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화. 코끼리의 고백
건우가 냉랭한 눈빛으로 맞선 상대를 봤다.
건우에게 음흉한 현장을 들킨 것만 같아 맞선 상대는 괜히 헛기침만 해댔다.
“여기서 뭐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로 시선을 돌린 건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물었다.
“제가 말씀을…….”
“우리 아직 할 이야기가 더 남아있던 것 같은데.”
건우는 능청스럽게 와이셔츠를 잡았다.
우리와 맞선 상대의 시선은 일제히 건우의 와이셔츠로 향했다.
정확히는 건우의 와이셔츠를 물들인 밝고 붉은 립스틱 흔적에.
시선을 사로잡기에는 그보다 강력한 자국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를…….”
“깊은 대화.”
나직한 건우의 목소리가 진하게 번져나갔다.
깊다, 대화.
둘 다 야한 말은 아니었다.
일상적인 그 말이 유난히도 야릇해 보이는 이유는 고혹적인 건우의 눈빛 때문일지도 몰랐다.
립스틱 흔적을 펄럭거리면서 대화를 논하다니…….
건우의 말에 우리는 망부석처럼 굳어버렸다.
“얼추 식사는 끝난 것 같고.”
“…….”
“그리 생산적인 대화도 없고.”
입을 벌리고 있던 우리가 꿀꺽 침을 삼키면서 건우를 봤다.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불편한 맞선 상대와의 힘든 사투로 우리도 지쳐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우의 등장을 묻는 일은 탈출을 성공한 이후에 물어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고우리씨.”
조곤조곤한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를 잡아끌었다.
“우리 남은 대화나 좀 더 하죠.”
건우의 말에 우리는 코트를 만지작거렸다.
달달하고도 매혹적인 건우의 눈빛에 그대로 홀려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건우의 입술을 비집고 색기 넘치는 미소가 흘렀다.
사막의 바람만큼 건조하고도 차가웠던 모습은 흔적조차 없어진 것만 같았다.
“아주 깊고.”
우리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생산적인 대화.”
건우의 말은 손등에 떨어진 눈처럼 녹아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건우의 말은 삽시간에 우리에게 젖어 들었다.
코트를 잡은 우리가 굳게 입을 다문 채로 맞선 상대를 쳐다봤다.
훤칠하고도 훈훈한 건우의 등장에 맞선 상대는 전투력을 상실한 얼굴이었다.
“지금 당장 갔으면 하는데.”
“당장이요?”
건우에게로 시선을 돌린 우리가 되물었다.
“예.”
일말의 주춤거림도 없는 대답이었다.
열기를 품은 눈길은 우리를 채근하고 있었다.
묵직한 침묵이 테이블에 눌어붙었다.
맞선 자리에서 달아났다고 미순에게 한소리를 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 것만 같았다.
“누구예요.”
입을 가린 채로 자신을 향해 속삭이듯 묻는 맞선 상대와 디저트까지 해치우는 건.
“내가 지금 꽤…….”
“…….”
“안달이 났거든요.”
검은 크레파스를 짓이긴 것처럼 새까만 건우의 눈동자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빈틈을 악착같이 비집고 들어오는 건우의 눈빛에 우리가 휘청거렸다.
건우는 블랙홀 같았다.
모든 별을 빨아들일 만큼 거대하고도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는 블랙홀.
우리와 건우의 눈빛이 끈덕지게 엉겨 붙었다.
건우의 눈빛에 홀린 우리는 쭈물거리던 코트를 들고는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날게요.”
우리가 약간 고개를 숙여 맞선 상대에게 인사를 날렸다.
“어디 가시게요.”
“좀 더 생산적인 대화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우리는 건우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럼 좋은 분 만나시길 바라겠습니다.”
우리의 인사에 맞선 상대는 알 수 없는 패배감에 몸서리쳤다.
우리는 파리하게 시든 맞선 상대를 등지고 테이블을 벗어났다.
“고우리씨!”
황망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던 맞선 상대가 힘차게 우리를 불러 세웠다.
우리가 무감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우리 계산은 공평하게 더치페이로 하는 거죠?”
맞선 상대는 테이블에 있는 접시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맞선 상대의 눈빛에서는 우리의 음식 값만은 절대로 내지 않겠다는 다부진 의지가 솟구쳤다.
“계산은 제가 하죠.”
헛웃음을 흘리던 건우가 건조하게 말했다.
맞선 상대를 보는 건우의 눈빛은 쌀알처럼 흩뿌려지는 싸라기눈처럼 차갑고도 따가웠다.
“정말입니까?”
건우의 말에 맞선 상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돈이 굳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난 얼굴이었다.
“물론입니다.”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깁니다?”
맞선 상대가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그러죠.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건이요?”
“오늘 선은 깔끔하게 끝난 걸로 하죠.”
건우의 말이 레스토랑을 휘돌았다.
단정하지만 날이 서 있는 목소리였다.
마른 침을 삼키는 건우의 목울대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건우는 간신히 참고 있었다.
맞선 상대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은 마음을.
노골적으로 우리를 훑던 눈길도.
날을 세우고 우리를 몰아쳤던 말도 모두 건우의 신경을 긁어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건우는 끓는 마음을 차갑게 식혔다.
미순이 직접 주선한 맞선이었다.
괜한 소란으로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서로 마음이 없었다.”
“…….”
“그게 가장 좋겠네.”
건우의 앞말에 힘을 주었다.
건우에게서 밀려오는 묘한 위압감에 맞선 상대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값비싼 저녁을 전부 계산해주겠다는데 그깟 거짓말 하나 못할까.
맞선 상대는 결코 건우의 분위기에 압도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럼 디저트까지 잘 드시고 가시죠.”
“예…… 뭐.”
“그리고 다시는 보지 맙시다. 피차 좋은 얼굴도 아닌데.”
건우의 말에 벙글거리던 맞선 상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맞선 상대의 몸은 잔뜩 움츠러든 것처럼 보였다.
“갑시다.”
“아…… 네.”
짐짓 멈췄던 두 사람의 걸음이 움직였다.
건우를 따라 걷던 우리가 카운터 앞에 멈춰 섰다.
“차장님!”
우리가 급히 카드를 내민 건우의 손목을 잡았다.
“계산은 제가 할게요.”
“됐습니다. 이걸로 해주시죠.”
“아뇨. 그거 말고 이걸로 해주세요.”
우리가 코트 안쪽에 있던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 전쟁의 서막이었다.
서로 계산을 하겠다는 두 사람 때문에 직원은 난처한 얼굴로 진땀을 빼고 있었다.
우리의 카드를 잡을 때는 건우가.
건우의 카드를 잡을 때는 우리가 으르렁거렸기 때문이었다.
“한 입으로 두말 할 수는 없죠.”
“아뇨. 두말 하셔도 돼요. 신세 지기도 싫고. 질 수도 없고요.”
“신세는 충분히 진 것 같은데……. 아닙니까.”
건우의 말에 우리의 말문이 막혔다.
별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건우가 아니었다면 맞선 상대와 무의미한 말다툼만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결제하겠습니다.”
우리가 잠깐 방심을 하던 찰나였다.
빈틈을 헤집고 직원이 날름 건우의 카드를 긁었다. 우리가 말릴 틈새도 없었다.
불편한 우리의 마음을 모르고 영수증이 쭉쭉, 나왔다.
카드를 받은 건우가 덤덤한 얼굴로 호텔을 나섰다.
“차장님.”
“말씀하시죠.”
호텔에 멈춰 선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봤다.
여전히 눈은 느릿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소복소복 내리는 눈이 앙상한 나무가 하얗게 물들었다.
은은한 호텔 불빛만이 두 사람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간간이 문이 열릴 때마다 온기가 번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통장번호만 불러주시면 지금 바로 입금할게요.”
“사양하겠습니다.”
“그럼…….”
고민하는 우리의 눈썹이 꼼지락거렸다.
“저녁이라도 대접하겠습니다.”
“잘됐네. 레스토랑 음식은 좀 부족해서 허기질 참이었는데.”
건우가 호텔을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맞선을 보는 우리에게 신경을 쓰느라 건우는 스파게티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었다.
우리의 말에 뒤늦은 허기가 밀려들었다.
“저녁,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사실은 저도 좀 부족했었거든요. 보기와 다르게 제가 대식가라.”
“그럴 것 같았습니다.”
건우의 대답에 우리는 가자미눈으로 건우를 흘겨봤다.
“농담입니다.”
우리의 눈빛에 눌린 건우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럼 저희 뭘 먹을까요.”
“고우리씨가 먹고 싶은 걸로 하죠.”
“정말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예. 크게 상관없습니다.”
건우의 덤덤한 말에 우리는 팔짱을 꼈다.
뭘 먹여야 잘 먹였다고 소문이 날까.
떨어지는 눈을 보던 우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수십 가지의 음식들이 우리의 머릿속을 돌았다.
여러 음식을 떠올리던 우리의 머릿속에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곱창이 떠올랐다.
쫀득한 곱창에 차가운 맥주가 우리를 당겼다.
절로 군침이 돌았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맥주라면 건우와의 어색한 기류도 단숨에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곱창은 어떠세요. 눈도 오고. 마침 근처에 잘 아는 맛집도 있거든요.”
“그럽시다.”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건우는 우리의 제안을 수락했다.
건우는 곱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먹고 싶은 음식이라면 철근이라도 씹어댈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눈이 내리는 거리로 발을 내딛었다.
건우가 소가죽으로 된 서류가방을 열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우산이 나왔다.
우리가 필요하기라도 할까.
편의점에서 급하게 구입한 우산이었다.
건우가 우산을 펼쳤다.
짙은 남색의 우산 위로 새하얀 눈이 떨어졌다.
“계속 눈 맞고 있을 생각입니까.”
건우가 우산을 약간 우리에게 기울이면서 물었다.
“같이 씁시다.”
“그럼……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
거세지는 눈발에 우리도 결국 백기를 들었다.
화장이 지워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슬금슬금 건우의 우산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작은 바람에 눈꽃이 흩날렸다.
가로등 불빛은 포슬거리는 눈에 부딪혀 수채화처럼 번졌다.
사부작거리는 발소리가 소리 없이 흘렀다.
깨끗한 눈길에 두 사람의 발자국만 선명하게 남았다.
좁은 우산 속.
열기를 품은 두 사람의 입김만이 우산 속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젖었습니다.”
“네…… 네?”
건우의 말에 우리는 화들짝 놀랐다.
뭐가 젖어.
왜 도발하는 건데!
“……거기.”
짐짓 다가서는 건우의 몸놀림에 우리가 뒤로 몸을 기울였다.
“어깨 말입니다.”
“아…… 그죠! 어깨! 젖었네요.”
우리가 과장된 웃음을 터뜨렸다.
자연스럽던 걸음이 유난히도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강차장님을 상대로 나쁜 상상을 해버리다니……. 고우리, 완전 미쳤냐!’
우리는 쥐구멍이라도 숨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축축한 우리의 어깨가 마음에 걸렸던 건우는 우리 쪽으로 우산을 완전 기울였다.
건우가 회색 코트가 눈에 젖어 진해져갔다.
“저쪽이에요. 되게 유명하거든요.”
남아있던 민망한 기운을 털어내면서 우리는 곱창 가게를 가리켰다.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폴폴 쏟아지는 연기를 보던 우리의 걸음이 빨라졌다.
덩달아, 건우의 걸음도 빨라졌다.
두 사람이 걸을 때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두 사람을 물들였다.
눈발을 헤치면서 두 사람은 가게로 들어섰다.
건우가 우산을 털어냈다.
우산살이 지탱하던 눈은 묵직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소한 냄새가 입구부터 두 사람의 코끝을 찔렀다.
“몇 분이세요?”
“두 명이요.”
직원을 따라서 두 사람은 한쪽에 앉았다.
동그란 테이블에 두 사람은 도란도란 둘러앉았다.
“저희 모둠곱창으로 2인분 주세요.”
“술은 필요 없으시고요?”
“맥주…… 괜찮으세요?”
건우는 괜찮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맥주도 한 병 주세요.”
직원은 손바닥만 한 계산서에 주문 내용을 체크했다.
맥주와 함께 밑반찬이 올려졌다.
우리는 양념된 부추를 날름 집어먹었다.
느끼했던 스테이크 기운이 단박에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직원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불판을 올렸다.
“잠깐…… 여기 있다.”
평온한 얼굴로 빙글 미소를 지은 우리가 테이블 아래를 더듬거렸다.
테이블 아래에 있던 홈에서 커다란 봉지를 꺼냈다.
“짐 주세요.”
우리가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건우의 코트와 가방을 커다란 봉지에 넣었다.
야무지게 봉지를 묶은 우리가 건우에게 앞치마를 내밀었다.
“됐습니다.”
“다 차장님을 위해서예요.”
채근하듯 우리가 앞치마를 흔들어댔다.
건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들 짙은 남색의 앞치마를 단체티라도 되는 것처럼 두르고 있었다.
건우는 떠밀리듯 앞치마를 받아들었다.
[코끼리 곱창]
건우의 가슴팍에 곱창 가게의 상호가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코끼리 곱창.
우리는 가게의 이름이 건우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웃음을 참는 우리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잘 어울리시네요.”
“놀리지 말죠.”
“진심인데.”
“알겠습니다. 진심으로 알아들어보죠.”
건우는 탐구라도 하듯 앞치마를 뒤적거렸다.
얇은 앞치마는 힘없이 건우의 손길에 펄럭거렸다.
잘 어울린다니…….
우리의 말을 믿고 앞치마를 바짝 두른 건우가 테이블을 봤다.
쫄깃한 염통부터 도톰한 곱창까지 가지런히 불판에 놓여졌다.
고소한 기름이 불판 중앙에 모였다.
지글지글거리는 소리가 맛있게 번졌다.
우리는 시원하게 맥주병을 땄다.
능숙한 우리의 손놀림에 두 개의 잔에 맥주가 가득 채워졌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차장님.”
우리는 건배사라도 하는 것처럼 진지한 얼굴로 잔을 들고는 말했다.
“별말씀을.”
두 사람의 잔이 부딪혔다.
맥주가 우리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차가운 맥주를 삼킨 우리는 염통을 쌈장에 찍었다.
양념과 쫄깃함이 우리의 입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도 뒤따라 쌈장에 염통을 콕, 찍었다.
“맛있네.”
어색한 손길로 염통을 입에 넣은 건우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쫄깃함이 제법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매콤한 부추가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놀랄 만큼 쫀득함과 매콤함의 밸런스를 맞추는 곱창의 매력에 건우는 푹, 빠진 얼굴이었다.
“차장님.”
곱이 꽉 들어찬 곱창을 든 우리가 맹렬하게 모둠곱창을 비워내는 건우를 불렀다.
“근데요. 방심한다던 사람. 그거 혹시…… 전가요?”
갑작스럽게 날아든 돌직구였다.
“예.”
건우는 놀란 기색도 없이 즉각 대답했다.
곱창에 열중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봤다.
고소한 곱창 냄새만이 적막을 가득 메웠다.
“그러니까 절 잡으러 오셨다고요?”
“예.”
건우는 맥주로 목을 축였다.
“왜요? 왜 호텔까지…….”
“좋아해서.”
빈 잔을 내려놓은 건우가 무심히 말했다.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합니까.”
맥주 거품이 건우의 잔의 표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모든 것이 움직이는 순간에도 건우는 흔들림이 없었다.
건우의 숨은 멈춘 것처럼 보였다.
거대한 활을 들고 과녁을 겨냥할 때처럼.
비장하고도 곧은 눈빛으로 우리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농담을 이리 진지하게 하세요.”
우리가 너털웃음을 쳤다. 순간 성민의 얼굴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무슨 놈의 진짜 고백…….
비릿하게 솟구치는 쓴 마음을 누르면서 우리는 맥주를 들이켰다.
“진심입니다.”
우리가 길쭉한 곱창을 문 채로 건우를 봤다.
“좋아한다는 말.”
건우의 말은 분명하고도 선명했다.
건우는 그냥, 어물쩍거리면서 넘기고 싶지 않았다.
괴괴한 적막만이 테이블을 에돌았다.
“그래서 질투 났습니다.”
“……?”
“유치하지만. 그 맞선 상대한테.”
건우의 말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고.”
건우는 활을 당긴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가버릴 것만 같아서.”
화살은 날아갈 수밖에 없었던 걸지도 몰랐다.
호텔에 찾아온 순간부터.
“그냥, 좋아합니다.”
탕.
건우는 팽팽히 잡아당겼던 줄을 놓은 기분이었다.
건우의 마음을 품은 화살은 우리에게로 곧게 날아가고 있었다.
“……당신의 전부를.”
그리고 그 진심은 우리를 정확히 비집고 들어갔다.
“가짜 연애를 제의하시는 거라면…….”
“난 가짜 연애를 제안한 적 없습니다.”
건우는 부드럽게 우리의 말허리를 잘랐다.
“……!”
“물론 연애, 제의하는 중이기는 했죠.”
옅은 미소가 조용히 건우의 입가에 걸렸다.
그 미소는 우리의 모든 시간을 멈추게 만들었다.
진심이었다.
맙소사! 정말로 진심이다.
우리의 입에 있던 곱창이 테이블 위로 힘없이 툭, 떨어졌다.
“가짜 말고 진짜 연애.”
“……네?”
달궈진 불판 때문일까.
우리의 얼굴이 빨개졌다.
쿵쾅쿵쾅.
심장도 멈출 생각도 없이 빠르게 뛰었다.
“우리 연애합시다.”
건우의 말에 모든 것들이 오작동하고 있었다.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