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화. 여기는 혼자 왔어요?
편의점에서 흐르는 노래만 우리의 귓가에 가득했다.
진열대에 말끔하게 정리된 상품 말고는 우리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민우라니…….
그건 그냥, 꿈이었을지도 몰랐다.
일종의 데자뷰 같은 우연한 꿈.
“죄송해요. 저희 어머니가 괜한 말씀을 해서.”
편의점 주인은 노파를 말렸다.
“아뇨. 괜찮아요.”
퍼뜩 정신이 든 것처럼 아득했던 우리의 정신이 돌아왔다.
‘인연은 무슨 인연이야.’
우리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붉은 실이니 귀신이니.
말도 되지 않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는 편의점 주인을 봤다.
진지하게 귀담아들었던 노파의 말을 그대로 털어버렸다.
괜히 마음만 찝찝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우리는 편의점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편의점을 나섰다.
칼바람이 사위에서 불어왔다.
우리는 몸을 움츠렸다. 누군가 뒤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만히 뒤를 바라보던 노파의 말과 행동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아…… 으스스하네.”
주위를 둘러보던 우리가 급히 아파트로 걸어갔다.
몰아치는 바람에 발이 얼어붙을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사실은 그냥, 무서웠다.
정말 민우가 있을 것만 같아서.
억지로 붙잡았다는 그 인연이 꿈속에서 봤던 건우일지도 모를 것 같아서.
“춥네. 추워.”
괜스레 큰소리로 말하면서 우리는 아파트로 들어섰다.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 서서는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순간이었다.
“고우리씨.”
낮은 목소리에 우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차장님.”
“놀랐습니까.”
“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까딱했으면 욕도 했을지도 몰라요.”
우리는 떨리는 마음을 붙잡으면서 말했다.
놀란 마음은 쉬이 진정될 줄을 몰랐다.
우리가 내뱉은 숨의 끝자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미안합니다.”
“사과는 받을게요. 진짜 놀랐어요.”
“반가워서.”
건우가 변명처럼 말했다.
“우선은 들어갑시다.”
건우는 자연스럽게 제 집 비밀번호를 눌렀다.
닫혔던 공동현관의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이 시간에 바깥에는 무슨 일입니까.”
“컵라면 좀 사왔어요. 출장의 필수품이라서.”
우리가 컵라면을 흔들면서 말했다.
“잘됐습니다.”
“뭐가요.”
“야밤이라 고우리씨 불러내기도 어려울 것 같았는데.”
“저요? 왜…….”
우리의 물음에 건우가 들고 있던 종이백을 내밀었다.
“받아요.”
“뭐예요?”
“출장 선물입니다. 잘 다녀오라고.”
우리는 얼결에 종이백을 받아들었다.
열린 입구로 슬몃슬몃 보이는 생소한 물건에 우리는 손을 내뻗었다.
건우의 선물은 신기하기만 했다.
검은색 작은 스프레이, 단단한 삼단봉, 하트 모양의 열쇠고리…….
전부 집에 없는 물건이었다.
“이거는…….”
우리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스프레이를 꺼냈다.
“누르면 큰일 납니다.”
건우는 스프레이를 누르려던 우리의 손목을 잡았다.
“호신용 스프레입니다. 최루액이라 따끔할 거라고 하더군요.”
“향수일 줄 알았는데.”
우리는 놀란 얼굴로 스프레이를 살폈다.
호신용 스프레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핸드백에 들어갈 만큼 잘 빠졌기 때문이었다.
외관도 꽤 모던했고.
“전기 충격기는 배터리만 분리하면 수화물에 부칠 수 있을 겁니다.”
“이거는 뭐예요?”
우리가 하트 모양의 열쇠고리를 들면서 물었다.
“경보기랍니다. 버튼만 누르면 된답니다.”
“아…….”
“삼단봉은 고리에 손만 넣고 휘두르면 되고.”
건우는 명강의라도 펼치는 것처럼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호신용품의 총집합이었다.
우리는 호신용품을 전부 장착한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상상만으로도 21세기의 전사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것이었다.
“차장님. 저 출장 가는 건 아시는 거죠?”
“문제라도 있습니까.”
“출장 선물까지 주시고 감사드리기는 하는데……. 출장보다는 훈련소 가는 길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우리는 묵직한 종이백을 들고는 말했다.
“걱정돼서.”
건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두둑하게 호신용품을 챙겨주어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덜렁 우리만 출장길에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갑작스럽게 꿨던 악몽도 건우를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위험한 개울가에 내보내는 기분이었다.
과한 걱정이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불안함만이 건우를 집어삼켰다.
평소에 상관하지도 않았던 걱정이 건우를 괴롭혔다.
게다가 포털사이트에 뜨는 뉴스 중에 도쿄라는 말만 보여도 건우는 눈길이 갔다.
[도쿄 지진 가능성 70%…… 지진예측지도에 나와]
[도쿄서 20대 男 길거리 묻지마 폭행]
집요하게 도쿄를 검색하던 건우의 시름은 깊어져갔다.
밤길, 날씨, 사람…….
떨칠 수 없는 걱정이 건우의 마음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우리가 한국으로 올 때까지 건우는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야말로 노심초사의 향연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일본이 치안은 정말 좋거든요.”
“그래도.”
“걱정하시지 않게 잘 다녀올게요. 선물도 잘 들고요.”
우리는 스프레이를 뿌리는 시늉을 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느릿하게 내려오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춰 섰다.
싱글벙글거리면서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먼저 올라탔다.
“차장님.”
“아…… 예.”
우리의 부름에 건우도 엘리베이터에 탔다.
“미리 둘 다 눌러놨습니다.”
우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15층과 16층.
두 개의 층에 나란히 빨갛게 변해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은 서서히 닫혔다.
단 둘만 있는 공간.
조용한 엘리베이터에서 건우는 우리를 봤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바로 연락해요.”
건우의 말에 우리도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바로 달려갈 테니까.”
나직한 건우의 말이 우리를 든든하게 만들었다.
엘리베이터의 공기는 금세 훗훗해졌다.
“네.”
미소를 머금은 우리가 알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사람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쉬지 않고 빠르게.
점점 올라가고 있는 두 사람의 심박수처럼.
그렇게.
***
도쿄로 가는 비행기가 하늘을 날았다.
우리는 둥근 비행기의 창으로 밖을 바라봤다.
목화솜처럼 보드라운 구름이 하늘을 휘감고 있었다.
천둥도 먹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맑고도 깨끗한 하늘이었다.
우리는 새벽부터 날아온 건우의 메시지를 봤다.
-전부 다 조심하고. 잘 갔다가 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한국에서.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요.
연달아 도착한 메시지였다.
이모티콘도 없었고 덜렁 글씨만 있었다.
평소라면 건조하게만 느껴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대화창을 가득 채운 건우의 메시지가 우리는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건우의 메시지를 보던 우리는 바람 빠지듯 푹, 미소를 흘렸다.
-딸!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 알지?
조심을 강조하는 미순의 메시지와 똑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보면 이민이라도 가는 줄 알겠네.”
미소를 흘리던 우리는 가방에 핸드폰을 넣었다.
조그마한 미스트를 건조한 얼굴에 뿌리고는 손을 풀었다.
귀를 멍하게 만드는 기내에서 소설의 뒤편을 열심히 써내려갔다.
느려지는 연재주기를 복구 시키려는 몸부림이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기내를 물들였다.
한참 잘 날아가던 비행기가 흔들렸다.
테이블에 있던 물이 요동쳤다.
우리는 재빨리 물을 마시고는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호텔에 도착하면 다음 편을 건우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그냥 연락하기는 좀 그렇고…….’
소설을 빌미로 연락의 물꼬라도 틀 생각이었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하겠습니다.”
소설을 마무리 짓던 우리의 귓가에 안내방송이 들렸다.
경쾌하게 마침표가 찍혔다.
우리는 한결 가벼운 기분으로 노트북을 껐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췄고 곧, 활주로에 착륙했다.
바닥과 맞닿은 기체가 심하게 흔들거렸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 좌석벨트 사인이 꺼질 때까지…….”
안내방송이 다시 흘렀다.
한참 활주로를 돌던 비행기가 멈췄다.
좌석벨트 사인이 꺼지고 우리는 짐을 들고 비행기를 나섰다.
분주한 인파 속에서 우리도 섞여들었다.
수속을 끝낸 우리가 캐리어를 끌고 나리타 공항을 나섰다.
도쿄는 따뜻했다.
한국에서의 맹추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는 리무진 버스를 탔다.
일본 유통사에서 호텔을 신주쿠 쪽에 잡아뒀기 때문이었다.
파크 하얏트 도쿄 호텔.
호텔은 모던하고도 클래식했다.
베이커리에서 풍기는 빵 냄새에 우리는 침이 고였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한 우리가 초코 쿠키 하나를 사들고 리셉션으로 향했다.
군데군데 박힌 초콜릿이 달콤하게 우리의 입안을 적셨다.
“초코가 진해서 좋네. 차장님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
우리가 남은 쿠키 하나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군것질거리로 가득 찬 봉지를 내밀었던 건우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건우라면 정말 좋아할 것 같았다.
우리는 건우가 달달한 간식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갈 때 왕창 사가야겠다.”
우리는 남은 쿠키를 가방에 넣었다.
한국으로 가는 길에 초코쿠키를 대량으로 살 생각이었다.
고소하고도 달달한 쿠키의 맛을 건우에게 꼭 맛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좋아할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벙글 미소를 머금고는 리셉션 데스크로 걸어갔다.
“체크인하겠습니다.”
일본어로 능숙하게 체크인을 끝낸 우리가 방 키를 받았다.
4905호.
우리는 방으로 들어섰다.
말끔하게 정리된 방의 한 쪽에는 도쿄의 전경이 한 눈에 보였다.
캐리어를 한 쪽에 둔 우리가 책상에 앉았다.
햇빛이 따사롭게 방 안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우리는 도쿄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빼곡한 건물들이 꽤, 장관이었다.
탁 트인 전경을 건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미니바 위에 있던 생수를 마시면서 건우에게 메시지를 작성했다.
-일본 도착했습니다. 날씨도 좋고, 호텔도 좋아요.
-아…… 호텔에서 찍은 전경도 보여드려요.
메시지를 보내려던 우리의 손이 멈췄다.
“아니. 무슨 이렇게 구구절절이야.”
우리는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보고만 하자. 보고만.”
우리는 다정스럽게 썼던 말을 모조리 지웠다.
-일본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작성한 메시지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일본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턱을 괴고는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을 노려봤다.
“아……!”
꽉 막혔던 뇌리를 스치고 소설이 생각났다.
비행기에서 열심히 작성했던 10화.
우리는 노트북에 있던 소설을 재빨리 핸드폰으로 옮겼다.
-차장님. 10화 보내드립니다.
우리는 최대한 사무적인 말투로 소설과 메시지를 날렸다.
건우에게서는 별다른 답장이 없었다.
1초, 2초…….
고 짧은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짐을 풀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오직 핸드폰만 바라봤다.
“아니. 뭐야. 읽었는데 왜 답장이 없는 건데.”
우리는 대답 없는 핸드폰을 흔들어댔다.
-일본은 잘 도착했습니까.
한참 초조하게 방을 어슬렁거리던 우리가 재빨리 핸드폰을 낚아챘다.
시무룩하던 표정도 어느새 밝아져있었다.
-네. 방금 도착했습니다.
-점심은 먹었습니까.
-아야상하고 먹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메시지가 날아갔다.
누구보다 빠르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우리의 핸드폰은 금방 조용해졌다.
몇 번의 답을 끝으로 건우에게서는 메시지가 날아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쁜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괜스레 실망했다.
“허! 읽고 씹었네. 뭐야. 나도 바쁘거든요!”
건우가 얄밉게도 느껴졌다.
공연스레 핸드폰을 보고 빈정거리던 우리가 일본 유통사 담당자 아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야씨. HJ그룹 F&B본부 마케팅팀 고우리입니다.”
우리는 능숙한 일본어로 말을 꺼냈다.
-도착하셨나요?
“네. 방금 도착했습니다.”
-그럼 바로 호텔로 가겠습니다.
“천천히 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우리는 캐리어를 열었다.
옷들 속에 묻혀있던 파우치를 꺼냈다.
무너진 화장을 수정하면서도 우리의 시선은 핸드폰에 향해있었다.
[강차장님]
건우와의 대화창을 눌러봐도 건우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인간적으로 대답은 해줘야지.”
흥분한 얼굴로 우리는 세차게 파우더 쿠션을 두드려댔다.
얼굴을 때리는 것처럼.
아주 힘차게.
“동료애라도 이러지는 않겠네.”
우리는 핸드폰만 노려보고 있느라 볼이 약간 빨개진 것도 몰랐다.
핸드폰을 보지 않겠다는 것처럼 우리는 멀찍이 핸드폰을 밀었다.
“……!”
하지만 핸드폰이 울리는 순간.
우리는 공을 잡는 선수처럼 날쌔게 핸드폰을 낚아챘다.
-도착했습니다.
아야의 메시지였다.
실망한 얼굴로 캐리어를 연 우리의 손이 멈췄다.
건우가 선물했던 호신용품이 잔뜩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호신용품은 무슨.”
우리는 호신용품을 향해 불끈 주먹을 내밀었다.
-가끔 연락 줘요. 조심하고.
우리가 방을 나서려던 순간.
절묘한 타이밍에 건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퉁명스럽던 우리의 얼굴이 대번에 풀어졌다.
“사람 성의가 있으니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들먹거리면서 우리는 캐리어에 있던 호신용품 몇 개를 핸드백에 담았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호텔을 나선 우리를 아야가 반갑게 반겼다.
“이쪽은 저희 새 팀장님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우리입니다.”
우리는 새 팀장과 능숙하게 일본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세 사람은 간단하게 덮밥을 먹고 주요 매장들을 돌아다녔다.
편의점부터 마트까지.
우리는 음료의 진열 상태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초기 전투적인 판매 전략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시음 프로모션 등을 통해 제품은 안정적으로 일본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 음료는 뭐예요?”
우리가 품절이 적힌 음료 칸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요새 인기 많은 음료입니다.”
일본의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는 음료를 우리는 어렵사리 구매했다.
시장조사와 프레젠테이션, 회의까지.
눈코 뜰 새 없던 이틀이었다.
출장의 마지막 밤.
지친 몸을 끌고 호텔에 들어온 우리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구두로 혹사당한 발은 화끈거렸고 배는 출출하기만 했다.
“사케…… 생맥주…….”
피로를 풀어줄 술이 눈앞을 맴돌았다.
우리는 꼬치와 함께 가볍게 술을 한잔 하기로 했다.
내일까지는 자유일정을 즐길 계획이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호텔을 나섰다.
왁자지껄한 거리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섰다.
붉은 가로등이 거리를 밝혔다.
골목을 빼곡하게 채운 가게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살짝 불어오는 훈훈한 바람에 벚꽃이 흔들렸다.
달빛에 물든 벚꽃은 연한 분홍 빛깔을 뽐냈다.
“엄청 예쁘네.”
감탄하듯 말하던 우리가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달달한 향기를 흩뿌리는 벚꽃에 취한 것만 같았다.
하늘을 향해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마저도 그림처럼 예뻤다.
-벚꽃 예쁘죠. 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건우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던 우리의 손은 멈추었다.
“왜 이러는 거야. 좋아할 것 같기는 개뿔!”
우리는 썼던 글자를 몽땅 지워버렸다.
-소설에 들어갈 벚꽃입니다.
딱딱한 보고를 하는 어조로 메시지를 쓴 우리가 사진을 날렸다.
건우에게 벚꽃 사진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가벼운 걸음으로 선술집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주방장이 반갑게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주방장을 마주하고 앉았다.
기다란 바에 앉아 우리는 신중하게 메뉴를 골랐다.
모래주머니와 닭 심장 꼬치.
거기에 생맥주까지 시원스럽게 주문했다.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제법 경건하게 꼬치를 기다리던 우리가 맥주를 들이켰다.
맥주의 고소한 기운에 취한 우리가 팔꿈치로 옆 사람을 잘못 쳤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우리가 다시 꼬치에 열중하려던 순간이었다.
“일본어 할 줄 아세요?”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건우의 답이 돌아오지 않는 핸드폰을 바라보던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가느다란 눈썹에 뾰족하게 머리를 세운 남자가 의자를 끌면서 우리에게 다가섰다.
“한국사람? 혼자 왔어요?”
남자가 우리에게 바짝 붙었다.
찝찝한 기운이 스멀스멀 우리를 적셨다.
이 사람…… 대체 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