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15화 (15/102)

제 15화. 동료애와 남녀 간의 애정 사이

문규의 협박에 우리의 얼굴이 굳었다.

입지나 규모 면에서 고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성운백화점을 버리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토끼가 진짜…….’

입술 안쪽의 살을 깨문 우리의 입술이 비틀렸다.

무시만으로는 문규의 술주정을 끝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차장님.”

“예.”

“죄송한데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건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법 심각한 얼굴로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완전 이별을 하고 말겠다는 다부진 걸음이었다.

오락실을 나선 우리가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영감님]

핸드폰에 새겨진 문규의 번호를 보던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회색빛 시멘트벽을 보면서 우리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우리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건조하게 이어지던 신호음이 끊겼다. 여전히 수화기 너머로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고대리님! 드디어 행차하셨네.

빈정대듯 말하는 문규의 혀는 꼬부라져 있었다.

지독한 술 냄새가 수화기를 타고 흐르는 것만 같았다.

-콜라보는…….

“맘대로 해.”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멋대로 하시라고요. 죽을 만들든, 밥을 만들든.”

우리는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감추면서 초강수를 날렸다.

문규가 정말 프로젝트를 죽사발로 만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슬며시 손톱을 깨물면서 우리는 문규의 답을 기다렸다.

침착해야만 했다. 이쪽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약점을 잡히기 쉬웠다.

우리의 입술을 바짝 말라 갔고 속은 까맣게 탔다.

침착함을 유지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애꿎은 코끝만 만졌다. 차가운 기운이 여린 손끝을 타고 번졌다.

-진짜로 확 엎는다니까?

“하라고.”

-이 기집애가!

“할 수 있으면 하세요.”

-할…… 할 수 있는데?

자신감 넘치던 문규의 목소리가 삐끗했다.

약간 흥분한 문규의 어투에 우리는 문규가 조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그마치 5년이었다.

문규를 알기에 충분했던 시간.

벽을 보던 우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문규가 프로젝트를 엎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일 것이었다.

상부 보고.

이미, 보고를 끝냈을 것이었다.

늘 진급에 목말라했으니 이번 프로젝트가 중요했겠지.

우리가 내민 제안서를 들고 잽싸게 상부에 보고했을 문규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무를 수는 있겠어? 보고 끝냈을 텐데.”

우리는 모든 상황을 간파했다는 것처럼 말했다.

-무르면 어쩔 거냐고.

“성주임이 그럴 짬밥이었던가.”

-너 이게 진짜…… 아오!

화난 문규의 목소리가 커졌다.

“성문규.”

-…….

“능력 없으면 있는 거라도 잘 받아먹어.”

-고우리!

“지저분하게 흘리지 말고.”

우리가 뒷말에 힘을 주었다. 씩씩거리는 소리 말고는 문규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문규의 말문이 꽉, 막혀버린 것이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꼭 무른다. 알겠냐. 무른다고!

문규가 소리를 내질렀다. 흐릿한 욕설도 들려왔다.

문규는 술기운에 모든 이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건 뭐…… 알아서 하시고.”

-야! 적당히 우습게 봐라. 봐주는 데도 한계가 있어.

“마찬가지야.”

-사귈 때부터 남자 개떡같이 알더니!

문규의 목소리가 커졌다. 문규를 말리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하지만 아무도 문규를 제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문규의 꼬부라진 혀는 풀릴 줄을 몰랐다.

심한 욕설에 우리는 핸드폰에서 귀를 뗐다.

“……개소리.”

우리는 핸드폰을 보면서 한숨을 내뱉듯 작게 말했다.

“끝났니.”

-안 끝났다.

“그건 친구들한테 푸시고요. 헤어졌으면 술이나 마시면서 울어. 걔하고 토끼 파티라도 하든가.”

-이 씨 발라먹을…….

“조심해라.”

우리는 단칼에 문규의 말을 잘라냈다.

날카로운 칼로 오이를 싹둑 잘라버리듯.

“다시 연락해봐.”

-하면 뭐!

“자식도 못 낳게 만들어버릴 거니까.”

살벌한 경고가 우리의 뜨거운 입김을 타고 번져나갔다.

웅얼거리는 문규의 목소리는 통화 종료 버튼과 함께 사라졌다.

찬기를 품은 바람이 열이 오른 우리를 쓸어내렸다.

쿨하고도 깔끔한 이별이 있기는 할까…….

말끔한 헤어짐이 어려운 것은 잠시 겹쳤던 두 순간을 털어내면서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길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문규와 겹쳐졌던 5년의 시간이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하…….”

우리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짙은 입김이 투박한 벽에 스며들었다.

“이번에는 벽하고 눈싸움입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어둑한 골목을 물들였다.

짤막한 골목의 끝에 건우가 서 있었다.

꼭, 골목 어귀를 지키는 장승처럼.

“여기는 어떻게……?”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던 우리의 말끝이 살짝 흔들렸다.

“걱정돼서.”

“…….”

“고우리씨가.”

열기를 품은 건우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우리의 머리칼이 팔락거렸다.

‘고대리가 아니라 고우리라니.’

우리는 건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건우의 뒤에서 번지는 불빛이 눈부시게 건우를 적셨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침을 삼켰다. 밤공기가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괜찮습니까.”

건우의 따스한 말이 우리의 마음을 대차게 흔들었다.

분명, 작은 말인데.

핸드폰을 들고 있던 우리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쿵쾅, 쿵쾅…….

쿵쿵.

우리의 마음이 쿵쾅거렸다.

설레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우리, 정신 차려. 추워서 그런 거라고. 그냥, 추워서!’

우리는 떨림을 부정했다. 건우에게 반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정 하나 없는 냉혈한을…… 절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쿵쾅거림을 추위 탓으로 돌렸다.

“그럼요. 괜찮죠. 바로 돌아갈까요.”

우리는 오락실 쪽을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우선은 좁은 골목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죠.”

“네.”

우리가 어색하게 걸음을 뗐다.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건우는 우리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찾느라 얼빠졌던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

송골송골 건우의 이마에 맺혔던 땀이 겨울바람에 식어갔다.

“전화는 잘 끝냈습니까.”

“아…… 네. 나름대로는.”

우리가 핸드폰을 살짝 흔들면서 대답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오락실로 이동했다.

“고대리님.”

건우의 말에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부탁 하나만 하죠.”

“무슨 부탁을……. 설마, 현금 없으세요? 오락실비는 제가…….”

“밤에 골목은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우리의 손이 멈췄다.

건우는 퍽, 심각한 얼굴로 골목 접근 금지를 외쳤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사각지대라 위험합니다.”

“그렇기는 한데…….”

“되도록 큰길로 다니고.”

단호한 건우의 말에 우리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건우에게서 묘하게 엄마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알겠습니까.”

“네. 근데…… 생각보다 섬세하시네요. 팀원들 밤길도 걱정해주시고.”

“다른 사람 걱정은 안 합니다.”

“네?”

“관심도 없고.”

건우의 말이 우리에게 휘몰아쳤다.

2층으로 올라가던 우리의 걸음이 멈췄다.

“고우리씨 생각만큼 내가 섬세함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우리는 부산스럽던 오락실 소리가 희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계단 아래에 있던 건우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뭐야. 설마…… 나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야?’

우리의 마음이 철렁거렸다.

‘로맨스는 개뿔! 글만 쓰다가…… 도끼병이라도 생겼니.’

그러다 이내, 철렁이던 마음을 잡았다.

건우의 작은 호의를 착각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관심 동료라도 된 기분이네요.”

“맞습니다. 관심 동료.”

“그만큼 좋다고 말씀주시는 걸로 이해하고 있겠습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럼 올라갈까요.”

벙긋 옅은 미소를 날리면서 우리가 2층으로 올라서려던 순간이었다.

“고우리씨.”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실까요.”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의 걸음을 붙잡았다.

우리는 덤덤한 얼굴로 건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잘 이해해서 다행입니다.”

“설마…… 관심 동료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우리의 물음에 건우는 단박에 대답했다.

사라지려던 주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르는 기분이었다.

다시금 그 주제가 나오는 이유를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를 보던 건우의 눈빛은 단단하기만 했다.

오직 우리에게만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한 칸 아래에 서 있던 건우는 층계를 한 층 올라섰다.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거리는 사라졌다.

두 사람은 같은 디딤판에 선 채로 서로를 보고 있었다.

“좋아합니다.”

“……!”

헉!

건우의 폭탄 발언에 우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온종일, 관심 갈 만큼.”

폭주하듯 쏟아지는 건우의 말에 우리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나직한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에게는 폭풍우처럼 느껴졌다.

오락실을 흔들어대는 기계의 진동들 때문일지도 몰랐다.

자꾸, 우리의 마음이 벌렁거리는 건.

탐날 만큼 깊고도 매혹적인 건우의 눈빛에 우리는 그대로 빨려들 것만 같았다.

정리하지 못한 옷장처럼 우리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살짝 시선을 내린 우리는 건우의 입술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꼴이 됐다.

‘지금…… 고백한 거야? 정말 실화냐고!’

우리의 생각이 천천히 굴러갔다.

궁금했다.

다른 남자도 아니고 왜 난데없이 자신에게 고백을 해버렸을까.

‘설마! 격렬한 집안의 반대로 가짜 연애라도 필요한 거 아니야?’

우리가 내린 건우의 고백에 대한 최종 결론이었다.

정말 가짜 연애가 필요한 거라면…….

우리는 차마 가짜 연애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문규의 일만으로도 충분히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아무래도 한 동네 살다 보니까…….”

“살다 보니까?”

“충분히 관심 가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우리가 건우에게 곧게 선을 그었다.

우리가 만든 경계선은 건우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보통 좋아한다는 거에는 여러 형태가 있으니까요.”

“여러 형태라…….”

건우가 우리의 말을 곱씹었다.

가짜 연애를 거절하려던 우리는 질질 끌기 시작한 말들을 어찌 끝낼지 고민에 빠져있었다.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암튼 차장님 관심은 감사히 받을게요.”

우리의 말은 업무 메일 끝에 습관적으로 남기는 인사만큼 건조했다.

우리의 대답을 들은 건우는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팔짱을 낀 채로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건우는 덤덤한 얼굴이었지만, 속으로는 깊은 시름에 빠져있었다.

‘헤어졌으면 술이나 마시면서 울어. 걔하고 토끼 파티라도 하든가.’

어두운 골목에서 들렸던 우리의 목소리가 귀를 맴돌았었다.

문규에게 헤어짐을 고하는 말이었다.

골키퍼가 사라진 골문에 건우는 들떠버렸다.

우리의 심란한 마음은 헤아리지도 못한 채로 돌진하듯 고백해버린 것이었다.

지나치게 성급한 고백이었다.

본능에만 집중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우리의 거절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우리와 거리를 좁히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우리의 세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시간.

“애정에 여러 종류가 있기는 하죠.”

굳게 다물었던 건우의 입이 열렸다. 무미건조한 건우의 말이 흘렀다.

“동료애도 있고.”

“그죠. 동료애 있죠.”

우리가 반갑다는 것처러 맞장구를 쳤다.

“한동네에 살면서 생기는 정도 있고. 또…….”

건우가 말끝을 흐렸다.

건우의 뒷말을 기다리던 우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남녀 간의 애정도 있고.”

건우의 낮은 목소리가 번져나갔다.

건우의 차분한 목소리가 우리에게는 돌풍처럼 느껴졌다.

남녀 간의 애정이라는 말이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달려드는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남녀 간의 애정도 있고.’

‘남녀 간의 애정.’

건우의 말이 끝없이 우리를 맴돌았다.

칼바람을 받아내느라 일렁이는 등불처럼 우리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그럼 가죠.”

2층에 올라선 건우가 우리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야죠!”

우리는 정신없이 달려드는 건우의 말을 의연하게 털어내면서 계단을 한 칸 올라섰다.

2층은 정신이 없을 만큼 시끌벅적했다. VR을 쓰고는 소리를 질러대거나 사격을 하는 사람들로 붐볐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가상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고대리님.”

“네…… 네?”

“이쪽입니다.”

건우가 표를 들었다.

양궁 2인.

표에 적힌 글씨가 정확하게 우리의 눈에 들어왔다.

“설마…… 양궁이요?”

“예.”

건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민우가 죽은 이후로 한 번도 보지 않았던 활이었다.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활이 꼭, 민우를 죽음에 내몰리게 한 것 같았다.

그래서 건우는 오래도록 양궁에서 손을 털었다.

활을 잡을 용기가 없었으니 후회도 없었다.

그렇게 멀리했는데…….

우습게도 우리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방법이라고는 양궁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시원하게 날아가는 화살의 짜릿함이 우리의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딱 놔주시면 됩니다.”

건우는 오락실 직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제법 선수처럼 비장한 얼굴이었다.

활을 잡았던 우리가 건우를 돌아봤다.

“차장님 시범을 좀 보고 싶은데.”

우리가 건우에게 활을 내밀었다.

“설명으로는 좀 부족한 것 같아서요.”

채근하듯 우리는 활을 건우의 쪽으로 가깝게 밀었다.

건우는 가만히 활을 바라봤다.

잡을 수 있을까.

쉬이 용기를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려우실까요.”

“예.”

“아…… 이거 참. 스트레스 풀어야 하는데.”

단칼에 잘린 요청에 우리는 혼잣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궁싯거렸다.

“강차장님이 고르시고는 가르쳐주지도 않고…….”

“알겠습니다.”

중얼대는 우리의 모습에 건우는 백기를 들었다.

우리의 고집을 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건우가 활을 들었다.

차가운 활의 기운이 건우의 손을 적셨다.

“시범은 한 번뿐입니다.”

우리가 알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건우는 몸의 무게 중심을 맞췄다. 건우의 등은 곧게 펴져 있었다.

건우는 굳은 침을 삼키면서 화살 하나를 들었다.

무거운 활에 화살을 끼고는 팽팽한 현을 잡아당겼다.

힘의 밸런스를 유지하면서도 건우는 활의 힘을 유지하고 있었다.

과녁을 뚫어버릴 만큼 건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숨을 고르면서 집중을 한 건우가 손을 놨다.

무심하게 날아간 화살은 과녁의 정중앙을 뚫었다.

“와…… 정확히 중앙이네요.”

우리가 놀란 얼굴로 건우를 봤다.

“시범도 잘 봤을 테니 직접 해보는 걸로.”

건우가 우리에게 활을 내밀었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우리는 낯선 활을 잡았다. 묵직한 활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직원의 선물과 건우의 시범을 되새기면서 우리는 화살을 넣었다.

활시위를 당기는 우리의 몸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힘은 잘 주고 있습니까.”

“그럼요. 잘 주고 있기는 한데……. 이렇게 하는 거 맞죠?”

“더 당겨야 됩니다.”

“이 정도로요?”

과녁을 보면서 힘껏 줄을 당기던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팽팽하지 않은 줄에 화살은 제대로 날아가지도 않을 것처럼 보였다.

건우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섰다.

“팔은 내려가지 않게 하고.”

건우가 우리의 뒤에 섰다.

자세를 고쳐주려는 건우와 활을 들고 있는 우리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열기를 품은 건우의 숨결이 우리의 목덜미를 적셨다.

건우는 아래로 내려간 우리의 팔을 올려주었다.

“현은 끝까지 잘 당겨야 됩니다.”

“…….”

“시선도 떼지 말고.”

건우의 낮은 목소리가 우리를 짙게 물들였다.

잔잔했던 수면에 던진 돌멩이같이 건우의 말은 우리에게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단단한 건우의 목소리에 우리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래야 명중시킬 수 있습니다.”

건우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정확하게.”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의 입술에 흐무러졌다.

두 사람의 입술을 금방이라도 닿을 것처럼 보였다.

느린 두 사람의 소리가 천천히 엉겨 붙었다.

팽팽해지는 줄 만큼 우리의 숨도 멈췄다.

완전한 고요.

뜨거운 숨결.

‘좋아합니다.’

그 속에서 옅어지던 건우의 말이 진해졌다.

우리가 넋을 잃고 건우를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건우의 커다란 손이 우리의 손을 감쌌다.

더는 당겨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현이 뒤로 당겨졌다.

팽팽한 줄을 당기는 건우의 팔에 굵은 핏줄이 섰다.

“……!”

끌어당겼던 줄을 놓는 찰나였다.

날아가는 화살과 함께 우리는 잘 포개진 손을 봤다.

건우와 손이 닿아버린 것이었다.

맙소사! 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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