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10화 (10/102)

제 10화. 고대리가 기가 막혀! 육갑 커플의 탄생

차가운 건우의 목소리에 우팀장은 꼼짝없이 얼어붙었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흘러넘쳤다.

우팀장을 바라보던 건우의 눈빛은 위협적일만큼 날카로웠다.

우리를 더 건드리면 건우는 그대로 돌아버릴지도 몰랐다.

건우를 보던 우팀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다부진 체구의 건우에게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음을 직감한 것이었다.

잘못 건드리면 뼈도 추리지 못할 것만 같았다.

건우의 기세에 눌린 우팀장이 뒤로 물러났다.

꼭, 맹수를 피해 뒷걸음질을 치는 가엾은 초식동물처럼.

“강차장. 적당히 술 깨면 나와요.”

우팀장이 말을 더듬거렸다.

“거 본부장님 기다리시니까.”

“…….”

“고대리도 얼른 나오고.”

우팀장은 건우의 너른 등에 가려진 우리를 향해 말을 던졌다.

급하게 말을 돌린 우팀장이 부랴부랴 화장실을 나섰다.

꽁무니 빠지게 도망간 것이었다.

닫힌 화장실 문을 보던 건우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억센 겨울바람만큼 매서웠던 건우의 눈빛이 한결 차분해졌다.

“차장님. 괜찮으세요?”

“……예.”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괜찮습니다.”

짐짓 숨을 골랐던 건우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2차.

우리가 피하고 싶어 했던 2차였다.

하지만 우팀장에게 걸린 이상, 꼼짝없이 필수 참석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건우를 버리고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았다.

건우에게 마음이 쓰였다. 엄청난 주사로 건우를 괴롭힌 전적 때문이었다.

또 이웃주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가 비틀거리면서 화장실을 나서는 건우를 봤다.

그리고 또. 또…….

처음이었다.

모두 우팀장에게 대적하는 것을 꺼렸다.

괜히 회사생활이 골치 아파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육강식이 통용되는, 작은 정글.

그 속에서 건우는 담담히 우팀장을 막아주었다.

그게,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차장님.”

우리가 건우에게 바짝 다가섰다.

“물이라도 사올까요.”

“괜찮습니다.”

우리는 건우를 부축하지 못한 채로 나란히 화장실을 나섰다.

건우가 비틀거릴 때마다 우리의 손은 움찔거렸다.

건우가 쓰러지기라도 할까.

우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거리로 나온 순간에도 우리의 시선은 오직 건우에게 향해 있었다.

“노래방 출발합시다!”

우렁찬 우팀장의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본부장과 우팀장만 신난 얼굴이었다.

2차 노래방은 블랙홀이었다.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쳐봐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곳.

노래방에 끌려간 우리는 건우의 옆에 앉아 영혼 없는 박수만 쳐댔다.

‘차장님아. 왜 이렇게 달리는 거야.’

우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건우를 봤다.

덩실거리던 본부장이 연달아 건우의 잔을 채워주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비워지는 잔.

또, 채워지는 잔.

건우는 정신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만 달려요. 제발!’

우리가 눈짓을 날려댔지만 건우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거 한 잔 더…….”

“본부장님!”

우리는 다급히 본부장의 손을 막아섰다.

갑작스러운 제지에 본부장은 미간을 좁혔다.

상당히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로운 분위기.

우리는 본부장의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뒷말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노래!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노래방 기계를 공손히 가리켰다.

[불효자는 웁니다]

본부장의 애창곡이었다.

불타오르던 본부장의 눈빛은 순식간에 슬프게 바뀌었다.

우팀장은 날랜 손길로 본부장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마이크를 잡은 본부장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울상이 됐다.

“내가 말이야. 이 노래는 전주만 들어도 슬퍼요.”

본부장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말했다.

메아리처럼 본부장의 목소리가 노래방을 휘돌았다.

‘아니……. 본부장님. 집에 부모님 계시잖아요.’

모두 차마 속내를 내비치지 않았다.

평온한 회사생활을 위한 암묵적인 단합이었다.

‘집에 가세요.’

직원들의 눈빛을 외면하면서 본부장은 영혼을 녹여 노래를 불러댔다.

첫 소절이 시작되는 순간.

노래방은 대번에 부산스러워졌다.

슬픈 추임새, 조용한 박수, 반짝거리는 탬버린…….

그야말로 감동을 높이기 위한 총공격이었다.

모두 본부장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우리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부장이 노래를 부르는 틈을 타서 술 깨는 약이라도 사올 참이었다.

“어머니!”

우악스럽게 마이크를 잡은 본부장이 울부짖듯 소리쳤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 우리는 게걸음으로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100점

가수 아니신가요!

노래방 기계에 점수와 함께 축하 멘트가 떴다.

삽시간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뒤늦게 출동한 탬버린 부대도 질세라 탬버린을 흔들어댔다.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우팀장은 열성적으로 고개까지 끄덕여대면서 박수를 쳐댔다.

“와……. 본부장님!”

끝내주는 감탄이 우팀장의 입에서 흘렀다.

“본부장님은 가수하셨어야 돼. 대학가요제 한 번 나가시지 그러셨어요. 분명, 다 휩쓸어버리셨을 건데.”

“이 사람이 또……. 쑥스럽게 하네. 거참.”

본부장은 목덜미를 긁적거렸지만 칭찬이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백점에 손발이 놀라서 얼었나. 다들 뭐해. 박수!”

우팀장이 억지로 직원들의 박수를 끌어냈다.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일제히 터졌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본부장님!”

“최고!”

“앵콜!”

영혼 없는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터졌다.

모두 핏대를 세우면서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우팀장이 만들어낸 아부 잔치에 우리는 혀를 내둘렀다.

쇳소리에, 엇박자까지.

본부장이 대학가요제라도 출전했다가는 정말, 큰일이 났을지도 몰랐다.

“예전부터 다들 성량칭찬은 하더라고. 울림통이 있다나.”

“본부장님 같은 분이 가수를 하셨으면 대한민국에 한 획을 그으셨을 텐데.”

“이거 원……. 쑥스러워서 얼른 마이크 넘겨야겠네.”

손을 내젓던 본부장은 다음 타깃을 찾았다.

후끈한 열기를 이어갈 타깃.

“자, 그럼 다음 곡은…… 우리 강차장!”

시끌시끌한 본부장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건우에게로 쏟아졌다.

노래방 문고리를 잡고 있던 우리의 눈길마저도.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우리의 등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강건우! 강건우!”

“잘생겼다!”

사방에서 진짜 환호성이 터졌다.

모두 건우의 무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강차장님.”

“예.”

“뭐하고 있어요. 얼른 받지 않고.”

우팀장이 채근하듯 건우에게 말했다.

건우는 본부장이 들이밀고 있는 마이크를 빤히 쳐다봤다.

“우리 가수왕, 본부장님의 선택이라니!”

“…….”

“크! 강팀장님, 복 받으셨네.”

얍삽한 웃음을 흘리는 우팀장과 건우의 이름을 연달아 외치는 직원들의 콜라보가 이어졌다.

건우가 바람 빠지듯 조용히 미소를 흘렸다.

갑갑한 마음을 풀려는 것처럼 건우가 마이크를 잡고는 당차게 일어났다.

“아…….”

고개를 내젓던 우리가 탄식을 내뱉었다.

흑역사.

그래. 강건우 흑역사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일지도 몰랐다.

“3869.”

건우가 마이크에 입을 대고는 나직이 말했다.

노래방 기계 근처에 있던 직원이 서둘러 번호를 눌렀다.

삼팔육구.

그리고 시작 버튼.

기계에서 흐르는 경쾌한 멜로디에 우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불안한 전주였다.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마성의 반주.

“……!”

그리고 노래방 화면에는 또렷하게 제목이 떴다.

[흥보가 기가 막혀]

‘대체…… 왜 저 노래를…….’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정말 기가 막힐 만큼 예상 밖의 선곡이었기 때문이었다.

구수한 반주가 노래방을 휘감았다.

리듬을 타고 있는 것처럼 건우는 손가락으로 마이크를 톡톡, 건드렸다.

무심한 눈길로 화면을 보던 건우가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쉬지 않고 자신을 맴돌던 불안함의 정체를 뒤늦게 깨달았다.

흥보가 기가막혀를 부른 육각수.

그 육각수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던 것이었다.

‘설마. 차장님…….’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날렸다.

완전한 육각수를 꿈꾸기라도 하는 것처럼 건우가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느릿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불길한 예감이 틀리기를 바랐다.

“찬스, 쓰겠습니다.”

건우의 묵직한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사방에 울렸다.

“고대리 찬스.”

정확한 마지막 한방이었다.

우리는 불길한 예감이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황망한 얼굴로 건우를 보던 우리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이제 모두의 시선은 건우에게서 우리에게로 향해있었다.

‘육각수…… 육각수라니!’

사람들만 없었다면 우리는 맹렬하게 건우에게 달려들었을 것이었다.

고대리 찬스를 힘차게 외친 강건우.

저 자의 머리를 쥐어뜯기 위해.

혼이 빠진 얼굴로 서 있던 우리를 향해 어디선가 부드럽게 마이크가 날아들었다.

우리가 반사적으로 마이크를 받았다.

날쌘 운동신경 덕분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우리의 귓가에 건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곧, 고대리 찬스를 써볼 참입니다.’

애초에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눈 한 번 감고 육각수로 빙의하면 고대리 찬스는 영원히 끝일 것이었다.

다른 무리한 부탁을 받는 것보다는 노래 한 번이 나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다들 술에 취하기도 했고.

‘그래. 가자.’

우리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는 테이블에 있던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맨 정신으로는 거사를 치를 수가 없었다.

맥주가 우리의 목구멍을 타고 시원하게 내려갔다.

마이크를 잡은 우리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가자, 고우리.

우리가 힘껏 테이블에 맥주를 내려놨다.

고우리 찬스를 한방에 끝내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술기운에 몸을 맡긴 우리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건우의 옆에 섰다.

“고대리 찬스, 오늘 완전히 쓰신 겁니다.”

우리가 건우의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예.”

건우는 단박에 대답했다.

우리는 크게 숨을 내쉬고는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까짓, 잠시 영혼이 가출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짧은 순간이었다.

딱, 끝내고 술에 취한 그날의 고마움은 청산하는 걸로!

“흥보가 기가막혀.”

건우가 덤덤하게 노래의 서막을 열었다.

묵직한 목소리는 노래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얼쑤. 헙…… 헙!”

우리는 술기운에 모두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이어지는 감탄사들을 내뱉었다.

‘에라이! 몰라.’

그 생각 하나였다.

우리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렀다.

신입사원 장기자랑 때부터 남다른 눈치로 요리조리 피해 다녔던 우리였다.

그런데 대리를 달고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니!

취기가 목을 타고 우리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야말로 노래방은 두 사람이 점령해버린 것처럼 보였다.

고흥부와 강놀부의 신명나는 잔치현장이었다.

“내가 니 갈 곳까지 일러주냐.”

“잔소리 말고 썩 꺼져라.”

만담꾼처럼 두 사람은 수없이 가사를 뱉어냈다.

구수한 된장냄새가 풍기는 것만큼.

정말, 구수하게.

두 사람의 모습에 직원들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사무실에서는 눈곱만큼도 예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흥부와 놀부가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고똘…… 맞아?”

“우리 강차장님이…….”

“와. 대박! 저장감이네.”

음악 방송처럼 직원들의 카메라가 사위에서 넘실거렸다.

노래에, 춤사위까지 재현하면서 힘차게 노래를 불러대는 우리는 동영상을 찍히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박수를 치고 환호를 질러대는 사람들 속에서 두 사람은 커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육갑커플.

***

회식의 끝이 보였다.

노래방을 끝으로 본부장의 전화가 힘차게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꼬부라진 혀로 아내를 달래던 본부장을 보던 우팀장이 냉큼 택시를 잡았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몸짓이었다.

“우리 본부장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충성!”

우팀장은 본부장에게 경례를 해댔다.

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경례였다.

유명 레스토랑의 웨이터처럼 정갈한 손놀림으로 우팀장은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근엄한 얼굴로 본부장은 택시에 올라탔다.

“그럼 다들 주말 잘 보내시고…… 여보, 지금 들어가고 있어요오.”

좀비처럼 변한 직원들에게 인사를 날린 본부장은 택시 뒷좌석에서 폭풍 애교를 날려대고 있었다.

우팀장은 뒷좌석의 문을 닫아주고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눈꼴사나운 아부의 현장이었다.

본부장과 우팀장을 태운 택시가 빠르게 도로를 내달렸다.

택시의 뒤꽁무니를 보면서 인사를 하던 모두가 소리 없는 환성을 질렀다.

프리덤! 하고.

“오늘 짱이었습니다. 고대리님, 강차장님.”

“흥부가 기가 막혀!”

“고대리님한테 그런 숨은 재능이!”

모두 비틀거리면서 육갑 커플을 짓궂게 놀려댔다.

벌건 얼굴로 서 있던 우리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집중된 이목이 마냥, 어색했다.

모두 우리가 회식 자리에서 사라져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우리는 관심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업무적으로만 부딪히는 사람.

우팀장과의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견고했던 모두의 관계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쇼!”

“주말 잘 보내세요.”

사람들의 인사에 우리도 약간 고개를 숙여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살갑게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은 분주하게 흩어졌다.

해방의 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모두 사라진 공간에 우리와 건우만 남았다.

우리는 난감한 얼굴로 편의점 앞의 간이 의자에 앉은 건우를 봤다.

건우는 움직이기도 힘든 것처럼 보였다.

찬바람이 불었다.

채 피어나지 못한 꽃봉오리에서 옅은 꽃향기가 실려와 두 사람의 코끝을 간질였다.

건우가 완전히 넥타이를 잡아 끌어내렸다.

끓는 열기에 재킷과 코트도 벗은 채였다.

우리는 건우의 손에 있던 재킷을 가져가 건우에게 덮어주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감기에 걸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달뜬 열기가 건우의 얼굴을 적셨다.

“차장님. 편의점 좀 다녀올게요. 여기 가만히 계세요.”

“……알겠습니다.”

우리가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술 깨는 약과 생수를 사면서도 우리의 눈길은 바깥에 머물렀다.

편의점을 나선 우리가 부랴부랴 건우에게 다가섰다.

우리는 건우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건우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술 깨는 약과 물을 내민 우리가 빙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소리 없는 그 미소에 건우의 마음이 뛰었다.

술기운에 괜스레 들떠버린 마음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한 번 뛰기 시작한 건우의 심장은 멈출 줄을 몰랐다.

“드세요.”

건우의 이성의 끝은 금방이라도 끊어질듯 위태로웠다.

손을 내뻗는 건우의 두 뺨을 스치면서 차가운 바람이 지나갔다.

열기를 삼키는 바람에 건우가 살짝 정신이 들었다.

우리에게 실수를 할 뻔했다.

달아오른 취기에 그대로 우리의 입술을 삼켰을지도 몰랐다.

건우는 굳은 침을 삼켰다.

이렇게 미친 듯이 심장이 뛰다니…….

정말 우리에게 단단히 미쳐버린 걸까.

정말, 미쳤냐고. 강건우.

건우가 생수를 받아들면서 일어났다.

“가죠.”

실수를 저지르기 전에 서둘러 집에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

달아오른 술기운에 얼마나 이성을 누를 수 있을지도 건우는 알 수 없었다.

“우선은 앉아서 술 좀 깨시면…….”

우리의 걱정이 끝나기 전이었다.

미끄러운 물웅덩이에 비틀거린 건우의 몸이 우리의 쪽으로 기울었다.

청춘영화의 한 장면이 될 수도 있었다.

손이라도 스칠까.

놀란 우리가 반사적으로 건우에게서 멀어지지만 않았더라면.

건우가 두 손을 짚으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물웅덩이에 있던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건우는 꼼짝없이 빗물에 맞은 꼴이 돼버렸다.

걸치고 있던 코트와 얇은 와이셔츠가 순식간에 젖었다.

건우의 탄탄한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치겠네.”

축축한 기운을 털어내면서 건우가 느릿하게 일어났다.

우리는 바닥을 구르던 숙취해소제를 잡았다.

“괜찮으세요?”

우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우리는 건우가 끓어오르는 술기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건우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흘렀다.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는 건우의 눈빛은 우리를 잡아끌기에 충분해보였다.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는 눈빛이었다.

혼을 쏙, 뺄 만큼 매혹적인 눈빛.

우리의 작은 심장 소리가 사방에 퍼질 것만 같았다.

눈부시고도 애달픈, 그런 눈빛.

“많이 힘드세요?”

스카프를 풀어 건우의 젖은 얼굴을 닦아주던 우리가 물었다.

“……예.”

뜨거운 목소리가 허공을 적셨다.

건우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낯선 감정, 휘몰아치는 문규에 대한 질투, 우리에게 다가설 수 없는 상황이 전부 힘겹게만 느껴졌다.

정말…… 미치도록, 힘겹게.

“힘듭니다.”

“…….”

“정말, 많이.”

건우의 말에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봤다.

건우는 정말, 힘들었다.

갑작스레 인생에 들이닥친 고우리.

당신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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