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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8화 〉 탐식마(貪食魔) (428/429)

〈 428화 〉 탐식마(???)

* * *

“일이 피곤하게 굴러가네.”

이미 불만을 불퉁한 표정으로 한껏 표현하고 있는 승하는 테이블 위로 몸을 늘어뜨리다가 류 현 쪽으로 몸을 슬쩍 돌렸다.

그녀의 오른쪽에 앉은 화련이 옆구리를 꾹꾹 찌르며 눈치를 줬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외려 한 숨과 함께 류 현이 동의를 표해오자 잠깐 화련 쪽으로 어떠냐는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다.

화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젖고는 류 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쩌실 생각이세요?”

“글쎄요. 단번에 단언하기에는 상황이...”

류 현은 턱을 긁적거리며 꺼져버린 화면을 바라보다가 손을 슬쩍 내저었다.

어둠만을 비추던 화면이 살짝 앞으로 돌아가자 ‘그놈’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색하긴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양팔이 있는 ‘그놈’이.

‘‘페릭스’도 그랬지만...골치 아프군.’

네임드 몹이 전투에서 결손된 신체 일부분을 재생하는 건 그에게 그렇게 놀라운 일까지는 아니었다.

전생에서도 제법 자주 본 광경이었으니까.

전생의 류 현도 그래서 돌려깎기가 아니라 데이터를 쌓고 정면충돌 쪽으로 공략가닥을 잡았었고 말이다.

물론 ‘강림’상태에서 입힌 상처는 꽤 오래가긴 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네임드몹도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상성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자신이 회복해서 재도전할 때까지 골골 앓는 경우도 드물긴 해도 있긴 했었다.

네임드 몹치고는 약한 재생력을 가진 놈들.

그놈들은 모두 예외 없이 기괴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꽤 고생했지만 한 번 붙잡고 제대로 힘을 투사하는 것으로 때려잡을 수 있었던 ‘페릭스’처럼.

‘움직임이나 그 때 손맛도 그렇고 영락없이 그 쪽 계열일 줄 알았더니...아니, 아주 다른 건 또 아닌가.’

‘페릭스’와는 조금 다르긴 했다.

그 때는 큰 상처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오른팔을 떼버리고 자신의 기운으로 생각되는 검은 덩어리를 팔 대신 달고 왔다면, 이번에는 팔을 포기하는 정도로는 커버가 안 될 중상을 직접 입혔었다.

놈이 전투장소에서 팔을 포기했음에도 후속전투에서도 영향을 받았었으니까.

후속전투에서 장기 요양을 각오하고 전력을 때려부은 것도 그래서였다.

‘그놈’이 ‘페릭스’처럼 재생력이 약한 계열이라고 생각해서.

눈에 보이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고, 팀 상황도 시간을 버는 것을 우선할 정도로 피폐했으니 다시 돌아가도 아마 같은 선택을 할 터였다.

문제는 놈이 회복한 방식이 상정 외의 방식이라는 것.

‘전생에는...없어. 역시 없다.’

‘체페슈’같은 네임드 몹 휘하의 언데드 군단이 사람을 죽여서 군세를 불리는 것과는 달랐다.

언데드 군단도 그 수와 수에 기반을 둔 화력과 공간장악이 골 때리긴 했지만, 아주 손댈 수 없는 건 아니다.

전생과 다르게 유니크 아티펙트를 세 가지나, 그것도 두 가지는 ‘해방상태’라는 화력을 증폭하는 방법까지 알아내지 않았나.

용잡이 팀은 여전히 소수 정예이니 물량공세는 부담스럽긴 하겠지만,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성까진 아닌 것이다.

팀원 외의 플레이어들이 쓸데없는 내전 끝에 갈려나가지 않은 것도 무시하지 못할 호재.

하지만 네임드 몹이 인간을 죽여서 회복을 꾀한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

그의 상식 하에서 괴수는 뭔가 이득이 있어서 인간을 죽이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생명마저 도외시하게 만드는 맹목적인 살의가 이유의 전부였으며, 회귀를 한 이후에도 이는 변함없는 대전제였다.

‘비아트릭스’나 ‘살바토르’라는 특이케이스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에 대한 정보를 얻긴 했지만, 크게 변하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놈들이 어떤 의도를 가진 누군가에게 세뇌를 받았든, 본디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든 간에 자신이 할 일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게 류 현의 생각이었다.

괴수에게 세뇌를 건 존재가 있고 그 존재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그를 죽여야 무제한 살육전을 멈출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럴 생각이었다.

두 용은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듯 했지만, 의도가 좋다고 이 살육전을 무한히 이어나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마음먹은 입장에서 할 일이 크게 바뀔만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괴수가 ‘죽인다’라는 것 외의 의도를 가지고 인간을 쳐 죽이고 다닌다는 사실은 류 현에게도 꽤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새어나가서 좋을 것 없는 정보라는 사실과 그 기밀을 요해야하는 정보가 어디까지 퍼져나갔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도.

‘이거 새어나가면 골 때리...’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테이블 위를 돌아보려던 류 현은 멈칫했다.

네 여자가 자신이 멈칫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움찔할 정도로 오만신경을 다 쏟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건 아니었지만, 겪을 때마다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너무 독재자로 막 나갔다 싶기도 했고.

또 한 편으로는 이제 와서 되돌리기에는 그녀들이 너무 익숙해졌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했다.

전에 이런 분위기 괜찮겠냐고 슬쩍 한 발 물러서려고 했을 때 그러기만 해보라는 시선을 받았었으니까.

저번처럼 자신이 몸을 내던지는 수준의 선택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면, 그녀들은 불평 없이 따라줬다.

살짝 민망해진 류 현은 괜히 목을 가다듬는 척 했다.

“크흠...”

“설마 중국 갈 건 아니지?”

“설마요. 오히려 더 피해야 할 판인데요.”

자신의 대꾸에 화련과 희란 몸에서 눈에 띄게 힘이 빠지는 것을 보고 류 현은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그 때 못 박았는데. 그렇게 못 미더웠나...’

자기반성 모드로 들어가려던 류 현을 승하가 잡아 세웠다.

“그럼 전에 말한 대로 계속 방치?”

“그게...좀 곤란해졌지 않습니까.”

“응? 장이셴 그 영감이 영상 까는 조건으로 딜 걸었어?”

“아뇨. 그냥 오자마자 바짝 엎드리고 보더군요. 문제는, 이 영상이 일반 CCTV에 찍힌 거라는 거죠.”

“...진짜?”

“예. 장이셴 위원에게 확인 받았습니다. 이쪽으로 오기 전에 정말 텐진에 남은 CCTV서버를 다 뒤졌나 보더군요.”

자국 국민들을 감시하는 수단으로 온갖 곳에 깔아둔 CCTV가 목숨 줄이라고 생각하고 매달렸을 걸 생각하니 헛웃음조차 나오질 않았다.

다른 네임드 몹 같았으면 장이셴의 노력은 허사가 되었을 것이다.

‘비아트릭스’처럼 전자기기를 먹통으로 만드는 능력을 따로 갖추고 있지 않아도, 네임드 몹 정도 되는 괴수가 대량살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주변은 엉망이 되니까.

하지만 ‘그놈’은 공격방식이 인간과 유사했기 때문에 CCTV도 그 살육에 휘말리지 않았고, 서버실 또한 온 텐진이 불바다가 될 정도의 참사에도 무사할 수 있었다.

“...운이 나쁜 건지 좋은 건지 모르겠네.”

“이 영상이 퍼지면 운이 나쁜 거고, 사태가 끝날 때까지 퍼지지 않는다면 운이 좋은 거겠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류 현은 영상이 퍼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장이셴이 그 많은 것들을 혼자서 뒤졌을 리도 없고, 그 난리통에 보안을 유지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멍청한 거였으니까.

“퍼지면 난리 나겠죠?”

“예. 아마 중국내 내전이 더 격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국만 그러면 다행이지.”

승하는 고개를 내저었다.

류 현은 차마 그것을 부정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에 입맛이 썼다.

전생에서는 이 비슷한 소문만 돌았음에도 난리도 아니었으니까.

네임드 몹이 던전 게이트를 통해서 거리적 제한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 게이트 주변의 도시들이 공습 당하자 그런 괴소문이 돌았다.

네임드 몹이 일반인들 보다 플레이어들을 더 먼 거리에서 감지할 수 있고, 최우선 타겟으로 삼는 다는 소문.

게이트 주변 도시들이 당했다는 빈약한 근거만으로 퍼져나간 소문은 황당하게도 다 죽어가던 인류의 도시 내부를 다시 분열시키기까지 했다.

어이없게도 플레이어들의 퇴거를 요구하는 도시가 나오기 시작한 것.

영악한 이들은 플레이어들을 위한 특구를 만들어주겠다고 여분의 ‘신의방패’로 도시 외부의 공간으로 이주를 권유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반인들만의 도시’가 플레이어 특구보다 빠르게 소멸당한 후 괴소문은 빠르게 사그라들었지만, 그 단순한 깨달음을 위한 대가는 너무도 컸다.

‘...너무 멀쩡한 게 더 문제가 될 줄이야.’

서로 정보 공유도 힘겹게 하던 시절에도 그런 근거 없는 낭설이 그렇게 빨리 퍼졌는데, 이미 플레이어만 쏙쏙 골라서 사냥하고 자리를 뜨던 놈이 사람을 죽여서 회복하는 꼴까지 공개된다?

그렇지 않아도 반 플레이어 운동과 플레이어 해방운동으로 분위기 험악해진 유럽은 꼴이 아주 볼만해질 것이다.

화약고에 횃불을 던지는 것도 이것보단 덜 위험 할 터.

가장 큰 문제는 딱히 손쓸 방도도 없다는 거였다.

류 현이 아무리 날고 기는 네임드 몹 사냥꾼이라지만, 정보가 퍼지는 걸 막을 재주는 없으니까.

거짓을 섞어서 반응을 늦추거나 격화되는 걸 막기에는 영상 상태가 너무 좋았다.

그나마 막아 볼 건 ‘그놈’이 인도에서 분탕질 칠 때 플레이어만 쏙쏙 골라서 죽였다는 것 정도 일 텐데, 그것도 아는 입이 너무 많았다.

당이 사실상 해체되면서 이빨 빠진 호랑이 꼴이 된 장이셴이 알고 있는 것만 봐도 이 정보도 틀어막고 있긴 힘들어 보였다.

당장 ‘그놈’이 분탕질을 멈추지 않는 한 중국 측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까.

뭐라도 해보겠다고 뻘 짓하는 동안 여기저기 정보를 흘리게 될 거다.

장이셴의 말대로라면 그 정도로 그쳐주면 감사해야 할 정도로 지금 베이징을 장악한 놈들은 개막장일거니까.

‘그렇다고 당장 중국으로 건너갈 수도 없고.’

‘하긴, 무슨 대책을 내놓기도 웃긴 상황이긴 하네. 몸 상태가 이런데 무슨 근본적인 대책이야.’

자신에게 혀를 한 번 차준 후 류 현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여자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자 류 현은 해산하자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일단 여기까지 하지요. 당장 대책이 나올 문제도 아니고, 그럴싸한 대책이 나온다 한들 우리 팀 상태가 이래선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영상을 보여 드리려고 불러 모은 거였습니다.”

“그야 그렇긴 한데...너 또 어디가게?”

“장이셴 위원에게 약속한 게 있어서요.”

“응? 확언 안 해줬다면서?”

“중국 구해달라는 부탁에는 그랬었죠. 그런데 지금 리커창이 실려와있답디다. 텐진에서 탈출하고 상태가 점점 악화되다가 지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데,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구명해주면 제 몫은 할 자니까요. 약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영상 값 생각하면 회복시켜둬서 나쁠 건 없죠.”

“...전부터 생각한 건데 난 네 원한 센서 기준을 모르겠어. 너 전생에 걔가 먼저 시비 털어서 싸웠다면서?”

떨떠름한 승하의 물음에 류 현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거 다 생각했으면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사방이 다 적으로 보였을 거니까요. 아니, 사실 대부분이 잠재적 적이었죠.”

제 대답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승하를 뒤로하고 류 현은 회의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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