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화. 무늬 없는 손수건의 비밀
애달픈 건우의 눈빛이 우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처럼 다부지게 입을 닫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 말 안 해줄 겁니까.”
“네. 비밀이에요.”
삐걱거리고 허우적대는 춤사위에 우리는 별명 하나를 얻었다.
갓 태어난 망아지.
버둥거리는 망아지라니!
우리가 힘껏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죽어도 그 별명만큼은 말할 수 없다는 다부진 의지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럼 어쩔 수 없네.”
건우의 얼굴에 색정적인 미소가 돌았다.
“고우리 찬스를 밤에 쓸 수밖에는.”
건우의 말에 우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별을 끌어당기는 마력의 블랙홀처럼 건우의 눈동자가 우리를 강하게 빨아들였다.
양쪽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부드럽게 두 사람 사이로 떨어졌다.
“아니. 차장님. 밤은 무슨 밤에……. 그리고 찬스는 드린다는 말도 안 했는데요!”
말라버린 입술에 침을 바른 우리가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뭐. 크게 영향은 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고우리씨가 말했잖습니까.”
건우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밤은 꽤 길다고.”
유혹적인 말이 우리의 온 신경을 뒤흔들었다.
우리는 전기에라도 오른 것처럼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가죠.”
건우가 얼어붙은 우리의 손을 부드럽게 당겼다.
종종거리면서 건우를 따르던 우리는 건우의 등을 바라봤다.
태평양처럼 넓은 건우의 등을 보던 우리가 슬쩍 엄지를 치켜들었다.
‘진짜 식지도 않는 코끼리였네.’
소설 속에만 줄곧 등장했던 남자주인공을 만난 기분이었다.
길게 해가 늘어지는 낮을 불태운 것도 부족해서 밤까지 불태우는 정열의 주인공!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박수라도 쳤을지 몰랐다.
건우가 우리에게 보폭을 맞췄다.
두 사람은 나란히 벚꽃이 핀 길을 걸었다.
살랑대던 바람이 벚꽃을 톡, 건드렸다.
작은 가로등 불빛을 받고 떨어지는 연분홍색의 벚꽃이 스카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마지막 벚꽃이었다.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세 번째 벚꽃.
***
밤공기는 찼다.
한참 찬란한 불빛이 수놓은 거리를 걷던 우리의 핸드폰이 울렸다.
미순에게서 날아든 메시지였다.
-딸. 미안한데 손수건 몇 장 좀 사다줄 수 있을까.
-거기 손수건이 싸다고 하니까 다들 사다 달라고 부탁을 좀 해서.
연달아 날아온 미순의 메시지를 우리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손수건 몇 장을 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급히 손수건을 사고 느긋하게 야경을 즐길 생각이었다.
흐드러진 벚꽃 향기를 털어내면서 두 사람은 백화점으로 들어섰다.
길거리를 물들였던 어둑하고 흐린 빛은 순식간에 밝아졌다.
강한 불빛을 내뿜는 백화점의 빛에 우리는 손에 있던 스카프 매듭을 풀었다.
“왜 풉니까.”
건우가 우리를 보고는 물었다.
“목에 흔적은 숨겨야 할 것 같아서요.”
우리는 살짝 고개를 틀면서 말했다. 목덜미에 남겨진 흔적이 또렷하게 보였다.
풀어진 스카프가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맞잡았던 두 사람의 손도 풀어졌다.
건우는 바닥에 떨어진 스카프를 털어내고는 우리의 목에 둘러주었다.
“충분히 가려질 겁니다.”
스카프를 둘러주는 건우의 손가락이 우리의 턱을 부드럽게 스쳤다.
얇은 살결을 타고 건우의 향기가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죄송해요. 스카이트리 갔다가 오면 백화점이 문을 닫을 것 같아서.”
우리는 말을 돌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살결을 스치던 건우의 감촉이 사라졌다.
“괜찮습니다.”
“손수건만 얼른 살게요.”
“천천히 골라도 됩니다.”
건우는 흐트러진 우리의 스카프를 다시 예쁘게 매주면서 말했다.
리본으로 매듭을 지은 스카프는 전보다 더 스타일 있게 보였다.
“나도 막 손수건이 필요해졌던 참이라.”
건우가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건우는 손수건과 스카프가 즐비한 매장으로 들어섰다.
‘떨려 죽을 뻔했네.’
스카프를 매만지던 우리도 건우의 뒤를 따랐다.
갖가지 브랜드의 손수건과 스카프는 정갈하게 정리돼있었다.
우리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손수건을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무난한 스타일이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았다.
“차장님.”
고심 끝에 손수건 몇 장을 고른 우리가 건우를 불렀다.
“예.”
건우는 한 움큼 스카프를 집어 들고는 우리를 쳐다봤다.
매장에 있는 모든 스카프를 전부 쓸어 담을 모양새였다.
“선물 하실 곳이…… 진짜 많으신가 봐요.”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말끝을 흐렸다.
설마, 싶었다.
정말…… 설마!
“스킨십 스킬입니다.”
건우는 진지한 얼굴로 덤덤히 대답했다.
설마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손 한 번 잡겠다고 스카프를 열 장 넘게 사다니.’
누구도 양손 가득 스카프를 쥐고 있는 건우의 스킨십 욕망을 끌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진짜 사실 거예요?”
“예. 가짜로 사는 것도 있습니까.”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럼 가실까요.”
우리가 안쪽에 있는 계산대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나란히 계산대로 걸어갔다.
건우가 골랐던 스카프가 차곡차곡 접혔다.
꼭, 산을 이룰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양이었다.
종이봉투가 불룩해질 만큼 가득 스카프를 산 건우가 우리의 옆에 섰다.
두 사람은 정갈하게 포장되는 손수건을 바라봤다.
작은 풀어짐도 없이 말끔하게 개어지는 손수건에 우리는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계산을 끝내고 우리는 잘 포장된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짤막하게 일본어로 인사를 하고는 매장을 나섰다.
조용한 매장을 나온 우리가 손수건 하나를 건우에게 내밀었다.
“나 주는 겁니까.”
건우가 잔뜩 감동한 얼굴로 물었다.
“네. 작은 선물이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그래도 쉽지 않잖아요. 갑자기 날아오기.”
우리가 채근하듯 건우에게 손수건을 바짝 들이밀었다.
감동에 취한 건우가 손수건을 받았다.
작은 포장지에서 나온 손수건은 깔끔한 남색의 손수건이었다.
손수건을 든 건우의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물들었다.
‘직접 골랐다니.’
우리가 선물했다는 것에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잘 쓰겠습니다.”
건우는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절대로 손수건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진열장에 가지런히 두고 지켜본다면 모를까.
“맘에 드세요?”
“마음에 듭니다.”
손수건을 보던 건우의 미소가 깊어졌다.
“손수건 선물은 처음입니다.”
“정말요?”
“예전에 동생한테 받았던 이후로는.”
건우는 손수건을 가만히 바라봤다.
민우에게 처음으로 받았던 선물이었다.
무늬 하나 없었던 단조로운 손수건.
그리고 그 손수건은 민우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이기도 했다.
건우의 입술 사이로 조용한 날숨이 흘렀다.
민우가 선물한 손수건을 건우는 합동장례식장에서 훌쩍거리던 아이에게 툭, 건넸다.
민우를 사지로 몰았다는 죄책감과 숨을 쉬고 싶다는 삶에 대한 욕망이 건우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죽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로 살고 싶었다.
‘비만 내렸어도…… 다 꺼졌을 텐데. 비가 안 와서. 비 때문에…….’
건우는 힘차게 코를 풀던 그 아이가 모든 것을 가져가길 바랐었다.
손수건에 담긴 민우의 전부를.
그래서 덤덤하게 손수건을 던지고 돌아설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아픔과 슬픔과 기억을 모조리 다 가져갔을 테니까.
“그럼 이만 가죠. 늦겠습니다.”
“아…… 네.”
“갑시다.”
건우는 무거운 마음을 털어내면서 손수건을 제 봉투에 담았다.
건우의 얼굴에는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가 일순 사라졌다.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뒤범벅돼 건우를 뒤덮었기 때문이었다.
그 애 말대로 모두 비 때문이었다.
비만 왔어도 달라졌을 것이다.
전부, 비 때문이다.
***
높게 솟은 스카이트리는 밝게 빛났다.
도쿄에서 가장 높다는 타워의 명성에 걸맞게 노란 불빛으로 물든 타워는 구름을 뚫을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워로 올라갔다.
350m. 전망대에 끝에 반짝거리는 야경이 펼쳐졌다.
우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도쿄의 야경이 한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도쿄의 밤은 별이라도 뿌려진 것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도쿄를 가로지르는 강도 보였고 멀리서 힘차게 빛을 쏟아내는 도쿄타워도 보였다.
하늘보다 빛나는 지상이었다.
“야경 되게 예쁘네요.”
우리가 넋을 잃고 야경을 보면서 말했다.
연달아 반짝거리는 야경을 카메라에 담던 우리는 아이처럼 들떠있었다.
난간을 잡은 우리가 앞으로 몸을 뺐다.
야경에 홀딱 빠져버렸다.
“예쁩니다.”
건우는 우리를 보면서 대답했다.
찬란히 빛나는 야경도 건우의 시선을 뺏을 수는 없을 것처럼 보였다.
“소문대로 진짜 끝내주네요.”
“괜찮습니까.”
“네. 되게 좋아요. 꼭 와보고 싶었거든요.”
“더 가보고 싶은 곳은 없습니까.”
건우의 말에 우리는 짐짓 고민에 빠졌다.
가보지 못한 관광지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도쿄타워도 가보고 싶어요. 좋다고만 들었거든요.”
“거기 말곤.”
“음…… 대관람차도 타보고 싶어요. 아! 맞다. 수플레 케이크도 되게 맛있다고 하던데.”
우리가 두 손을 부딪치면서 말했다.
쉴 새 없이 가보고 싶은 곳이 터져 나왔다.
하나, 둘, 셋.
가보고 싶은 곳을 말하면서 손가락을 접던 우리의 손길도 덩달아 빨라졌다.
가보고 싶은 곳은 금세 열 개를 돌파했다.
“의외네요.”
우리의 말을 머릿속에 새기던 건우가 말했다.
“뭐가요?”
“웬만한 곳은 전부 가봤을 줄 알았습니다.”
“거의 못 갔어요. 도쿄는 매번 출장으로 오니까 계속 미루게 되더라고요. 미팅 끝나면 파김치가 돼서 호텔에만 있게 되고.”
우리는 늘 다음을 기약했다.
유명 관광지는 다음에도 갈 기회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덜렁 호텔에 누워 있다가 한국에 돌아가는 날이면 매번 후회했다.
도쿄타워에서 야경은 한 번 보고 갈걸.
유명한 케이크라도 먹어 볼걸.
그런, 바보 같고 반복적인 후회.
“잘됐네.”
건우의 낮은 목소리가 번졌다.
“전부 갑시다.”
“…….”
“나하고. 하나씩.”
우리는 마음에 짙게 남았던 후회가 흔적도 없이 옅어지는 것만 같았다.
“잘 기억하고 있을게요.”
“나도 잘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호텔에서 잠만 잤던 순간이 우리는 다행스럽게만 느껴졌다.
도쿄타워, 대관람차, 케이크…….
머릿속을 헤집었던 그 모든 것을 건우와 함께하게 될 것이었다.
모두 처음으로.
“저희 사진이라도 하나 찍을까요. 첫 관광지 기념으로.”
우리가 핸드폰을 내밀면서 말했다.
“사진만큼 남는 것도 없거든요. 다 기록해두고 싶기도 하고.”
“좋습니다.”
건우가 커다란 손으로 우리의 어깨를 안았다.
건우의 품에 반쯤 안긴 우리가 손을 내뻗었다.
야경과 얼굴을 담으려는 힘겨운 사투였다.
다정스러우면서도 묘하게 경직된 두 사람의 첫 사진이 깨진 핸드폰 액정에 담겼다.
딱딱한 사진에 우리는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엄지와 검지를 살짝 틀어 손가락 하트를 날려봤다.
첫 사진의 어색함을 지우려는 나름의 발버둥이었다.
카메라를 보던 건우가 고개를 돌리고는 우리를 쳐다봤다.
“그건 뭡니까.”
건우는 우리의 손을 보면서 물었다.
손가락 하트를 조금도 알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그거라면.”
“손가락 말입니다.”
“설마. 손가락 하트를 모르시는 건 아니죠? 농담이신 거죠?”
우리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연달아 물었다.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손가락 하트를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니!
우리는 건우가 정말 오래된 소설에서 뛰쳐나온 남자주인공일 수도 모르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이 아닌 거 아니야?’
우리가 손가락 하트로 건우의 얼굴을 콕, 찔렀다.
야무진 손끝을 타고 탱탱한 살결이 느껴졌다.
사람은 맞네.
“손가락 하트……. 그러고 보니까 하트 같기도 하네.”
건우는 대단한 삶의 진리라도 깨달은 것처럼 진지한 얼굴이었다.
“정말 처음 보세요?”
“가끔 보기는 했는데 하트인 줄은 몰랐습니다.”
“하트가 아니라면 대체 뭐라고 생각을…….”
“소망 표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건우의 당돌한 대답에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설명을 덧붙이라는 채근의 눈빛까지 쏘아대고 있었다.
“돈 잘 벌게 해달라고.”
건우의 말에 우리는 제 손가락을 봤다.
엄지와 검지가 붙은 모양새가 꼭 지폐를 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돈 잘 벌게 해달라니!’
우리는 건우의 상상력에 박수라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건우는 진지한 얼굴로 손가락 하트를 만드는데 열을 올렸다.
“마음에 들기는 하네.”
건우는 손가락 하트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뒤늦게 손가락 하트의 매력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아…… 왜 그렇게, 진지하신데요.
“그럼 찍을게요.”
우리는 진지한 건우의 얼굴에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면서 촬영 버튼을 눌렀다.
타이머가 돌았다.
3, 2, 1.
손가락 하트를 만든 두 사람의 모습이 핸드폰에 담겼다.
한참 찍은 사진을 살펴보던 우리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차장님. 사진에 전부 하트가…….”
그대로 말문도 막혀버렸다.
온갖 다양한 자세 속에서도 건우의 손가락 하트 사랑은 멈출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중독됐나 봅니다.”
진지한 대답에 우리는 건우를 말릴 수 없다는 것처럼 바람 빠지듯 웃었다.
하늘을 산책하듯 전망대를 돌던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스카이트리와 연결된 쇼핑센터를 걷던 우리의 걸음이 느려졌다.
녹은 설탕에 기다란 붓으로 채색 작업을 하는 장인의 작업실이 우리의 걸음을 잡았다.
“와……. 진짜 신기하네.”
장인의 섬세한 붓놀림을 보던 우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차장님. 이거 전부 설탕이래요.”
“먹는 설탕 말입니까.”
“네. 근데 먹기도 아깝겠어요. 이렇게 예쁜데.”
우리는 진열대에 전시된 설탕 공예품을 보면서 감탄하듯 말했다.
설탕으로 만들어진 형형색색의 금붕어부터 꽃까지 우리를 달콤하게 유혹했다.
우리는 넋을 잃고 천천히 진열대에 있는 공예품을 바라봤다.
“고우리씨.”
건우의 말에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찰칵.
짧은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우리가 허겁지겁 건우에게 달려갔다.
“못생기게 나왔죠.”
“예쁘게 잘 나왔습니다.”
“거짓말. 후면 카메라가 얼마나 별론데요. 이래서 다른 사람이 찍어주는 사진은…… 저한테 보내주세요.”
다급하게 사진을 살피던 우리의 태도가 일순간 변했다.
“간만에 차장님 덕분에 인생 사진 하나 건졌네요.”
순간적으로 찍힌 사진치고는 제법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온탕과 냉탕을 순식간에 오가는 우리의 반응에 건우의 입가에 빙글 미소가 돌았다.
‘가만히 놔둘 수가 있어야지.’
건우는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낮을 잠식했던 열망이 불끈 솟았다.
우리의 향기를 삼키지 못하면 그대로 말라버릴 것만 같았다.
연분홍색 벚꽃 모양의 설탕 공예품을 살피는 우리의 모습에도 건우의 마음은 애달았다.
불덩이를 삼킨 기분이었다.
쿵쾅거리는 마음은 자꾸만 탐욕적이게 변해갔다.
열기를 품은 침이 목울대를 뜨겁게 불태웠다.
건우는 우리를 품에 안고 싶었다.
우리의 향으로 온전히 물들 때까지.
“조명 때문인가. 사진이 잘 나오네.”
노랗고 강렬한 조명에 감탄하면서 제 사진을 찍던 우리가 건우를 봤다.
얼굴이 뚫어질 것처럼 건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고우리 찬스 좀 써야겠습니다.”
건우는 그 물음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냉큼 대답했다.
“있지도 않은 찬스를 어디서 자꾸 끌어다가 쓰시겠다고…….”
건우가 우리에게 다가섰다.
“더는 못 참겠습니다.”
건우의 숨결이 우리의 귓가를 스쳤다.
순간 우리는 목덜미에 군데군데 붉게 물든 흔적이 열꽃처럼 타는 것만 같았다.
‘아…… 나도 못 참겠네!’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분명 쓰신 거예요. 찬스.”
“물론입니다.”
건우의 나직한 목소리는 우리의 신경을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맹랑한 맹수의 도발에 우리가 백기를 들었다.
묘하게 끈적끈적한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두 사람의 눈빛은 가게에 있는 설탕을 모두 녹아내리게 할 것처럼 뜨거웠다.
“당이 좀 필요할 겁니다.”
건우는 벚꽃 모양의 설탕 공예품을 집어 들고는 말했다.
“오늘 밤을 견디려면.”
오묘한 건우의 말에 우리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설탕 공예품을 계산하는 건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우리가 천천히 침을 삼켰다.
K.O.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요망하고도 어마무시한 맹수 코끼리에게 사로잡혀 버린 것이었다. 건우가 계산을 끝냈다.
“저희 가요.”
“갑시다.”
누가 먼저라도 할 것도 없이 호텔로 향하는 두 사람의 걸음은 빨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