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화. 탐나는 파트너
잔뜩 얼어붙었던 우리가 조심스럽게 건우에게 다가섰다.
건우는 무심히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다.
우리가 건우의 이마로 손을 내뻗었다.
미지근한 우리의 손가락이 건우의 이마에 닿았다.
손을 타고 전해지는 온기에 건우가 조용히 움찔거렸다.
보드라운 우리의 손길만으로도 마음이 뛰었기 때문이었다.
쿵,
쿵,
그리고 또…… 쿵.
‘내가 정말 미쳤나.’
가슴팍을 울리는 묵직하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건우를 짙게 물들였다.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건우는 무슨 말을 뱉어냈는지도 몰랐다.
정신이 없었다.
작은 손길 하나에도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가슴 뛰는 일이라니…….
건우는 마음을 다독여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고대리님.”
“네. 이마…….”
“손 좀 떼주시죠.”
건우가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에 열이 있으신 것 같은데…….”
“멀쩡합니다.”
건우의 덤덤한 목소리가 허공을 물들였다.
간신히 설레는 표정을 숨겼지만 달뜬 열기까지는 숨기지 못한 것이었다.
“이게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던졌는데. 차장님이 있으실 줄은…….”
우리는 주절주절 말을 뱉으면서 건우에게서 손을 뗐다.
우리는 울컥 솟은 울화를 참지 못하고 허공에 캔을 던졌던 순간을 후회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사과를 하던 우리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가로등 불빛에 건우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빨개진 건우의 이마는 약간 부풀어있었다.
‘되게 아플 것 같은데.’
볼록 나온 혹에도 건우는 우리만을 응시했다.
가을볕만큼 뜨거운 건우의 눈길에 우리도 덩달아 눈에 힘을 주었다.
노래방을 뒤집었던 고흥부와 강놀부의 맹렬한 눈싸움이었다.
두 사람은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았다.
신발을 끄는 소리와 함께 우리가 건우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우리가 불쑥 건우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황량한 사막만큼 건조하던 건우의 눈빛이 약간 휘청거렸다.
두 사람의 몸이 닿을 것처럼 제법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위험하다.’
건우가 짐짓 뒤로 물러났다.
위험할 수도 있었다.
아니. 정말, 위험했다.
“나하고 눈싸움이라고 할 생각입니까.”
건우의 말에 우리의 눈에서 힘이 풀렸다.
“아뇨. 눈싸움은요.”
우리가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이마가 빨개서. 정말 괜찮으세요?”
“예. 뭐…….”
건우는 이마를 매만졌다.
작은 혹이 볼록 올라왔다.
강스파이크에 이마가 견디지 못한 모양이었다.
약간 구겨진 건우의 얼굴에 우리는 잔뜩 긴장했다.
고대리 찬스가 쏟아질 수도 있었고 화를 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밤에 뭐 하고 있었습니까.”
“보고를 드려야 하나요.”
“예. 일종의 팀원 관립니다.”
우리는 말문이 막혔다.
꽤, 그럴싸한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밤공기를 좀.”
“…….”
“날이 좋아서요.”
별다른 대꾸가 없는 건우를 보던 우리가 급히 뒷말을 붙였다.
우리의 말을 비웃듯 칼바람이 두 사람에게 몰아쳤다.
바닥에 있던 캔은 데굴데굴 굴러갔고 우리의 머리칼은 물미역처럼 끈덕지게 얼굴에 달라붙었다.
우리는 꼭, 놀이터에 등장한 귀신처럼 보였다.
“바람이 참…… 시원하네요.”
우리는 당황한 기운을 숨기면서 말했다.
정말로 찬바람을 쐬러 나왔다는 것처럼.
우리는 새침하게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건우가 약간 고개를 기울여 벤치를 봤다.
우리가 앉아있던 벤치에는 맥주가 일렬로 놓여있었다.
맥주는 어림잡아도 네 캔은 훌쩍 넘었다.
건우의 시선에 민망해진 우리가 슬쩍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건우의 시야를 가리겠다는 나름의 몸부림이었다.
‘댓글 때문인가.’
건우는 여주인공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댓글에 우리가 속상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공기, 같이 좀 쐽시다.”
우리가 말리기도 전에 건우는 성큼 벤치로 걸어갔다.
놀란 우리가 급히 건우의 앞을 막아섰다.
건우와 술을 홀짝거리거나 건우의 앞에서 눈물을 훌쩍거리는 불상사만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벤치가 좁아서요.”
아무도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럴듯하지 못한 변명이었다.
우리는 속으로 깊은 탄식을 뱉어냈다.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 변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힐끔 뒤를 돌아봤다. 벤치는 우람한 장정 넷이 앉아도 충분할 것처럼 보였다.
“혼자 마실 양은 아닌 것 같은데.”
“강차장님.”
우리의 말에도 건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애초에 본인의 자리였던 것처럼.
건우가 멀찍이 놓여있던 맥주 한 캔을 집어 들었다.
바닥을 구르던 캔을 집은 우리가 건우를 봤다.
건우는 부드럽게 캔을 땄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건우가 우리를 봤다.
숨이 멎을 만큼 매혹적인 눈빛이었다.
서늘한 바람에 건우의 머리칼이 살짝 흔들렸다.
“차장님. 죄송하지만, 제 맥준데요.”
더는 맥주를 기부할 수 없다는 것처럼 우리가 말했다.
가로등이 뿜어내는 노란 불빛이 두 사람을 포근히 품었다.
우리의 말에 짙은 고요가 두 사람을 적셨다.
가만히 앞에 서 있는 우리를 보던 건우가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게…….”
“등가교환 하는 셈 치죠.”
재촉하는 건우의 눈빛에 얼결에 우리는 비닐봉지를 받아들었다.
비닐봉지에는 군것질거리가 잔뜩 들어있었다.
오색찬란한 빛깔의 젤리, 사탕, 우유, 비스킷…….
제법 무게가 나가는 비닐봉지의 습격이었다.
“군것질 좋아하시나 봐요.”
“별로.”
건우는 우리의 손에 있는 비닐봉지를 봤다.
제법 묵직한 모양새에 마음이 뿌듯했다.
우리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고심하면서 군것질거리를 담았기 때문이었다.
덜렁 비닐봉지를 든 채로 서 있던 우리는 건우를 빤히 쳐다봤다.
건우의 저의를 간파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꿀꺽대면서 맥주를 마시는 건우의 목울대만 쳐다보던 우리가 멀찍이 벤치에 앉았다.
등가교환을 빌미로 건우가 벤치에 있던 맥주를 모조리 해치울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차장님.”
맥주를 딴 우리가 건우를 불렀다.
“괜찮으시면 건배라도 하실래요?”
우리가 맥주캔을 들면서 물었다.
짙게 눌어붙은 정적이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죠.”
두 사람 사이에는 두 개의 맥주캔만이 질서정연하게 놓여있었다.
맥주캔이 쏟아내는 냉기가 우리의 손을 차갑게 만들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우리가 맥주캔을 건우에게 내밀었다.
“짠.”
“……짠.”
희미한 건우의 목소리가 우리의 짤막한 말을 뒤덮었다.
짠 이라니…….
평생 내뱉지도 않았던 말을 흘리는 제 모습에 건우는 바람 빠지듯 웃었다.
두 개의 맥주캔이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부딪쳤다.
건우는 쉬지 않고 맥주를 들이켜는 우리를 봤다.
‘걱정돼 죽겠네.’
건우의 걱정스러운 눈길에도 우리는 숨 한 번 쉬지 않고 단번에 맥주를 마셨다.
고소하면서도 쓴 알코올의 향기가 우리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남은 맥주는 고작 두 캔.
문규와의 시간을 잊는데도 끝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좋네요.”
우리가 손등으로 힘차게 입술을 훔치고는 말했다.
“덕분에 맥주도 빨리 없앨 수 있고.”
우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홀로 다섯 캔을 연달아 마셨다가는 벤치를 침대 삼아 잠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건우는 최대한 무심히 물었다.
구태여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별일 아닌 듯.
“음…….”
고민에 빠진 것처럼 우리가 대답에 뜸을 들였다.
“말하기 어려운 일이면 괜찮습니다.”
“그냥, 키우던 토끼를 버렸어요.”
바람에 흔들거리는 그네를 보던 우리가 담담하게 말했다.
알싸한 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속에 있던 답답한 마음을 툭, 내뱉어버린 건.
“생각보다 골치 아픈 놈이었거든요.”
어쩌면, 코끝을 살랑살랑 간질이고 있는 밤공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근데 생각보다 섭섭하네요. 개운하기도 하고.”
“…….”
“약간 혼을 좀 내줬거든요.”
우리가 입술에 힘을 꾹 주고는 미소를 머금었다. 밝고 유쾌한 미소는 아니었다.
우리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다. 우리의 기분을 끌어 올릴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건우는 갑갑했다.
도무지 답이 없는 문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옅은 침묵이 허공을 떠돌았다.
짙어지는 어둠만큼 가로등 불빛도 진해져 갔다.
두 사람은 빈 맥주캔만 만지작거렸다.
적막을 비집고 문규의 목소리가 성가신 날벌레처럼 우리의 귓가를 맴돌았다.
우리의 손길에 빈 캔이 형체를 알 수 없이 찌그러졌다.
“차장님.”
“예.”
“죄송하지만, 성운백화점 콜라보 프로젝트에서 빠져야 할 것 같습니다.”
단단했던 우리의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애초에 문규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릴 생각이었다.
문규가 프로젝트를 빌미로 심술을 부릴 수도 있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는 문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유는.”
“사적인 일이라,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건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건우에게 중요했다.
우리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카드를 넘어선 프로젝트였다.
HJ그룹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맡는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회사에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시작점이었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제품이나 방향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초기 기획을 뱉은 우리는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프로젝트를 빠지겠다니…….
건우는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빠질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심각한 얼굴로 맥주캔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우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고대리님.”
건우의 낮은 목소리가 느릿하게 번졌다.
“허락, 못합니다.”
“제가 본부장님께 직접 말씀드리고…….”
“내가 안 될 것 같습니다.”
단단한 건우의 말에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고우리씨 없이는.”
건우가 차분히 뒷말에 힘을 주었다.
뇌쇄적인 목소리였다.
소리 하나 없이 주변이 조용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깊은 건우의 눈빛이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건우가 벤치에 있던 맥주캔을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맥주가 하나 더 사라졌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맥주캔은 하나였다.
딱, 맥주 한 캔.
두 사람의 거리가 한결 가까워졌다.
옅은 정적이 두 사람을 적셨다. 꽃봉오리를 품은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거렸다.
“차장님. 말씀은 감사드려요.”
우리가 마음을 다잡고는 말했다.
“그런데 황주임도 이번 프로젝트는 잘 꾸려나갈 거예요. 충분히 능력도 있고요.”
“…….”
“혹시나 추가로 필요한 업무가 있으면 계속 보조는 하겠습니다.”
대안을 내놓은 우리의 말에는 막힘이 없었다.
“말했잖습니까. 이번 프로젝트 잘해야 한다고.”
“네. 그러니…….”
“고대리님 말고는 프로젝트에 적합한 인물, 없습니다.”
건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물러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내 결론입니다.”
건우의 말에 우리는 골치가 아팠다.
본부장에게 당장 달려가 프로젝트 담당자를 바꾸겠다고 하더라도 건우의 벽에 부딪힐 확률이 높았다.
건우는 본부장의 무한 신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건우라는 산을 넘지 못하면 프로젝트에서 빠지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배려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제공하죠.”
“…….”
“설령 그게, 회사 일이든 소설이든.”
우리가 입술 안쪽의 살을 깨물었다.
악마가 보내는 유혹만큼 꽤, 달콤한 제안이었다.
눈을 감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평온한 회사생활이 보장될 것이었다.
덤으로 객관적으로 소설 방향을 제안해줄 만한 든든한 지원군을 얻을 수도 있었다.
더욱이, 건우의 눈빛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대답은 정해졌으니 대답이나 하라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몰랐다.
정말로 피할 수 없다면…….
취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가져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강차장님.”
한참 꼼지락거리던 우리의 입술이 드디어 열렸다.
“그때처럼 간간이 조언만 부탁드릴게요.”
“……?”
“소설이요. 그렇게만 해주시면 프로젝트, 계속 책임지고 해보겠습니다.”
우리의 말에 건우는 목을 간질거리는 미소를 힘겹게 삼켰다.
들썩이는 마음을 얼마나 감출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은 미리…….”
“소설, 미리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건우의 말에 우리는 당황했다.
단순하게 스토리만 말해주고는 조언을 받아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소설을 미리 본다니…….
위엄이 넘치는 건우에게 알현이라도 하듯 소설을 바치는 자신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우리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꼭 보셔야 하나요?”
“전체적인 구조는 봐야 제대로 말해주죠.”
“아…….”
절반의 긍정과 절반의 걱정이 녹은 탄식이었다.
건우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고수위의 글을 보여주다니…….
우선은 화끈한 부분이 있는 장면은 자체적으로 삭제를 하고 내미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 그게 최선이었다.
“그럼 업로드 전에 전달 드릴게요.”
우리가 단단히 마음을 다잡고는 대답했다.
그냥, 소설을 보여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건우라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다르다는 것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내가 꽤…… 건강한 성인 남성이라. 혹시라도 걱정할까 봐.”
건우가 제법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글이니까. 뭐……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아요.”
“정말입니까.”
우리의 심드렁한 대답에 믿을 수 없다는 듯 건우가 재차 물었다.
“네.”
그야말로 단호한 대답이었다.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우리는 고개까지 열심히 끄덕거렸다.
“그럼 잘해봅시다.”
“…….”
“파트너.”
건우가 우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갑작스러운 손에 우리는 흠칫 놀랐다. 우리는 악수 대신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마른 향기를 품은 바람이 멀리서 불어왔다.
우리는 어색함을 몰아내면서 마지막 맥주캔을 들었다.
마지막 한 캔.
우리가 맥주캔을 봤다.
많은 의미가 담긴 마지막 맥주였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우리가 뚜껑을 땄다.
정말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추억을 되새기는 일은 이걸로 모조리, 끝이라고.
우리가 차가운 맥주를 들이켜려던 순간이었다.
“건배도 없이 마십니까.”
건우가 우리에게 맥주캔을 내밀었다.
소탈한 미소가 건우의 입가를 물들였다.
연한 수채화물감이 물에 번지듯 느리고도, 진하게.
“……짠.”
두 손으로 맥주캔을 잡은 우리를 향해 건우는 살짝 캔을 부딪치면서 말했다.
건우의 얼굴에 번진 낯선 미소를 보면서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차가운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번졌다. 고소한 첫맛과 씁쓸한 뒷맛이 입을 돌았다.
톡, 쏘는 탄산은 우리의 혀끝을 간질였다.
맥주는 부드럽게 우리의 목구멍을 내려갔다.
버석하게 말라버린 목을 적시던 우리가 건우를 봤다.
건우가 마시고 있던 맥주캔을 벤치 위에 내려놨다.
“다 마시면 말해요.”
건우의 말에 우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어디 좀 가려고.”
“……?”
“좋은 곳으로.”
맥주를 마시던 우리의 얼굴이 굳었다.
색정적인 눈빛에 놀란 우리가 맥주를 잘못 삼켰다.
“켁……!”
기도로 넘어간 맥주 때문에 우리가 기침을 해댔다.
콜록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고 우리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괜찮습니까.”
건우가 우리의 등을 두드리면서 물었다.
“아…… 콜록, 콜록!”
괜찮다는 말조차 흐르지 않았다.
거친 기침에 넘실거리던 맥주가 결국 건우의 바지 위로 쏟아졌다.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죄…… 콜록! 죄송합니다.”
제 바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건우는 비닐봉지를 뒤적였다.
우리의 기침을 멎게 만드는 것이 건우에게는 우선이었다.
건우가 주스를 건넸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주스에 우리는 격렬하던 기침을 삼켰다.
조금씩 우리의 기침이 잦아들었다.
칼칼한 목을 가다듬던 우리가 건우를 봤다.
건우의 바지에는 맥주가 남긴 진한 얼룩이 남아있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건우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짐짓 놀란 건우가 뒤로 물러났다.
“……!”
건우의 바지를 보던 우리의 고개가 천천히 올라갔다.
‘내가 꽤…… 건강한 성인 남성이라. 혹시라도 걱정할까 봐.’
건우의 말처럼 건우는 건강한 것 같았다.
그것도 정말, 무지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