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7화 〉 탐식마(貪食魔) (427/429)

〈 427화 〉 탐식마(???)

* * *

자리에 앉자마자 불평 섞인 핀잔을 날리려던 류 현은 맞은편의 상대를 보자마자 그것을 삼켜야했다.

오전에 한 결심을 무르게 만든 장본인.

중화인민공화국 공산당소속 중앙위원 장이셴은 검은 리치성 사태 때 봤을 적과 겉모습이 크게 차이나진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아진 부분이 없지 않았다.

아마도 그동안 던전에서 나온 좋은 걸 주워먹었겠지. 류 현은 그렇게 대충 넘겼다.

그 부분이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류 현이 집중한 건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조명을 받고 있음에도 지워지질 않는 중년인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

그 그림자는 급하게 한 화장과 볼 근육을 억지로 당겨 올린 정도로는 커버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눈에 띄는 외상이나,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내상의 기미 같은 것이 보이지 않음에도, 눈앞의 중년인은 육신이 성함에도 곧 픽 꺼져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류 현은 저런 그림자를 얼굴에 지고 사는 이들을 아주 많이 봐왔었다.

전생.

네임드 몹의 폭격으로 기반을 잃고, 겨우 목숨만 부지했지만 그것조차 불평하기 어렵던 그 시절에 그는 저런 얼굴을 한 피난민들을 무수히 봤다.

자신의 세계가 박살나고, 어떻게 해도 자신이 그것에 저항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자들의 종착역.

그리고 그것이 류 현을 입을 다물게 만든,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었다.

‘저 상태로 왜 날 찾아온 거지?’

저 상태에 이른 자들의 행동양상은 매우 단순했다.

피난민 행렬에 따라가는 듯하다가 돌아보면 외진 곳에 혼자 죽어있거나, 갑자기 사라져서 영영 보이지 않게 되거나.

옆에서 챙겨주는 이가 있으면 조금 더 연명하긴 했으나, 결국 정신적으로 말라비틀어진 인간의 말로를 막진 못했다.

‘어떻게 찾아온 거지?’

그러니 장이셴이 이 자리에 있는 건 이상했다.

정신적으로 사망상태에 이르러서 육신이 따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가 어떻게 백악관에서 직접 미팅을 주선하는 자신에게 당도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잘 못 본 것일까?

류 현은 장이셴의 말을 기다렸다.

앞에 놓인 김이 올라오는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내 생각보다 상태가 더 안 좋은 건가?’

류 현이 머릿속에 다른 선택지가 아른 거리기 시작할 때 석상마냥 굳어있었던 장이셴이 움직였다.

쿵!

“우리가 내어줄 것이 의미 없다는 건 알고 있소. 우리가 내어줄 수 있다는 보장조차 없소.”

중년인은 다 죽어간다는 인상이 무색하도록 격렬하게 무릎을 꿇었다. 말릴 새도 없이.

류 현이 당황스러움을 표할 새도 없었다.

장이셴은 이것이 마지막 숨이고, 마지막 말인 양 쏟아내었다.

“하지만, 그래서 이리 뻔뻔하게 애원할 수밖에 없소. 살려주시오. 우리에게 무엇을 대가로 요구하든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우리를, 대가를 거절하더라도 거둬가는 것에는 반항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우리를 살려주시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후안무치하다는 것은 알고 있소. 하지만...이미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되오만은 더 이상 당은 존재하지 않소. 그러니 대가를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 때문에 임의로 대가를 거둬가도 저항조차 하지 못할 테지. 이게 얼마나 의미 없는 소리인지는 알고 있으나, 우리에겐 다른 보장할 수 있는 것이 없소.”

“더 없이 뻔뻔한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소. 하지만, 하지만 그 땅에는 14억, 아니 그 이상의 목숨들이 살고 있소. 그리고 그들 중 당신의 발치에도 미치는 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오. 이제 확실히 깨달았소. 그러니, 작은 자비만이라도 내려주기를 이렇게 간청 드리오.”

그냥 뒀다간 절이라도 할 기세였기에 류 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장이셴을 일으켰다.

장이셴은 일어서지 않으려고 했지만 일반인이 플레이어, 그것도 정점이라고 평가 받는 이의 완력을 당해낼 순 없었다.

류 현은 짜증과 함께 의문이 들었다.

‘미국애들이 날 떠보고 싶어 하긴 했지만 이 노인네로 할 필요가 있나?’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일이 몇 번 꼬이고 어쩌다보니 백악관 측에서 ‘용잡이 팀’에 대한 전반적인 대외접촉 통제 포지션을 떠맡았지만, 별다른 불만은 없어 보였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비서진들은 점점 ‘용잡이 팀’만 보면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반응이 격화되고 있긴 했지만, 그게 케어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초반에는 희희낙락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까지 보였었다.

그럴만하기도 했다.

‘신의 방패’를 빼고 봐도 ‘용잡이 팀’은 네임드 몹과 던전 게이트 폭주라는 ‘대소환’의 새로운 국면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으니.

레드 드래곤 웨이브와 ‘비아트릭스’ 사태를 거치며 미국을 그 사실을 누구보다 똑똑히 깨달을 수 있었을 터.

대서양 건너 있는 혈맹이 플레이어 협회를 품고도 험한 꼴을 당했다는 소식은 덤이었다.

거기에 ‘신의 방패’에 대한 실질적인 사용권 보유까지.

괜히 비서실 인간들이 날이 가면 갈수록 ‘용잡이 팀’을, 특히 류 현을 부담스러워 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쪽지 하나 건네줄 수 있다는 위치만으로 이전과도 비교도 안 되는 로비와 외부 압력이 들어왔으니까.

호가호위할 기회라고 여기고 좋아하기에는 그들이 속한 곳은 세계 정치의 복마전이었고.

결국 비서진은 ‘용잡이 팀’이 부담스러워서 단독으로 보는 것은 극구 피했지만, 그들의 의향을 읽어내기 위해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갈려나가는 걸 자청했다.

정도가 과할 때도 있어서 류 현이 몇 번 말렸을 정도.

그러니 이 처치 곤란한 정치적 폭탄을 류 현이게 대충 떠넘겼다는 생각을 하긴 힘들었다.

귀찮음 때문에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사안을 대충 처리하는 이를 위한 자리는 백악관에는 없었으니까.

‘뭔가 들고 온 게 있긴 하다는 건데...’

지금도 횡설수설 하는 꼴을 보면 캐내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았다.

류 현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

화지직! 후르르!

연옥이 현세에 강림한 것 같은 대화재였다.

하늘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지만, 땅 위로는 차마 내려앉지 못한 기괴한 광경.

대지 위의 모든 것을 불사르려는 듯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불꽃은, 대지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하늘까지 탐하는 것처럼 위로, 위로 피어올랐다.

불꽃에 삼켜진 것들의 비명이 연기로 화하여 때 말간 주홍빛에 밀려난 밤하늘 위로 어룽지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사방팔방으로 퍼진 불이 아니었다.

너무 넓게 퍼져있는지라 불꽃은 자연스러운 배경처럼 보일 지경이었고, 시선이 멈춘 곳은 시체로 된 산이었다.

정확히는 시체의 산 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것.

쓰레기 매립장의 쓰레기 산처럼 존엄도, 규칙도 없이 엉망으로 뒤엉킨 시체더미 위가 왕좌인양 자리한 ‘검은 것’.

츠익­

놈이 하나 뿐인 팔을 들어 올리자 ‘그것’의 아래에 깔린 시체더미가 꿈틀거렸다.

아니, 꿈틀거린 건 시체더미에서 흘러나온 검은 연기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시체 더미가 타서 피어오른 연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화면상으로 보이는 저 기괴함이 설명되지 않았으니까.

‘그것’의 손 위로 뭉쳐진 연기 같은 것은 살아있는 심장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곧장이라도 폭발해서 흩어질 것처럼 아주 거칠게.

철그럭­

한참이나 맥동하는 덩어리를 가만 지켜보던 ‘그것’이 제 왕좌를 박차고 땅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후와악! 끄으으­ 아아아아­!

놈이 덩어리를 시체의 산을 향해 내밀자마자 시체의 산이 꿈틀거렸다.

이번에는 착각 같은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숨을 내뱉은 지 오래인 유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대가 없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시체들은 죽음으로도 피할 수 없는 고통에 신음하며 몸을 뒤챘다.

푸스스­

그들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뭉클뭉클 쏟아져 나왔다.

쏟아낸 시체는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부스러졌고, 시체의 산도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그렇게 못해도 아파트 3층 높이의 시체 산이 ‘그것’의 신장수준으로 쪼그라들었을 때,

놈은 제 몸뚱이보다 수십 갑절은 더 큰 검은 덩어리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그 크기를 가늠하려는 듯 한 번 슥 올려다본 놈은,

콰직! 쿠지직! 뿌지직! 크아아아아­

그것을 오른쪽 어깨 절단면에 쑤셔 박았다.

제 손으로 끊어버렸던 오른팔의 자리에.

절단면이 순간적으로 확 끓어오르며 쑤셔 박은 덩어리와 왼손가락을 녹여버렸지만, 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느 정도 고정이 되자 놈이 왼손을 빼내었다.

드러난 왼손가락은 반쯤 녹아내린 상태였고, 쑤셔 박힌 덩어리는 계속해서 타들어가고 밀려들어가길 반복하며 부피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고통이 없진 않았는지, ‘그것’의 몸이 간헐적으로 떨리곤 있었으나 그 간격도, 덩어리가 줄어드는 속도도 점점 느려졌다.

이윽고,

츠으으으­

오른쪽 어깨 부근에서 벌어지던 기괴한 ‘타들어감’이 멎었다.

‘타들어감’이 멎었을 때 놈의 어깨에 매달린 덩어리는 아직도 제 몸뚱이의 갑절은 되는 수준이었다.

꾸드득­ 까드득­

기다렸다는 듯이 변화가 시작되었다.

검은 덩어리는 이제 타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단단하게 뭉쳐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천천히 덩치를 줄여갔다.

줄어들수록 인간의 팔에 가깝게 조형되어가는 모습을 숨 죽여 지켜보던 관객들은,

츠팟­

팔의 조형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의 시점을 정면으로 바라본 ‘그놈’이 천천히 다가오자 꺼져버린 화면에 강제로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일이 피곤하게 굴러가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