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원수는 회사에서 만난다
우리는 건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작아지는 틈새로 깊고도 치명적인 건우의 눈빛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건우를 바라보던 우리의 두 볼이 불그스름해졌다.
그대로 빨려들 것만 같았다.
심해처럼 검고도 고요한 건우의 눈빛 속에.
엘리베이터가 완전히 닫혔다.
엘리베이터는 끓어오르는 열을 품은 화산처럼 보였다.
16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우리는 입을 벌린 채로 꿈쩍도 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멍하니 바라봤다.
위층에 게이가 산다.
그것도 국보급 훈훈한 게이!
“얘가 여기서 뭐하고 있어.”
현관문이 열렸다.
우리의 얼빠진 눈빛에 우리의 어머니 미순도 덩달아 엘리베이터를 쳐다봤다.
무슨 신기한 일이라도 생겼나 싶었던 것이었다.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미순은 도통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미순에게 엘리베이터는 그냥 엘리베이터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엄마.”
“왜.”
“그 말이 맞기는 한가봐.”
“갑자기 무슨 말?”
미순은 적잖이 얼이 빠진 얼굴로 서 있는 우리를 보면서 물었다.
“잘생긴 남자는 애인이 있거나 게이라더니…….”
우리의 아쉬운 목소리가 흘렀다.
후끈하게 엘리베이터를 불태우는 두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박수를 칠 뻔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있네.”
“진짜라니까.”
“얼빠진 소리 말고 양념이나 버무리러 들어와.”
미순은 우리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잠깐만.”
“잠깐은 무슨. 급하다니까.”
“아…….”
우리는 탄식을 흘렸다.
희미해지는 건우의 잔상을 붙잡아볼 요량이었다.
‘강건우……. 이름도 멋있네.’
차기작 주인공으로 딱 적당한 인물이었다.
묘한 눈빛에 분위기까지.
놓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건우를 모델로 살을 붙여 후끈한 장면을 써내려 가볼 참이었다.
주인공의 마음을 훔치는 아주 뜨겁고 섹시한 사람으로.
“딸.”
“……응?”
“버무리러 갑시다.”
미순의 손에 떠밀려 우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잘 절여진 배추의 끝을 붙잡고 물기를 짜내는 동안에도.
빨간 양념을 배춧잎 사이사이에 바르는 동안에도.
뻘뻘 땀까지 흘리면서 김장에 열을 올리는 순간에도 우리는 건우의 뜨거운 눈빛을 쉬이 놓아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건우의 잔상이 끝없이 눈앞을 맴도는 이유가 묘한 눈빛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름의 햇볕만큼 강렬하고도 뜨거운 열기를 품은, 그런 눈빛.
붉은 고무장갑을 끼고 있던 우리가 천장을 바라봤다.
“뭐하니?”
“매워.”
“별…….”
양념이 버무려지는 소리가 우리의 귓가에서 희미해졌다.
16층.
강건우.
좀 달라 보이는 사람이었다.
건조하고도 쓸쓸한.
그런 참 묘한 눈빛을 가진 남자.
***
월요일 출근길.
빼곡하게 사람을 채운 지하철의 문이 열렸다.
켜켜이 블록처럼 채워진 사람들이 일제히 쏟아지듯 내렸다.
3호선 양재역.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뒤채여 우리는 떠밀리는 것처럼 출구로 향했다.
출구를 나서는 사람들은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해묵은 습관처럼 출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삭막한 도시 풍경에 어울리는 높다란 건물이 곳곳을 빈틈없이 채웠다.
햇빛에 부딪힌 건물 외벽이 번쩍거렸다.
HJ그룹 앞.
깔끔한 검은색 블라우스에 베이지색의 슬랙스를 입은 우리가 핸드백을 뒤적거렸다.
가죽 냄새가 우리의 코끝을 간질였다.
겨울의 기운이 남은 찬바람에 목에 두른 모던한 스카프가 바람에 펄럭거렸다.
“겨우 찾았네.”
우리는 핸드백의 밑에 있던 사원증을 꺼내면서 중얼거렸다.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회색의 줄에는 HJ그룹이라고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F&B본부 마케팅1팀 고우리 대리
앳된 우리의 얼굴이 들어간 사원증이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통통 튀었다.
우리는 힘찬 걸음으로 건물로 들어섰다.
거침없이 출입구를 지난 우리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여섯 대의 엘리베이터가 쉬지 않고 오르내렸다.
[최종 모델 선정의 건_180209]
우리는 핸드폰으로 완성된 프레젠테이션을 훑었다.
금일 미팅에서 최종 모델을 선정하고 빠르게 계약을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젊고 예쁜 여자연예인만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영업팀의 우종길 팀장 때문에 모델 선택은 한없이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모시고 오려고.’
핸드폰을 보던 우리가 혀를 내둘렀다.
최팀장이 퇴사한지 벌써 석 달이 지났다.
마케팅1팀 팀장의 자리가 공석인지도 석 달이 지났다는 소리였다.
대단한 사람을 데리고 오겠다는 하재학 본부장의 말은 희미해진지 오래였다.
‘그 대단하신 분이 오늘 온단 말이지.’
우리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팀장의 공석으로 영업팀 우팀장과 우유부단한 하본부장에 치여 한참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이었다.
새사람이 오는 일은 늘 떨리는 일이었다.
단 한 사람만 바뀌어도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것이 팀의 분위기였다.
그게 팀장이라면 변화의 폭이 더 클 수 있었다.
우리는 우팀장을 단박에 누를 수 있을 만큼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 팀장으로 오기를 바랐다.
팀원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우리의 어깨를 스치면서 한 남자가 지나갔다.
“……벤츠?”
고개를 든 우리의 눈이 커졌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건우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세상 한 번 참 좁다고 생각했다.
벤츠가 우리 회사 사람이었다니!
뚫어져라 쳐다보는 우리의 시선에 건우도 고개를 돌렸다.
‘아파트 변태가 왜 여기에……?’
우리가 눈빛으로 쏘아대는 무언의 아는 체에 건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맹렬하게 빨간 딱지가 붙은 소설을 훑어대던 우리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짧은 순간.
건우의 시선은 우리의 사원증으로 향했다.
‘F&B본부 마케팅1팀 고우리.’
건우의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흘렀다.
건우의 눈길을 따라서 우리도 제 사원증을 내려다봤다.
우리의 눈이 깜빡거렸다.
짤막하게 줄인 사원증 줄 때문에 건우는 우리의 가슴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우리의 눈 아래 오른 살집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내 가슴 보고 비웃은 거냐?’
우리는 그야말로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가슴을 보는 것만으로도 발차기를 날릴 판국에 비웃음이라니.
아담한 매력이 힘을 내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건우의 아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치, 불태워버릴 정도로 뜨겁게!
‘지금 대체 어디를…….’
건우가 우리의 시선을 따라갔다.
건우는 우리를 진정한 변태라고 단정 지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토록 노골적으로 밝힐 수 있다니!
건우는 우리의 불타는 시선을 털어내면서 살짝 몸을 틀었다.
묘한 냉기 속.
안쪽에 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건우는 안타깝다는 눈길로 우리를 보고는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는 발을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빽빽하기만 했다.
우리가 얇은 손목시계를 봤다.
8시 55분.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지각이었다.
“죄송합니다. 실례할게요.”
엘리베이터의 맨 앞에 서 있는 건우를 향해 우리는 맹렬하게 몸을 날렸다.
꾸역꾸역.
몸을 밀어붙여서라도 반드시 지각은 면하고 말겠다는 의지의 몸놀림이었다.
삐.
내리라고 소리치는 엘리베이터의 가열한 소리에도 우리는 있는 힘을 주어 숨을 참았다.
조금의 몸무게라도 줄이겠다는 애처로운 발악이었다.
버둥거리는 우리를 보던 건우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내려주시죠.”
소란스러운 엘리베이터를 뚫고 건우의 서늘한 목소리가 번졌다.
“그러지 말고 같이 좀 타시죠.”
야박한 건우의 말에 대적하는 우리의 싸늘한 목소리가 퍼졌다.
건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처럼 실소를 내뱉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늦게 탄 사람이 누군데!
“그럼 조금만 실례할게요.”
우리는 힘겨루기 싸움을 하는 황소만큼이나 저돌적인 몸짓을 선보였다.
지각은 반드시 면하고 말겠다는 비장한 의지마저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수를 위해 다수의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죠. 그럼.”
우리가 건우의 말을 제대로 곱씹지도 못한 짧은 순간이었다.
톡.
건우가 검지로 가볍게 우리의 어깨를 밀었다.
살짝 미는 손길 하나에 우리는 그대로 중심을 잃었다.
매섭게 엘리베이터로 돌진했던 순간이 허망할 정도로 우리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밀려났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서서히 닫혔다.
차가운 건우의 입가에는 조소가 흘렀다.
우리는 쳐다보는 건우는 마치 무지막지하게 밀려 들어오는 적군을 이겨내고 성문을 지켜낸 장군처럼 보였다.
“나쁜 새끼…….”
엘리베이터의 문은 유유히 닫혔다.
작은 문틈으로 건우의 눈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무섭게 우리는 욕지기가 일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 주민들끼리.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건우의 모습에 몸서리를 치면서 우리는 날카롭게 닫힌 엘리베이터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리 노려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지각.
망할 지각이라고!
개나리 조카 같은 쉐이야!
***
뒤늦게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는 7층에 도착했다.
분주한 손놀림으로 사무실 출입문에 있는 리더기에 사원증을 댔다.
굳게 닫혔던 문이 가볍게 열렸다.
손목시계를 쳐다보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우리의 하이힐 소리가 우렁차게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안녕하세요, 대리님.”
황주임이 칼같이 인사를 했다.
“우팀장님은?”
우리는 영업팀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영업팀 우종길 팀장.
우리가 지각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우팀장은 우리를 무섭게 물어뜯을 것이 뻔했다.
“본부장실 가셨어요. 저희 새 팀장님하고 신입직원 인사시키신다고.”
“땡큐.”
우리는 미소 한 줌 없는 얼굴로 모니터를 봤다.
9시 3분.
개운하지 않은 지각이었다.
우리는 컴퓨터를 켜고는 출근 버튼을 눌렀다.
우팀장이 없다는 사실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황주임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를 건드리지 않은 것이 좋다고 판단에 황주임은 제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우리는 회사에서 일명 ‘고똘’로 불렸다.
고대리 또라이의 합성어라고 했다.
최근에 우팀장과의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모습에 미친 개대리라는 별명까지 손에 쥐었다.
적금이라도 모으는 것처럼 우리는 숱한 별명을 적립하는 중이었다.
‘까짓 일만 잘하면 되는 거지.’
항간에 떠도는 별명과 속닥거림을 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좁은 사무실을 떠도는 말이 이상한 일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친구 사귀러 온 회사도 아니고.’
차라리 별명 때문에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편했다.
실수라도 다른 사람의 과거를 보는 일을 완전히 없앨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덤덤한 얼굴로 모델 관련 파일을 열었다.
모델을 살펴보던 우리의 핸드폰이 울렸다. 에이전시 쪽 윤실장의 전화였다.
“예. 실장님!”
우리의 목소리는 단숨에 밝고 명랑하게 변했다.
-대리님. 출근은 잘하셨어요?
“덕분에 잘했죠.”
-그 브랜드 모델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혹시 오늘 셀렉이 될까요.
조심스럽지만 우리를 재촉하는 전화였다.
윤실장의 말에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오늘 최종 결정되게 해봐야죠. 결정되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요새 스케줄 때문에. 선택하신 최종 후보를 탐내는 브랜드도 많고.
“알죠. 저도 얼른 선택해서 말씀드리고 싶은데……. 죄송해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잘 생각해주시고 결정되면 말씀 주세요.
“네. 곧 연락드릴게요.”
전화가 끊어졌다.
골치 아픈 머리를 붙잡으면서 우리는 탕비실로 걸음을 옮겼다.
카페인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평온하게 만들어줄 커피 한 모금이 그리웠다.
탕비실의 문을 열던 우리의 손길이 멈추었다.
탕비실에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서로 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뚫고 탕비실로 들어가는 일이 꽤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니까 저희 회사 후계자가 들어왔대요. 것도 몰래.”
“찌라시 아니야?”
“심이사님 비서가 분명히 들었대요. 월요일에 출근하면 잘 모시겠다고 그랬다구.”
“오늘이라면……. 마케팅1팀에 들어갔다는 건데.”
탕비실은 모든 소문의 시작점이었다.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정보를 우리는 가만히 듣고 있는 꼴이 돼버렸다.
HJ그룹의 후계자라는 말에 우리의 귀도 솔깃하기는 했다.
것도 마케팅1팀에 들어와 버렸다니!
골치 아픈 일이 덤으로 얹어진 기분이었다.
HJ그룹을 이끌 미래의 주인을 까딱 잘못 건드렸다가는 목이 단숨에 날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고리를 잡고 있던 우리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그럼 그 새로 오신 팀장님 아니실까요?”
탕비실은 아침부터 열띤 추리로 후끈거렸다.
“맞아. 옷차림부터가 귀태가…… 어우! 얼굴만 봐도 딱 쓰여 있잖아요. 나 재벌이라고.”
삽시간에 마케팅팀 팀장이 HJ그룹 후계자라는 의견이 나왔다.
일명 팀장파.
“아니. 재벌 같이 생긴 건 뭐야? 얼굴에 현혹되지 말라니까.”
“그러고 보면 신입사원도 꽤 귀태나지 않았어? 말투도 사근사근하고. 사람이 여유가 있잖아.”
팀장파에 대항하듯 신입파가 순식간에 생겼다.
100분 토론을 능가할 정도의 묘한 긴장과 팽팽함이 탕비실을 감돌았다.
“일단…… 난 팀장에 건다. 솔직히 후계자 정도면 직급은 붙여줬겠지.”
“에이. 너무 모르신다. 요즘 대세는 비밀이라니까요. 신입을 가장한 시크릿 후계수업.”
“모르기는. 일단 마케팅팀 팀장 얼굴 봤어? 팀장 할 군번이 아니라니까. 어린 사람이 팀장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이유가 뭐겠어? 사이즈 나오잖아.”
“자자. 말은 그만하고. 배팅합시다. 배팅. 어디 거실 거예요.”
직원들은 닫혀있던 지갑을 열었다.
누가 HJ그룹의 후계자일까.
절반의 확률이었다.
고심하던 직원들은 거침없이 선택을 내렸다.
50대 50.
팀장파와 신입파의 대격돌이었다.
‘무슨 배팅까지…….’
탕비실 쪽으로 잔뜩 기울어진 몸에 스르륵 문이 열렸다.
직원들은 놀란 얼굴로 순간 얼음이 됐다.
“아! 고대리 기척 좀!”
우리를 본 직원들은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왜요. 후계자라도 오는 줄 아셨나 봐요.”
“그러지 말고 고대리도 배팅 좀 해. 팀장이냐 사원이냐.”
“됐습니다.”
우리는 칼같이 제안을 거절했다.
쓸데없는 일에 심력을 소비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모두 우리를 등졌다.
배팅에나 관심을 쏟겠다는 모습들이었다.
깔깔 웃어대는 사람들을 등진 채 우리는 심드렁한 얼굴로 캡슐커피 머신의 버튼을 눌렀다.
캡슐이 압착되면서 머그컵에 커피를 쏟아냈다.
톡톡.
우리는 진한 향기를 풍기면서 머그컵에 떨어지는 커피를 바라봤다.
팔짱을 끼고 있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직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팀장일까. 신입일까.’
우리도 내심 궁금해지기도 했다. 신입보다는 팀장에 마음이 기울기는 했다.
‘얼굴 보면 단번에 알려나.’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니.
얼굴만 봐도 회장님의 얼굴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기사에서나 간간히 볼 수 있었던 얼굴.
신입이든 팀장이든 참 좋을 것만 같았다.
재벌 3세라는 이유 하나로 날름 회사에 들어올 수 있다니…….
누구는 시험도 보고 면접도 보는데.
“인생 한 번 참 불공평하네.”
잔을 채우는 커피를 보던 우리가 속삭이듯 작게 중얼거렸다.
“고대리님.”
“…….”
“대리님?”
“어…… 어?”
황주임의 말에 다른 생각을 했던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본부장님이 찾으세요.”
우리가 급하게 머그컵을 들었다.
카페인의 유혹보다 본부장의 호출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커피가 머그컵에 넘실거렸다.
‘아…… 커피 마시고 싶어서 미치겠네!’
격하게 마시고 싶은 커피를 우리는 서둘러 책상에 내려놨다.
“본부장실?”
“예. 본부장실이요.”
“땡큐.”
우리는 수첩과 볼펜을 들고는 본부장실로 걸어갔다.
숱한 스케줄과 자료들로 우리의 수첩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빵빵했다.
한 번의 주춤거림도 없이 우리는 매무새를 정리하고는 본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흠!”
헛기침을 하고는 본부장실의 문을 열었다.
“본부장님 찾으셨다고……!”
살짝 고개를 숙여 정갈하게 인사를 한 우리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본부장의 옆을 차지한 남자의 얼굴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덤덤하고도 매혹적인 눈빛, 작게 흘리던 조소, 냉랭한 분위기…….
분명, 강건우였다.
‘개나리 조카가 왜 여기에 있는 건데?’
재수 없었던 개나리 조카의 맹랑한 등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