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술 취한 고대리에게 잡힌 날
미치도록 불편한 회식이었다.
F&B본부 마케팅팀과 영업팀이 대적하듯 서로를 마주보고 앉았기 때문이었다.
불판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 소리만 유유히 흘렀다.
고깃기름이 달궈진 불판을 타고 흘러내렸다.
‘모델 결정도 못한 마당에 회식은 무슨 회식!’
우리는 집게를 든 채로 앞에 앉은 건우를 봤다.
“고기 탑니다.”
건조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던 건우가 불판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급히 삼겹살을 뒤집었다.
고기는 까맣게 탔다.
육즙이 좔좔 흐르는 고기 먹기에는 완벽히 실패한 모양새였다.
“탔네.”
심드렁한 건우의 말에 우리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럼 님이 구우세요!’
목구멍을 간질이는 말을 단숨에 뱉어내고 싶었지만 우리는 꾹 말을 눌렀다.
원만한 회사 생활을 위한 나름의 인내였다.
“다 잔 드시고.”
우팀장이 술잔을 든 채로 힘껏 소리쳤다.
모든 테이블에 눈을 부라리면서 술잔을 당장 들라는 무언의 눈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우선 우리 F&B본부의 정신적 지주! 빛과 소금! 태양과 달!”
온갖 수식어가 나붙었다.
“본부장님의 한 말씀! 듣지 않을 수가 있죠. 박수!”
직접적으로 박수를 요청한 우팀장의 모습은 흡사 무대를 휘어잡는 명MC처럼 보였다.
숟가락을 쥔 본부장은 좋은 기분을 숨기면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지루한 본부장의 말이 이어졌다.
모두 이성을 잃은 좀비처럼 멍한 눈길로 본부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본부장을 바라본 채로 두툼한 삼겹살만 잘라댔다.
서걱서걱.
고기가 잘리는 소리가 더 값지게 들렸다.
지루한 연설의 끝.
“그럼 우리 강차장님과 신입의 입사를 축하하면서. 건배!”
“건배!”
다함께 건배를 외치는 우렁찬 목소리들과 함께 모두 술잔을 말끔히 비워냈다.
가볍게 술잔을 들었던 우리가 테이블 아래에 숨긴 유리컵에 술을 버리려던 순간이었다.
“……!”
평소라면 빠른 손놀림으로 술을 버렸을 우리였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만은 달랐다.
살갗이 탈만큼 따가운 건우의 눈빛이 우리를 때렸다.
건우와 눈이 마주친 우리는 괜히 눈치가 보였다.
건우의 눈길이 꼭 술을 마시라고 채근하는 것만 같았다.
술잔을 기울이는 건우의 목울대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천천히 올라갔다.
건우의 눈빛에 우리는 결국 들고 있던 소주잔을 깨끗이 비워냈다.
“크으!”
쓴 알코올이 우리의 입안을 적셨다.
유난히도 술이 약한 우리의 얼굴은 술 한 잔에도 새빨개졌다.
우리는 급히 술을 희석해보려고 물을 마셔댔지만 빨개진 얼굴은 점점 달아오르기만 했다.
“우리 강차장님도 소개 한 번.”
본부장은 쥐고 있던 숟가락을 건우에게 건넸다.
본부장에게 떠밀려 건우가 일어섰다.
“강건우입니다.”
“설마 끝이야?”
“아…… 업무에 차질 없도록 각별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 건우의 소개에 놀란 얼굴이었다.
건우의 소개에는 그 흔한 나이, 취미, 각오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끝입니다.”
더 말을 잇게 될까.
건우는 제 선에서 소개를 끝냈다.
삽시간에 주위가 고요해졌다.
모두 서로의 눈길을 바라보면서 확신하고 있었다.
고똘과 강똘…….
마케팅1팀은 분명히 미친 사람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걸.
“환영의 의미로 건배하시죠. 건배.”
분위기를 전환시키려고 우팀장은 급히 건배를 외쳐댔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단체 건배에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쓰던 술이 점점 달짝지근하게 느껴졌다.
“마케팅2팀 박대리님 말이야. 다음 달에 상견례 하신다며?”
“와…… 대박. 한 큐에 가시네. 연애하신지도 얼마 안 됐잖아.”
“오래 사귀어도 가는 순번은 다르더라.”
우리의 귀가 쫑긋했다.
알딸딸하게 술이 오른 우리가 실소를 내뱉었다.
같은 입사동기였던 박대리마저 시집을 간다고 했다.
것도 연애 5개월 만에!
누구는 연애만 5년째하고 있는데…….
달았던 소주가 다시 쓰게만 느껴졌다.
괜히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같은 라인에 섰던 모두가 전부 결승점을 지나가버린 그런, 기분.
그깟 결혼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인지 화가 날 지경이었다.
“고대리.”
제 잔을 채우던 우리의 손길을 누군가 막아섰다.
입술을 쌜쭉거리던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소주병을 잡은 손길의 주인공은 건우였다.
“그만 마시죠.”
“지금 제 걱정 하시는 건가요?”
눈이 풀린 우리가 당돌하게 물었다.
“아뇨. 내 걱정합니다.”
“차장님이 무슨 걱정을 하시는데요?”
“고대리가 취하면 내가 피곤해질 것 같아서.”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피곤해지시기 전에.”
우리가 테이블을 짚고는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우리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우리는 테이블에 있던 상추를 우악스럽게 잡았다.
푸르지만 마른 상추가 우리의 양손을 빈틈없이 채웠다.
“택시비는 잘 받겠습니다.”
꾸벅.
그리고 비틀.
정말 돈다발을 쥔 것처럼 우리는 상추를 지갑에 고이 쑤셔 넣었다.
시장처럼 북적거리는 소리에 우리의 목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건우에게 인사를 끝낸 우리는 구두를 구겨 신었다.
서로 친한 동료를 챙기느라 가게를 나서는 우리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건우만이 비틀대는 우리를 보고 있었다.
“성가시게…….”
꼴에 팀원이라고.
꼴에 이웃주민이라고.
어쩔 수 없는 핑계가 끝없이 건우를 잡고 늘어졌다.
건우는 결국 벗었던 코트를 집었다.
혼돈의 회식 자리를 뚫고 건우는 우리를 따랐다.
취한 우리를 목격한 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것도 아니라면 일손 보호를 위한 예방책이라고.
가게를 나선 건우의 뺨을 스치고 차가운 바람이 지나갔다.
건우가 사위를 살폈다.
멀리서도 우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도로를 향해 푸른 상추를 열심히 흔드는 우리의 모습을.
‘상추는 대체 왜…….’
건우는 실소를 뱉었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느꼈지만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답십리요. 답십리.”
우리는 꼭 상추로 히치하이킹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건우가 우리를 챙기는 대신 외면을 택하려던 순간이었다.
도로로 손을 내뻗은 우리의 몸이 삽시간에 도로 쪽으로 기우뚱 기울어졌다.
“고대리!”
놀란 건우가 황급히 우리의 팔을 잡아당겼다.
간발의 차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났을 것이었다.
그때, 그날처럼.
“미쳤습니까!”
건우의 목소리가 커졌다.
벌렁거리는 심장은 좀체 진정될 줄을 몰랐다.
“거길 왜…… 죽고 싶습니까!”
“……죄송합니다.”
건우를 보던 우리가 고개를 숙였다.
콩.
건우의 가슴팍에 머리를 박은 줄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심각하게 취한 것이었다.
건우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면서 허공을 향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술에 취해 기억을 못할지도 몰랐다.
이기지 못하는 술을…….
우리를 보고는 고개를 내젓던 건우의 심장은 정상으로 돌아올 줄을 몰랐다.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술 좀 깨고 갑시다.”
“술, 깼습니다.”
힘겹게 말을 뱉은 우리가 딸꾹질을 해댔다.
방금 한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듯.
“쓸데없는 소리 말고 와요.”
“넵.”
건우가 앞장을 섰다.
봄을 밀어내는 찬바람이 우리의 두 볼을 스쳐지나갔다.
뜨겁게 달아오른 뺨을 쓸어내리는 바람에도 알딸딸한 기운을 사라질 줄을 몰랐다.
비틀대던 우리의 몸은 휘청거렸다.
우리가 넘어질까.
건우는 우리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어…… 손을 안 되는데요.”
우리가 두 손을 말아 쥐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지독하게 눌러 붙은 습관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잡을 생각 없습니다.”
“잘됐네요. 그럼 가시죠.”
두 사람은 앞뒤로 걸었다.
환한 빛을 내뿜은 편의점 앞에서 건우의 걸음이 멈췄다.
덩달아 우리도 우뚝 멈췄다.
“일단 바깥에 있어요. 술 좀 깨게. 어디 가지는 말고.”
“네. 여기 있겠습니다.”
건우가 편의점으로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그 앞에 있던 플라스틱 의자에 주저앉았다.
바람결을 따라서 우리의 긴 머리칼이 흩날렸다.
우리가 하늘을 보면서 눈을 감았다.
어질한 기운이 머리를 무지막지하게 짓눌렀다.
“객사하고 싶습니까.”
사막에 흩날리는 모래 알갱이만큼 까끌까끌한 건우의 목소리가 흘렀다.
우리가 느릿하게 감았던 눈을 떴다.
반짝거리는 불빛의 향연에 건우가 흐리게 보였다.
꼭,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마셔요.”
건우가 술이 깨는 약을 내밀었다.
따뜻한 꿀 음료와 함께.
평소의 우리라면 건우의 호의를 거절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게워낼 것만 같은 불편한 속에 우리는 덥석 꿀 음료와 술 깨는 약을 잡았다.
“……!”
우악스러운 손길에 두 사람의 손이 스쳤다.
건우의 손끝이 품은 온기가 우리에게 스며들었다.
손이, 닿았다.
건우를 보는 우리의 눈에 옅은 푸른 빛깔이 돌았다.
심해의 색이었다.
검고도 푸른색이 서로를 잡아끄는, 두 색깔이 엉겨 붙은 신비로운 빛깔.
“눈이…….”
건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의 눈동자가 빛났기 때문이었다.
별의 부스러기들을 흐드러지게 뿌린 것처럼.
우리를 바라보던 건우의 눈빛이 대차게 흔들렸다.
단단히 술에 취했거나 꿈속을 헤집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매력적인 눈이 건우의 마음을 꽉 잡아끌었다.
건우가 우리의 눈길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스친 손을 가만히 바라봤다.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천천히 얼굴을 든 우리가 사위를 둘러봤다.
주변의 풍경이 삽시간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
우리의 눈앞에 건우의 과거가 선명하게 펼쳐졌다.
건우가 끔찍이 잊고 싶었던 시간일 것이었다.
매캐한 연기가 우리의 코끝을 따갑게 찔렀다.
사이렌 소리는 맹렬하게 울어댔고, 호스를 잡은 소방관들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소방관들의 얼굴에는 까만 그을음이 졌다.
우리는 멍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편의점이 있던 쪽을 봤다.
불타는 건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술기운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건우의 과거가 흐리게 보이는 이유는.
“강민우…… 강민우!”
우리가 초점을 맞추려는 것처럼 안간힘을 쓰면서 눈을 가늘게 뜰 때였다.
북적거리는 인도 위.
교복을 입은 어린 건우가 우리의 어깨를 스쳐지나갔다.
작은 바람에 우리의 머리칼이 흩날리듯 허공에 흘렀다.
얼이 빠진 얼굴로 건우는 소리쳐댔다.
불타는 건물, 그 열기를 향해.
건우의 얼굴은 한참 앳됐다.
힘껏 끌어내린 넥타이와 헝클어진 매무새만이 건우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우리의 술기운이 짙어질수록 건우의 과거는 무너질 것처럼 흔들거리고 위태로워졌다.
“네가 왜 거기 있어, 인마……. 형, 형 왔다고!”
건우의 목에 퍼런 핏대가 섰다.
이성을 잃은 건우가 불타는 건물로 달려들었지만 바리케이드에 막혔다.
경찰이 건우를 말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처럼 건우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삽시간에 사라진 건우의 모습을 찾던 순간.
펑.
그리고, 쾅.
커다란 굉음이 매섭게 귀를 때렸다.
건물이 폭발한 것이었다.
화마의 기세는 끝없이 강해졌다.
깨진 창으로 불꽃이 넘실거리고 건물의 한쪽은 무너졌다.
건물에서 멀찍이 물러난 인파 사이로 건우가 보였다.
“아니잖아. 아냐…….”
바닥에 주저앉은 건우는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마치 큰 실수라도 저지른 것처럼.
“……강민우.”
건우가 고개를 떨구었다.
가슴을 찢는 슬픔이 건우를 덮쳤다.
두 손에 얼굴을 묻은 건우가 울음을 터뜨렸다.
포악스러운 고통이 건우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살았다.
살아버렸다.
살았다는 죄책감이었다.
건우의 아픔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밀려들었다.
가슴팍을 짓이기는 고통에 우리는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숨이 가빠졌다.
우리가 갑갑한 목을 쓸어내렸다.
짙어지는 어둠이 진한 빛깔을 뿜어내면서 건우를 집어삼켰다.
‘갑갑해. 너무…… 갑갑해.’
목을 쓸어내리는 우리의 목이 빨개졌다.
죽음을 품은 회색빛 연기와 건우의 울음소리가 희미해졌다.
모두 멀어져갔다.
빠르게, 더 빠르게…….
***
우리의 눈을 돌던 푸른빛이 사라졌다.
건우의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적소리와 꿀 음료를 잡고 있는 손만 보일 뿐이었다.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의 두 볼을 타고 굵직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툭…….
소낙비처럼 한 번 쏟아진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우리의 몸은 달달 떨렸다.
건우의 시간 속에 남은 슬픔과 고통의 잔재가 우리의 몸을 차갑게 만들었다.
“괜찮습니까.”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면서 건우가 물었다.
건우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저었다.
“……추워요.”
시린 건우의 마음이 우리의 아랫입술을 달달 떨리게 만들었다.
꿀 음료를 잡은 우리의 손은 하염없이 떨렸다.
우리의 심장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타인의 슬픔은 늘 겪어도 적응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선…… 바로 집으로 갑시다.”
“…….”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건우가 빠른 판단을 내렸다.
건우는 비에 맞은 생쥐처럼 덜덜 떨고 있는 우리에게 외투를 벗어 덮어주었다.
적색의 코트가 바람에 펄럭거렸다.
건우는 외투 앞섶을 부드러이 잡아주었다.
코트 안으로 순식간에 온기가 돌았다.
“예. 사거리에 있습니다. 그쪽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입니다.”
건우는 조심스럽게 외투의 앞자락을 잡은 채로 대리 운전기사의 전화를 받았다.
대리 운전기사를 기다리는 동안, 건우는 우리를 쳐다봤다.
짧은 순간이라도 우리에게 관심을 가졌던 순간을 지독히도 후회했다.
팀원에 대한 책임감만 아니었다면 성가신 일에 말려들지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건우의 입술 틈새로 묵직한 후회의 한숨이 흘렀다.
건우는 외투의 앞섶을 잡은 채로 나름대로 우리와 멀찍이 거리를 두었다.
“정말…… 성가시네.”
중얼거리는 건우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봄을 질투하는 바람에 우리의 핸드백에 있던 푸른 상추의 끝자락만 세차게 흔들거렸다.
***
건우의 차가 한적한 도로를 내달렸다.
대리 운전기사가 난방을 켰다.
차에서 솔솔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에 우리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열심히 졸아대는 우리의 머리가 건우의 쪽으로 기울었다.
‘무겁게…….’
건우는 검지로 우리의 머리를 살짝 밀었다.
어깨만큼은 내어줄 수 없다는 건우의 다부진 손길이었다.
적막한 차 안에서는 콩콩거리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렸다.
차창에 머리를 박는 줄도 모른 채로 우리는 입까지 벌린 채로 꿀잠에 빠져들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곤히 잠든 우리는 대리 운전기사가 떠나는 순간까지도 잠에 빠져있었다.
건우는 팔짱을 끼고는 차창에 얼굴을 비벼대면서 잠든 우리를 바라봤다.
아파트까지는 데려왔는데 다음 단계의 벽에 부딪힌 것이었다.
“고대리.”
건우는 우리를 살짝 흔들어봤다.
꿈틀거리던 우리의 얼굴이 구겨졌다.
“깨우지 말라고…… 이 쉐이야.”
눈도 뜨지 않은 채로 우리는 꿍얼거렸다.
건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두 번 깨웠다가는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진상은 집으로 가서 부리시죠.”
건우의 말에도 우리는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건우는 우리의 팔을 둘러매고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차가운 공기에도 건우는 뻘뻘 땀을 흘렸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건우는 우리의 술잔은 반드시 막아내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럴 수 없다면 신경을 쓰지 말든지.
15층.
우리를 끌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건우의 양쪽에 붙어있는 현관문을 번갈아 쳐다봤다.
1501호, 1502호.
모두 고요하기만 했다.
“진짜 산 넘어 산이네.”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최고봉이었다.
“고대리.”
“깨우지 말라고. 깨우지 말어.”
“좀 일어나보죠. 집은 가야 할 거 아닙니까.”
건우가 우리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화장이 번진 채로 우리는 단잠에 빠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1501호냐. 1502호냐.
그것이 문제였다.
절반의 확률.
건우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직접 확인을 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굳게 마음을 먹은 건우가 1501호의 초인종을 누르려던 순간이었다.
우리의 핸드백에서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가뭄에 단비처럼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전화였다.
“실례하겠습니다.”
건우는 꿈에 빠진 우리에게 허락을 구하듯 말했다.
우리의 집을 알 수 있는 사람의 전화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건우가 조심스럽게 우리의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영감님]
핸드폰에 뜬 이름이 번쩍거렸다.
이름을 보던 건우의 표정은 심각하게 변했다.
대체 이 영감님은 뭘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