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24화 (24/102)

제 24화. 서로를 그리는 밤

우리는 경계하듯 의자를 끌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여행 왔어요?”

남자의 말에 잔뜩 경계를 강화하면서 우리는 남자를 외면했다.

우리는 꼬치에만 집중했다.

고소하게 발린 소스가 입맛을 돋우고 쫄깃한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것도 먹어 볼래요?”

우리의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제 앞에 있던 물만두를 가리켰다.

우리는 힐끔 접시에 있던 물만두를 봤다.

남자가 때를 놓치지 않고 물만두를 우리의 앞접시에 놔주었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대강 인사를 하고는 생맥주를 들이켰다.

남자의 눈빛에 어색한 미소를 지은 우리는 만두를 조금 베어 물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선술집이었다.

게다가 주방장도 바로 앞에 있으니…….

우리는 살짝 긴장을 푼 것이었다.

“맛있네요.”

우리가 물만두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맛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남자는 대화의 물꼬를 텄다.

“안녕하시무니까.”

어설픈 한국어로 제일 먼저 우리의 환심을 샀다.

두 사람은 평범한 대화를 나누었다.

직업, 일본 음식, 한국브랜드, 일본 여행지…….

영양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지만, 술자리에서 나누기에는 나쁘지 않은 대화였다.

“근데 남자친구 있어요?”

한참 대화를 나누던 남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는 잠이라도 든 것처럼 잠잠하기만 한 핸드폰을 쳐다봤다.

“아뇨.”

우리는 핸드폰을 뒤집고는 말했다.

불만스러운 말이 뛰쳐나온 것이었다.

답장이 없는 건우에 대한 얄미움만으로도 속이 갑갑해지는 것만 같았다.

벌컥벌컥 들이켜는 맥주에도 부글거리는 마음은 식을 줄을 몰랐다.

“여기 생맥주 한 잔 더 주세요.”

우리가 맥주잔을 들면서 말했다.

내일은 침대에 꼬박 붙어있을 생각이었다.

갑갑해지는 마음도 비워내고 건우에 대한 생각은 모조리 잊기로 했다.

실컷 잠만 자면서.

남자가 우리의 팔목을 잡고는 생맥주 주문을 물렀다.

“자리 옮길까요?”

울긋불긋 빨갛게 달아오른 우리의 얼굴을 보던 남자가 물었다.

질겅거리면서 닭 심장을 열심히 씹던 우리의 얼굴이 구겨졌다.

남자의 능글맞은 미소에 속이 울렁거렸다.

‘무슨 개수작이야?’

한껏 가까운 남자의 얼굴에 우리가 뒤로 몸을 젖혔다.

우리가 급히 맥주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조용하던 핸드폰이 울렸다.

-미안합니다. 정신없었네요. 잘 쉬고 있습니까.

건우의 답장이 도착했다.

그토록 절절하게 기다렸던 답장이었다.

-네. 이제…….

호텔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우리가 날리려던 순간이었다.

“좋은 곳 알고 있는데.”

저열한 미소가 남자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남자의 가느다란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가 돌아왔다.

가까워지는 거리에 우리는 서둘러 일어났다.

“혼자 가시면 되겠네요. 저는 호텔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가 사무적으로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게.”

몸을 돌린 남자는 우리를 보낼 수 없다는 것처럼 허리를 힘껏 안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는 남자의 손을 떼어내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우리의 핸드폰이 무참히 바닥에 떨어졌다.

단단한 바닥에 액정에 금이 갔다.

“개새끼!”

우악스럽게 우리의 허리를 안았던 남자가 슬금슬금 손을 올려 우리의 가슴을 탐했다.

우리가 소리를 내질러도 도와줄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외면과 무관심이 얼룩졌다.

남자의 손길은 대범해져갔다.

“좋으면서 빼기는.”

“어디서 개수작이야. 놔. 놔라.”

말은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핸드백에 있던 스프레이를 꺼냈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질끈 눈을 감고 남자에게 스프레이를 뿌렸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남자는 코를 부여잡았다.

최루액에 남자의 코는 터질 것처럼 금세 새빨개졌다.

“추잡해!”

콧물을 줄줄 쏟아내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다시 걸리면 죽는다.”

우리가 남자를 향해 스프레이를 내던졌다.

헛구역질까지 하면서 남자는 몸부림을 쳐댔다.

핸드폰을 집은 우리는 떨리는 맘을 붙잡으면서 남자를 향해 중지를 날렸다.

남자는 우리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와 가게가 떠나가라 소리를 내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뒤범벅돼 들려왔다.

가게를 나선 우리는 도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우리의 손은 애처롭게 떨렸다.

택시 한 대가 미끄러지듯 우리의 앞에 멈춰 섰다.

“Park Hyatt Tokyo…….”

호텔을 말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채 삼키지도 못한 침이 입을 맴돌았다.

가슴을 잡은 남자의 손길이 옅게 남아있었다.

기분 나쁜 여운이었다.

영업팀 우팀장보다 더 대담했던 손길이었다.

낯선 도시, 낯선 나라…….

도와줄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을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최루액을 맞은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는 뒤를 쫓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심장은 요란하게 뛰었다.

징징!

울리는 핸드폰에도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강차장님]

우리는 놀란 얼굴로 깨진 액정을 봤다.

건우의 전화였다.

강건우.

그 이름만으로도 놀란 마음이 다독여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묘한 안도감에 주책 맞게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놀랐었다. 정말 많이.

그리고 무서웠다.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네. 차장님.”

우리는 울컥거림을 삼키면서 말했다.

“급한 일이라도 있으세요? 국제전화라…….”

-무슨 일 있습니까.

“무슨 일은요. 없어요.”

-대답이 늦는 것 같아서 걱정돼서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지금 말하기 곤란합니까.

건우가 재차 물었다.

우리는 입술을 살짝 잡은 채로 차창을 바라봤다.

여전히 마음이 벌렁거렸다.

건우는 우리를 채근하지 않았다.

묵묵히 우리의 침묵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말을 꺼낼 수 있는 준비가 될 때까지.

그냥, 기다렸다.

“그게…….”

우리의 말이 무겁게 떨어졌다.

달리는 차의 속도에 차창 밖의 밤풍경은 한없이 찌그러졌다.

갖가지 빛깔들이 뒤섞여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만 같았던 외롭고도 쓸쓸한 그곳에서 우리는 건우만 생각났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바로 전화해요.’

그 누구도 생각나지 않았던 그 순간…….

우리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오로지 건우뿐이었다.

‘바로 달려갈 테니까.’

그냥, 보고 싶었다.

건우가 정말로 보고 싶다.

“차장님.”

잔잔한 바람에 흩날리던 벚꽃이 차창에 붙었다.

팔락거리는 꽃을 보던 우리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왜…… 힘든 순간, 건우가 생각났던 걸까.

끝없이 건우의 연락을 기다렸던 걸까.

왜…….

뿌옇게 눈을 물들였던 눈물이 우리의 손등에 톡, 떨어졌다.

‘좋아하니까.’

속에 숨겨뒀던 흐릿한 목소리가 짙게 우리를 물들였다.

핸드백을 잡은 우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좋아하잖아.’

속말이 우리의 마음에 몰아쳤다.

겨울의 칼바람을 뚫고 찾아온 벚꽃처럼.

“차장님.”

우리의 입술이 힘겹게 떨어졌다.

“저…… 아무래도 차장님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축축한 우리의 고백이 택시를 물들였다.

두려움의 끝자락에서 복작거리던 머릿속이 단숨에 정리된 것만 같았다.

뭐든 괜찮을 것 같았다.

손을 잡지 못하는 것도 건우의 과거도 전부.

“좋아하게 돼버렸어요.”

완벽한 고백이었다.

건우에게 날리는 촉촉한 고백.

-고우리씨.

잠자코 말을 듣고 있던 건우가 입을 뗐다.

건우의 나직한 목소리가 우리의 귓가를 적셨다.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는 울컥거림을 삼키는 우리의 코는 벌름거렸다.

“차장님.”

핸드폰을 잡은 우리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보고 싶어요.”

우리는 속말을 거침없이 꺼냈다.

이성 말고 감정대로 움직이고 싶었다.

건우가 보고 싶었다.

정말, 미칠 만큼.

“그냥, 그런 날이라……. 그럼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우리가 서둘러 뒷말을 이었다.

-나도…… 보고 싶습니다.

건우의 낮은 목소리가 우리를 붙잡았다.

전화를 끊으려던 우리의 손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건우의 말에 우리의 세상은 멈춘 것만 같았다.

일그러졌던 차창 밖의 풍경도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밤바람에 흩날리던 벚꽃도. 정갈한 도시의 풍경도.

사위를 물들인 형형색색의 빛도 전부 진해져 갔다.

우리는 도쿄의 밤하늘을 바라봤다.

달빛에 가려진 별조차 힘차게 빛을 내뿜어대고 있었다.

둘만의 세상을 축복하듯 일순간 모든 것이 환해진 것만 같았다.

모든 찬란한 것들이 꽉, 스며들어 멈춰버린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건우의 목소리만 짙게 번져나갔다.

-……우리야.

온갖 색깔로 물든 세상은 그림처럼 보였다.

완전히 멈춰 박제된 그림.

-금방 갈게.

건우의 말에 우리의 숨이 멎었다.

두 사람의 숨결이 서로에게 깊게 젖어 들었다.

길고 긴 밤이었다.

서로가 미친 듯이 그리워지는 그런 짙은 밤이다.

***

샤워타올을 두른 우리가 욕조를 봤다.

따스한 물이 콸콸, 쏟아졌다.

화장실에 있던 거울에는 김이 서렸다.

우리는 욕조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손을 담갔다.

손을 적시는 온기가 놀랐던 맘을 진정시켜주었다.

우리는 장미의 향을 품은 입욕제를 욕조에 넣었다.

보글보글 소리를 내면서 입욕제는 물에 녹아들었다.

밝은 분홍색이 물감처럼 번져나갔다.

우리는 입욕제를 살살 돌렸다.

장미의 향기가 짙게 밴 욕조에 몸을 담갔다.

“호텔에나 있을 걸…….”

묵었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젖힌 채로 천장을 보던 우리가 옆에 있던 맥주캔을 들었다.

찬 기운을 품은 맥주캔이 우리의 속을 뻥, 뚫어주었다.

‘저…… 아무래도 차장님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맹랑하게 건우에게 내뱉은 고백이 뒤늦게 민망하게 느껴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우리의 얼굴은 새빨갰다.

날달걀도 폭삭 익을 만큼 뜨거운 얼굴이었다.

“잘했어. 잘했다니까. 멋졌다. 고우리!”

우리는 정신이라도 차릴 생각으로 제 뺨을 두드리면서 주문을 걸 듯 외쳤다.

욕실을 돌던 우리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우리야.’

다정스러운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의 심장을 뛰게 했다.

“우리야.”

그 말을 곱씹었다.

매일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도 이토록 가슴이 설렐 수 있을 줄이야.

‘나도…… 보고 싶습니다.’

귓가를 맴도는 건우의 말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맥주가 유난히도 고소하게만 느껴졌다.

시원스럽게 목구멍을 넘어가는 맥주에 우리는 선술집에서의 일을 조금씩 털어냈다.

“전기 충격기라도 들고 다녔어야 했는데…… 확!”

우리는 아쉬운 얼굴이었다.

삼단봉을 들고 정신을 차리라고 열심히 두드려 패줬어야 했는데…….

건우가 선물해준 호신용품을 전부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에 우리는 미련이 남았다.

스프레이는 약해도 너무 약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주먹이라도 휘두르듯 손을 내뻗었다.

욕조에 찰랑거리던 물이 우리의 얼굴에 튀었다.

장미꽃오일 향기가 얼굴을 적셨다.

우리는 불결하게 제 몸을 더듬거렸던 남자의 얼굴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

“개자식…….”

우리가 욕조에 몸을 기대면서 중얼거렸다.

천장에 매달려있던 물방울이 천장을 바라보던 우리의 얼굴 위로 똑, 떨어졌다.

‘금방 갈게.’

고요한 공간에 건우의 말이 휘돌았다.

건우의 목소리만으로도 우리의 몸은 노곤해지는 것만 같았다.

레몬껍질과 장미꽃 오일이 우리의 온몸을 부드럽게 적셨다.

건우의 말을 되뇌던 우리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한국 가고 싶다.”

우리는 금요일 출장을 마치고 주말에 도쿄 구경에 나서려던 기존의 계획을 후회했다.

당장 한국으로 날아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한참 욕조에 앉아 피로를 풀던 우리는 샤워를 하고는 침대에 앉았다.

출장 피로가 뒤늦게 우리를 뒤덮었다.

우리가 협탁을 더듬거렸다.

핸드폰을 잡은 우리는 깨진 액정을 살폈다.

“그놈만 아니었어도……. 아. 억울해.”

깨진 액정에 마음이 쓰릴 지경이었다.

우리는 아쉬움을 달래면서 핸드폰을 켰다.

재빠르게 항공사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표를 봤다.

도쿄/나리타(NRT) - 서울/인천(ICN)아침 9시부터 인천으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있던 우리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돌아가는 일정을 당겨볼까.

심각한 얼굴로 일정을 살피던 우리의 핸드폰이 울렸다.

건우의 전화였다.

“네. 차장님.”

-잘 쉬고 있습니까.

“그럼요. 차장님은요?”

-바쁘게 잘 있습니다.

우리는 건우의 말을 가벼운 농담으로 넘겼다.

-뭐 하고 있습니까.

“씻고 나와서 침대에 누워있어요. 텔레비전도 좀 보고.”

외롭게 놀고 있는 텔레비전을 힐끔 보면서 우리가 말했다.

텔레비전에서 나온 패널들은 재미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던 우리가 다시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폭신한 기운이 우리를 포근히 감쌌다.

“차장님은요?”

우리가 옆으로 돌아누우면서 물었다.

-짐 챙기고 있습니다.

“어디 가세요?”

-여행이라고 해두죠.

“아…… 놀러 가시는구나. 뭐. 주말이니까.”

우리의 말에는 아쉬운 기운이 녹아있었다.

돌아오는 일정을 바꾸려던 우리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건우가 여행을 떠나버리면 한국으로 돌아갈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랑 가시는데요?”

-나중에 말해주죠.

달가운 대답은 아니었다.

“네네.”

우리는 더 물으려다가 관두었다.

연애의 시작을 싸움으로 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건우의 여행 일정을 제외하고는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도쿄에서의 일들과 일본에서 가장 큰 타워라는 도쿄 스카이트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건우와 통화를 하던 우리는 밝은 미소를 짓기도 했고, 놀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우리는 커다란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쿄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하늘에 있던 별을 죄다 끌어서 박아놓은 것처럼.

찬란하게.

“차장님. 해가 뜨는데요.”

졸린 눈을 비비던 우리는 당황했다.

건물 뒤로 모습을 드러낸 해가 창을 타고 눈부시게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밤을 꼴딱 새버린 것이었다.

-밤을 새버렸네.

건우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피곤하겠습니다. 눈 좀 붙여요.

“차장님은요?”

-곧, 잘 겁니다.

건우의 말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데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졸린 기운이 순식간에 우리를 집어삼켰기 때문이었다.

연달아 하품을 해대는 우리가 창밖을 봤다.

창을 타고 들어온 햇빛이 우리의 눈을 찔렀다.

“그럼 눈 좀 붙일게요.”

-예. 이따 보도록 하죠.

“네.”

대답을 하는 우리는 몽롱한 기운에 취해있었다.

밤을 뜨겁게 물들였던 통화가 끝났다.

핸드폰은 후끈거렸다.

우리는 협탁에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일어났다.

눈부신 햇볕이 눈을 살살 간질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커튼을 치고는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청소를 위해 하우스 키핑이라도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살짝 문을 열어 문고리에 사인을 걸었다.

Do Not Disturb

방해하지 말라는 말이 문고리에 걸려 흔들거렸다.

“Hello.”

하우스 키핑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날렸다.

“Hi.”

잠에 취한 우리는 손을 흔들면서 고개를 숙였다.

손과 머리가 따로 노는 현장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푹신한 침대가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뛰어들듯 침대로 달려들었다.

완벽한 암흑 속에서 우리는 잠에 빠져들었다.

베개를 안은 채로 우리는 베개에 얼굴을 비볐다.

잘 된 빨래에서 풍기는 향긋한 향기가 우리의 코끝을 간질였다.

우리는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9시, 10시, 11시…….

해가 위치를 바꾸어도 우리의 방은 어둠 속에 가라앉아있었다.

세상모른 채로 잠든 우리의 새근거리는 소리만 허공에 번졌다.

꿈도 꾸지 않은 채로 깊게 잠든 우리의 귀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아…… 뭐야. 잔다고 했잖아요.”

우리가 베개로 귀를 막았다.

그래도 초인종 소리는 계속 들렸다.

띵동!

“누구야.”

퉁퉁 부은 얼굴로 우리는 이불을 걷어찼다.

달콤한 잠을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따끔하게 말이라도 할 참이었다.

“누구세요!”

우리가 소리 높여 물었다.

잠긴 목은 쉽게 풀어질 줄을 몰랐다.

잔뜩 잠에 취해 일본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로 한국말을 뱉어내던 우리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강건우입니다.”

건우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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