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27화 (27/102)

제 27화.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없는 이유

당황한 우리는 그대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럼 계속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책상에 앉은 건우가 여유로운 얼굴로 태블릿 PC를 꺼냈다.

도쿄로 곧장 날아오느라 남은 일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매출과 화보 콘셉트를 확인하면서 건우는 외출 준비를 하는 우리를 기다렸다.

외출 준비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말린 장미 색깔의 립스틱을 바른 우리가 가방을 들었다.

건우는 우리가 가깝게 다가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황주임이 보내온 콘셉트에 수십 개의 피드백을 붙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건우의 어깨 위로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노출은 줄이고 활동적인 느낌의 의상은 어떨까요.”

레퍼런스를 살피던 우리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것처럼.”

우리는 제 핸드폰을 내밀었다.

화보 콘셉트를 위해 좋은 사진이 있으면 습관처럼 저장했던 우리였다.

광고 화보, 잡지 화보, 드라마 속 장면.

수천 장의 사진은 분위기에 따라서 깔끔하게 분류돼있었다.

우리가 보여주는 사진은 청량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굳이 음료 광고에 노출이 필요한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요. 전반적으로는 능동적이고 활동적인 느낌이 잘 살았으면 하고요.”

제 생각을 설명하는 우리의 눈빛은 달라졌다. 작은 미소도 없이 진지한 얼굴이었다.

건우는 우리의 말에 동의한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노출로 모델의 몸매를 강조하는 통에 신제품의 이미지가 제대로 잡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품 색감은 살리되 기본 이미지를 살릴 것. 능동, 적극적, 활동적]

건우는 우리의 말을 추가 피드백으로 덧붙였다.

건우가 흘러내리는 안경을 올리고는 의상 레퍼런스들을 살폈다.

“루즈한 노란 크롭티는 어떨까요.”

우리가 열심히 크롭티 사진을 찾으면서 말했다.

“데님만 입어도 이렇게 스타일리시하게 나올 것 같아서요.”

우리는 유명 인터넷 방송 채널에서 BJ가 입었던 노란색 크롭티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저희 제품이 가지고 있는 상큼한 느낌도 살릴 수……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예.”

건우가 태블릿 PC를 껐다.

“일을 좀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건우는 우리의 손에 있던 핸드폰을 가져갔다.

“계속 일만 하고 있을 것 같아서.”

화들짝 놀란 우리는 뒤로 손을 뺐다.

건우는 우리의 핸드폰과 태블릿 PC를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전부 없애죠.”

“…….”

“방해물은.”

속삭이듯 말하는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의 입술에 녹아들었다.

“갑시다.”

우리는 건우가 내민 손을 바라봤다.

건우의 손을 잡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올랐다.

건우와 깍지를 낀 채로 몽글몽글 솟는 설렘을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건우의 손을 잡는 순간.

펑펑 눈물을 쏟아낼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제 과거가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술에 취한 아버지가 자신을 주기적으로 폭행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우리의 절친했던 친구처럼.

‘내가 도와줄게. 민정아.’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민정아.’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고우리. 너 진짜…… 재수 없어.’

친구와 뒤틀린 이후로 우리는 섣부른 아는 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누군가의 삶의 한 조각만을 경험하고는 모든 삶을 이해라도 한 것처럼.

정말, 주제넘게.

우리가 입술 안쪽의 살을 질끈 깨물었다.

허공을 맴돌던 우리의 손이 꼼지락거렸다.

아쉬운 마음을 다잡으면서 우리는 손을 말아 쥐었다.

“아…… 배고프다. 그죠.”

우리가 고픈 배를 쓸어내리면서 급히 화제를 바꿨다.

우리의 말에도 건우의 시선은 우리의 손에 머물렀다.

분명, 피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저녁은 규카츠 어떠세요.”

우리가 카드키를 챙기면서 물었다.

“맛있는 집 하나 알거든요.”

뒷말을 잇는 우리의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

우리는 카드키를 꼭, 잡은 채로 건우를 바라봤다.

자신이 손을 피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건우를 봤다.

“차장님?”

“예. 그쪽으로 가죠.”

건우는 우리가 손을 피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잠깐 착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정한 분위기를 얼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바깥 공기 쐬는 것 같아요.”

우리가 방을 나서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적당히 기분 좋은 향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신주쿠의 밤거리는 반짝거렸다.

간판들은 휘황찬란하게 빛을 내뿜었다.

거대한 건물로 휘감긴 도시의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두 사람은 길게 내뻗은 횡단보도를 건넜다.

좁은 인도에 두 사람은 바짝 붙었다.

건우의 눈치를 살피던 우리가 두 손을 맞잡았다.

잘못 손이라도 스칠까. 전전긍긍한 얼굴이었다.

건우는 빈틈없이 깍지를 끼고 있는 우리를 바라봤다.

“규카츠 좋아하세요?”

건우의 시선에 우리가 재빨리 물었다.

“고우리씨는 좋아합니까.”

“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맛있더라고요. 거기에 맥주까지 곁들이면 완전 지상낙원이죠.”

우리가 엄지를 치켜들면서 대답했다.

“규카츠, 저도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의 얼굴에 설핏 미소가 스쳤다.

건우는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좋아하게 될 것만 같았다.

“진심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색깔, 계절, 향기, 입맛.

전부, 사랑하게 됐다.

“진짜 반하실 거예요. 엄청 맛있거든요.”

우리는 규카츠 가게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잘 매어진 우리의 스카프가 잔잔한 바람에 약간 들썩거렸다.

북적거리는 횡단보도를 건넌 두 사람은 규카츠 가게로 들어섰다.

주문을 끝낸 두 사람의 테이블에 생맥주가 올려졌다.

“그럼 저희 건배라도 할까요.”

우리가 맥주 칸을 들고는 말했다.

“우리의 연애를 위하여.”

“그렇게 하죠. 우리의 연애.”

두 사람의 잔이 부드럽게 부딪쳤다.

맥주로 목을 축이던 두 사람의 앞에 규카츠가 나왔다.

총총 썰린 양배추와 바삭하게 튀겨진 규카츠가 가지런히 접시에 담겨있었다.

우리는 달궈진 작은 불판에 고기를 한 점씩 올렸다.

촉촉한 속살과 바삭한 겉은 묘한 밸런스를 끌어냈다.

불판에 고기를 얹은 건우가 우리를 바라봤다.

건우는 잘 구워진 고기를 우리의 앞에 놔주었다.

“많이 먹어요.”

연달아 날아오는 고기의 향연에 우리가 손을 내저었다.

“저 배 터질 것 같아요. 그만 주셔도 돼요.”

“뭐든 밥심입니다.”

“아뇨. 차장님 드세요. 진짜 배불러서요.”

우리는 볼록한 배를 두드리고는 말했다.

우리의 거절에도 건우는 잘 구워진 고기를 놓아주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두둑하게 배를 채운 두 사람은 스카이트리로 걸음을 옮겼다.

거리에는 벚꽃이 흐드러졌다.

봄기운이 두 사람을 적셨다.

작은 바람에 뒤채여 벚꽃이 흩날렸다.

꽃비처럼, 우수수.

벚꽃은 점묘화처럼 갈색 바닥을 수놓았다.

찬란한 향기를 풍기면서 떨어지던 꽃잎 하나가 우리의 손등에 떨어졌다.

“벚꽃, 잡았어요.”

우리는 손등을 내밀면서 자랑하듯 말했다.

“앞으로 두 개만 더 잡으면 될 것 같아요.”

“벚꽃 수집이라도 합니까.”

“벚꽃 세 개면 사랑이 온대요.”

우리는 벚꽃을 향해 힘차게 손을 내뻗으면서 말했다.

“고우리씨는 잡을 필요 없겠네.”

건우가 덤덤히 말했다.

“미신을 믿을 필요도 없고.”

뒷말을 잇던 건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허공에 내민 우리의 손등으로 작은 벚꽃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묘하게 우리의 손등에 있던 벚꽃이 거슬렸다.

“빨리 갑시다. 스카이트리 닫겠네.”

“시간 넉넉해요. 벚꽃 하나만 더 잡으면…….”

건우는 열심히 손을 내젓던 우리의 어깨를 감쌌다.

건우의 손길에 우리는 건우의 품에 반쯤 안긴 모양새가 돼버렸다.

“환경보호를 위해서 그냥 가죠.”

참 뜬금없는 이유였다.

건우는 우리가 마지막 벚꽃이라도 잡아버릴까.

열심히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파리라도 내쫓듯. 훠이훠이.

아주 열정적이고도 힘차게.

‘살다 살다 벚꽃에까지 질투라니.’

건우는 제가 생각해도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벚꽃이 날아들면 벚꽃을 쳐냈다.

건우의 마음을 간파한 우리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돌았다.

건우를 놀릴 작정으로 우리는 팔랑거리는 벚꽃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우리의 손바닥에 벚꽃이 떨어지려던 찰나였다.

건우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놀란 우리는 그대로 손을 뒤로 빼다가 균형을 잃었다.

간신히 우리를 잡은 건우가 우리를 쳐다봤다.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확실했다.

손을 피했다.

분명히, 피해버렸다.

“고우리씨.”

“네.”

쏟아지는 벚꽃 속에서 두 사람을 서로를 바라봤다.

“손…… 잡아도 됩니까.”

건우가 내민 손을 바라보던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괜찮을까.’

잡고 싶은 마음과 함께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요란하게 부딪혔다.

건우의 아픈 과거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연분홍색의 벚꽃은 두 사람을 비켜 흩날렸다.

건우는 말없이 우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재촉도 없었고 채근도 없었다.

묵묵히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간들간들한 바람만이 우리의 손가락을 간질였다.

“손이요. 저는 못 잡을 것 같아요.”

우리가 손을 말아 쥐면서 말했다.

건우의 손을 잡을 용기가 쉬이 나질 않았다.

“이유는.”

“말씀드려도 믿기 어려우실 거예요.”

“그건 직접 듣고 판단하겠습니다. 말해봐요.”

건우는 담담한 얼굴로 입을 우물거리고 있는 우리를 봤다.

우리의 목구멍을 간질이는 말은 쉽게 나올 줄을 몰랐다.

어려운 말이었다.

누구도 믿지 못할 만큼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과거를 본다니…….

자신을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건우가 자신을 경계하거나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다는 눈빛을 보내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우리의 머릿속은 한없이 복잡해졌다.

“손을 잡으면…….”

우리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다른 사람의 과거가 보여요.”

불덩이를 집어삼키듯 뜨거운 침이 우리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우리는 애꿎은 벚꽃만 만지작거렸다.

우리의 작은 손길에 연약한 벚꽃은 진한 꽃물을 남기면서 얇아졌다.

“내 과거 말입니까.”

“네. 그것도 봤어요.”

우리의 말이 힘겹게 떨어졌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사람의 과거라면 전부 보여요.”

우리의 아랫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팠던 그 순간, 그 광경, 그 감정……. 그대로 느껴져요.”

“…….”

“그래서 참을 수가 없어요. 너무 아파서 그래서…… 잡을 용기가 나질 않아요.”

우리가 제 두 손을 펼쳤다. 길게 쭉 뻗은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짧은 침묵이 두 사람을 뒤덮었다.

“저주에 걸린 거죠.”

우리가 쫙 펼친 손을 건우에게 내밀었다.

“공주도 아닌데.”

우리는 장난스럽게 뒷말을 이었다.

옅은 미소가 우리의 얼굴에 돌았다. 밝은 미소는 아니었다.

지독한 저주.

달리 그것 말고는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혹여 마음이 다친 누군가와 손이라도 스칠까.

우리는 늘 마음을 졸였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깊은 고통에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해 받는 것은 결코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성원의 영정사진이 놓였던 합동 장례식이 끝난 날.

그날부터 시작된 저주는 우리의 삶을 끝없이 갉았다.

“내 과거도 봤습니까.”

건우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우리를 보고는 물었다.

“……네.”

묵직한 숨을 내뱉듯 우리는 말을 흘렸다.

우리의 입속에 있던 침이 바짝 말랐다.

건우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감춰진 건우의 속마음은 좀체 알 수가 없었다.

깊게 긁혀 찢어진 건우의 상처를 들쑤신 걸지도 몰랐다.

괜한 고백으로.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믿습니다.”

건우가 부드럽게 우리의 말을 잘랐다.

제 손바닥을 바라보던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벚꽃 사이로 스미는 달빛이 건우의 얼굴에 스며들었다.

“고우리씨가 하는 말이라면.”

“…….”

“그게 뭐든.”

건우의 낮은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정말, 전부 믿습니다.”

건우의 입가에 번진 옅은 미소가 찬란하게 빛났다.

“지구가 편평하대도.”

진지한 건우의 농담은 잔뜩 경직됐던 분위기를 풀었다.

건우는 정말 상관없었다.

우리가 미래를 보거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렴 괜찮았다.

고우리는 고우리니까.

그럼, 됐다.

“그럼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죠.”

건우는 몸을 숙이고는 우리에게 눈을 맞췄다.

“울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매혹적인 미소가 건우의 입가에 흘렀다.

굳은 얼굴로 건우를 보던 우리의 마음이 울컥거렸다.

건우의 말은 그간 지쳤던 마음을 다독이는 것만 같았다.

참, 수고했다고.

이젠 다 괜찮다고.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무슨……?”

우리에게 바짝 다가선 건우가 우리에게 손을 내뻗었다.

건우는 우리의 목에 있던 스카프 끝을 부드럽게 당겼다.

여러 색깔이 적절하게 섞인 스카프가 힘없이 풀렸다.

얇은 스카프는 바람에 흩날리듯 너풀거렸다.

“뭐하시려고요.”

얼떨떨한 얼굴로 우리는 건우를 봤다.

“손잡을 방법 좀 연구하고 있습니다.”

건우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처럼 진지하게 대답했다.

얇은 스카프를 사이에 둔 두 사람의 손이 마주쳤다.

서로의 온기와 보드라운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괜찮습니까.”

건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건우의 감촉에 한껏 취한 우리가 건우를 봤다.

“괜찮아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우리의 목소리가 커졌다.

벚꽃이 내리는 풍경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대로 도쿄의 거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우리의 얼굴에 빙긋 미소가 돌았다.

아이처럼 마냥, 신난 얼굴이었다.

건우가 우리에게 깍지를 꼈다. 얇은 스카프는 두 사람의 손을 꽉 품었다.

부드러운 건우의 살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리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손 하나를 잡았을 뿐인데도 우리의 마음은 끝없이 콩닥거렸다.

“꼭 수갑이라도 찬 것 같네요.”

우리가 맞잡은 손을 들면서 말했다.

잔잔한 바람에 스카프의 끝자락이 팔락거렸다.

잘 매어지지 않은 스카프를 건우는 힘겹게 묶고 있었다.

“수갑입니다.”

“……!”

건우는 느슨한 스카프의 끝을 물었다.

한 손만으로는 스카프를 꽉, 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살짝 벌어진 입을 타고 흐르는 건우의 숨결이 우리의 손을 적셨다.

우리는 건우를 바라봤다.

길게 내뻗은 건우의 눈매는 깊은 눈동자를 품고 있었다.

용광로만큼 뜨거운 건우의 숨결이 연달아 손을 스쳤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절대, 저주 아닙니다.”

스카프 매듭을 꽉, 묶은 건우가 말했다.

스카프는 절대 풀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의 손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특별한 겁니다.”

“…….”

“남들보다 더.”

건우의 목소리에 우리는 숨을 쉬는 것도 잊었다.

깍지를 끼고 있던 두 사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을 타고 넘실대는 온기와 보드라운 살결이 우리를 포근히 안아버린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아랫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건우는 한 손으로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스한 손길에 간헐적으로 불어오던 바람도 멈췄다.

봄볕만큼 온기를 품은 건우가 우리를 향해 속삭였다.

“그러니까 고우리씨.”

너는 특별해.

“우리야.”

그러니까.

“도망가지 마.”

더는 숨지 않아도 돼.

정말, 괜찮아.

“……고맙습니다.”

공연스레 울컥 솟는 마음을 달래면서 우리는 힘겹게 대답했다.

건우는 우리의 손을 더 꽉 잡았다.

“고맙다는 말은 잘 간직해두죠.”

건우의 얼굴에 매력적인 미소가 흘렀다.

“고우리 찬스가 생각보다 유용해서.”

“설마……. 또 춤이라도 시키실 생각은 아니시죠?”

우리는 회식 때의 일을 생각하면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울컥 솟던 감동의 눈물도 쏙 들어갔다.

고흥부와 강놀부의 놀랄 만큼 신명 난 잔치 현장을 또 재현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술에 취해 어깨춤까지 들썩거렸던 그 날의 그 현장을!

“원한다면 고려는 보겠습니다.”

“아뇨. 절대로 안 돼요. 춤은 진짜 쥐약이에요.”

우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춤춰 본 적은 없습니까.”

“대학교 때 췄다가 이상한 별명까지 얻었다니까요.”

“무슨 별명이었습니까.”

건우의 물음에 우리가 굳은 침을 삼켰다.

“그건…….”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