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어쩌다 토끼의 덕후 탄생
건우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고우리. 어디냐?
투박한 문규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넘실거렸다.
“가족이십니까.”
-우리 핸드폰 아니에요?
“예. 맞습니다. 고우리 대리…….”
-너 누구야? 어떤 새끼야?
흥분한 문규가 건우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
문규의 말이 매섭게 건우의 귀를 때렸다.
쏟아지는 말에 건우가 핸드폰에서 살짝 귀를 뗐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수화기를 비집고 끝없이 흘렀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고대리님 직장상사입니다.”
-직장상사라는 새끼가…….
“오해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동료 이외의 관계로 얽히고 싶지 않으니까.”
건우가 딱 잘라 우리와의 선을 그었다.
괜히 오해를 사고 싶지도 않았고 사적으로 우리와 얽히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핸드백에 널브러진 상추를 보던 건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근데 왜 그쪽이 우리 전화를 받습니까.
문규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건우가 난감하다는 얼굴로 우리를 봤다.
어떤 말도 문규에게 통하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답답한 건우의 마음을 모르는 우리는 좋은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비슬비슬 웃고 있었다.
“고대리님이 많이 취해서 전화를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라 대신 받았습니다.”
-너…… 너. 이 새끼. 무슨 짓 하려고!
“너무 나가신 것 같습니다.”
건우의 말에 문규는 실소를 터뜨렸다.
“고대리님 집이 1501호 맞습니까. 양쪽에 집이 있어서…….”
-너 거기 딱 기다려라.
상황은 긴박하고도 복잡스럽게 돌아갔다.
무슨 말도 문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문규는 펄펄 소리를 지르면서 건우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쏟아지는 욕설에 건우가 멀찍이 핸드폰에서 귀를 뗐다.
“잘 해결하고 들여보내겠습니다. 그럼.”
건우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로 해결될 수 없는 일이라면 애초에 끊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을지도 몰랐다.
건우는 계속 울어대는 핸드폰을 핸드백에 두었다.
선택의 갈림길.
건우는 우리를 집에 보내고는 서둘러 집에 가고 싶었다.
급격한 피로가 건우를 잡고 늘어졌다.
‘1501호. 그래. 너다.’
건우는 단숨에 선택을 끝냈다.
단단히 마음을 잡은 건우가 초인종을 눌렀다.
건우는 두 팔로 우리를 잡고는 인터폰 쪽으로 밀었다.
굳게 닫혔던 현관문이 열렸다.
얇은 카디건을 걸친 미순이 슬리퍼를 끌고는 나왔다.
“술이 떡이 돼서는! 술꾼 납셨…… 근데 누구?”
우리의 팔을 때리던 미순의 손길이 순간 멈췄다.
“안녕하십니까. 강건우입니다. 고우리 대리, 직장동료입니다.”
미순은 건우를 훑었다.
가늘게 눈을 흘기면서 온갖 의심의 눈초리를 날리면서.
험한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회식을 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계속 술을 마셔서.”
주절주절.
회식에서 본인을 소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설명이 건우의 입에서 쏟아졌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직장 동료시라고?”
“네. 명함이 전 직장 것밖에 없어서.”
건우는 급한 손길로 지갑에 있던 명함을 꺼냈다.
건우를 살피던 미순의 눈길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흐트러진 와이셔츠, 끌어내려진 넥타이, 힘든 얼굴…….
그야말로 우리 때문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고맙습니다. 얘가 술이 약해서…….”
“괜찮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물이라도 한 잔 하고 가요. 내가 미안해서……. 가는 길도 있을 텐데.”
“바로 위라 괜찮습니다.”
미순은 건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위……?”
“예. 바로 위층 삽니다.”
“위층이라면…… 1601호?”
“예.”
건우의 입에서는 술술 대답이 흘렀다.
“어머! 웬일이야. 이런 우연이 다 있고. 앞으로 잘 부탁해요.”
“예. 그럼 먼저 올라가보겠습니다.”
건우가 급히 말을 끝맺었다.
더 이상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일은 좋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미순은 웃음을 터뜨렸다.
순탄치 않은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건우를 향해 손을 내뻗고 있었다.
“그래요. 가서 쉬어요. 모쪼록 잘 지내봐요.”
“아…… 예.”
인사를 끝낸 건우는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꼭 모녀에게서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보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건우가 간절히 바랐던 평화였다.
집에 도착한 건우는 기진맥진이었다.
냉기와 고요가 뒤섞여 건우를 짓눌렀다.
건우가 보일러를 틀고 커튼을 열었다.
건우는 창밖의 풍경을 내다봤다. 모두 잠든 것처럼 고요해보이기만 했다.
건우는 감색 넥타이를 끝까지 끌어내리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물을 따르던 건우의 손길이 멈추었다.
‘괜찮습니까.’
‘……추워요.’
우리의 목소리가 설핏 흐르는 것만 같았다.
눈물을 흘리기 전에 뱉었던 말.
심해처럼 깊고도 별처럼 반짝거리던 우리의 눈이 생각났다.
해묵었던 과거의 기억을 꿰뚫는 것만 같았던 눈.
건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술에 취해 착각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별의 부스러기라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건우는 바람 빠지듯 실소를 흘리면서 물을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건우의 마음을 차갑게 식혔다.
“……별은 무슨.”
밤이 깊어갔다.
어둑한 하늘에 번진 달빛만 짙어졌다.
공유 받은 업무를 살피던 건우가 소파에 기댔다.
깊은 피로가 건우를 짓눌렀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건우의 눈에 성민의 선물이 보였다.
‘외로운 밤의 필수품이라니까.’
참 호기로운 말이었다.
한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책을 보던 건우가 제일 위에 있던 책을 잡았다.
건우가 책을 살폈다.
“제목은 기가 막히네. 잠 못 드는 밤이라…….”
건우는 심드렁한 얼굴로 책을 펼쳤다. 작가 소개부터 건우의 시선을 끌었다.
어쩌다 토끼.
A형.
세상의 모든 토끼를 포용하는 글쟁이.
커피를 마시던 건우는 하마터면 커피를 뱉어낼 뻔했다.
‘포용이라니…….’
여태껏 봐왔던 작가 소개 중에 가장 비장한 소개였다.
센스 있는 소개 글에 건우는 안경을 썼다.
성민의 극찬하는 이유를 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건우는 무심히 첫 장을 넘겼다. 단순한 심심풀이였다.
[달콤한 꿀을 먹는 것처럼 진헌의 숨결이 은아의 입술을 적셨다.]
건우가 실소를 내뱉었다.
분명, 처음은 그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빨려드는 것처럼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진헌의 손길이 스칠 때마다 은아는 움찔거렸다. 뜨거운 숨결이 켜켜이 입안을 채웠다. 치열을 부드럽게 훑는…….]
건우가 침을 삼켰다. 놀랄 만큼 적나라한 장면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제법 높은 수위의 소설이었지만, 건우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비단 수위 뿐만이 아니었다.
섬세한 감정선과 통쾌함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호흡을 잡았다가 놓을 줄 아는 작가였다.
건우의 집중력은 폭발했다.
소설의 늪에 빠져버린 것처럼 문장을 읽는 건우의 눈빛은 열정적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손길도 빨라졌다.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중간에 끊어버리면 뒷내용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Fin.]
건우가 소파에 몸을 기댔다.
하얗게 밤을 불태웠다.
문득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졌다.
어쩌다 토끼
건우가 필명을 검색했다.
수두룩한 리뷰를 살피던 건우의 손이 멈췄다.
작가의 신작 연재소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꾸준한 연재에 건우는 덤덤히 쾌재를 불렀다.
[연재] 불순한 닥터
구미가 당기는 제목이었다.
건우는 일말의 주춤거림도 없이 소설을 열었다.
생각보다 꽤 무거운 터치의 글이었다.
적당한 유머도 섞여있었지만 섹시한 분위기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8화까지 연재된 글을 건우는 순식간에 읽었다.
“……미쳤구나, 강건우.”
태블릿PC를 끄던 건우가 중얼거렸다.
어슴푸레한 빛이 거실을 물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꼴딱이었다.
정말로, 꼴딱 밤을 새버렸다.
퀭한 눈으로 건우는 거실을 봤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허탈한 웃음이 건우의 입술 사이로 흘렀다.
고수위의 소설을 읽다가 밤을 새버리다니.
건우가 태블릿PC를 허망한 눈길로 바라봤다.
건우는 확신했다. 어쩌다 토끼는 분명히 보통의 작가는 아닐 거라고.
비범함이 철철 넘치는 베토벤만큼 정말 대단하고도 위대한 작가.
***
어슴푸레한 빛이 우리의 방에 스몄다.
옷도 벗지 않은 채로 우리는 침대를 뒤척거리고 있었다.
번진 아이라이너가 눌러 붙어 우리의 눈가는 새까맸다.
다음 순간, 우리의 책상에 있던 핸드폰에서 알람이 시끄럽게 울었다.
익숙한 멜로디에 우리가 벌떡 일어났다.
일상에 깊게 눌러 붙은 놀라운 습관이었다.
우리는 핸드폰을 보면서 눈만 깜빡거렸다.
일단 눈을 뜨기는 했지만 온전한 정신은 아니었다.
책상이 멀게만 느껴졌다.
손을 내뻗어도 닿을 수 없을 만큼.
“아…… 골이야.”
힘겹게 알람을 끈 우리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푸석한 목을 쓸어내리면서 우리는 끊어진 기억을 더듬었다.
쉬지 않고 술잔을 들이켰던 것은 기억났다.
그 다음은?
촘촘히 기억을 더듬던 우리의 얼굴이 굳었다.
‘그만 마시죠.’
‘지금 제 걱정 하시는 건가요?’
유혹적이고도 당돌한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러대던 우리의 시선은 침대에 널브러진 코트로 꽂혔다.
두툼한 적색의 코트였다.
누가 봐도 사이즈가 남성용이었다.
굉장히 낯익은 코트의 주인을 우리는 단번에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차가운 얼굴에 꽤 잘 어울리는 생각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강건우 차장.
코트의 주인은 틀림없이 건우였다.
“고우리, 미쳤냐. 무슨 짓을 했냐고. 기억하라고. 기억해라.”
우리가 두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이성이 빠르게 붕괴되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강건우의 코트냐고!
기억을 더듬거리는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쥐가 날 것만 같았다.
외투를 벗어주던 건우의 모습이 생각났다.
뒤이어 앞섶을 잡아주던 건우의 모습과 코끝에 남은 희미하고도 매캐한 냄새도 기억났다.
도로를 향해 열심히 상추를 흔들어대던 모습도 생각났다.
꿈이길 바라던 우리가 서둘러 핸드백을 열었다. 핸드백에는 시든 상추가 들어있었다.
‘택시비는 잘 받겠습니다.’
상추를 고이 쑤셔 넣었던 기억은 꿈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쉬지 않고 날아드는 기억의 조각에 우리는 쥐구멍에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열심히 발버둥을 쳐봐도 건우에게 진상을 벌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망했어.”
우리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아프다는 핑계로 연차라도 날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리면서 연거푸 한숨만 내쉬던 우리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주워 담을 수 없다고 망연자실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월급을 받은 자.
일을 하여라.
그야말로 마냥 미적댈 수 없게 만드는 말이었다.
우리는 일단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다짐했다.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술주정에 사과를 하면 되는 거라고.
그리 마음을 다독거리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일단 출근은 해야지. 고다. 고우리.”
우리는 든든하게 배를 채우려 부엌으로 나왔다.
[개딸아. 북엇국 먹고 가라.]
영수증 뒷면에 급하게 휘갈긴 미순의 메시지가 보였다.
얇은 조각보자기를 들어 올리자 그 아래 아침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북엇국의 냄새만으로도 쓰린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 만찬을 즐긴 우리는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마쳤다.
우리가 구두를 신었다.
둥근 칼라의 와이셔츠에 검은색 니트를 매치한 깔끔한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모던한 구두였다.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던 우리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는 영감님이라는 말이 번쩍이고 있었다.
-고우리!
문규의 목소리는 잔뜩 화가 묻어있었다.
“어제 정신이 없어서 전화도 못했네. 미안해. 출근은?”
-지금 출근이 문제냐. 어제 그 새끼는 누군데? 누구냐고.
“어떤 새끼……?”
불길한 기운이 우리에게 손을 내뻗었다.
설마…….
에이, 설마!
“직장상사 새끼.”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현실이 됐다.
우리의 눈빛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건우가 문규의 전화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집을 찾기 힘들었을 테니 그럴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마무리가 좋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문규가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굴러가는 상황이라면 골치가 아파질 확률이 컸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우리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무조건 굽히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내가 어제는 취해서……,”
-취해서?
문규가 우리의 말허리를 잘랐다.
우리의 말을 들을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보였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붙은 거울을 봤다.
푸석한 얼굴과 짙게 내려온 다크서클.
누가 봐도 밤새 달린 것처럼 꼬질꼬질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너 어제 실수라도 했냐?
“무슨 실수?”
-그 새끼랑 놀아났냐고.
문규의 말에 얼굴을 살피던 우리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문규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화를 낸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절대로 꺼내서는 안 될 말이 있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알아들었잖아. 밤새 둘이 잘 놀았냐고.
의심으로 얼룩져 몰아치는 아주, 나쁜 질문.
-진짜 했구나?
확신에 찬 문규의 말이 우리의 마음을 날카롭게 긁었다.
야구방망이에 정통으로 맞은 야구공이 펜스를 넘어가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도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갔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머리가 굳어버린 기분이었다.
딱 이 정도의 믿음이었나.
실망과 화가 뒤범벅돼 우리를 괴롭혔다.
주저앉는 마음으로 끝없이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묵직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건우가 서 있었다.
마치 기가 막힌 운명의 타이밍처럼.
“일단 퇴근하고 그쪽으로 갈게. 만나서 얘기해.”
-마음대로 하세요.
비아냥거리는 문규의 목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핸드폰을 잡은 우리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건우는 우리에게 필시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 챘다.
하지만 구태여 내색하지 않았다.
그게 옳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계속 거기 있을 겁니까.”
손목에 있던 시계를 보던 건우가 물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아…… 내립니다.”
우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별다른 인사도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건우의 얼굴은 꽤 피곤해보였다.
‘나한테 얼마나 시달렸으면…….’
우리는 두 손을 맞잡은 채로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부러 벌집을 쑤시는 것 같기도 했다.
건우가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외면과 사과의 갈림길.
짙은 고민에 우리가 입술 안쪽의 살을 깨물었다.
어정쩡하게 서 있던 우리의 마음이 흔들거리려던 찰나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서서히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말끔히 닫히려던 찰나의 순간.
우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급히 눌렀다.
닫히려던 문이 순식간에 다시 열렸다.
“강차장님!”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계속 잡고 있을 겁니까.”
차가운 목소리가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가만히 우리를 쳐다보던 건우가 손목시계를 봤다.
두고 온 서류를 들고 회사로 향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밤새 소설을 읽는 바람에 건우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용건만 간단히 말하시죠. 시간도 없으니까.”
“어제……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우리의 머리칼이 아래로 쏟아졌다.
건우에게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우리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건우를 봤다.
덤덤하고도 피곤한 얼굴로 건우는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끝입니까.”
“아…… 네.”
“그럼 회사에서 보죠.”
건우가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눌렀다.
허무할 정도로 덤덤한 피드백에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있던 우리의 손에서도 힘이 빠졌다.
엘리베이터는 칼같이 닫혔다.
마치, 고마움의 인사에도 미동조차 없던 건우처럼.
이불킥을 날릴 만큼의 가치가 없었던 사건이었을지도 몰랐다.
허망한 결과에 우리는 어벙한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봤다.
엘리베이터는 쉬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16층.
건우가 살고 있는 그 곳까지.
멈춘 엘리베이터를 보던 우리가 걸음을 돌렸다.
“됐어. 해결한 거야!”
우리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술 취했던 과거는 말끔히 잊어버리기로 했다. 구태여 벌집을 두 번 쑤시는 수고로운 일을 펼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파트를 나서는 우리의 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우선 건우의 일은 말끔하게 해결했고, 이제 문규와의 일만 잘 해결되면 술주정으로 벌어진 해프닝은 끝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처럼 정신없던 순간도 잠잠해질 것이었다.
정말, 끝을 잘 맺으면.
정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