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9화 (9/102)

제 9화. 골키퍼 있는 골대가 탐나면

10층.

굳게 닫혔던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다양한 크기의 회의실을 가로질렀다.

네 사람은 널찍한 회의실로 들어섰다.

“커피라도 한 잔 드릴까요.”

소희는 건우와 문규를 보고는 물었다.

소희에게 우리는 투명 인간처럼 보였다.

“괜찮습니다. 피차 바쁠 텐데 바로 진행하시죠.”

분위기의 흐름을 읽은 건우가 소희의 말을 단칼에 잘라냈다.

“우선은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문규가 명함을 꺼냈다.

“반갑습니다. 성운백화점 마케팅팀 성문규 주임입니다.”

“HJ그룹 F&B본부 마케팅1팀, 강건우입니다.”

건우도 문규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건우의 명함을 보던 문규는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우리를 봤다.

네가 그때 그 직장새끼구나!

소리라도 치고 싶은 눈빛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앉으시죠.”

문규는 건우에게 악수를 권하려다가 말았다.

남다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문규는 작은 스킨십만으로도 건우가 괜히 오해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뭐야. 뭐…… 오해하는 거 아니야?’

건우와 마주보고 앉은 것조차 문규는 불편해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잽싸게 건우의 시선을 피하면서 문규는 우리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오시느라 힘드셨죠. 무슨 겨울비가…… 어우.”

문규는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보면서 말했다.

“불편하셨겠네. 고대리님.”

“차장님 덕분에 편히 왔습니다.”

우리는 문규에게 가벼운 미소를 날렸다.

일종의 경고였다.

괜스레 아는 체를 하지 말라는 경고.

사무적인 자리가 가볍게 번지는 것을 우리는 원하지 않았다.

“그럼 저희 제안서 먼저 전달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빳빳한 봉투에서 제안서를 꺼냈다.

제본된 제안서를 세 사람에게 건넸다.

문규는 경쾌하게 종이를 넘겨댔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찬성을 외칠 기세였다.

가벼운 문규의 손길과는 다르게 소희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제안서를 훑어보던 소희의 눈빛은 불탔다.

트집을 잡을 수 있는 만한 부분을 기필코 잡아내고 말겠다는 눈빛이었다.

맹랑한 눈빛에 우리는 단단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무슨 공격이든 막아낼 모양새였다.

“와……. 이번에 모델 한소민으로 결국 확정 났구나.”

문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했다.

“알고 계셨나봅니다.”

“아…… 뭐, 소문이. 업계가 워낙 좁잖아요.”

날카로운 건우의 말에 문규는 두루뭉술하게 변명을 했다.

문규가 어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문규를 향해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해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날려댔다.

“저희 프로모션 제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흐트러졌던 분위기를 집중시켰다.

“플레이레드는 물을 기반으로 한 축제로 총 4가지 섹션으로 운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부적인 내용들을 설명했다.

공연과 다양한 체험을 기반으로 한 행사장 운영 전반에 대한 설명들이었다.

문화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고 신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었다.

“와…… 규모 크네.”

“저녁에 있을 공연 라인업에도 힘을 강하게 줄 계획입니다.”

“대신 백화점 내에서 광고도 돌리고 당일에 고객들한테 식품 매장 할인을 제공해달라는 건데…….”

우리의 제안서를 보던 문규가 볼펜 끝을 물었다.

“당일 백화점 이용 고객의 증가 측면이나 이번 프로모션으로 예상되는 노출량을 보시면 충분히 가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12페이지에 있던 예상 노출량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충분히 성운백화점에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성운백화점이 추구하는 복합 문화공간이라는 가치도 충분히 높아질 거고요.”

win-win.

우리는 차분하게 성운백화점에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설명해나갔다.

회의는 길게 이어졌다.

우리의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발생할 때마다 건우가 말을 이었다.

논리적이고도 차분한 말투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질문과 답변은 한참 계속됐다.

우리와 건우는 상대방의 욕구를 정확하게 꿰뚫으면서 말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질문도 끝이 보였다.

정확히 6시.

애초에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회의가 끝났다.

“일단은 내부 회의하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문규가 가방을 챙기는 우리와 건우를 보면서 말했다.

“네. 연락주세요.”

우리가 빙긋 미소를 머금었다.

네 사람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우리와 건우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묘한 긴장감이 돌았던 미팅은 끝났다.

“수고했습니다.”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보던 건우가 무심히 말했다.

“차장님 덕분에 잘 마쳤습니다.”

“나는 지켜만 봤죠.”

“아니시던데요. 계속 도와주셔서 눈물 날 뻔했다니까요.”

건우를 보던 우리의 얼굴에 빙글 미소가 돌았다.

잘 끝냈다는 안도감이 우리의 얼굴을 적셨다.

딱딱했던 우리의 얼굴도 한결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랬습니까.”

“네. 되게 든든했어요. 정말, 많이.”

우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건우는 환하게 미소가 도는 우리의 얼굴을 쳐다봤다.

빙글.

우리의 미소에서 향긋한 꽃향기가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건우는 우리의 잔향을 삼킨 것만 같았다.

짧은 순간.

건우의 마음이 뛰었다.

꼭, 터질 것처럼.

채도가 낮은 주차장의 불빛도 우리에게서만큼은 환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를 보던 건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예뻤다.

우리가 참, 예쁘게만 보였다.

눈부신 초록빛을 머금은 것처럼.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던 건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강건우. 방금 대체 무슨 생각을……. 정말, 돌았구나.’

건우가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서서히 닫혔다.

애인이 있는 사람이었다.

골대를 지키고 있는 골키퍼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 사람에게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꽃, 예쁘다, 찬란한 빛…….

수없이 머릿속을 지배했던 단어가 우습게만 느껴졌다.

건우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착각이라 생각했다.

환각에 사로잡혔거나 정신이 아득해졌던 걸지도 몰랐다.

좁은 엘리베이터는 건우의 한숨으로 가득 찼다.

작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차장님.”

그리고 하필 거기에는 우리가 있었다.

우리는 놀란 얼굴로 건우를 봤다.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우리의 말에도 건우는 별말이 없었다.

그냥 서 있었다.

우리를 바라본 채로.

건우는 혼란스러웠다.

환각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환상도 아니었다.

감정에 솔직해질 수만 있다면…….

건우는 가만히 우리를 바라봤다.

감정에 솔직해진다면.

정말, 그렇다면.

흔들렸던 건우의 마음이 고요해졌다.

바람을 삼키고 흔들거리는 억새풀처럼.

힘차고 부드러이 마음을 흔들면서 네가, 왔다.

네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소리 없이 박혀버렸다.

깊숙하게.

***

우리는 건우를 끌고 전체 회식에 참석했다.

본부장은 두 팔을 벌려 건우를 반겼다. 댓바람부터 거나하게 취한 모양새였다.

새빨개진 얼굴로 본부장은 건우의 팔을 힘껏 잡아끌었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건우는 결국 본부장의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건우의 명복을 빌었다.

술고래 본부장의 테이블은 그야말로 초죽음 예약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슬그머니 본부장의 테이블을 등졌다.

고주망태가 돼 건우를 괴롭힌 마당에 다시 실수를 저지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이야. 우리 강차장만 기다리고 있었다니까.”

본부장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목젖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가볍게 술병을 딴 본부장은 건우의 빈 잔을 채우기 위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어째. 우리 강차장. 술은 좀 마시나.”

“적당히 마십니다.”

건우가 덤덤히 대답했다.

본부장 테이블로 몸을 기울이던 우리는 작게 혀를 찼다. 좋은 대답은 아니었다.

동굴 속에 있던 맹수가 모습을 드러내듯 본부장의 눈빛이 번뜩였다.

새로운 파트너를 만났다는 기대의 눈빛이었다.

건우는 본부장의 술을 받았다.

우리가 연달아 술잔을 비우는 건우를 힐끔 쳐다봤다.

본부장의 주량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우팀장이 유일했다.

고로 적당히 술을 마실 줄 아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본부장을 당해낼 수 없다는 소리였다.

‘거참. 차장님도. 왜 하필 술부장한테 걸려서…….’

우리는 답답해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금방 이성을 잃을 만큼 취할 것이 분명해보였다.

불안한 눈길로 건우를 보던 우리는 냉수만 들이켰다.

“고대리님. 좀 드세요.”

“고마워.”

삼겹살을 먹으면서도 우리의 시선은 건우에게 머물렀다.

동네 주민이라 그럴지도 몰랐다.

우리는 건우에게 신경이 쓰였다.

묘하게, 정말 이상하게.

우리는 선영이 부르는 것도 듣지 못한 채로 대강 젓가락질만 해대고 있었다.

“대리님.”

선영은 황급히 우리의 팔을 잡았다.

“무슨…….”

“고기 안 익었는데…….”

선영은 말끝을 흐렸다.

우리는 젓가락을 봤다.

건우에게 정신이 팔려서 생고기를 집고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었다.

우리가 민망한 얼굴로 슬쩍 생고기를 내려놨다.

선영이 새 젓가락을 우리에게 건넸다.

“소고기가 아니라서 탈나실 것 같아서요.”

“고마워. 내가 미팅 끝나고 바로 오느라 아직도 정신이 없네.”

구질구질한 변명이었다.

선영은 괜찮다는 것처럼 잘 썰린 돼지고기를 불판에 내려놨다.

자글자글 소리를 내면서 돼지고기가 맛있게 구워졌다.

돼지고기에서 흐르는 기름에 마늘과 버섯도 노릇하게 구워졌다.

불판을 보던 우리는 건우에게 신경을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본부장의 늪에서 건우를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우리는 잘 구워진 고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건우에 대한 관심은 싹, 잊고.

“우리 강팀장!”

본부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거나하게 술에 취했다는 증거였다.

우리는 슬쩍 본부장 테이블을 봤다.

건우는 조금씩 흐트러지고 있었다. 본부장을 당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강하네. 강해. 맘에 들어.”

“예.”

건우는 대답만 곧잘 했다.

본부장은 쉬지 않고 건우의 잔을 채워주었다.

원샷을 외치면서.

본부장의 채근에 술을 들이켜는 건우의 얼굴은 빨개졌다.

열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허공에 작은 숨을 흘리던 건우가 넥타이를 잡아끌었다.

목에 있던 단추도 풀었다.

술잔을 기울이는 건우의 얼굴에는 연한 미소가 돌았다. 희귀한 미소였다.

무미건조하던 심장도 살릴 수 있을 만큼 훈훈한 미소이기도 했다.

무표정의 건우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

“이 친구…… 왜 이래.”

건우의 호의적인 미소에 우팀장은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우팀장은 사내에게서 받는 유혹적인 미소가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우팀장에게 섹시한 미소를 날리는 건우를 보면서 우리도 뜨악했다.

‘역시. 술에 취하면 본능이 나온다더니.’

우리가 목을 빼고 건우를 봤다.

우리는 전전긍긍했다.

건우의 성적 취향은 존중할 수 있었지만 우팀장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

알랑거림에만 재능이 있는 중년의 남정네에게 유혹적인 미소라니…….

“살인미소네.”

“대박. 역시 귀태가 장난 아니라니까.”

“눈이 호강하네. 살맛나네.”

훈훈한 얼굴로 유혹적인 미소를 날리면서 건우는 스타가 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HJ그룹 F&B본부의 회식 스타.

물론 본인은 전혀 알지 못했다.

“적당히 술도 마셨는데. 2차 가야지!”

본부장이 침을 튀기면서 말했다.

“당연히 가야죠. 노래방 어떠십니까.”

“강차장은?”

우팀장의 제안에도 본부장은 건우를 챙겼다.

우팀장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본부장님도 참. 강차장은 무조건 가죠.”

우팀장은 건우의 대답을 가로챘다.

어질한 기운에 건우는 냉수만 마셨다.

우팀장의 주도로 1차는 급히 마무리됐다.

모두 본부장과 우팀장의 레이더를 피해 도망가는 분위기였다.

우리도 완벽한 도주를 꿈꿨다.

우리는 계산과 비틀거리는 사람들로 혼란스러운 틈을 노렸다.

화장실에 숨었다가 최정예 멤버들이 노래방으로 이동하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화장실로 들어선 우리는 하마터면,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차장님?”

건우가 세면대를 잡은 채로 뜨거운 숨을 내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화장실을 봤다.

남녀공용화장실이었다.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면서 우리는 건우에게 다가섰다.

지난날의 은혜를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톱만한 양심이었다.

“괜찮으세요?”

우리는 술을 깨려고 안간힘을 쓰는 건우에게 물었다.

“……안 괜찮습니다.”

건우가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세수라도 했는지 건우의 날카로운 턱을 타고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살짝 풀린 건우의 눈은 묘하게 매혹적이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숨은 눈동자는 사람을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술을 너무…….”

“당신 때문에.”

건우의 나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우에게 다가서던 우리의 걸음이 멈췄다.

건우의 취중진담이었다.

건우의 머릿속은 터질 것만 같았다.

골키퍼가 있는 골대에는 달려들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마음이 접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아무도 마음에 담은 적이 없었다.

화재 사건이 났던 그날 이후로.

모두를 멀리했고 선을 그었다.

행복해지지 말자.

그것이 건우가 스스로에게 내린 벌이었다.

그런데 누군가를 마음에 품어버리다니…….

뜨거운 열기를 품은 건우의 숨결이 우리를 적셨다.

건우는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한 번 펼쳐진 마음을 접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복작거리는 건우의 마음을 우리는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만 도망쳐서 원망스러운 건 알겠는데요. 일단은 술 좀 깨시면…….”

우리가 건우의 등을 두드려주려던 순간이었다.

벌컥.

굳게 닫혔던 화장실의 문이 열렸다.

화장실을 습격한 사람은 우팀장이었다.

사냥꾼처럼 맹렬하게 우리를 노리고 있는 우팀장.

우팀장을 보던 우리는 굳어버렸다.

달갑지 않은 원수와의 조우였다.

왜 하필 우팀장일까.

다른 직원도 많을 텐데…….

우리의 입술을 비집고 한숨이 흘렀다. 술에 취한 우팀장의 얼굴은 검붉었다.

야비하게 키득대는 우팀장은 건수 하나를 제대로 물었다는 표정이었다.

“고대리!”

“…….”

“강팀장님하고 둘이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은밀하게. 응?”

우팀장이 시비조로 물었다.

화장실을 둘려보던 우팀장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르고는 우리에게 다가섰다.

“술에 취한 사람을 말이야. 이렇게 막 만져서야 되겠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고대리는 현행범이야. 지금!”

우팀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취하신 것…….”

“고대리는 본인한테는 참 관대해.”

“우팀장님.”

“왜. 맞잖아. 손 한 번 스친 거 가지고는 성희롱이라고 바락바락 상부에 보고하더니. 본인은 욕구불만이야?”

우팀장은 비꼬듯 말했다.

허공에 우뚝 멈춰 선 우리의 손이 떨렸다.

우리와 우팀장의 관계가 틀어진 날도 오늘처럼 단체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술에 취한 우팀장은 주임으로 들어왔던 우리의 허벅지를 몰래 더듬거렸다.

‘적당히 하세요. 팀장님.’

빙글 웃으면서 우리는 우팀장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었다.

우리의 경고에도 우팀장의 손길은 과감해졌다.

덤덤하게 우팀장을 보던 우리는 다음날 곧장 본부장에게 찾아갔다.

우팀장의 더듬거리는 손이 담긴 동영상을 들고.

우팀장은 본부장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그게 끝이었다.

놀랍게도 달라진 건 없었다.

우팀장만 우리에게 복수의 칼날을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팀장의 목표는 하나였다.

우리가 제 발로 나가게 괴롭히는 것.

아직,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예. 욕구불만입니다.”

우리가 질수 없다는 듯 마음을 굳게 잡으면서 대꾸했다.

“뭐…… 뭐?”

“그래서 제가 우팀장님처럼 허벅지라도 더듬었나요.”

당당한 우리의 말에 우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여러 색깔로 변해갔다.

본부장실에 불려갔던 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팀장은 화가 나서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우팀장은 인사발령만은 막아달라면서 본부장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댔다.

‘허벅지 한 번 만진 거 가지고 말이야. 닳는 것도 아니면서.’

우팀장은 반성을 할 생각이 없었다.

“우팀장님. 저는 욕구불만 혼자 잘 풀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얼씨구?”

“사람이라면 적어도 몹쓸 짓은 말아야죠.”

꼿꼿한 우리의 모습에 우팀장은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짐승도 아니고.”

우리가 말에 힘을 꾹, 눌러 담았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말에 발끈한 우팀장은 씩씩거렸다.

우팀장은 화를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무서운 기세로 우리에게 돌진하는 우팀장은 우리에게 손찌검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비틀거리던 건우가 몸을 추스르고는 우팀장의 앞을 막아섰다.

“뭐 하시는 겁니까.”

널찍한 건우에게 가려진 우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건우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사나운 맹수처럼.

“……내 사람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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