고 싶다.’
종이에 단단하게 썼던 글이 우리의 귓가를 맴도는 것만 같았다.
건우를 담아내고 싶었다.
‘……내 안에.’
뱃속이 저릿해질 만큼 깊숙이.
우리의 도발적인 눈빛이 건우를 흔들었다.
쉬지 않고 건우의 몸을 미끄러지던 우리의 손이 멈췄다.
“우리 비밀 연애에 조건 하나 있습니다.”
“조건이요? 잘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조건 없는 제안 수락은 없죠.”
“그럼 조건은 들어는 볼게요.”
무차별적으로 밀려온 건우의 말에도 우리는 꿈쩍하지 않았다.
“차장, 팀장. 그 말은 둘이 있을 때는 금지하겠습니다.”
“그럼 뭐라고 부를지…….”
“좋을 대로.”
우리를 바라보는 건우의 눈빛에는 기대가 녹아있었다.
우리가 이름만 불러줘도 건우는 그저 좋을 것만 같았다.
침대를 짚은 건우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건우의 팔에 퍼런 핏줄이 불끈 솟았다. 건우는 우리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차차 생각해볼게요. 지금은 차장님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호칭이 없어서.”
“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리의 긍정적인 대답만으로도 건우의 얼굴에는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호칭을 궁리하는 우리의 눈은 좌우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늘 더 예쁘네.’
건우는 우리에게 홀딱 빠진 얼굴이었다.
건우가 부드럽게 우리의 입술을 삼켰다.
솟아오른 열기와 희미한 바디클렌저의 향기가 두 사람의 코끝을 스쳤다.
건우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여름의 햇발을 통째로 삼킨 기분이었다.
“아…….”
건우가 우리의 윗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득해지는 숨결만큼 우리의 입술도 붉어졌다.
“잠깐. 잠깐만요.”
우리가 건우의 손목을 낚아채듯 잡았다.
몸을 달구던 감각들이 일제히 멈췄다.
“호칭이라도 생각났습니까.”
“그건 아직.”
“그럼 계속 하겠습니다.”
건우의 목소리는 여유롭기만 했다.
작은 손길 하나로도 우리를 쥐락펴락했다.
우리는 아찔해지는 정신을 잡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저릿저릿한 전율은 여운처럼 우리를 휘돌았다.
“코끼리.”
진심 섞인 말이 우리의 입에서 마구잡이로 뛰쳐나왔다.
“코끼리?”
“아…… 코끼리는 비밀 암호로나 어울리는 것 같고……. 강군은 이상하겠죠? 강씨도 이상하고.”
우리가 연달아 중얼거렸다.
스스로도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강건우님.”
건우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건우씨. 건우씨가 제일 나은 것 같아요.”
“그럼.”
건우가 우리에게 바투 다가섰다.
“그걸로 하죠.”
“네…… 건우씨.”
달게 솟아난 말을 건우는 단숨에 삼켰다.
우리의 향기가 목울대를 타고 흘러들었다.
건우의 숨결은 벌어진 입술을 사이로 무르녹았다.
건우의 목젖은 아래로 내려갔다가 천천히 올라왔다.
온몸을 휘감는 건우의 촉촉한 향기에 우리의 생각은 멈춰버렸다.
“고우리씨.”
건우의 말이 우리의 귓불을 간질였다.
달아오른 열기에 두 사람의 두 볼은 빨개졌다.
가쁜 숨소리가 조용한 객실을 맴돌았다.
건우의 열기는 우리를 가득 채웠다.
“괜찮습니까.”
우리는 조금도 괜찮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무심하지만 묘하게 매혹적인 건우의 눈빛에 우리는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네. 괜찮아요.”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용감한 대답이 뛰쳐나왔다.
“끝까지 그러길 바라죠.”
두 사람의 숨소리가 허공에 켜켜이 쌓여갔다.
“……우리야.”
물밀듯 밀려드는 아찔한 향기에 우리는 그대로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를 걷는 기분이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내뱉던 숨이 모두 맞닿은 찰나의 순간.
건우의 향기가 짙게 번져나갔다.
건우의 심장소리가 우리의 귓가를 적셨다.
우리는 건우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뜨거운 숨결이 건우에게 녹아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서로에게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딱, 그만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