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4화 〉 탐식마(貪食魔) (424/429)

〈 424화 〉 탐식마(???)

* * *

티크 소재로 만들어진 집무실 문이 부서질 것처럼 열어젖혀졌다.

실제로 걷어찬 이는 부서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 일이었으나, 일반인이면서 체격도 왜소한 중년인에게는 힘이 부족했다.

14억 인민들의 정점에 있는 공산당의 중앙위원의 집무실 방문을 겁도 없이 걷어차고 들어온 이는 이 방의 주인인 장이셴이었다.

그의 뒤로 송구스럽다는 표정의 비서가 따랐다.

장이셴은 자리에 앉자마자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정장 차림을 거의 헤집듯이 헐겁게 해두곤 이제야 숨이 통한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책상 위에 있던 위스키를 따라 한 잔 목구멍으로 넘긴 후에야 책상 앞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비서에게 관심을 주었다.

“상하이방 놈들은? 아무 말이 없었나?”

“위허웨이 위원님을 제외하면 아무도 출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공청단놈들 때문이겠지. 위허웨이놈 곁에는 꽤 쓸 만한 호위가 있으니 그놈 믿고 나온 것일 테고...그럼 그 놈이라도...아니, 되었다. 후우...오늘은 이만 가봐. 다른 길로 새지 말고.”

귀가를 명받은 비서는 골반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깊게 허리를 숙이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집무실을 나섰다.

모두 장이셴의 취향대로 교육한 결과물이었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시키는 것만 잘 하는 여자.

지금은 죽은 오른팔에게, 비서 겸 정부를 찾으면서 주문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장이셴은 오늘따라 그 모습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쯧쯧, 너무 멍청하게 길을 들였어.”

시키는 것만 하도록 교육 시킨 비서에게서 타개책을 바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는 무너지고 있다.’

이 지경까지 오고도 쉽사리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이었다.

아니, 이 지경까지 왔기 때문에 더 입 밖으로 내기 힘들어진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이전에는 정치적 지기들과 술자리에서 반쯤 자조 식으로 이런 말을 나누긴 했으니까.

지금은?

그 옛날 횡행했던 홍위병이 부활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조국의 미래에 대한 회의나 회의감으로 엮을 수 있는 언동마저 목숨이 위험해지는 빌미가 되고도 남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

널리고 깔린 인민만 그런 게 아니라 14억 인민의 정점인 중앙위원조차도 예외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인민해방군은 이미 갈가리 찢긴 거나 다름없다. 주석과 부주석이 동시에 힘을 주면 두 조각이 아니라 네 조각 이상으로 갈라지겠지. 충칭시는 입만 다물고 있을 뿐, 물류만 흐름만 보면 반란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가장 강력하게 당의 통치력이 닿아야할 직할시가 이미 반란 확정에, 그걸 막아야할 당의 군대는 아직 통수권자들이 움직이지 않아서 아직 찢기지 않은 수준이다.

또 다른 직할시인 상하이는 그 이름의 유례대로 그곳을 꽉 잡고 있는 상하이방의 성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지 오래다.

‘놈들도 베이징을 탈환할 수 없다는 걸 알면 충칭 반란자 놈들처럼 돌변할 테지.’

아직 당권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아서 돌아서지 않았을 뿐, 돌아서는 건 시간 문제였다.

중국을 떠받치던 커다란 세 기둥 중 하나가 통째로 반란에 가담하는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장이셴은 앉아있음에도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태자당 놈들이라도 남아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밑바닥에서 아득바득 올라왔다는 자부심과, 자신의 행보에 훼방을 주로 놓던 놈들이라 좋아할 수 가 없었던, 언제나 술자리에서 안줏거리 대신 씹었던 금수저 파벌놈들이 그리울 정도로 장이셴은 암담함을 느끼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플레이어놈들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 내 그리 경고 했거늘.’

자업자득이지만, 자업자득이라고 비웃을 수도 없는 참사였다.

당의 어느 누가 예상했을 것인가.

여태 당의 영도대로 누구보다 앞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대로를 까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당이 내려준 은혜에 감읍하던 놈들이 갑자기 돌변해서 반란자들과 손잡고 3대 꽌시 중 하나를 아예 사멸시켜버릴 거라는 걸.

언제나 플레이어에 대한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고 말하고 다니던 장이셴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놈들이 그렇게 과감하고 난폭하게 들이칠 것과, 태자당 놈들이 베이징 탈출에 성공해 사태가 장기화 됐음에도 기어코 추적해 태자당의 존재감 지워버릴 정도로 집요하게 사냥에 나설 것이라는 걸 어떻게 예상한단 말인가.

태자당은 사태가 진정됐을 경우 꽌시를 들먹거리며 그 유산을 탐낼 놈들은 남아있어도, 그 정신이나 복수를 들먹거릴 거물급은 모두 살해당한 상태였다.

사실상 파벌의 소멸이나 다름없는 상태.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하더라도 장이셴이 살아생전에 그 광경을 볼 일은 요원할 듯 했다.

‘...멍청한 소리.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거늘.’

그 이전에 당장 내일 베이징이 무사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베이징을 점거한 놈들은 그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사태 때 소멸했을 거라고 잠정 확정된 ‘위스프’와 비교하는 게 알맞을 정도로 구성원 대다수가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었다.

수뇌부와 그에 협력 중인 자리 쟁탈에 눈이 벌게진 놈들이라는 것까지.

‘멍청한 놈들, 그놈들이 말하는 청소가 끝나면 다음 숙청대상은 자신들이라는 걸 못 볼 정도일 줄이야.’

장이셴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그 이후였다.

반란자놈들이 멍청한 공청단 협력자놈들까지 숙청한 뒤의 대혼란.

이러니저러니 해도 공청단 내부의 협력자놈들도 당의 인재였고, 통치라는 걸 해본 놈들이었다.

이 혼란한 시국에도 각지의 반란자들이 중국을 네다섯 조각으로 찢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그놈들이 그래도 베이징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

그놈들까지 사라지고 나면 역사서에서나 보던 천하가 분열하여 서로 물어뜯던 대 혼란기가 도래할 터.

혼란기를 유지할 도구도 충분했다.

하늘이 위구르족과 회족에게 분에 넘치는 재능을 내려줬으니까.

돈과 인력이 있으면 더 빠르고 안전하게 육성할 수 있는 게 플레이어라지만, 압도적인 재능은 그 모든 걸 무시할 수 있다.

드넓고, 사람도 넘치는 이 땅에 널린 게 던전이었고, 그놈들이 나타나기 이전에도 위구르족 같은 놈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차출된 플레이어 인력 때문에 상위 던전 처리는 꽤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건 놈들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당이 모르는 사이에 오지에서 실력을 키워온 놈들이 중국의 자랑스러운 랭커들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하고 만 것이다.

더는 공안에 배치해둔 플레이어들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물론 그렇다고 당의 모든 힘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놈들이 성장한 건 아니었다.

압도적 재능을 지녔다고 해봐야 한 손이 열 손 못 막는 법이고, 당도 재능 있는 플레이어 육성에도 신경을 써왔다.

원래라면 인민해방군이 발이 묶여서 서로 못 쓰는 상황에서도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 빌어먹을 데스나이트 사태만 없었어도.

동유럽에 침대한 타격을 줬다고만 알려진 최초의 데스나이트이자, 네임드 몹 ‘체페슈’.

놈의 족적은 동유럽 경제를 박살내는데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피해를 끼친 동유럽보다 서유럽이나 동아시아, 특히 중국에 영향력이 더 컸다.

이전까지는 안개처럼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서 잠깐 타오르고 말던 플레이어에 대한 적대 여론의 결집과 반 플레이어 여론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분노.

학자들의 이론 놀음에서나 거론되던 일반인 대 플레이어 구도가 본격적으로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였다.

그렇게 육성에 공을 들였던 당 직속의 플레이어들이 멀쩡했음에도 베이징이 반란자들에게 뚫린 건.

그들의 충성심을 흔들 그 구도만 안 잡혔다면 공청단 내부의 멍청이들이 호응했어도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으리라.

‘베이징은...이제 되찾는 건 포기해야겠지.’

사실 이전부터 인지는 하고 있었다.

이 지경까지 왔으니 베이징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베이징에 있는 주 집무실이 아니라, 이곳 텐진에 있는 두 번째 집무실로 출근하며 동태를 살피고 있는 건 그 때문이었다.

베이징으로 마지막으로 가본 것도 벌써 일주일 전 이야기였다.

상하이방에 속해 있긴 하나, 속 사정은 자신과 비슷한 위허웨이가 베이징에 얼굴을 디밀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그곳 상황은 좋지 못했다.

공청단의 하수인 놈들은 대놓고 도시에 불만 안 질렀다 뿐이지 그 옛날의 홍위병 흉내를 내고 있고, 수뇌부는 당사를 장악한 채 두문불출이었다.

받아보고 있는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이후가 아니라, 이미 소수민족 출신 반란자놈들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외부 활동이 없다시피 했다.

‘칭다오로 도망간 놈들이라도 들쑤셔 봐야하나?’

오죽하면 공청단 내부의 배반도 인지하지 못하고 뒤통수 맞고 칭다오까지 도망친 놈들과의 협력까지 떠오를 지경이었다.

‘아니야. 그놈들을 불러들이는 건 악수다. 제 휘하의 병력까지 전부 털린 놈들이니 불러들여봐야 여론 분열만...’

그 때였다.

비서도 돌려보낸 그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장이셴이 허락의 말을 내뱉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어찌나 세게 밀었는지 문이 벽에 한 번 부딪혀서 반쯤 다시 닫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장이셴은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격렬하게 난입해온 이를 탓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의 목숨줄이자, 가장 강력한 협력자가 된 리커창이 질린 얼굴로 뛰어들었으니까.

“위, 위원님.”

“무슨 일인가? 일단, 진정하고 앉아서 숨 좀 고르게. 내가 다 힘들군.”

본인도 당장 무슨 일인지 말하라고 닦달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장이셴은 수십 년간 단련해온 인내심으로 우선 그를 진정시키기로 했다.

이럴 때 말을 재촉하면 더 꼬인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리커창은 그런 그의 권유를 들을 상태가 아니었다.

리커창은 발작하듯이 외쳤다.

“인도의 ‘그놈’이 바오터우시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곳에 있던 인민해방군과 교전 중이라고...”

리커창이 인민해방군과 교전 중이라는 말 이외의 설명을 열심히 했지만 장이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더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