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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9화 〉 탐식마(貪食魔) (429/429)

〈 429화 〉 탐식마(???)

* * *

“그렇게 초를 쳐야 속이 시원해요?”

류 현의 인기척이 멀어지자마자 화련이 눈을 흘기며 타박했다.

승하는 드물게 반박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녀는 허공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자신을 제외한 세 여자가 책망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백혜라 또 한 그 셋에 속해있다는 사실에 조금 배신감을 느끼며 승하는 궁시렁거렸다.

“...아니, 너희도 중국 가긴 싫을 거 아냐. 류 현도 대놓고 티를 안 내서 그렇지 그럴거고.”

“그래도 그렇지. 마스터 과거 뻔히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해요?”

승하 입장에서는 솔직히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류 현은 굳이 화나는 기억을 꺼내고 싶어 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우크라이나에서처럼 팀원들 멘탈 긁을 만한 이야기를 꺼려서인지 전생의 그런 이야기들은 자제하는 편이었으니까.

해도 이놈들은 뒤통수를 때려대는 놈들이니 우선순위를 낮춰놓자, 이놈들은 그래도 잘 버티고 패악질도 덜했으니 높여놓자.

이런 식으로 외부세력에 대한 대강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에 가까웠다.

누구 뒤통수를 깠는지, 어떻게 패악질을 부렸는지 같이, 그녀들이 가장 궁금한 부분에 대한 건 입에 잘 담지 않았다.

그러니 승하나 팀원들 입장에서는 그가 거지같은 환경에서 외롭게 싸웠구나 하고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애초에 류 현이 전생 이야기를 할 때 너무 덤덤한 것도 크게 작용했고.

정작 열 받을 만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류 현의 태도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해산했다가, 나중에 곱씹으면서 열이 오른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리커창 그 놈 하나 살아있다고 뭔가 바뀔 리도 없잖아.”

“마스터도 뭐 다른 걸 바라는 거 같진 않던데요 뭘. 시간만 끌어주면 뭘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할 걸요?”

“...그쪽은 지원 안 해주겠지?”

“하겠다고 안 하셨잖아요. 그럼 안 하는 거죠. 라비 라자 때도 굳이 우리 동의 얻겠다고 사서 고생하고, 그 뒤로 미국이랑도 협상 하셨잖아요.”

“그럼 의미가 있나? 리커창이 얼마나 세졌을지는 몰라도 라비 라자 한 열명 분 수준으로 세진 거 아니면 의미 없을 건데. 그렇게 세졌어도 재수 없으면 한 번에 죽을 수도 있고. 애초에 그놈 수준을 모르니 의미 없는 가늠이긴 한데.”

“그 정도 됐으면 마스터가 따로 빼내거나 챙겨주셨겠죠. 안 그런 척 해도 지벡 건터, 그 개망나니도 은근히 챙겨주시는데. 솔직히 그 인간 지금 수준까지 올라온 거 버스 탄 게 7할 쯤 되잖아요?”

“7할이 뭐야 9할 정도는 되지. 웨인이야 너랑 희란이 호위로 붙어있기라도 했지. 지벡 그놈은...”

“어쨌거나 전력으로 유의미한 수준까지 올라오면 돌연사 안 하게 이래저래 뭐 찔러주긴 하시잖아요. 지벡 건터 그 인간 이제 예전 스폰서고 뭐고 신경 끄고 살아도 될 거 같은데 여태 붙어있는 거 별 말도 안 하시고.”

“모르지, 그 녀석 말하는 것만 보면 그 스폰서라는 인간들 플레이어용 독극물이라도 개발해서 몰래 먹이고도 남을 거 같은데.”

“설마요. 죽이는데 드는 비용대비 돌아오는 게 하나도 없는데. 실패하면 그 인간이 그냥 있겠어요?”

“그을쎄, 그렇게 이성적으로 계산이 돌아가면 암살사건 같은 건 세상에 없겠지. 그 때...”

승하는 말을 하다말고 퍼뜩 입을 닫았다. 저도 모르게 우크라이나에서 공격받았던 일을 거론할 뻔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좀 지났고, 그 뒤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지만 충격이 사라졌을 리는 없었다. 자신도 당시에는 꽤 충격 먹었으니까.

별의 별꼴을 다 보고 살았다고 자부하는 자신도 그랬는데, 나머지 팀원들은 어떻겠는가.

다시 상기시켜줘봐야 하등 좋을 것 없는 일.

“그 때?”

“아니, 말이 헛 나왔어.”

승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얼버무리자 화련도 더 파고들진 않았다.

표정을 봐선 그녀조차 불편해 하는 무언가가 걸려서 입을 다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중국 쪽 이야기로 돌아가서, 리커창인가? 하는 사람이 극적으로 강해지지 않았어도 시간 벌이는 할 수 있게 도울 순 있죠.”

“응?”

화련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승하에게 튕겨주었다.

“이게 뭐야?”

“저번에 줬던 거 열화판이요.”

“저번에?”

“...내가 그렇게 무조건 하나씩은 품에 넣고 다니라고 했는데. 벌써 까먹었어요? 삼일 전에, 기억 안 나요?”

“아.”

승하는 그제야 시침핀 같은 물건을 제대로 들여다보았다. 동그란 머리 부분에 빙글빙글 돌고 있는 은하수 같은 마력이 눈에 띠였다.

집중하고 있으니 확실하게 느껴졌다. 희미하긴 하지만 화련의 마력이 담겨있었다.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지만, 화련이 비상탈출용이라고 나눠준 일회용 아티펙트였다.

“열화판? 무슨 차이인데?”

“충격완화랑, 대가로 마력이 좀 빨려요.”

“엥?”

겨우 그 차이? 말을 내뱉진 않았지만 얼굴에 말이 떠올랐기 때문에 화련이 바로 덧붙였다.

“대강 발동식의 틀만 잡아놓은 거라서 아예 소양 없는 플레이어가 쓰면 한동안 전투 불능에 빠질 거에요. 마력은...헌팅레벨 200이하면 한동안 요양해야 할 정도?”

“그 정도면 진짜 예비용 목숨 느낌이네.”

“그렇죠. 제일 힘든 부분을 빼버린 거니까.”

“이걸 리커창한테 주게?”

“그 전에 마스터한테 여쭤봐야겠지만요. 허락하신다면 일단 되는대로 넘겨줄 생각이에요.”

“얼마나 만들어 놨길래?”

“대충 오륙십 개쯤?”

“류 현이 또 한소리 하겠네.”

화련은 픽 웃어넘겼다.

“마스터가 호들갑 떠는 게 한두 번이에요? 본인 몸도 그 반의반만큼만 아껴도 사람 속이라도 안 탈 텐데.”

“어쩌겠어. 전생이 그 모양이었고, 본인은 이상하단 걸 전혀 못 느끼는 눈치인데.”

“그것도 그렇죠. 아무튼, 한 소리 들어도 쥐여서 보내는 게 맞다고 봐요. 그 인간이 살아서 시간 끄는 만큼 제대로 된 휴식기도 늘어나는 거니까. 적어도 어디에서 얼마만큼 갈려나갔니 하는 보고서는 마스터가 덜 볼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긴 해. 류 현 저거 안 그래도 종이 손에 떼놓는 시간이 더 적은데 이 상황에서 중국 꺼까지 추가되면...어우.”

승하가 고개를 부르르 떨자 화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거나 찍어내려고요. 중국 쪽 사람들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는. 희란아? 나 좀 도와줄래?”

“고생한다. 고생해.”

화련은 그대로 방밖으로 나서며 손을 살래살래 흔드는 것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그녀의 뒤로 희란이 따라붙었다.

***

같은 시각 류 현은,

“이런 말하면 우습게 들리실 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우습게 들린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이건 확실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아직 피가 질질 흐르고 있는 옆구리를 동여맬 생각도 않고 바닥에 이마를 박고 있는 리커창을 황당하다는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개량형 엘릭서로 일단 정신줄을 붙여놨더니 정신이 들자마자 갑자기 머리를 냅다 박았다.

장이셴과 사전에 이야기 된 연극은 아니었는지 중년인의 얼굴에는 류 현과 마찬가지로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이건 또 왜 이래? 죽다 살아나더니 어디가 망가졌나?’

류 현의 리커창 실성설이 힘을 얻고 있든 말든 그는 제 흉중의 말을 토해냈다. 피를 토할 것처럼 격렬하게.

“텐진에서 희생당한 이들은 완전히 죽지 않았습니다.”

“...예?”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류 현은 잠깐이지만 아무 이상 없는 제 청력을 의심했다.

리커창은 류 현이 멈칫하든 말든 계속 말을 쏟아냈다.

“그 괴수가 취한 검은 팔 안에 그들의...영혼이 아직 갇혀있습니다. 놈은...희생자들의 영혼을 쥐어짜서 제 수족으로 삼고 있습니다. 놈이 그 팔을 휘두르는 한 계속해서...”

끝도 없이 횡설수설할 기세라 류 현은 상대가 환자이지만 뒷덜미를 꽉 움켜쥐고 마력으로 압박을 가했다. 그렇지 않아도 약해져있던 리커창은 코와 눈에서 피를 흘려댔지만 기절하진 않았다.

뒤에 있던 장이셴이 기겁했지만 어차피 아무 능력도 없는 그가 류 현을 제지할 방법은 없었다.

“접촉했습니까?”

“예, 예. 했습니다. 하는 순간 갇혀있는 이들의 비명소리가...끄릅...”

리커창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피거품을 게워냈다.

류 현은 리커창을 처음 누워있던 침대에 눕혀주고는 장이셴에게 ‘가방’에서 꺼낸 유리병 너 댓개를 건네며 말했다.

장이셴은 방금 행동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보였지만 류 현은 그런 걸 받아줄 상태가 아니었다.

“많이 마시면 오히려 완전 회복하는 건 더뎌지니 통증에 못 견뎌할 때만 마시게 하십시오. 회복력을 당겨와서 봉합하는 식이라 최대한 덜 마시는 게 나을 겁니다.”

장이셴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자마자 류 현은 병실을 나섰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요원들이 류 현의 표정이 흉흉해진 걸 보고 움찔했지만 그 또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류 현의 머릿속에는 한 사람만이 가득했다.

‘...누나는 그 때 대체 뭘 본 거지?’

류 현은 건물을 나서자마자 날 듯이 ‘용잡이 팀’이 사용하고 있는 병동 방향으로 뛰었다.

세아의 방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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