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탐나는 파트너-6화 (6/102)

제 6화. 고대리가 어쩌다 토끼였습니까.

회사에 출근한 건우는 단숨에 사내 직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한 파란색의 와이셔츠와 진한 파란색의 넥타이가 건우의 얼굴을 잘 살려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로 책상에 앉고는 안경을 썼다.

얇은 금색 안경테가 건우에게 퍽, 잘 어울렸다.

건우에게서는 지적인 기운마저 돌았다.

또렷한 이목구비, 훤칠한 키, 훈훈한 얼굴…….

건우는 대번에 F&B본부의 빛과 소금으로 자리 잡았다.

냉랭하고도 냉소적인 말투마저도 매력 포인트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건우는 종일 컴퓨터만 붙잡고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말끔하게 정리된 우리의 보고서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건우는 모델 선정과 관련된 내용에 세세한 의견을 덧붙여 보고서를 최종 마무리했다.

딸깍.

건우가 무심히 인쇄버튼을 눌렀다.

사무실 입구 쪽에 있던 복합기가 움직였다.

복합기로 걸어가던 건우의 걸음이 잠깐 느려졌다.

모니터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눈 나빠지겠네.’

건우는 단순히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다.

부하 직원에게 흔히 생긴다는 그런, 쓸모없는 관심.

“거북입니까.”

건우가 우리에게 툭, 말을 던졌다.

건우 나름대로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뱉은 회심의 질문이었다.

‘개나리가 뭐래.’

우리는 건우의 말을 단순한 시비로 받아들였다.

고생을 했던 간밤의 복수!

우리가 고개를 들고는 건우를 올려다봤다. 어제의 고마움을 상기하기로 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퉁명스럽게 나오려던 말을 꾹, 눌러 담았다.

“아닌데요. 갑자기 거북이는 왜……?”

“아무것도 아닙니다.”

건우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순식간에 어색한 기류가 허공에 번져나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눈만 껌뻑거렸다.

“일 보시죠.”

건우는 급히 뒷말을 이었다.

‘강건우. 미쳤냐. 쓸데없는 농담은 대체 왜…….’

건우는 깊이 후회했다.

난데없이 등장한 회심의 질문을.

다시는 농담은 던지지도 않겠다고 건우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동아줄이라도 잡는 것처럼 두 손으로 복합기를 잡은 건우의 입술 사이로 연달아 묵직한 한숨이 흘렀다.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

농담이라니!

힘껏 복합기를 잡고 있던 건우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진 것만큼이나 절망적인 모습이었다.

건우는 프린트를 한 보고서를 잘 정돈해서는 본부장실로 향했다.

본부장실의 문은 한참동안 닫혀있었다.

팩스를 보내러 가던 우리의 걸음은 본부장실 근처에서 느려졌다.

안에서 무슨 대화를 하고 있나. 우리는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간밤의 난동을 부리던 모습이 우리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진상 직원을 자르고 싶다는 말은 아니겠지. 설마. 아파트 주민끼리.’

우리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지갑에 상추를 구겨 넣는 직원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건우가 정말 HJ그룹 후계자라면…….

그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목이 잘려나갈 수도 있었다.

우리가 갑갑한 목을 매만졌다.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본부장실 문이 열렸다.

우리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덤덤했던 건우의 발걸음이 멈췄다.

우리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건우를 봤다. 버석하게 목구멍이 말라왔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우리가 서둘러 건우를 스쳐지나가려던 순간이었다.

“고대리님.”

건우가 우리를 불렀다.

순간, 우리는 굳어버렸다.

우리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건우를 돌아봤다.

“네…… 예?”

“한소민으로 가죠.”

“한소민이라면…….”

“모델 확정됐습니다. 컨펌 끝났으니 계약 진행하시죠.”

놀라울 만큼 깔끔한 일처리였다.

우리는 건우에게 박수갈채라도 날릴 뻔했다.

앓은 이가 빠진 것처럼 속 시원하게 모델 선정이 단숨에 끝나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럼 계약서 초고 검토하고 전달 드리겠습니다.”

“그러시죠.”

“다른 전달 사항 있으실까요.”

“아…… 잠깐.”

건우가 들고 있던 제안서를 건넸다.

제안서를 받은 우리의 눈이 커졌다.

일전에 우팀장에게 내밀었다가 대차게 까였었던 제안서였기 때문이었다.

[성운백화점 콜라보레이션 제안서]

제안서의 앞장에는 글자가 야무지게 박혀있었다.

“콜라보, 진행해보죠.”

건우를 보던 우리는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구석진 곳에 버려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제안서를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밤샘을 하면서 준비했던 제안서가 다시 세상 밖에 나왔다는 사실에 우리는 기분이 묘했다.

허공을 나는 것처럼 들뜬 기분.

“바로 담당자하고 컨텍을 진행…….”

세상에서 가장 쾌활하고도 명랑하게 말을 뱉던 우리가 멈칫 했다.

성운백화점 콜라보를 제안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루트는 문규였다.

성운백화점 마케팅팀의 성주임. 그런데 유일한 통로와 대판 말싸움을 벌였다니.

것도 건우 문제로.

괜히 골치가 아파질 수도 있었다.

“왜요. 문제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진행하겠습니다.”

“예. 컨택되면 보고하세요. 이 콜라보, 우리 둘이 진행할 예정이니까.”

“네…… 에?”

우리의 목소리가 커졌다. 기철초풍의 상황이었다.

문규의 오해가 풀리지 않는다면 콜라보는 꿈도 꾸지 못할 지도 몰랐다.

우리의 머릿속이 복작거렸다.

공과 사.

문규는 절대로 구분을 못하는 인간이었다.

“저…… 차장님?”

“말씀하시죠.”

“잠깐 회의실에서 말씀 좀…….”

우리가 회의실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나란히 회의실로 들어섰다.

고요한 적막이 두 사람에게 내려앉았다.

“할 말 있습니까.”

건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콜라보. 제가 단독으로 컨트롤 해보고 싶은데 어려울까요.”

“어렵습니다.”

일말의 고민도 없는 대답이었다.

“차장님은 처리하실 일도 많으실 거고…….”

“폐기됐던 사안, 내가 꺼냈습니다. 그러니까 잘못되는 꼴은 절대 못 봅니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번만큼은 팀원을 믿고 기회를 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깍지를 끼고는 우리가 간절히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은 누구에게라도 간절히 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늘에 있는 아빠에게도.

‘제발. 아부지! 강건우하고는 붙여주지 말아주세요.’

돌아가신 아버지 성원에게 보내는 참으로 간절한 기도였다.

“변경사항 없습니다.”

“……!”

“낮은 확률에는 배팅을 하지 않은 성격이라.”

건우의 말은 단호했다.

“더 할 말 없으면 일어나죠.”

건우가 주춤거림도 없이 나가버렸다.

우리만 덜렁 회의실에 남았다.

문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빛에서는 영혼이 가출해버린 것만 같았다.

청승맞은 표정이었다.

험난한 가시밭길로 발을 내딛어버린 우리는 울상이 됐다.

***

점심시간.

모두 팀별로 모여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직원들이 썰물처럼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사무실 탈출만으로도 모두 들뜬 얼굴이었다.

삽시간에 사무실은 고요해졌다.

우리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어렵게 찾은 한 시간의 여유였다.

“고대리님. 식사는요?”

황주임이 습관적으로 물었다.

“먹고 와. 나는 속이 좀 별로라서.”

“오는 길에 죽이라도 사다드릴까요.”

“아냐. 괜찮아. 금방 괜찮아질 거야. 얼른 가. 자리 없겠다.”

우리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점심시간.

우리는 쓰린 속을 붙잡으면서 소설을 업로드 할 생각이었다.

황주임은 선영을 끌고는 뒤늦게 사무실을 나섰다.

우리가 손을 풀고는 사무실을 둘러봤다.

멀리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아득한 소리였다.

멀찍한 거리에 우리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우리가 조심스럽게 소설 사이트를 열었다.

느린 손놀림으로 임시 저장한 글을 수정했다.

「그는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삼켰다. 동백꽃처럼 붉은 흔적이 곳곳에 피어났다.」

「그녀에게서는 진한 꽃향기가 났다. 차가운 바람을 삼킨, 동백꽃 향기.」

집중한 우리의 입술이 꼼지락거렸다.

끝없는 비문과 오타와의 싸움이었다.

「그녀는 그를 입 안 가득 담아 녹아버리고 싶었다. 달뜬 숨소리에, 전부.」

끝내주는 문장을 쓰고 말겠다던 우리의 의지는 쉬이, 꺾였다.

연달아 올라오는 하품에 미칠 지경이었다.

쓰린 속과 깨질 것 같은 머리가 우리를 괴롭혔다.

우리는 반쯤 누운 것처럼 의자에 깊이 기댔다.

「“똑똑히 기억시켜줄게. 영원히 잊을 수 없게.”」

푹신한 기운에 우리의 눈이 풀렸다.

꾸벅꾸벅.

문장과의 싸움에 우리의 얼굴에는 졸음이 짙게 드리웠다.

우리의 손놀림도 한없이 느려졌다. 우리는 마우스를 잡을 힘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잠깐만. 1분만……. 눈만 감아야지.’

우리는 흐늘거리는 마음을 다독거렸다.

사무실용 슬리퍼를 신은 채로 우리는 다리를 쭉, 뻗었다.

집중을 위한 명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잠깐, 정말로 잠깐.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눈을 감은 우리는 순식간에 세상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경계조차 허물어진 무방비 상태.

간단하게 카페에서 베이글과 커피를 사온 건우가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우리는 천장을 향해 입을 쫙, 벌리고 있었다.

천장에 떨어질 고소한 떡이라도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파리 들어가겠네.”

건우가 약간 고개를 저었다.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가만히 우리의 눈두덩을 봤다.

바다를 품은 것처럼 짙은 푸른빛이 돌던 눈동자…….

모든 것을 끌어들일 것만 같은 그 눈빛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매혹, 끌림, 유혹…….

우리와는 멀게만 느껴지는 수식어를 전부 붙이다니.

푸른빛이고 별의 부스러기고 정말 우스운 생각이었다.

우리에게 남았던 여운조차 털어버리는 것이 좋을 것만 같았다.

“부하 챙기기, 쉽지 않네.”

계속 벌어지는 우리의 입이 건우의 발을 붙잡았다.

마케팅팀의 이미지를 위해 건우는 우리의 책상을 살폈다.

서류로 얼굴이라도 덮어줄 참이었다.

생각보다 말끔한 책상을 살피던 건우가 키보드 옆에 있던 결재판으로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눈에 익은 사이트와 제목에 건우의 시선은 모니터에 사로잡혔다.

‘설마…….’

건우는 숨을 죽인 채로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분명히 건우의 밤을 책임졌던 소설이었다.

호흡, 문체, 대사…….

전부 토끼의 것이 분명했다.

무조건 확실했다.

빼도 박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마우스를 잡고 있던 건우의 고개가 느릿하게 돌아갔다.

‘뭐야. 설마…… 그 토끼가?’

건우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베토벤이나 이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우리 때문이었다.

천재적인 면모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건우의 상상 속에 있던 천재적인 작가의 모습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마우스를 잡았던 건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베이글을 들고 짐짓 뒤로 물러나던 건우가 실수로 팔걸이를 툭, 쳤다.

선잠을 자던 우리의 눈꺼풀이 꼼지락거렸다.

옅은 잠에서 깬 우리가 조심스럽게 눈을 비볐다.

희뿌연 시야.

늘어진 하품.

모든 것이 몽롱한 순간에도 건우의 등은 선명하게 보였다.

널찍한 등의 등장에 우리는 눈만 껌뻑거렸다.

아주 짧은 순간.

멈췄던 우리의 사고가 분주하게 돌아갔다.

“……!”

우리가 허겁지겁 의자에서 일어났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놀란 우리의 입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수면 위로 나온 물고기처럼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건우는 건우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의 동공은 강도 높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세차게 흔들렸다.

건우가 전부 봤다.

하필 비상구에서 달뜬 숨을 흘리는 주인공들의 합체 장면을!

“강…… 차장님?”

우리가 말을 더듬거렸다. 마음을 가다듬은 건우도 최대한 덤덤한 얼굴로 책상에 기댔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건우가 팔짱을 낀 채로 우리를 봤다.

아주, 빤히.

우리의 얼굴이 뚫어질 만큼.

“고대리가 어쩌다 토끼였습니까.”

군더더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직설적인 물음이었다.

날카롭게 날아든 질문에 우리가 휘청거렸다.

건우의 질문을 방어할 신박한 대답 하나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굳은 침을 삼켰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는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토끼…… 아세요?”

질문을 던지던 우리의 말끝이 떨렸다. 건우는 꽤 덤덤한 얼굴이었다.

흔들리는 속을 꾸역꾸역 숨긴 채로.

‘아…… 왜 아는 체를 해서는.’

깊은 후회가 건우에게 휘몰아쳤다.

토끼의 글을 읽다가 밤을 샜다는 소리는 죽어도 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럴싸한 변명을 찾던 건우의 머릿속에 성민이 스쳤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계거리였다.

“주워들었습니다.”

“토끼를요? 어디에서요?”

“친구가 장르 문학 출판사를 운영해서 겸사겸사.”

구구절절한 변명의 서막이었다.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봤을 겁니다. 내 친구.”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야릇한 자세를 취했던 두 사람을 떠올렸다.

검은 목폴라…….

강렬했던 그 장면을 어찌 있을 수 있을까.

“그러셨구나.”

“예.”

“차장님. 근데 설마 읽지는 않으셨죠?”

우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제발. 못 봤다고 하게 해주소서!’

우리의 기도에 화답이라도 하듯 건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의 소설을 정독했다는 사실을 알아봤자 피차 피곤해질 것이었다.

우리는 조용히 안도의 숨을 흘렸다. 급히 상황을 수습한 건우가 베이글과 커피를 들고 제자리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정말, 문득 궁금해졌다.

“고대리님.”

“예?”

“다음 화는 언제 올라옵니까.”

열렬한 애독자의 간절한 물음이었다.

상사의 체면도 소설에 대한 건우의 욕망을 꺾을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작성 중이기는 한데…… 그건 왜……?”

우리는 건우의 물음에 담긴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궁금해서.”

“……?”

“아……? 나 말고 내 친구가 무척 궁금하답니다.”

건우가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우리의 눈빛에 양심이 콕, 찔렸기 때문이었다.

소설에 대한 욕망을 보였다는 부끄러움과 업로드가 되겠다는 반가움이 뒤범벅됐다.

묘한 적막이 허공을 물들였다.

우리는 설마, 했다.

건우가 얇은 안경테를 치켜 올리면서 줄기차게 제 소설을 읽고 있는 상상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건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은 퇴사를 할 때까지 멀리멀리 미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럼.”

건우가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딱, 남주였는데…….’

우리는 아쉬운 눈길로 멀어지는 건우를 봤다.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섹시한 마성의 캐릭터가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미끄러지듯 멀리 날아간 의자를 끌면서 자리에 앉았다.

「“날 기억해. 내 전부를 기억해.”」

「그는 그녀의 허리를 단숨에 끌어안고는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후끈거리는 열기가 군데군데 번진 글을 품은 인터넷 창을 서둘러 껐다.

모니터를 보던 우리가 힐끔 건우의 쪽을 쳐다봤다.

파티션 너머로 불타는 건우의 눈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야…… 왜? 왜 노려보고 있는 건데!’

맹수처럼 번뜩거리는 건우의 눈빛에 우리의 얼굴이 한껏 긴장으로 물들었다.

건우가 자신의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고수위 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한껏 장착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게 뭐든.

좋은 방향은 아닐 거라고 우리는 확신했다.

건우의 눈빛을 피하려고 우리는 괜스레 과장되게 스트레칭을 했다.

최대한 이상한 기색 없이 사무실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우. 뻐근해. 가서 커피나 마시고 와야겠다.”

우리는 건우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급히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들었다. 얼굴이 타들어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레이저를 능가하는, 건우의 맹렬한 눈빛에.

우리는 최대한 여유로운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건우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딱, 그것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힘겹게 사무실을 탈출한 우리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고대리가 어쩌다 토끼였습니까.’

건우의 목소리가 하염없이 귓가를 맴돌았다.

우리가 두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우리는 사무실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

아주, 크게.

덤덤하게 앉아있을 건우를 향해.

닥쳐,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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