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5화 〉탐식마(貪食魔)
던컨이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거나 말거나 류 현은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인도에서 발견된 ‘파슈파타’와 그것의 주인이 된 라비 라자의 제보,
영국에서 발견됐으며 ‘그것’에게 탈취된 후에야 발견 사실이 전달된 갑옷 형태의 유니크 아티펙트,
그리고 대망의 ‘드라우프니르’까지.
그 기능과 출력에 대한 추론을 들을 때마다 던컨은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비아트리체’ 레이드를 먼저 제의한 이니 유니크 아티펙트에 대해서 전문가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아는 편이라고 할 만 했다.
류 현은 사정상 대놓고 위력 시연을 해보이진 못했어도 호지슨 버넷에게 보여줌으로서 동맹국에게 열심히 정보를 제공했고,
그를 통해 이런 저런 추론이나 대강의 스펙을 파악한 던컨은 ‘비아트리체’ 레이드 이후 그 영상을 세부 분석할 기회를 얻음으로서 이제 어느 나라 수장보다 더 잘 안다고 자신할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지식 때문에 던컨은 도무지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유니크 아티펙트의 ‘해방’ 대한 정보도 제한적으로 알고 있기에 좌절은 하지 않았으나,
류 현은 그렇게 희망적인 전망을 내어놓지도 않았다.
놈이 마지막 접촉 때 ‘드라우프니르’를 통해서 누적시켜놓은 손상을 털고 도망갔다는 사실까지 전부 털어놓았다.
직접 확인한 확실한 정보를 넘어서,
아무래도 한 달 넘게 ‘드라우프니르’를 실험해본 칼리프 클랜보다 더,
어쩌면 자신이 일시적으로 힘을 끌어올리는 ‘해방’ 상태보다 더 그 힘을 잘 끌어올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팀 내부에서나 제공할 법한 정보를 공유 받았으나 그걸 기뻐할 수도 없었다.
던컨의 입장에서는 라비 라자가 보유하고 있던 유니크 아티펙트의 존재를 생각보다 더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씁쓸해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몰아붙여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몰아붙여지고 있는 것은 부상 중에 또 다시 커다란 부상을 입은 류 현이겠지만 그것을 고려할 여유조차 그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 그 괴물이, 네임드 몹이 유니크 아티펙트 세 가지를 제 좋을 대로 다룰 수 있다는 거로군. 온힘을 다해서 때려도 막아내는 방어구, 여태 나온 것들과 비교도 안 되게 잘 드는 검, 분신체를 만들고 데미지도 분신체에게 떠넘길 수 있는 팔찌까지. 내가 이해한 거 맞소?”
“팔찌부분은 불확실하지만 대체로 맞습니다. 검을 좀 더 상향조정 하셔야겠지만요.”
무덤덤하게 적의 무기에 대한 상향 조정을 요구하는 류 현을 보고 있자니 맞지도 않게 울컥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어찌 그렇게 태연하냐고,
적이 그것도 타협은 꿈을 꿀 수도 없는 괴수가 그런 검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것이 끔찍하지도 않냐고 따져 묻고 싶을 정도였다.
십 년만 더 젊었어도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던컨은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자리에 있는 건 충분한 세월 인고한 그였으나 당황스러움을 감추긴 힘들었다.
눈앞의 젊디젊지만 괴물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청년의 안위를 순수하게 걱정해서는 아니었다.
류 현이 운을 뗄 때 말해주었던 또 다른 정보.
그 네임드 몹으로 추정되는 놈이 던전 게이트를 타고 워프한 것 같다는 말 때문이었다.
거기에 뒤따라 붙은 놈이 유니크 아티펙트를 감지하고 습격해온 것 같다는 추측은 못 들은 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두 마리의 네임드 몹이 본토에서 분탕질 친지 세 달이 채 되질 않은 나라의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한 악몽은 없으리라.
그렇다고 유니크 아티펙트를 소지한 용잡이 팀에게 당신네 소지품 때문에 네임드 몹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 떠나달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던컨은 코앞의 일을 모면하기 위해서 미래를 끝장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그 네임드 몹이 세상에 나온 모든 유니크 아티펙트를 모은 뒤에,
북극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도 안심할까 말까인데,
류 현의 증언을 들어보면 놈은 그런 얌전한 취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놈이었다.
아티펙트를 약탈하고 도망가는 괴수라니.
어떻게 생각해도 일이 좋게 흘러갈 거 같지가 않았다.
던전 게이트를 이용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 행동반경마저 좁지 않으니 최대한 빨리 때려잡는 게 최선책 같았다.
문제는 그 최선책을 실행하기에는 유일한 대적자들이 한동안 앓아누워야 하는 상태라는 것이고.
“...우리가 무얼 해주면 되겠소?”
“놈의 동선 파악에 힘써주셨으면 합니다. 칼리프 클랜과 협회에도 부탁을 해놓았지만 거긴 놈이 더 노릴 것도 없으니...”
지당하지만 속이 쓰려오는 지적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도 놈은 무리를 이루고 있지도,
휘두르는 힘의 작용 범위가 그리 넓지도 않은 듯 했지만,
놈이 약탈해간 유니크 아티펙트들을 생각하면 마냥 낙관할 수도 없었다.
용잡이 팀이 보유한 아티펙트들은 하나 같이 광범위 공격용이었고,
놈이 약탈해간 것들이 이쪽 시선에서는 특이 케이스들이었으니까.
또 어디서 약탈해 온 유니크 아티펙트가 유성우나 청뢰 같은 것이 아닐 거라는 보장이 어디있는가?
굳이 광범위 공격능력을 갖추지 못해도 들은 것만해도 놈은 충분히 끔찍한 놈이었다.
그런 놈이 대륙과 대양을 너머,
조국에 상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지만 던컨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힘써보기야 하겠소만은 솔직히 말해서 큰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거요. 저번 사태 때 인프라 쪽이...”
“예,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어디까지나 놈이 그 상태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 경우를 고려해서 드린 말씀이고요. 아마 높은 확률로 바로 우리를 찾아오겠지요.”
여기에 유니크 아티펙트가 세 개나 몰려있으니까.
류 현은 손 안의 유성우를 굴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쥐고 있으면 위험이 다가올 거라는 걸 아는데,
그렇다고 놓아버리면 그 위험에 대처할 힘이 줄어들게 된다.
아니, 그대로 놈의 힘이 될 테니 대처할 수 없게 된다고 해도 될 테지.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좀 떨어진 곳에 다른 병원이라도 수배를 해달라고 해야 하나...’
생각은 했지만 입 밖에 내놓을 수는 없었다.
팀원들이 어찌 반응할지 너무 뻔했으니까.
그가 가장 떼어놓고 싶어하는 세아의 반응 또한 그들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류 현은 그대로 던컨에게 자잘한 요청 몇 가지와 저가 생각해도 별 영양가 없는 위로 같은 말을 건네고 그를 떠나보냈다.
떠나갈 때 즈음 던컨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하긴 했지만 그저 상황의 심각성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 날 새벽,
류 현은 던컨이 떠나갈 때보다 더 괴상한 표정으로 세아와 마주하고 있었다.
세아는 동생의 괴상한 표정을 보곤 슬쩍 제 손으로 손등을 도닥여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고도 류 현의 표정이 풀리지 않자 세아는 결국 입을 열었다.
“괜찮아.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하지만...”
류 현은 목구멍에서 걸린 말을 긁어내려는 것처럼 제 뒷머리를 북북 긁어대었다.
그의 얼굴에는 이제 충분히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불거진 자괴감과 분노, 갈 곳 없는 짜증들이 섞이지 못한 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아는 희미한 미소를 띤 채로 자해라도 하는 것처럼 뒷머리를 해집던 동생의 팔을 잡아끌었다.
“하나도 안 위험해.”
“...누나가 그걸 어떻게 알아. 완전 초짜면서.”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닌 걸.”
류 현이 눈을 흘겼다.
세아는 배시시 웃으면서 거머쥔 류 현의 손을 조물거리면서 말했다.
“위험성은 그 때가 더 컸을 걸? 놀라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쪽을 본 거니까.”
“...걱정할까봐 중계 보지 말라고 했더니...직접 볼 줄 알았으면 아예 재워놓고 갔을 거야.”
“또또, 마음에도 없는 이상한 소리 한다.”
조물거리던 손등을 찰싹 때려주곤 살짝 뒤로 물러앉은 세아는 여전히 불퉁한 동생의 얼굴에 콧김을 살짝 뿜었다.
“안 할 순 없잖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방법이 없긴 왜 없어 cctv 확인하는 것만 해도 동선 정도는...”
“그래서 어느 세월에 찾니. 또 시간만 보내게? 현이 너도, 팀원들도 다 몸도 성치 않은 상황에?”
차마 부정하지 못하는 류 현은 끙소리와 함께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숙였다.
세아는 더 힘 빼지 않고 그것을 허락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환자인 동생을 빠르게 쉬게 해주려면 빠르게 해치워야만 했다.
어차피 이미 사전에 이야기는 끝난 일이다.
세아는 각오를 곱씹으며 눈을 감았다.
“그럼, 시작할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류 현이 놓았던 손을 슬쩍 잡아왔다.
세아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고 살며시 맞잡아주었다.
익숙한 온기에 자신 안에 남아있던 약간의 두려움마저 녹아없어짐을 느낀 세아는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눈을 뜬 그녀의 시야는 병실 안이 아닌,
대륙과 대양 너머의 어딘가를 유영하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괴상망측한 현상이었으나,
그녀는 놀라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얼마가지 않아 날아가는 화살처럼 행성 위를 노닐던 그녀의 시야가 어느 도시 위에서 멈춰 섰다.
동생을 제외하고 가장 이질적인 마력을 지닌 존재가 발 디딘 땅위로.
천천히 줌인 되는 것처럼 시야가 아래로 향했다.
그녀는 이게 어떻게 되먹은 원리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어색해 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기억하는 첫 호흡처럼.
“응?”
그리고 세아는 생애 가장 피로 얼룩진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