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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6화 〉 탐식마(貪食魔) (426/429)

〈 426화 〉 탐식마(???)

* * *

“텐진은 괴멸에 내몽골은 정부 청사 초토화. 거기에 충칭은 독립선언 준비 중이라니...”

화련은 코로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길게 날숨을 뿜어내었다.

“진짜 마스터 말씀대로 됐네요. 제대로 개판 났네.”

그녀의 손에는 신문처럼 보기 편하게 편집된 종이 다발이 쥐여져 있었다.

조직명 약자만 들어도 모두가 알법한 정보기관들이 높으신 분들께 올린 보고서였다.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아침에 깐깐하게 생긴 관료가 그녀에게 건네주고 간 것이었다.

정확히는 화련에게 준 것이 아니라 류 현에게 전달을 부탁한다고 거듭 고개를 숙이고 내뺀 거였다.

‘이번에는 또 무슨 소문이 퍼진 건지...아, 모르겠다. 지금 상태가 편하니 그냥 둘까봐.’

“이 난리통에 그 늙은이는 용케도 살았나 보네.”

“응? 언니가 아는 사람 실렸어요?”

머리를 슬쩍 디밀고 여기저기 뜯어보던 승하가 별안간 그런 소리를 하자 화련의 시선은 물론이고, 아무 말 없이 보고 있던 류 현의 시선도 그녀의 손가락이 짚는 곳을 따라갔다.

“장이셴 위원과 만나신 적 있었습니까?”

“어. 내가 말 안 했었나? 그 영감 은근히 다른 나라 협상 자리에 얼굴 잘 디밀던 인간이거든. 북한 수복작전 때 꽤 자주 봤었어.”

“그런가요.”

“...이번에는 나도 반대야. 안 돼.”

“예?”

뜬금없이 튀어나온 승하의 반대에 류 현은 살짝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승하는 더욱 단호하게 반대를 표할 뿐이었다.

“너 지금 저기서 어떻게 지연시킬까 고민하고 있었잖아. 표정 보니까 딱 그거던데.”

“갑자기 무슨...마스터 아니죠?”

“...”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말문이 틀어 막힌 류 현은 시선을 피하 듯 이미 다 본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다.

승하는 그 모습에 거 보라는 듯 화련을 향해 어깨를 으쓱 해보였고, 화련이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을 쳤다.

겨우 아물어 가는 내상이 다시 도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 격하게.

“내가 진짜 못 살아. 우리 중에 제일 회복 더딘 사람이 왜 자꾸 일을 못 만들어서 안달이에요?”

“너 오늘 늦잠 자서 미팅 펑크 냈다면서?”

부외자가 들으면 늦잠 좀 잔 게 무슨 대수냐고 할 일이었지만, 그녀들에게는 류 현의 부상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표 중 하나였다.

이 악물고 혼자 끙끙 앓고, 혼자 뭔가 해결하기를 좋아하다 못해 강박증 수준으로 행하는 그녀들의 대장은 정말 어지간해선 티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보통 플레이어라면 두세 번 죽고도 남았을 내상을 끌어안고도 묵묵히 서류 검토하는 걸 당연시 하는 대장은 끽해야 늦잠 자는 정도가 눈에 띄는 부상 징후였다.

핏물이 올라오거나, 어지간한 내상으로 인한 마력의 흐트러짐은 힘으로 내리 눌러버리고 혼자서 앓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 늦잠 소리에 화련이 쌍심지를 켜고 다그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보고는 사려라 회복 되고나서 해라, 잔소리 잔소리를 하시더니 이게 대체 뭐에요? 그래, 이제야 알겠네. 세아 언니 표정이 왜 그랬는지.”

“예? 누나가 오늘 그랬다고요...?”

“언니가 걱정되시면 남의 동네일에 머리부터 디밀 생각마시고 회복에 힘쓰시는 게 어때요?”

“...아니 저 좋자고 이러는 거겠습니까.”

“아닌 거 아니까 더 속 터지죠. 세아 언니도 그래서 대놓고 티는 못 내고 문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시는 걸 거고요.”

할 말이 없어진 류 현은 뒷목을 주물럭거리며 딴청을 부렸다.

그런 류 현을 보고 화련이 몇 마디 더 쏠 기세자 승하가 슬쩍 끼어들어왔다.

“일단 거기에 투입할 전력이 없잖아. 미리 말해두는데, 나 지금은 30분도 못 싸워.”

그렇게 말하곤 승하는 왼손 검지를 펴보였다.

그녀의 검지에 눈에 보일 정도로 짙은 마력이 맺히더니, 마력검처럼 날카로운 형태와 기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오래가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파란 빛의 기둥이 말단부 부터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퍽 아름다웠지만, 떨리고 있는 그녀의 손은 제 의지로 무너뜨린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놈인지. 류 현 니가 마력 빨아내주고 나서도 자꾸 마력이 흩어져. 조금 무리하면 삼 십분 정도는 쓸 수 있는데, 그러고 나면 회복기간은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안 좋으면 말씀을 하셨으면 제가 한 번 더...”

“너 밥 먹다가 피 토한 게 삼 일 전 일이거든? 마력이 흩어지긴 해도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놈’의 잔존 마력도 거의 다 털어냈어. 내상 때문에 마무리가 좀 걸릴 거 같긴 하지만...”

승하는 제 친구를 빤히 쳐다봤다.

모든 일에 저가 다 끼어들어서 해결을 봐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제 몸 귀한 줄 모르고 막 굴려서 주변 사람 애 닳게 하는 자신과 다른 의미로 철없는 친구를.

“그래도 아직 감각도 덜 돌아온 환자한테 손 벌릴 정도는 아니거든? 너 진짜 이러다가 크게 피 본다니까?”

대상이 대상인지라, 크게 피 볼 거라는 말을 하면서도 위화감을 지울 수가 없었지만 승하는 뒷말에 힘을 줘서 강조했다.

거의 유일한 후원자이자 동맹인 미국도 아니고, 생판 남인데다가 성치도 않은 이미지도 별로인 중국 일에 머리를 디밀겠다니.

“데스나이트 때도 그렇고, 다 낫지도 않은 상태로 자꾸 여기저기 머리 디미는 거. 네 몸에도 문제지만, 자꾸 그러다가 주변에서 이걸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

말하면서도 승하는 스스로가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건 자신이 혼자가 되기 전에 처음 생긴 동료들에게 들은 충고였으니까.

그 당시 미성년자였다. 그 전까지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같이 변명할 여지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변명하는 취미 같은 건 없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제 손에서 해결 보려고 하면서도, 자신을 제대로 돌볼 생각을 하지 않는 친구에게 조금 화가 났다.

“그리고 너 당분간 회복에만 힘쓰자고 했잖아. 벌써 까먹었어?”

“아니, 그래도 정도라는 게...”

“인도 쪽 신경 써주는 걸로 넌 할 만큼 했어. 네가 그랬잖아. 아무래도 ‘그놈’이 던전 게이트 써먹고 있는 거 같다고. 그럼 잡는 게 아니고서야 전부 미봉책이지. ‘그놈’이 나타나서 분탕치는 곳에 일일이 련이 보내서 플레이어놈들 대피라도 시킬 거야? 쟤가 아무리 괴물 됐어도 그렇게 까진 못할 거 같은데. 아니야?”

팔짱끼고 무거운 시선을 보내던 화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뒤에는 “괴물이 뭐야, 괴물이.” 하고 투덜거렸지만.

“그리고 너는 혼자가면 어떻게든 몸을 뺄 수 있다고는 하는데. 우린 뭐 너 보내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겠어? 애초에 보내줄 마음도 없고.”

말을 마무리 지으면서 승하는 귀밑이 후끈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화련이 다다 쏘아붙이는 것에 찌그러드는 꼴이 안쓰러워서 끼어들었는데 중간부터 저가 열 올라서 더 다그친 꼴이었으니까.

그녀는 괜히 멀쩡한 올림머리를 풀어헤쳤다. 백혜라가 보면 또 뭐하고 다녔기에 머리 꼴이 이러냐고 할 테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제가 너무 마음만 앞섰던 거 같네요. 죄송합니다.”

“...알면 됐어.”

류 현이 사과하자 병실안 분위기가 묘해졌다.

둘의 눈치를 살피던 화련이 입을 열려던 순간, 류 현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인은 비서실이었고, 도끼눈을 뜨려던 화련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던 양반들이 무슨 일이래?

류 현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고, 그는 눈짓으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예, 류 현입니다.”

통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두 여자는 그냥 있어도 통화내용을 엿들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청각을 아예 제한해버려서 들리는 거라곤 류 현의 목소리 정도였다.

류 현은 짧은 통화를 마치자마자 그 배려에 바로 응답을 주었다.

“장이셴 위원이 방금 입국했다는군요.”

“엥?”

“진짜 이런 건 더럽게 빠르네요. 리치성 치워줬을 때는 돈 주기 싫어서 세 달 넘게 민원 뺑뺑이 돌리더니.”

“아니, 거기 그 전 부터 내전 중이라고 안 그랬나? 지금 미국 오는 건...”

“이 곳에 와 있는 동안 정치적 기반 다 날릴 각오를 했다는 거겠죠. 기적적으로 그 난리통을 대충 수습하고 대안을 찾아왔을 수도 있긴 합니다만...”

보고서의 내용이 열흘 전에 있었던 사건들이니 상황이 바뀌었을 수도 있긴 했다.

제아무리 미국이라도 이 시국에 완벽한 정보 수집이 힘들기도 했고.

하지만 류 현은 상황이 호전되어서 장이셴이 찾아왔을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전자 같죠?”

“예. 장이셴 위원이 아직 살아있는 건 리커창 덕일 테니까요.”

“안 봐도 비디오네요. 마스터랑 안면은 있으니 그걸로 비벼보겠다는 건데...”

화련이 아주 노골적으로 시선을 제게 주자 류 현은 두 손을 살짝 들어보였다.

“갈 생각 없습니다. 리커창 하나만 데리고 있는 사람한테 조력해준다고 얻을 것도 없을 것 같고요.”

“하긴, 원래도 파벌이 애매하던 사람이라고 적혀있었죠.”

“전생에서 리커창을 만났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요. 그 시점에서 그쪽 당 출신들이 대부분 사망한 상태긴 했지만요.”

“그럼 안 만나실 생각이에요?”

“중국에 안 갈거니 굳이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긴 합니다만...”

자신의 대답에 반색하는 두 여자를 보고 류 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여태 어지간히 업보를 쌓았구나 싶어서.

당일 오후에 했던 말을 바로 번복해야할 줄은 몰랐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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