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14화 (14/102)

제 14화. 개소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민망스러운 기운을 품은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고 두 사람은 애써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얇은 나뭇가지 사이로 노란 달빛과 가로등 불빛이 뒤엉켜 두 사람에게 쏟아졌다.

“잠깐 집 좀 들렀다가 가죠.”

“차장님 집이요?”

“이대로는 이동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굳이 제가 갈 필요가…….”

어색한 미소를 날리던 우리가 말끝을 끌었다.

“범인을 그대로 놔주는 사람은 없죠.”

건우가 바지를 내려다보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심각한 얼굴로 목덜미만 긁적거렸다.

상사의 바지를 맥주로 적실 줄이야…….

우리는 하루가 길게만 느껴졌다.

실수와 이별이 뒤범벅된 최악의 날이었다.

“시간도 늦어서 위험하기도 하고.”

“어…… 그런가요.”

“예. 세상 험합니다.”

건우의 말에 우리는 언뜻 놀랐다.

어두운 놀이터보다 건우가 더 위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소리 없는 심해처럼 깊은 건우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깊게 빨려들 것만 같았다.

문규가 빠져나간 자리가 공허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틈을 비집고 침식하는 건우의 맹랑한 눈빛에 홀려버린 걸까.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사이렌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큰일을 치를 수도 있다는 경고의 사이렌!

“가죠.”

벤치를 정리한 건우가 우리의 옆에 있던 비닐봉지를 들었다.

우리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건우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건우의 발걸음을 따라서 비닐봉지가 앞뒤로 흔들거렸다.

무심하지만 따뜻한 뒷모습이었다.

아빠 성원의 합동장례식장에서 무심히 손수건을 툭, 던지고 사라졌던 그때의 누군가처럼.

그날의 위로가 전해지는 것만 같아서 우리는 제 손을 내려다봤다.

앞서 걷던 건우가 고개를 돌렸다.

“계속 앉아있을 겁니까.”

제법 누그러진 바람결을 타고 건우의 목소리가 흘렀다.

“축축한데.”

건우의 말에 우리가 벌떡 일어났다.

“그럼 집 앞에 서 있을게요. 불편하실 것 같아서요.”

“밖에 있는 게, 더 불편합니다.”

건우가 짐짓 걸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우리는 잰걸음으로 건우에게 다가섰다.

“일단 이건 제가 들게요.”

말을 돌리면서 우리가 검은 비닐봉지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건우는 가볍게 우리의 손길을 피했다.

“괜찮습니다.”

“아뇨. 제가 불편해서요. 제 간식이니까 제가 들게요.”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는 우리는 비닐봉지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우리가 비닐봉지를 가볍게 흔들었다.

“엄연히 맥주값이니까요.”

고집스러운 우리의 말에 건우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멈췄던 두 사람의 걸음이 움직였다.

건우는 우리에게 보폭을 맞췄다. 우리를 위한 나름의 배려였다.

건우의 집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걸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어느새, 같아져 있었다.

“근데 차장님은 놀이터에는 왜 오셨어요?”

사부작거리면서 걷던 우리가 건우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물음이었다.

건우는 우리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조용히 움찔거렸다.

우리를 발견하고 걱정돼 달려왔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달밤에 체조를 즐기는 스타일이라.”

“이 밤에요?”

“고대리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 예. 저도 뭐……. 달밤 체조 좋죠.”

속내를 숨긴 두 사람의 말이 켜켜이 쌓였다.

아파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두 사람을 휘감았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두껍게 깔렸던 어둠은 조금씩 연해져 갔다.

아파트로 향하는 두 사람의 손은 금방이라도 닿을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미치겠네.’

건우의 온 신경은 우리의 야무진 손끝에 향해 있었다. 마음이 들끓었다.

긴 트랙을 달리는 것처럼 숨도 가빠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에 대한 갈망이 깊어졌다.

건우가 약간 옆으로 비켜났다.

두 사람 사이로 부스럭대는 비닐봉지 소리만 툭툭, 흘렀다.

툭툭.

톡톡,

두근대는 건우의 마음을 찌르면서,톡.

***

건우의 손길에 도어락이 비밀스럽게 열렸다.

은밀한 기운을 품은 것처럼 굳게 닫혀있던 현관문이 열렸다.

“저는 앞에 있을게요.”

우리가 두 손으로 비닐봉지를 잡고는 말했다.

“내가 불편해서 그럽니다.”

우리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문 채로 건우를 봤다. 건우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차장님.”

우리가 약간 고개를 숙이면서 건우의 집으로 들어섰다.

현관에 있던 불이 커졌다. 가지런히 놓여있던 슬리퍼를 신고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건우의 손길에 집은 금세 밝아졌다.

“물 마시겠습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편히 있어요.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오겠습니다.”

“네.”

건우가 옷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외투를 꽁꽁 싸맨 채로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꼭, 추위에 얼어붙은 눈사람 같은 모양새였다.

꺼진 텔레비전을 바라보던 우리의 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얼었던 발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찬찬히 주변을 둘러봤다.

건우의 집은 블랙과 화이트가 적당하게 배합돼 모던한 느낌을 줬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데 느낌이 완전 다르네.’

코를 훌쩍거리면서 거실을 둘러보던 우리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깔린 러그에 있던 가는 털이 우리의 움직임을 따라서 천천히 일어났다.

무언가에 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텔레비전 옆에 있던 진열장으로 걸어갔다.

깔끔하게 정리된 진열장의 꼭대기에는 클래식한 골드 스탠드 액자가 놓여있었다.

우리는 발꿈치를 들고는 사진을 봤다.

“……!”

뚫어질 것처럼 빤히 사진을 보던 우리의 눈이 커졌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우리는 묵직한 스탠드 액자를 들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오는 건데?’

사진을 보던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꿈속에서 깊고도 아련한 눈망울로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던 그 애.

붉은 실을 생명줄처럼 꽉, 잡고 싶었던 그 애가 분명했다.

우리는 집중하듯 살짝 미간을 좁히면서 교복을 입은 채로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아이의 가슴팍을 바라봤다.

강민우

진한 민우의 미소만큼 가슴팍에 붙은 명찰도 선명하게 보였다.

“강…… 민우.”

우리가 읊조리듯 말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꿈에서 봤던 민우를 건우의 집에서 보게 될 줄이야…….

우리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우연이야?’

목덜미를 긁적거리던 우리의 시선은 옆으로 움직였다.

사진 속의 민우와 건우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는 민우와는 달리 건우는 46파운드의 양궁 활을 들고 있었다.

암 가드에 체스트 가드까지 갖춘 건우에게서는 전문적인 선수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뭐합니까.”

건우의 목소리에 우리가 흠칫 놀랐다. 도둑질이라도 한 기분이었다.

“양궁 하셨었어요?”

우리가 사진을 내보이면서 물었다. 우리의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리고 있었다.

“꽤, 됐습니다.”

“근데 옆에 있는 분은?”

우리가 사진 속의 민우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동생입니다.”

건우의 말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샅샅이 흩어졌다. 유쾌하거나 밝은 말투는 아니었다.

짙게 눌어붙은 씁쓸한 기운에 우리는 더는,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짤막한 침묵만이 거실을 휘돌았다.

건우는 우리가 들고 있던 사진을 봤다.

그날의 해묵은 다짐이 건우를 뒤흔들었다.

삶에 욕심을 내지 말라고.

기쁨도 만족도 행복도 모두 버리고 살아가라고.

건우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강건우.

넌, 새까만 불행으로나 굴러떨어져 버려.

“강차장님.”

“…….”

“준비 끝나셨으면 나갈까요.”

우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진을 보던 건우의 눈길이 우리에게로 옮겨갔다.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가 우리에게 다가섰다.

건우가 우리의 쪽으로 손을 내뻗었다.

살짝 놀란 얼굴로 우리는 숨은 참은 채, 건우를 봤다.

건우는 우리의 손에 있던 액자를 가져갔다.

진열장에 사진을 두다가 그대로 엎어버렸다. 사진이 보이지 않도록.

환한 미소를 짓고 있던 민우의 얼굴이 건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가죠.”

건우는 손을 약간 말아 쥐었다. 욕심을 내고 싶어졌다.

기쁨, 환희, 욕망…….

멀었던 그 말들을.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조금만 욕심내면.

정말, 아주 조금만.

“아…… 네.”

건우가 뒤로 물러났다. 우리는 참았던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숨결의 끝이 떨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잔상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이 길게 이어졌다.

묘한 여운은 끈덕지게 우리의 마음을 흔들었다.

문규를 내쫓고 비어버린 마음이 이만큼, 허한 걸까.

‘두근은 무슨 두근!’

우리가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건우에게 마음이 두근거렸다고는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관 쪽으로 걸어가던 건우가 고개를 돌렸다. 제 발 저린 도둑처럼 우리가 흠칫 놀랐다.

“계속 집에 있고 싶습니까.”

“아뇨. 나가야죠. 얼른 나가겠습니다.”

우리가 잰걸음으로 쫄쫄거리면서 건우를 지나갔다.

우리는 서둘러 신발을 구겨 신었다. 묘하게 야릇해진 공기를 가르는 발놀림이었다.

황급히 현관문을 연 우리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서늘한 복도의 공기가 우리의 두 볼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건우의 집이 품고 있던 미묘한 기류가 차갑게 식어가는 것만 같았다.

현관문을 잡고 있던 우리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마치, 굳게 마음을 다잡는 것처럼 비장한 손길이었다.

“차장님. 근데 저희 어디로 가는 건가요.”

“가보면 바로 알 겁니다.”

“힌트라도 좀…….”

질척대는 끈질긴 우리의 물음에도 건우는 별다른 힌트를 주지 않았다.

나란히 아파트 단지를 나서는 두 사람은 시내로 향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번지는 빛은 시내로 갈수록 짙어졌다.

시내는 불타는 토요일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좁은 거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차도 많았다.

빵!

클랙슨 소리가 우리와 건우를 뒤덮었다.

우리가 바깥쪽에 서 있던 건우의 어깨를 급히 잡아당겼다.

생각지도 못한 우리의 힘에 건우는 휘청거리듯 우리 쪽으로 붙었다.

검은색 차가 두 사람을 지나갔다.

“괜찮으세요?”

우리가 건우를 보면서 물었다.

“예. 괜찮습니다.”

“차가 무슨…… 무섭게.”

우리는 연달아 클랙슨을 울리면서 인파를 뚫고 내달리는 검은색 차의 꽁무니를 보면서 불끈 주먹을 내밀었다.

건우가 우리를 보면서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아프리카의 작은 맹수라는 검은발 살쾡이처럼 으르렁거리는 우리가 마냥,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낭만적이면서도 저돌적인 기운을 품은 우리의 문체가 꼭,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잠깐 멈췄던 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의 걸음이 멈췄다.

우리는 얼떨떨한 얼굴로 건우를 봤다.

‘여기는 대체…….’

양파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까도 까도 도대체 가늠할 수 없는 사람.

커다란 오락실과 건우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설마…… 여긴가요.”

우리는 오락실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시끌벅적한 오락실의 입구에는 오락 기계에 펀치를 날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굉음과 함께 펀치볼이 뒤로 넘어갔다.

오락실이라니…….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선택이었다.

“스트레스, 꽤 풀릴 겁니다.”

건우의 말에 우리는 오락실 펀치를 봤다.

‘펀치쯤이야, 뭐…….’

우리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주먹을 매만졌다. 강력한 한 방을 위한 전초였다.

우리는 비장한 얼굴로 오락실에 입성했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고는 어깨를 돌리면서 준비운동을 하던 우리가 펀치 기계로 다가갔다.

“어디 갑니까.”

건우의 목소리에 우리는 주위를 둘러봤다.

건우는 펀치 기계와 멀찍이 서 있었다.

“펀치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그럼 한 판만 하고 움직일게요. 이것만큼 스트레스 쫙, 풀리는 것도 없거든요.”

우리는 기계에 거침없이 돈을 넣었다. 눕혀있던 펀치볼이 올라왔다.

“다치면 어쩌려고.”

건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섰다.

여유로운 얼굴로 우리는 손을 풀었다.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수는 절대로 다치지 않죠!”

끝말에 힘을 주면서 우리는 손목을 잡고는 펀치볼을 향해 세게 주먹을 날렸다.

쾅!

커다란 굉음과 함께 펀치볼이 뒤로 넘어갔다.

“아우!”

우리의 손이 얼얼해졌다.

아픈 기운을 털어내듯 우리는 손을 흔들어댔다.

“괜찮습니까.”

건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급히 우리에게 다가섰다.

살짝 미간을 좁힌 우리가 다치기라도 했을까.

건우는 전전긍긍이었다.

“다친 곳은.”

“멀쩡해요.”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우리가 손을 펼친 순간이었다.

팡파르 소리와 함께 점수가 번쩍거렸다.

780점

기존에 있던 점수들을 가뿐히 갱신했다.

헉!

우리와 건우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점수를 봤다. 두 사람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놀란 얼굴들이었다.

그 누구도 우리가 최고기록을 갈아치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평소만큼 실력 발휘는 못했지만…… 뭐.”

우리는 내심 놀란 마음을 감추고는 거들먹거리면서 말했다.

“멋있네요.”

“…….”

“생각보다, 꽤.”

덤덤한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물들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최고점을 찍은 것보다 건우의 대답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대결이라도 하겠다고 달려들거나 무심한 얼굴로 놀릴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날아든 칭찬에 우리는 괜스레 쑥스러워져 목덜미만 긁적거렸다.

“그럼 이동하죠.”

건우는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급하게 우리는 핸드폰을 꺼냈다.

펀치 기계에 새겨진 최고점을 차마 두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누구보다 잽싼 몸놀림으로 점수를 찍고는 건우를 따랐다.

‘대박! 진짜 대박이네.’

사진을 보던 우리는 속으로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빨개진 손등의 살도 마냥, 영광의 상처처럼 느껴졌다.

무심한 얼굴로 계단을 오르던 건우가 뒤를 돌았다.

잔뜩 만족스러운 얼굴로 실실 터지는 우리의 미소에 건우의 입매도 부드럽게 휘어졌다.

옅은 미소가 건우를 뒤덮었다.

뒤늦게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건우가 서둘러 우리에게서 눈길을 거두었다.

건우는 입술에 잔뜩 힘을 주고는 입가를 적시던 미소를 삼켰다.

“고대리님.”

“네…… 네?”

“계속 한 눈 팔 겁니까.”

건우가 걸음을 멈추고는 우리의 발을 가리켰다.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던 우리가 발끝을 봤다.

금방이라도 계단 턱에 걸려 고꾸라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불안해서.”

표정 하나 없는 건우의 말에는 조금의 불안도 없어 보였다.

무심한 말로 건우는 무던히 마음을 숨기고 있었지만, 점점 제어하기가 힘들어졌다.

눈길, 숨결, 손길…….

그 모든 것들이 전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우리, 너를 향해.

“핸드폰 보느라…….”

우리의 말이 뚝, 끊겼다.

잠잠했던 핸드폰이 연달아 울어댔기 때문이었다.

[영감님]

문규의 메시지가 끝없이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영감님,

영감님,

영감님.

핸드폰을 보던 우리는 기가 찼다.

문규는 밤새 메시지 폭탄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이 토끼가…… 해보자는 거야? 죽을라고.’

우리는 헛웃음을 치고는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뇨. 무슨 일은요. 없어요.”

우리는 메시지 닫기 버튼을 빠르게 눌러대면서 벙글 미소를 지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덤덤하게 우리가 2층으로 올라섰을 때였다.

-친구들 앞에서 개망신 주고는 잠수, 실화냐.

-이 기집애가…… 읽고 씹기?

계집애라는 말이 우리의 신경을 박박 긁었다.

우리의 눈 아래 통통하게 올랐던 살집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파르르 떨렸다.

-왈왈.

문규에게 날리는 우리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이 기집애가 미쳤나.

-왈!

-돌았냐? 고우리!

분노에 찬 문규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우리의 입술 사이로 차가운 조소가 흘렀다.

술기운에 쓸데없는 문규의 객기를 부리는 것이 가소로울 지경이었다.

-왜. 개소리에는 개소리로 대답해야지.

우리는 궁서체의 진지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럼 제발 닥쳐줘. 왈왈아!

살살 속을 긁었던 문규에게 한방을 날리고는 우리는 메시지창을 껐다.

더는 대꾸할 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펀치 하나로 약간은 풀렸던 스트레스가 밀물처럼 밀려드는 기분이었다.

“죄송해요, 차장님. 급한 메시지가 계속 와서.”

“괜찮습니다.”

“그럼 저희…….”

우리가 2층을 본격적으로 둘러보려던 찰나였다.

-어이구…… 잘난 고대리. 콜라보 프로젝트, 엎고 싶어?

문규가 비장의 카드를 날렸다.

일종의 으름장이었다.

계속 긁어대다가는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진짜 경고의 메시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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