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6화 〉탐식마(貪食魔)
사람이었던 것들이 널려있었다.
사람을 이루었던 부속들이 장난감처럼 도처에 깔려있었다.
짓이겨져 사지에서 떨어져 나온 살점들이 핏물과 뒤섞여 바닥에 출렁거렸다.
바닥이 원래 어떤 재질이었는지,
어떤 색이었는지 볼 수 없을 정도로 핏물과 살점이 가득했다.
울렁거리는 모양새가 아직 혈관을 노닐던 때를 잊지 못한 듯 했으나 돌아갈 길은 요원해 보였다.
핏물에 잠긴,
제각기 다른 형태로 짓이겨지고 토막 난 채로 시체들은 공통점이 하나있었다.
바로 머리통이 없다는 점.
20평 남짓한 공간에 쌓인 20여구의 시체들에는 그들의 신원을 증명해줄 가장 강력한 증거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류세아가 소스라치게 놀란 건 엽기적인 토막살인 현장 그 자체가 아니었다.
류 현이 알았다면 당장 그만두게 했을 ‘원시(遠視)’가 비추고 있는 끔찍한 광경 속에서 그녀의 시선을 가장 사로잡는 건,
의미 모를 오브제처럼 토막난 채 여기저기 널려있는 시체들도,
시체에서 빠져나온 피와 살, 액체들이 뒤섞여서 내는 보기만 해도 구토감이 치미는 기묘한 빛깔의 오물도 아니었다.
크드득- 츄왁- 철퍽!
척 보면 비명이 들끓어야할 것 같지만 침묵만이 가득한 기묘한 모순 속에서 홀로 살아 움직이며 섬뜩한 소음을 내고 있는 검은 인영.
카드득- 빠드득- 철퍽!
아직도 이름이 붙지 않은 시커먼 ‘그것’은 방안에 가득한 희생자의 마지막 머리통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일반인들보다 훨씬 단단한 플레이어의 두개골도 놈의 이빨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입질 한 번에 깨진 부분이 더 커지고 뇌수가 쏟아지고 회백질이 흘러내렸다.
놈의 입으로 들어간 것 보다 흘러내리는 게 더 많을 지경이었다.
머리통 같이 돌출된 상부의 찢어진 부분이 입이 맞는지는 둘째치고,
세아는 그 입 주변에 들러붙은 살점과 뇌조각이 아닌 그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동생이나 동생의 동료들이 와도,
아니 세상 누가와도 보지 못할 괴기스러운 현상이 그녀의 ‘원시’에는 선명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그것’이 아가리로 추정되는 것을 벌릴 때마다 끈적하게 쏟아져 내리는 핏물과 살점보다 더 강렬하고 끔찍한,
생의 단말마를 그녀는 ‘보고’ 있었다.
저것이 무엇인지 그녀도 알 수 없었다.
정확히는 그녀에겐 저것을 형용할 단어가 없었다.
동생이 아직 이름조차 없다며 ‘그것’이라고 부르는 괴수의 아가리 주변에는 시뻘건 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색은 비슷하나 그녀가 보고 있는 건 뇌조각이나 뼛조각 같은 게 아니었다.
그것들은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것들 하나하나가 제각기 끔찍한 단말마를 내지르며 죽어가고 있었다.
저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세아는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게 답을 줄 수 있는 이도 없을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것’의 아가리가 다시금 움직였다.
콰작- 또 다시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미는 것 같은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세아는 가까스로 흐트러지려는 집중력을 가다듬었다.
좀 더, 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그녀는 동생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일념하나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단말마를 내지르고 있는 것들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류 현이 알았다면 기겁을 했겠지만 세아는 ‘그것’이 물어뜯고 있는 시체의 머리통으로 시야를 조여들어갔다.
‘...저게 뭐지? 마력? 하지만 저렇게 살아 움직이는 건 한 번도...’
제 스스로 추측을 부정하려던 그녀는 불쑥 치고 올라오는 기억에 흠칫했다.
본 적이 있었다.
생전의 온전한 형상을 가지고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마력을.
다름 아닌 자신의 바로 앞에 앉아있을 동생의 내부에서 말이다.
심지어 동생의 내부에 있던 그 마력들은 지금 보고 있는 것과 달리 이름을 붙여도 될 만큼 생동감과 개성이 존재했다.
이 차이도 그녀에게는 달갑게 다가오진 않았다.
동생의 능력과 ‘저것’이 하고 있는 짓이 겹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끔찍하게 다가왔다.
그녀가 혼란의 수렁으로 떨어지기 전에 ‘그것’의 아가리가 이번에는 남은 머리통의 과반을 집어삼켰다.
콰직- 뿌지직- 투득-
‘달라...현이랑은 달라.’
그녀의 경이로운 재능은 두 번 본 것만으로도 무엇인지 이해조차 못한 상황의 본질을 파악했다.
‘찢어지고 있어. 저 비명소리는 그것 때문이었구나...’
갈가리 찢겨서 비명을 지르는 붉은 것들은 끊임없이 시커먼 연기 같은 걸 뿜어내고 있었다.
연기를 다 뿜어내면 푸스슥 무너져내려 재가 되었다.
그렇게 변하면 인접한 시체 부분이 급격하게 썩어 들어가 형태가 무너졌다.
그것들을 뜯어먹고 있는 ‘그것’의 아가리에서도 안개의 상당량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마력? 아니야 그보다는 훨씬 근본적인...생기? 생명력?’
실마리를 잡자 그녀의 재능은 곧바로 그녀에게 정보가 적용된 시야를 제공하는 것처럼 검은 연기를 줌인 했다.
‘생기를 먹고 있어. 하지만 저건...먹는 게 맞나?’
생명체라면 관찰이 아니라 그 끔찍함에 몸서리를 치다 못해 미쳐버렸음직한 광경이었으나 그녀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세아는 그 누구보다 차분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오히려 집중력이 더 올라갔다.
‘흡수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효율이 너무 나빠. 일할? 아니야 그보다 적어.’
‘힘의 손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까지...아?’
세아의 시야는 그제야 ‘그것’의 몸뚱이에서 찔끔찔끔 새어나오고 있는 검은 연기를 발견했다.
새어나고 있는 연기가 ‘그것’이 탐하고 있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사실 또한 같이.
그 질이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천지차이라고 할만 했지만,
‘같은 것’ 이라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었다.
세아가 주목한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어떻게 용을 써도 환부를 완전히 틀어막지 못하고 유실되는 양이 찔끔찔끔 늘었다가 줄었다가를 반복하며,
결과적으로는 시간대비 같은 양의 ‘생명력’을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
‘저 상처는...현이가 입힌 거겠지?’
한 없이 몰입한 상태의 그녀는 동생이 얘기해 준 전투 양상조차 잊을 정도였지만,
단박에 그 상처가 동생이 낸 것임을 알아보았다.
그녀가 아는 한 저런 상처를 낼 수 있는 건 류 현 뿐이었다.
봐온 괴수 중에 가장 강대했던 ‘비아트리체’나,
가장 기괴했던 ‘페릭스 알데히드’도 저런 식으로 존재자체에 상처를 입히진 못했다.
기존 상식을 비웃는 것 같은 기괴한 출혈상태나 저주를 걸 수 있을지언정.
물론, 어느 쪽이든 생전 처음 보는 것이니 무엇이든 간에 확신은 금물이겠지만.
불쑥 고개를 쳐드는 ‘왜 현이는 가능한 거지?’라는 의문은 애써 눌러두었다.
자신이 불안해 하면 동생도 그것을 느낄 것이다.
별 다른 도움도 못 주고 있으면서 그걸로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도 드러내놓고 내색하지 않을 뿐 이미 신경 쓰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가장 큰 고민거리에서 고개를 돌린 세아는 놈의 몸뚱이를 샅샅이 훑었다.
‘다른 건...볼 게 없나?’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마법적인 면에서는 이래저래 생각할 거리가 많았지만 류 현에게 뭔가 일러주기에는 알맹이가 없었다.
놈은 간헐적으로 몸을 떨면서 생명력을 탐하고 있긴 했으나,
동생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놈은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지만 크게 쇠한 것 같지도 않았으니.
정확히는 외부로 흘러나오는 생명력 외에는 제대로 볼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맞았다.
‘저 갑옷 때문인가? 으음...역시 안 보이네.’
류 현이 회귀를 고백한 이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본 결과,
동생이 능력에 대한 이해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세아는 자신의 능력으로 어떻게 서든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변죽만 올리고 마는 정도에만 그쳤다.
마법을 가르쳐주는 화련이 ‘보고 있으면 허탈해지는 재능’ 이라고 극찬한 능력도 플레이어를 이탈한 것 같은 류 현의 능력 앞에서는 벽에 막힌 것 마냥 별다른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세아는 애가 타들어갔고,
류 현이 아쉬워하는 기색조차 내비친 적 없음에도 잠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지식을 쌓고, 능력을 숙련하는 데 힘을 썼다.
그 결과,
세아는 유니크 아티펙트 아래의 물건들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내부 구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보는 것뿐이라 역설계 같은 걸 짜진 못하지만 시간을 들이면 그것도 어떻게든 될 것도 같았다.
그녀가 학습할 자료와 능력이 충분하다는 가정 하에.
화련의 공간마법처럼 보고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서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현이가 갑옷이 유니크 아티펙트 같다고 했었으니까...그래도 이렇게 마력의 미동도 없는데 기능하는 건 처음 봐.’
말 그대로 벽이었다.
이음새도, 그 질감도 파악할 수 없게 완전한 어둠속에 세워진 벽.
놈이 입은 상처의 존재에 대해서 늦게 깨달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갑옷의 기능인지 놈의 능력인지는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었다.
갑옷을 강탈해가기 전의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
대신 세아는 놈의 기괴한 기척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크게 쇠한 것 같진 않지만 자신이 쉽게 감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상처 때문이라면,
만에 하나 놈이 상처를 치유할 경우 추적하기가 꽤 힘들어질 테니까.
‘...이런 도움이라도 줘야 해.’
그렇다고 놈의 이상을 살피는 걸 멈추진 않았다.
그런데 집중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을까?
여태 눈치 챈 기색 없이 시체의 생명력을 탐하던 놈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정확히 세아가 놈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으로.
그리고,
세아가 놀람을 표하기도 전에,
[부으으-] 놈이 걸치고 있는 갑옷에 박힌 두 개의 보석이 음울한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주변을 밝히는 게 아니라 부옇게 보이게 만드는 빛은 순식간에 방을 점령하더니,
화악!
순식간에 절정에 달하며 세아의 ‘원시’를 걷어내 버렸다.
“읏?!”
“누나?”
불에 댄 것처럼 움츠러든 세아는 동생의 걱정스러운 표정과 마주하게 되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드는 현기증과 피로감이 그녀를 같이 맞이했다.
“왜 그래? 어디 안 좋...”
“...괜찮아. 근데 누나 좀 피곤해서 잠깐만...”
세아는 그대로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