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5화 〉 탐식마(???)
* * *
“허억...!”
“위원님! 정신이 드십니까?”
암전되었던 시야가 돌아오자마자 장이셴의 머릿속에 떠오른 감정은 원망스러움 이었다.
꿈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왜 자신을 곧바로 흔들어 깨워서 이 끔찍한 현실이 꿈이었다고 착각할 여유도 주지 않는단 말인가.
하등 쓸모없고, 멍청한 생각이었지만 그렇게라도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장이셴은 심호흡을 한 번 더 하고 구급차를 부르려는 리커창을 만류했다.
“됐네. 잠깐 어지러웠을 뿐이네.”
“하지만...”
“내 몸은 내가 잘 아네. 그보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해주게.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인도에서 설치던 ‘그놈’이 이 땅으로 왔다고?”
“...예. 내몽골 자치구의 인민해방군이 교전했고, 증거자료도 남았습니다. 여기.”
정작 리커창이 품안에서 태블릿을 꺼내놓자 장이셴은 그것을 슬쩍 외면하고 보지 않았다.
직접 보지 않는다고 한들 상황이 호전될 리는 없겠지만, 심적으로 충격이 중첩될만한 것은 지금 피하고 싶었다.
“거기 주석이 내 기억으론...”
“부샤오린입니다.”
“그래, 몽골의 왕이라고 거들먹거리던 그 집안 놈들 소굴이었지. 교전 결과는 어떤가?”
물으면서도 장이셴은 일말의 기대감도 품지 않았다.
그곳에 배치된 인민해방군 전원과 같이 딸려나갔을 공안 소속의 플레이어들이 전멸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 놈’은 그 정도의 괴물이었으니까.
여느 네임드 몹과 다르지 않게 갑자기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난 놈은 칼리프 클랜을 습격, 그곳에서 머물고 있던 ‘용잡이 팀’과 교전에 돌입.
그러고 생존한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용잡이 팀’에게 큰 타격을 주고 도망가는데 성공.
그 뒤로 며칠 잠잠하더니 갑자기 인도 내 나타나 라비 라자를 혼수상태에 빠지게 만들고, 나머지 인도 플레이어들은 말 그대로 발에 걸리는 대로 마구잡이로 쳐 죽이고 다녔다.
그렇게 죽어나간 플레이어만 5천여 명.
인도라서 버틸 수 있는 피해였고, 역설적으로 내전 시작 5초전 소리를 듣는 지금 인도 꼴이라서 아직 여파가 퍼지지 않았다고 해도 좋았다.
플레이어 5천여 명.
드넓은 중국의 플레이어 풀에서도 3프로를 넘기는 무시무시한 수치다.
‘그 놈’이 플레이어 경지를 따지지 않고 걸리는 대로 쳐 죽였다는 걸 생각하면 단순 수치로는 따질 수 없는 피해가 더 클 터.
현재까지 ‘그 놈’과 교전해서 생존한 건 ‘용잡이 팀’ 외에 라비 라자 뿐이었다.
그 라비 라자도 혼수상태에 빠진 후로 나오는 소문들을 보면 당장 내일 상을 치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런 대처 불가능한 인세의 재앙이 대체 왜 이 땅에,
그것도 인도에서 수천 키로 떨어진 이 땅에 무슨 수로 거의 한순간에 날아왔단 말인가.
“...플레이어 공안을 비롯한 병력 5420명이 교전했고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신원이 파악된 생존자는 없다고 합니다.”
“...”
당연하다면 당연한 보고였지만, 침통함을 감추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그 놈’에게 ‘사실상 네임드 몹’ 타이틀을 달아주는데 지대한 지분이 있는 ‘용잡이 팀’말고는 지구상에 놈을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팀은 없을 거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서 더 쓰린 피해였다.
정말 놈의 터럭도 상하게 하지 못하고 이쪽 인력만 상했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그래...우리 몽골의 여왕께서 구조 요청이라도 한 겐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음? 그게 무슨 말인가?”
“교전 돌입 후에 주석도, 서기도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청사 전체가 증발한 것처럼요.”
“뭐? 그게 대체 무슨...”
안 그래도 어지러운 머리가 그 소식에 지끈거리기까지 시작했다.
가장 빠르게 사태에 대처해야할 인간들이 쌍으로 사라졌다면 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당 내부에 생긴 문제가 점점 밖으로 새어나가서 충칭시처럼 반란자들이 간을 보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데 자치구 중 하나가 이렇게 엉망이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히 늘어지려던 생각을 떨쳐낸 장이셴은 가장 먼저 입에 담았어야 했던 질문을 던졌다.
“현재 위치는? 진행 방향은 파악됐다고 하나?”
“아쉽게도 정보는 교전 시각과 확정된 전사자 숫자정도입니다. 교전영상을 확보하긴 했다는데, 샘플만 봐도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더군요.”
“...어느 정도 이기에?”
“제가 백 명이 있어도 놈을 저지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허허...”
일신의 무력에 대한 리커창의 자부심에 대해 모르지 않기에 더욱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당의 상황과 자국 내의 던전 상황 때문에 도무지 외부로 그 무명을 떨칠 기회가 오지 않는 리커창이었지만, 당내의 누구도 그의 강함을 부정하지 못했다.
못해도 헌팅 레벨 300중반대, 1군급은 된다는 평이었고.
‘비아트릭스’ 레이드 중계 이후 천외천 취급 받으며 0군으로 등극한 ‘용잡이 팀’을 제하고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1군 라인에 드는 건 넉넉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 덕에 베이징이 처음 봉쇄되었을 때 목숨을 건졌고, 지금도 텐진에서 간이라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리커창은 그 정도의 실력자로 성장했다.
당당하게 중국 최강을 논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현재 동아시아에 거주 중인 플레이어 중에서도 최강을 논하더라도 지탄 받지 않을 괴물 중의 괴물!
그런 리커창이 백 명이 있어도 격살이 아니라, 저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괴물이라니.
새삼 네임드 몹의 위용이 실감나면서도 더 허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괴물을 어찌하란 말인가?
저건 당이 멀쩡할 때도 중앙위원 한 명이 아니라, 국가주석을 필두로 당 간부 모두가 매달려도 해결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재앙이다.
‘용잡이 팀’.
세간에 오를 내릴 때마다 두통거리가 늘어나는 그놈들 말고는 대안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대안은 지금 내몽골 자치구의 플레이어들을 학살하고 있을, 네임드 몹으로 추정되는 놈과 한 판 붙어서 부상을 당한 상태.
‘...답이 없군. 당이 성했어도 장담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거늘...’
말 그대로 답이 없었다.
장이셴이 동원할 수 있는 대책은 지연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지연책이 사람 목숨을, 그것도 국가적 인재들을 갈아 넣어야 겨우 기능한다는 점에선 착수하기도 전에 회의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자네에겐 무슨 요청이 들어오지 않았나? 공청단놈들 말일세.”
“현재는 내몽골자치부 문제 때문에 제 존재도 떠올리지 못하는 듯합니다. 제 존재를 인지할 여유가 있는 자들은 아마 저 하나로 어떻게 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 테니 별 의미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가...그래, 그놈들도 확실한 대책이 없긴 마찬가지겠지.”
“...지금 시점에선 미국을 빼면 대부분 비슷할 겁니다.”
“미국인가...”
장이셴은 허탈한 미소와 함께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의 노구가 의자에 먹히는 것처럼 푹 파묻혔다.
메마른 그의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 같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숨 돌릴 시간도 아쉬운 일분일초가 아쉬운 비상시국이었으나, 그 사안이 너무 심각해 오히려 시간을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장이셴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처음 겪는 건 아니었지만, 이토록 무력감을 느낀 건 그의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장이셴은 위스키 병을 재차 기울여 잔을 채우고 내려놓으려다가, 리커창에게로 슥 내밀었다.
“자네도 한 잔 하겠나?”
“감사하지만 그걸론 목만 더 탈 것 같아서. 잔은 텐진을 벗어나고 나서 받겠습니다.”
“음? 이곳을 벗어난다고?”
“오면서 곁눈질로 본 수준이었습니다만, 이 곳 공안 플레이어들도 내몽골 쪽 상황을 정확하게 알진 못해도 알음알음 소문이 퍼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텐진도 끝인가. 그래, 자네가 벗어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면 그게 맞겠지. 언제까지 준비하면 되겠나?”
“힘드시겠지만 이 길로 곧장 탈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인도 쪽 정보에서도 고위 플레이어들이 몰린 곳에 주로 출몰했다고도 했었으니.”
“이제 군중 속으로 피하는 것도 힘들겠군.”
어조는 떨떠름했지만 장이셴은 탈출 자체에 의구심을 표하진 않았다.
이 혼란한 시국에 이 노구를 부지한 건 전적으로 리커창의 판단력 덕이었다.
“그럼 어디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나?”
“일단은 칭다오를 제 1 목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상하이도 2옵션 정도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만...”
리커창이 뒷말을 흐린 건 장이셴의 입장을 생각해서였다. 아무리 삼대 파벌 중 두 곳이 사실상 분해된 상황이라지만, 아니 그렇기에 더욱 남아있는 상하이방의 본거지에 들어가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장이셴은 이번 베이징 점거 사태를 겪으면서 여러 가지를 놓은 상태였다.
“목숨만 부지할 수 있다면 상하이방 놈들에게 알랑거리는 게 뭐가 문제겠나. 문제는 그곳에 가도 확신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겠지.”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이 흡족한 건 아니었으므로, 위스키를 한잔 더 위장에 들이부었다.
“후우...그래, 차량 수배는 내 비서에게...”
그 때였다.
쿠르르콰쾅!! 콰르릉!
천지가 뒤엎어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격렬한 진동이 그의 집무실이 있는 건물을 후려쳤다.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은 물론, 천장 타일들이 쏟아져 내리고 창문으로 보이는 복도는 아예 천장이 내려앉았다.
장이셴은 반사적으로 자신을 감싼 리커창에게 감사를 표하고, 굉음이 들려온 바깥쪽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리커창이 ‘그 놈’의 소식을 전해왔을 때의 암담함을 다시금 느꼈다.
창밖은 온통 화염뿐이었다.
불탈 수 있는 모든 시설이 불타고 있었고, 살아있는 인간들은 최선을 다해서 산 채로 불타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장이셴에게 암담함을 느끼게 한 것은 인세에 강림한 연옥이 아니라, 그것을 배경으로 삼은 것 같은 강렬하지만 작은 존재였다.
그것은 작았지만 동시에 거대했다.
벌써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리커창 같은 최상위급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 노인인 장이셴조차 연옥 한가운데에서 바로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장이셴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홀로 검음을 자랑할 수 있을 검은 갑옷의 기사를 넋 놓고 바라봤다.
어떻게 보아도 인간일 수 없는 그것을.
장이셴에겐 다행스럽게도 길게 감상할 기회는 없었다.
놈도 장이셴의 시선을 눈치 챈 것인지 고개가 그를 향해서 휙 돌아갔다.
곧바로 ‘그 놈’이 나는 것처럼 앞으로 뛰었다. 장이셴은 그와 동시에 자신의 뒷덜미를 확 잡아끄는 우악스러운 악력을 느꼈고, 그대로 기절했다.
그 직전에 리커창이 뭐라고 한 것 같기는 했지만 지금 그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기절하면서 장이셴은 안도했다.
그래도 저 끔찍한 것을 보며 죽는 것은 아니겠구나 하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