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19화 (19/102)

제 19화. 와이셔츠에 립스틱 흔적을 품은 남자

우리의 눈앞에 성민의 얼굴이 또렷하게 생각났다.

우리는 바람이 새듯 헛웃음을 쳤다.

“아니. 출판사가 얼마나 바쁜데…… 어? 무슨 밥을 여기까지 와서 먹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우리는 테이블에 널브러진 종이를 모았다.

거친 우리의 손길에 종이는 맥없이 구겨졌다.

회의실을 나선 황주임과 선영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주린 배를 붙잡고는 우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리님. 저희 식사 가시죠.”

황주임의 말에 세 사람은 사무실을 나섰다.

구내식당으로 향하던 우리는 회사를 나서는 건우를 발견했다.

두툼한 코트까지 말끔하게 차려입은 건우의 곁에는 성민이 있었다.

건우에게 연신 장난을 거는 성민 때문인지 두 사람에게서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도는 것만 같았다.

“와…… 강차장님 지인분도 잘생기셨네요.”

황주임은 훤칠한 두 남자의 모습에 감탄하면서 말했다.

“잘생기기는 무슨.”

“잘생기셨는데요. 역시 잘생긴 사람 옆에는 잘생긴 사람이 있다더니.”

두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는 심술이 난 얼굴이었다.

스스로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지만.

“꼭, 바둑알처럼 생겨서는.”

날카로운 말이 우리의 입에서 툭, 뛰쳐나왔다.

황주임과 선영은 서로를 쳐다봤다.

우리의 비유에는 조금도 동조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얼른 점심이나 먹자고.”

우리는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숙취가 도는 것처럼 속만 쓰렸기 때문이었다.

“배 좀 든든하게 채워야지.”

굳세고 야무진 우리의 말에 황주임과 선영은 묘한 한기를 느꼈다.

구내식당에 도착한 우리는 정말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는데 열중했다.

내일 당장 적진으로 돌진하려는 용맹한 병사처럼 보였다.

우리와 함께 덩달아 전투적으로 식사를 마친 황주임과 선영은 우리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우리에게서 쏟아지는 한기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쓴 커피를 빨대로 쪽쪽 빨아대고 있는 눈빛은 살쾡이처럼 살벌하게 빛났다.

“분위기 좀 이상하지 않아?”

황주임이 선영의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물었다.

“기분 탓 아닐까요.”

“회의실에서 분명히, 있었어. 한 판 하셨나?”

“되게 조용했는데…….”

“신입이라 뭘 모르네. 원래 고수들의 싸움은 고요한 법이야.”

황주임은 선영에게 비밀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속닥거렸다.

우리의 눈치만 살살 살피면서 세 사람은 사무실로 돌아왔다.

우리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모니터를 노려봤다.

화기애애한 얼굴로 회사를 나서던 건우와 성민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네가 찾아오면 내가 견딜 수가 없잖아.’

‘그런 거 몰라. 너하고 있고 싶단 말이야.’

‘한성민.’

‘건우야.’

애절한 두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던 우리가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불순한 상상은 모조리 조각내고 말겠다는 얼굴이었다.

‘회사까지 와서 데이트라니…….’

우리는 송곳니로 잘근잘근 빨대를 씹어댔다.

“신입. 오늘 몸 좀 사려. 고똘이 돌면 말릴 수가 없어요.”

황주임은 선영에게 금기 사항을 일러주었다.

시베리아 벌판을 능가하는 냉기에 선영도 대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망할 놈의 커플들!’

키보드를 두드리는 우리의 손은 사납기만 했다.

다다닥!

금방이라도 키보드는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

길게만 느껴졌던 점심시간이 끝났다.

건우는 칼같이 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들어섰다.

우리는 사무실을 둘러보는 척 무심하게 시선을 내던지면서 사무실을 살폈다.

늘 정갈하던 건우의 회색 넥타이가 흐트러져있었다.

흰 도트가 군데군데 박혀있는 넥타이에 꽂힌 넥타이핀도 덩달아 균형을 잃었다.

우리는 건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끌어내리고 흐트러진 넥타이에 많은 의미와 상상을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대리님,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없는데요.”

건우의 말에 흠칫 놀란 우리가 분주하게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불타는 낮이라니…… 말도 안 돼!’

우리는 끝없이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를 눌렀지만, 헝클어진 건우의 넥타이가 계속 눈에 밟혔다.

의미도 없이 키보드를 쳐대던 우리의 손길이 멈추었다.

넥타이…….

넥타이!

넥타이!!!

엑셀 시트에는 온통 넥타이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화들짝 놀란 우리가 재빨리 넥타이라는 말을 지웠다.

벌렁거리는 마음을 잡는 우리는 덤덤한 건우의 모습에 심술이 났다.

왜 뿔이 났는지는 결코 알지 못했다.

콧김만 내뿜던 우리의 전화가 시끄럽게 울었다.

“감사합니다. HJ F&B본부 마케팅1팀 고우립니다.”

-저예요.

사무적인 우리의 말을 뚫고 익숙한 목소리가 스몄다.

“누구시죠.”

-잘 알면서. 성운백화점 마케팅팀 성문규입니다. 고. 대. 리. 님.

문규가 뒷말에 힘을 주었다.

-제 번호는 아예 수신 차단하신 것 같더라고요.

“예. 잘못됐나요.”

-한참 잘못하셨죠. 이번 프로젝트도 같이 하는데 연락은 잘 돼야죠.

문규가 비꼬듯 말했다.

성운백화점과의 프로젝트가 성사된 것이었다.

구질구질한 관계가 당분간은 이어질 거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피할 수 없다면 덤덤하게 맞서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러게요. 연락은 해야죠. 근데 꼭 개인번호가 필요한가요. 퇴근 이후에 업무 요청은 반갑지가 않아서요.”

-급할 일이 생겨도 메일만 날리라는 소립니까.

“그럼 저희 팀장님께 연락 주세요.”

두 사람은 정중한 말투로 으르렁거렸다.

-고우리.

화를 참지 못한 문규가 작게 말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 속삭이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명함에 있는 메일주소로 메일 주세요.”

-정말 이럴 거야? 일단 대화 좀…….

“그럼 메일 주세요.”

문규의 말을 자른 우리가 힘차게 수화기를 내려놨다.

프로젝트만 끝나면 문규와는 정말, 완전히 끝이었다.

고작 2개월이었다.

만날 일도 많지는 않을 것이었다.

우리는 프로젝트가 성사됐다는 소식만 건우에게 알리고는 일에 집중했다.

***

시간이 지날수록 하늘빛은 더욱 어둑해졌다.

까맣던 하늘이 기어코 일을 냈다.

솜처럼 하얀 눈송이가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7시.

눈길에 차라도 막힐까.

사람들은 퇴근을 서둘렀다.

듬성듬성 남은 직원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미치겠네. 진짜…….”

뒤늦게 전달받은 영업 자료를 정리하던 우리에게서 한숨이 흘렀다.

우리는 초조한 기색이 가득했다.

동대문을 가려면 당장 출발을 해도 늦을 것만 같았다.

헐레벌떡 달려야 간신히 호텔로 들어설 수 있을지도 몰랐다.

-죄송해요. 제가 일 때문에 지금 출발해서 늦을 것 같은데…….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우리는 맞선 상대에게 서둘러 메시지를 보냈다.

-네.

맞선 상대의 답은 짤막했다.

그 답에 조급해진 우리가 노트북을 챙겼다.

차라리 집에 일을 가져가서 새벽에 일을 끝내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울 코트를 입고는 가방을 들었다.

‘어디 가셨나.’

비어있는 건우의 자리를 살폈다.

급한 일에 나중에 문자라도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우리는 퇴근 체크를 하고는 엘리베이터에 섰다.

우리가 시계를 봤다.

7시 반.

무작정 달리는 것만이 답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우리가 1층을 눌렀다.

천천히 닫히려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열렸다.

뭐야. 바쁜데. 누구냐!

“차장님?”

짜증스럽던 우리의 표정이 풀렸다.

건우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탔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건우를 보던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같이 퇴근하죠.”

“저는 약속이…….”

“아…… 나도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이……?”

우리의 말에 건우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진한 침묵이 엘리베이터를 휘돌았다.

“누굴 좀 잡으러 갑니다.”

건우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누굴…….”

우리가 말끝을 흐리면서 묻는 순간까지도 건우는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마치, 목표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있습니다.”

건우의 말이 느리게 녹아들었다.

건우는 잡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걸어가는 우리를.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가지 말라고.

다른 사람의 곁으로 다시 사라지지 말라고…….

“지금 굉장히…….”

“굉장히……?”

덤덤한 눈길을 가진 당신을.

그런 널, 잡고 싶다.

“방심하고 있는 사람.”

우리는 흔들림 없는 건우의 눈빛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건우의 모든 말이 성민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문이 열린다는 짤막한 소리와 함께 닫혔던 문이 열렸다.

“저희 내릴까요.”

우리는 열린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러죠.”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우리는 출입구를 나서면서 고개를 돌렸다.

건우의 말에 약간 마음이 휘청거렸던 것은 엘리베이터가 꽉, 막힌 폐쇄된 공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건우의 나지막한 마성의 목소리 때문일지도 몰랐다.

태생적으로 사내에게만 끌리는 건우가 다른 마음을 품었다고 생각하다니…….

우리는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헛웃음을 뱉으면서 회사를 나섰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은 굵어졌다.

“무슨 눈이…….”

우리는 끝없이 쏟아지는 눈을 바라봤다.

빛에 물든 눈은 노랗게도 변했다가 까맣게도 물들었다.

하늘을 보던 우리의 볼에 눈 한 송이가 떨어졌다.

온기를 품은 우리의 볼에 눈은 단숨에 녹았다.

“의외군요.”

“뭐가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대개 불편해서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죠. 불편하기는 하죠. 그래도…… 저는 좋아해요.”

계단을 내려가던 우리가 뒤를 돌았다.

사각사각 내리는 눈이 사위를 하얗게 물들였다.

우리를 보던 건우의 눈길이 흔들렸다.

역시, 절대로 놓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우리의 입가에 번진 해사한 미소를 붙잡고 싶었다.

“있던 불도 다 꺼질 것 같아서요.”

우리의 손등에 눈이 떨어졌다. 열기에 녹은 눈은 손등을 타고 흘렀다.

우리가 힘차게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갔다.

펄펄 내리는 눈을 바라보던 건우가 숨을 내뱉었다.

하얀 입김은 건우를 물들였다가 사라졌다.

“……있던 불도 다 꺼진다.”

건우는 우리의 말을 곱씹었다.

문득 어렴풋한 기억이 났다.

합동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던 애가 울면서 뱉었던 말이 선명하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비만 내렸어도…… 다 꺼졌을 텐데. 비 때문에…….’

손수건에 힘차게 코를 풀면서 중얼거리던 그 말이 생각났다.

참, 갑작스럽게도.

민우의 영정사진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건우는 연신 뒤를 돌아봤었다.

툭, 던져줬던 손수건을 조물거리는 그 애의 작은 손이 이상하게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다.

“차장님.”

“예.”

“제가 급해서…… 먼저 가겠습니다.”

덩그러니 서 있는 건우를 보면서 우리가 말했다.

“지금 나 버리는 겁니까.”

건우의 상처받은 눈길에 우리가 흠칫 놀랐다.

비를 맞고 아련하고도 촉촉한 눈빛을 날려대는 개처럼,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아니…… 제가 언제 버렸다고.”

“그냥 가겠다면서요.”

“그거야 약속에 늦을 것 같아서……. 차장님, 저 진짜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손목시계를 보던 우리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열심히 지하철이 달린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약속 시간을 절대로 맞출 수 없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짧은 인사를 끝으로 우리의 걸음이 빨라졌다.

“같이 갑시다.”

우리의 걸음만큼 건우의 걸음도 빨라졌다.

두 사람은 결국 나란히 지하철을 올라탔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건우는 여전히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잿빛 하늘은 여전히 눈을 쏟아내고 있었다.

지하철역을 나온 우리는 급히 호텔로 내달렸다.

은은한 조명으로 물든 로비를 지나서 레스토랑 입구에 섰다.

우리는 맞선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속 시간을 살짝 넘긴 탓에 초조한 얼굴이었다.

-도착하셨습니까.

“죄송해요. 열차가 중간에 계속 멈춰서…….”

-이쪽입니다.

맞선 상대가 손을 들었다.

식사도 시작하지 못한 유일한 테이블이었다.

우리가 급하게 맞선 상대에게 걸어갔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네.”

맞선 상대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약속 시간을 늦은 우리가 탐탁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코트를 의자에 걸면서 가방을 내려놨다.

“일단은 고르시죠.”

맞선 상대는 심드렁한 얼굴로 메뉴를 건넸다.

“C코스로 하겠습니다.”

“그럼 저도 C코스로 하죠.”

로브스터와 크림치즈가 얹어진 샐러드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별다른 대화가 없는 조용한 테이블에 우리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우리는 포크로 샐러드를 먹고는 뒤이어 나오는 수프를 먹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토마토 향만이 풍성하게 입안을 물들였다.

“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맛있어요. 스테이크도 맛있네요.”

우리는 잘 익은 스테이크를 한 입 먹으면서 말했다.

촉촉한 속살이 육즙을 뿜어냈다.

고기를 오물거리면서도 우리는 온갖 질문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말에는 보통 뭐하세요?”

“축구합니다.”

“아…… 축구.”

우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축구에는 크게 취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좋아하십니까.”

“네…… 뭐. 가끔 봐요.”

“가끔이라면 얼마나 본다는 말씀이신지.”

“뭐…… 일 년에 두어 번.”

“가끔 본다는 말보다는 거의 보지 않는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네요.”

스테이크를 썰던 맞선 상대가 우리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우리는 묘하게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스테이크를 먹는 우리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불편한 기운을 털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음식을 빨리 먹고 일어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우리씨는 주말에 보통 뭐하십니까.”

맞선 상대가 우리에게 사무적으로 물었다.

“책 봐요. 가끔 글도 쓰고요.”

“무슨 글이요?”

“그냥…… 뭐. 생각나는 것들 좀 써요.”

우리는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그다지 생산적인 일은 아니네요.”

맞선 상대는 심드렁하게 대꾸하면서 스테이크를 먹었다.

싸우기로 작정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톡, 쏘는 말에 우리의 미간이 좁혀졌다.

매너 없는 맞선 상대의 말에 속이 끓었다.

뻘건 육즙이 맞선 상대의 입술을 타고 흘렀다.

“생산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요.”

우리는 끓는 화를 누르면서 포크로 스테이크를 꾹 찔렀다.

“글 말고는 다른 취미는 없으십니까.”

“다른 취미라면?”

“왜 있잖습니까. 생산적인 일들.”

맞선 상대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기준에 맞는 신붓감을 찾을 요량인 것처럼 보였다.

“요리라든가 바느질이라든가.”

맞선 상대의 말이 우리의 속을 벅벅 긁었다.

우리는 스테이크 접시를 말끔하게 비웠다.

“요리는 잘하지 못하지만 잘 먹어요.”

우리는 포크를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맞선 상대는 우리의 말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본인이 바라던 조신하고 여성스러운 신붓감과는 거리가 멀어보였기 때문이었다.

“바느질도 못하지만 바느질에 솜씨 있는 분들은 잘 알고요.”

“…….”

“소개라도 해드릴까요.”

우리의 얼굴에 썩은 미소가 번졌다.

“됐습니다.”

맞선 상대는 헛기침을 내뱉고는 포크를 내려놨다.

우리에게 크게 한 방을 맞았다는 사실이 짜증스럽다는 얼굴이었다.

“결혼해도 일은 계속하실 생각입니까.”

“네. 열심히 해야죠.”

우리가 빙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살림만 하실 생각은……?”

“없습니다.”

맞선 상대가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말들의 연속이었다.

스테이크 접시가 치워지고 파스타가 나왔다.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서 먹는데도 우리는 이상하게 허기가 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취미는 글쓰기 하나?”

우리에게 흥미를 잃은 맞선 상대가 대강 물었다.

“아…… 야구 좋아해요. 펀치도 좋아하고요.”

“펀치요?”

“네. 펀치 기계 모르세요? 최근에 제가 최고점도 찍었거든요.”

우리는 뽐내듯 사진을 내밀었다.

맞선 상대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야구에 펀치까지…….

결혼하면 피곤해질 것만 같았다.

맞선 상대는 최고점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우리를 찬찬히 훑었다.

목 부분이 둥글게 파인 니트 사이로 가슴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흥미를 잃었던 맞선 상대가 입술을 쭉 아래로 내리면서 우리에게 다가섰다.

망친 맞선에서 하나라도 건져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음흉한 눈길로 맞선 상대는 우리에게 집중했다.

“고우리씨.”

사진을 뽐내던 우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강…… 차장님?”

놀라 벌어진 우리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재킷을 팔에 두른 채 건우는 테이블 옆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지옥에서 온 사자처럼 보였다.

건우의 와이셔츠 가슴팍에는 여전히 우리의 붉은 입술이 새겨져 있었다.

대단히,

또렷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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