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26화 (26/102)

제 26화. 어쩌다 토끼 말고 어쩌다 코끼리

건우는 한 손으로 우리의 머리를 감쌌다.

우리의 향기가 손등에 녹아드는 것만 같았다.

건우의 입술을 간질이는 숨결은 진한 잔향을 남겼다.

우리를 바라보는 건우의 눈빛이 떨렸다.

목울대를 버석하게 말리는 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강한 욕망이 덥석 건우를 집어삼켰다.

우리는 건우의 세상을 마구잡이로 뒤흔들고 있었다.

고작 작은 숨소리 하나로.

닫혔던 건우의 세계가 조심스럽게 열렸다.

건우가 우리를 부드럽게 제 쪽으로 당겼다.

“괜찮겠습니까.”

건우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는 것처럼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멈추는 건.”

순간 건우의 입가에 색정적인 미소가 흘렀다.

골랐던 건우의 숨은 끈덕지게 우리의 입술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건우는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원초적인 욕망과 감각에 대한 갈증 속에서.

“힘들 겁니다.”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던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깊은 날숨처럼 날아든 말이 우리에게 녹아들었다.

격렬하게 솟구치는 열망이 건우의 이성을 갉았다.

맞닿은 아랫입술은 열기에 젖어갔다.

간절하게 우리를 갈구하던 건우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건우는 우리의 입술을 삼켰다. 우리의 모든 것을 잠식해버릴 기세였다.

두 사람의 입술은 끈덕지게 서로에게 달라붙었다.

우리가 들고 있던 종이가 바닥으로 후두둑, 벌어졌다.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도 두 사람의 입맞춤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건우의 달뜬 목소리가 우리의 입술에 무르녹았다.

“하…….”

우리는 꿈에 취한 것만 같았다.

달아오른 얼굴에서 쏟아지는 열기와 목울대를 타고 넘나드는 숨결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달뜬 건우의 숨소리가 우리를 헤집었다.

찬란한 봄을 반기는 꽃봉오리처럼 두 사람의 입술이 벌어졌다.

약간 고개를 기울인 건우가 우리의 윗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갑작스럽게 깊이 파고든 찌릿한 감각에 우리는 움찔거렸다.

뜨겁게 해가 내리쬐는 해변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뜨겁고 청량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건우의 향기가 떠밀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우리의 숨을 건우는 단번에 삼켜버렸다.

건우의 목울대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갔다.

무던히 건우를 받아내던 우리가 뒤로 밀려났다.

한없이 솟는 열기에 두 사람의 얼굴은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

서로의 향기가 입안 가득 번졌다.

돌이킬 수 없는 욕망이었다.

우리가 책상의 끝을 잡았다.

깊게 밀려드는 건우를 감당하기에는 다리가 후들거렸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우리에게 깊이 파고들었다가 부드럽게 우리의 입술을 쓸어내렸다.

“잠깐…….”

우리가 건우의 가슴팍에 손을 댔다. 건우의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

입술에 남은 잔향은 예민한 감각들을 살리기에 충분해 보였다.

뜀박질한 것처럼 두 사람의 숨소리는 가빴다.

건우의 가슴팍에 닿은 우리의 야무진 손끝이 조금 떨렸다.

“다리가 후들거려서요.”

우리는 간신히 다리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짤막한 말과 함께 곧,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그럼 서서는 힘들겠네.”

빤히 바라보는 눈빛과 낮은 목소리가 매혹적이게 넘실거렸다.

서서는……. 허공에 흩날리는 말을 곱씹던 우리는 천천히 침을 삼켰다.

그동안 소설에 덤덤히 썼던 과격한 애정 행각이 현실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앉아서.”

건우가 우리를 가볍게 들었다. 책상에 앉아버린 우리는 건우의 카디건을 잡았다.

거대한 코끼리에게서 살아남고 말겠다는 다부진 손길이었다.

“고우리씨.”

건우는 흘러내린 우리의 머리칼을 넘겨주면서 말했다.

건우의 잘은 숨결도 귓바퀴를 스치는 손길도 우리의 온 신경을 자극했다.

우리가 짐짓 뒤로 물러났다.

건우의 작은 손길에도 신경들이 살아날 만큼 예민해졌기 때문이었다.

뒤로 기울어진 우리에게 건우가 바짝 다가섰다.

우리가 잡고 있던 카디건이 약간 꾸깃거렸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옅은 숨소리만 켜켜이 쌓여갔다.

작열하는 햇빛이 여물어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 사이로 미끄러졌다.

“보고 싶었습니다.”

“…….”

“밤새.”

우리의 전화를 받고 건우는 잠들 수가 없었다.

무작정 우리가 보고 싶었다.

급히 도쿄로 날아오는 비행기를 알아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차장님.’

수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그 말.

‘……보고 싶어요.’

그 말을 달래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옆을 지켜주고 싶었다.

축축하게 젖어버린 목소리가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어설픈 위로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의 떨림을 멈출 수만 있다면, 아무렴 상관없었다.

“저도.”

말을 내뱉은 우리의 속눈썹이 살짝 흔들렸다.

“보고…… 싶었어요.”

수화기로 고백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건우의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번졌다.

“정말입니까.”

“네…… 뭐.”

뒤늦게 밀려든 민망한 마음에 우리는 건우의 시선을 피했다.

“좋네.”

“뭐가요.”

“그 말 말입니다. 보고 싶었다는 말.”

건우는 놓을 수 없다는 것처럼 콕, 집어 말했다.

“근데 이 상황에서 좋은 말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왜요. 확 무를까요.”

건우의 반응에 우리가 이를 악물고는 물었다.

사랑스럽게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의 눈은 순식간에 도끼눈으로 변했다.

로맨틱한 상황을 엎은 것에 대한 원망의 눈빛이었다.

“상당히 도발적이라.”

건우의 뒷말에 불끈 힘을 줬던 우리의 눈에서 힘이 빠졌다.

도발이라니…….

그야말로 마성의 말이었다.

얄미웠던 감정도 눈 녹듯 녹아버렸다.

“고우리씨.”

“네.”

“그럼 이번에는 내가 해보죠.”

“뭘 하시려고요.”

우리가 떨리는 마음을 굳게 다잡으면서 물었다.

우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건우가 우리의 허리를 안았다.

가느다란 실 한 줄 들어갈 만큼 두 사람의 입술 사이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도발.”

거침없이 파고드는 건우의 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깊은 건우의 눈동자가 우리를 잡아끌었다.

우리는 허우적대도 빠져나올 수 없는 이상한 늪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숨겨졌던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그런, 늪.

“진짜 도발하시네요.”

“그럼 거짓말일 줄 알았습니까.”

“진짜일 거라고는…….”

“지금부터 잘 경험해봐요.”

건우가 우리의 말을 단숨에 삼켰다.

깊숙이 입술을 파고드는 건우의 몸짓에 우리는 완전히 백기를 들어버렸다.

건우가 자신했던 것처럼 단단했던 욕망의 껍질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깨졌다.

중간중간 흘리는 건우의 뇌쇄적인 미소가 우리의 신경을 통째로 흔들어댔다.

사방에 널브러지는 가쁜 숨소리는 주워 담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급히 발랐던 립글로스는 건우의 입술에 진하게 녹아들었다.

“아…….”

한 줌의 숨결.

올라가는 열기.

떨리는 입술.

건우는 그 모든 것을 탐하고 있었다.

우리의 입술은 끝없이 붉어졌고 건우의 입술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건우가 부드러운 우리의 목덜미를 베어 물었다.

탐스러운 과일을 삼키는 것처럼.

달콤한 피를 갈구하는 흡혈귀처럼.

입술 사이로 흐르는 타는 듯한 열기와 말랑한 입술 감촉에 우리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조용한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부드럽게 발을 감싸는 흙과 풀냄새가 뒤엉킨 것처럼 포근하고도 아늑했다.

톡, 톡, 톡.

허리에 있던 건우의 손이 부드럽게 우리의 단추를 열었다.

단추는 힘없이 열렸다. 달뜬 얼굴로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책상에 있던 작은 탁상거울로 붉게 물든 목덜미가 선명하게 보였다.

“허.”

목덜미에 남은 흔적에 우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던 우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코끼리 곱창

문득 앞치마를 둘렀던 건우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난데없이 스친 생각에 웃음을 터뜨린 우리가 잘못 발을 내뻗었다.

“……!”

건우를 차버린 것이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건우가 짐짓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발길질이라니…….

우리는 건우에게 손을 내뻗지도 못한 채로 어쩔 줄을 몰랐다.

“죄송해요. 갑자기 쓸데없는 생각이 나서. 괜찮으세요?”

“아…….”

“아니. 이거…… 이걸 참…….”

우리의 말문이 제대로 막혀버렸다.

건우는 책상에 한 손을 얹은 채로 허공에 길게 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괜찮습니다. 아직 잘 살아있습니다.”

“아……. 그러게요. 살아있네요.”

힐끔 건우를 쳐다보던 우리가 말했다.

“그럼 계속하죠.”

건우가 우리에게 다가섰다.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우리의 잠옷이 건우의 욕망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대화.”

단단한 건우의 말이 우리의 귓가를 간질였다.

건우는 우리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건우의 달뜬 숨이 우리의 귓불에 흐무러졌다.

연달아 번지는 건우의 단 숨결이 우리에게 짙게 흘러내렸다.

원초적인 욕구만이 두 사람을 사로잡았다.

거칠어지는 숨결만큼 두 사람의 몸은 바투 밀착됐다.

서로의 굴곡과 향기가 또렷하게 전해졌다.

‘모조리 탐해버리고 싶다.’

우리는 원고를 읽던 건우의 목소리가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널.’

달고도 유혹적인 목소리. 뇌쇄적인 눈빛. 흔들림 없는 숨소리.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몸을 가득 적셨다.

열락에 사로잡힌 우리는 서슴없이 건우의 단추를 풀었다.

연분홍색의 얇은 셔츠가 벌어졌다.

불끈 솟은 탄탄한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난 건우의 가슴팍을 우리는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보드라운 기운이 손끝을 타고 알알이 전해졌다.

“차장님.”

두 사람 사이로 뜨거운 숨이 넘나들었다.

“도발이요. 정말 성공하셨네요.”

“넘어왔습니까.”

“네. 완전히요.”

우리는 혼이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본능만이 우리를 휘돌았다.

소설 속 그들처럼 빠져들고 싶었다. 허우적대면서 주위를 살필 수 없게 되더라도.

뜨겁게, 서로에게 빠질 수만 있다면…….

서로에게 녹아들 수 있다면.

“좋은 소식이네.”

건우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돌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포개졌다.

건우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건우의 손길이 닿는 곳곳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끝없이 달아오르는 열기에 우리의 얼굴을 빨개졌다.

살짝 깨문 입술을 비집고 거칠어진 숨소리가 쏟아졌다.

건우를 안은 우리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굵직한 숨과 가쁜 숨결이 몰아쳤다.

건우는 우리의 세상을 채워 나갔다.

조금의 틈도 없이.

“유혹됐다면.”

건우는 저돌적으로 우리에게 돌진했다.

격정적인 숨결에 우리는 모든 것들이 희미해지는 기분이었다.

건우의 존재만이 선명히 느껴질 뿐이었다.

모든 것들이 아찔하게 밀려들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건우의 목에 퍼런 핏대가 섰다.

건우의 숨소리가 한없이 우리를 휘저었다.

숨, 열기, 체취…….

건우는 우리의 세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깊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놓아 줄 수 없다는 듯이.

“고우리씨.”

건우는 우리에게 자신의 모든 세상을 내어놓고 싶었다.

“……우리야.”

우리의 세상에 온전히 물들 수만 있다면.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하.”

쉬지 않고 밀려들던 건우의 숨결이 멈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진한 잔향을 남겼다.

우리의 가슴팍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쿵쾅쿵쾅.

적막 속에 제 존재를 알리는 초침처럼 크고 정확한 울림이었다.

“괜찮습니까.”

건우가 헝클어진 우리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낮은 꽤, 긴데.”

건우의 말에 우리는 뜨악했다.

맹렬하게 장어를 먹어대던 건우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이 차장님이 그래서 장어를…….’

여유로운 건우의 얼굴을 바라보던 우리의 입은 살짝 벌어졌다.

우리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눈부시게 부서지는 햇볕이 길고 긴 낮을 뽐내는 것처럼 보였다.

“어우. 낮이 되게 기네요.”

우리는 능청스럽게 대답하면서 건우를 봤다.

말없는 건우를 보던 우리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제는 필명을 바꿀 때가 온 것 같다고.

어쩌다 코끼리

정말 확실히 바꿀 타이밍이었다. 정말로!

***

해는 고층 건물 뒤로 넘어갔다.

조밀하게 붙은 구름이 어둑한 하늘에 조용히 흘렀다.

붉은빛을 내뿜던 햇빛이 남긴 열기에 하늘은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건우는 제 품에 안겨 잠든 우리를 바라봤다.

약간 벌어진 입술조차 마냥, 예쁘게만 보였다.

제법 피곤한 기운이 남아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업어가는 줄도 모를 만큼 곤히 잠들었다.

‘잠든 것도 예쁘네.’

건우는 우리에게 푹, 빠진 것처럼 보였다.

스탠드의 옅은 불빛만이 두 사람을 연하게 물들였다.

굼지럭거리던 우리의 새끼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누가 손끝에 묶인 실을 조심스럽게 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참 잠들었던 우리가 꿀잠에서 깨어났다.

순간 목젖이 전부 보일 정도로 벌어진 입이 느껴졌다.

우리는 계속 잠든 척을 하면서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삽시간에 몰려든 민망함에 잠도 모조리 달아나버렸다.

“깼습니까.”

건우의 말에 우리는 느릿하게 눈을 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어나죠.”

건우가 우리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걸치는 건우를 보던 우리가 입술을 매만졌다.

괜히, 낯설었다.

일본에 있는 건우라니…….

“근데 어디 가시려고요?”

“저녁 먹고 스카이트리에 가볼 생각입니다.”

“스카이트리요?”

“예. 그게 좋을 것 같아서.”

우리는 빤히 건우를 바라봤다.

우리가 지나가는 말로 뱉은 말이었다.

스카이트리에 올라가 야경을 보고 싶다는 말.

그런데 그 말을 흘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누군가 흘러가는 말까지 기억해준다는 것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린 우리의 얼굴에 벙긋 미소가 피어올랐다.

셔츠의 단추를 채우던 건우가 뒤를 돌았다.

군살 없이 탄탄한 근육이 벌어진 셔츠 사이로 얼핏 보였다.

우리는 넋을 잃은 채로 건우의 가슴팍만 보고 있었다.

본능적인 습성이었다.

‘묘사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탄탄한 근육 말고도 묘사할 수 있는 말이 많아질 것만 같았다.

울퉁불퉁한 산등성이 같은. 낙타의 등처럼 단단한. 부드럽고 단단한 근육…….

정말,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남자였다.

“아직 피곤합니까.”

“아뇨. 괜찮아요. 바로 준비할게요.”

“천천히 기다리겠습니다.”

우리가 묵직한 이불을 안은 채로 몸을 일으켰다.

“뭐합니까.”

끙끙거리면서 이불을 움직이고 있는 우리를 보면서 건우가 물었다.

“이동 중이요.”

“무거울 것 같은데.”

이불을 두른 우리는 꼬리처럼 늘어진 이불을 당겼다.

이불이 바닥을 질질 끌었다.

책상에 걸터앉은 건우가 팔짱을 끼고는 우리를 바라봤다.

“상당히 불편해 보입니다.”

“네. 되게 불편해요.”

“이불을 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그렇다고 막 돌아다닐 수는 없죠!”

놀란 우리의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

건우는 팔짱을 끼고는 평온한 얼굴로 우리를 봤다.

‘저 코끼리…….’

얄미울 만큼의 여유였다. 건우가 책상 위에 널브러졌던 우리의 잠옷을 내밀었다.

“딱히 달갑지는 않지만.”

우리가 건우의 손에 있던 잠옷을 홱, 낚아챘다.

건우만큼 여유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밤은 꽤, 기니까요.”

우리는 한껏 목소리를 낮춰 건우의 흉내를 냈다.

전혀 평온하지 않은 미소를 싱긋 날리면서 우리는 무거운 이불을 끌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앞에 허물처럼 이불을 벗고는 우리는 서둘러 잠옷 바지를 입었다.

급히 입는 통에 우리는 트위스트라도 주는 것처럼 비틀거렸다.

세면대를 잡고 균형을 챙기던 우리의 눈이 커졌다.

거울 속에 비친 제 목덜미에 붉은 열꽃이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맙소사. 꼬리는 길고 키스 마크는 영원하다더니!

‘망했다!’

세면대를 짚은 우리가 비틀거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담아 우리는 열심히 목덜미를 문질렀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진짜…… 맙소사다.”

우리가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충격에 사로잡힌 얼굴이었다.

당분간은 파스와 스카프를 죄다 동원해야만 할 것 같았다.

키스의 흔적들이 보이지 않도록 아주, 꽁꽁.

“차장님.”

욕실을 나온 우리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왜 그러셨어요.”

절망에 빠진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슨 일입니까.”

상기된 우리의 얼굴에 건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힘 조절 실패하셨어요.”

“힘 조절?”

“다 남아버렸다니까요. 보세요.”

우리가 잠옷의 목 부분을 살짝 아래로 잡아끌었다.

쇄골에 불긋하게 물든 건우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심각한 얼굴로 흔적을 바라보던 건우가 우리를 쳐다봤다.

“빅픽처입니다.”

큰 그림이라는 정말 큰 그림다운 말과 함께.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