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4화 〉탐식마(貪食魔)
류 현과 두 여자가 미국땅을 밟자마자 소란이 일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떠날 때만 해도 아직 다 낫진 않았어도 명백한 회복세를 보이던 이들이 탈진한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왔으니까.
다른 자들도 아니고 이젠 공공연하게 세계 최강임을 인정받아,
플레이어 관련 가십 프로그램에서는 ‘타 상위 팀들 몇 팀과 붙여야 상대가 가능한가?’ 라는 어처구니없는 가십의 대상마저 되고 있는 이들이 아닌가?
도착하자마자 침대와 약물 투입을 거론하는 창백한 화련의 모습에,
평소에는 침묵과 평정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고 있던 병동 관계자들도 감정적 동요를 드러낼 정도였다.
2주여만에 다시 보게 된 동생이 얼굴만 반쪽 난 게 아니라,
속까지 엉망진창으로 당한 상태로 돌아왔다는 걸 보자마자 알아챈 세아가 거의 이성을 잃었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고.
용잡이 팀 세 명이 꽤 심각한 몰골로 돌아왔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병동 담을 넘어서 백악관까지 전해졌다.
그 백악관의 동태에 바짝 귀를 세우고 있던 의회에까지 곧장.
소식을 듣자마자 병동으로 달려간 대통령, 그를 따라간 부통령과는 대조적으로 벙쪄 있던 의회는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이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사태 파악을 요구하는 로비스트들의 연락에 연락체계가 거의 마비될 지경이었다.
‘대소환’ 이후,
플레이어의 시대가 오고 그 입지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나 하고 권위의 도전을 받곤 하지만,
여전히 누구도 그 이름의 무게감을 부정하진 못하는 미합중국.
그 미합중국이 나라가 아닌 일개 플레이어팀, 거의 개인에게 국한된 방위조약을 고려정도가 아니라 조약문을 검토 중일 정도의 괴물들에게 일어난 변고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평소라면 그 괴물들이 앓아누웠다는 소식에 앞뒤 가리지 않고 반색할 이들이 더 많을 터이나,
지금은 ‘신의 방패’라는 향후 국제 외교무대에서 전략물자로 취급될 물건에 대한 협상 중이지 않은가.
개발자인 강 찬이라는 남자가 미국에 귀화 절차를 밟고 있다는 것이 거의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고,
협상 또한 미국이 주도하고 있긴 했으나,
협상장에 간간이 얼굴을 비추면서 미국 측 협상권자와 즉석에서 새로운 조항을 추가하는 모습을 보여준 류 현의 지분이 낮다고,
그의 합류가 협상을 원활하게 풀어가기 위한 압박책 중 하나 일거라고 여기는 국가는 거의 없었다.
당장 미국이 제시한 협상안의 주요 조항들만 봐도 그랬다.
미국의 국익과 영 상관 없는 건 아니지만,
미국보단 협회가 부르짖는 것이 더 어울리는 괴수 대응 협력 조항은 밑질 건 없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신의 방패’라는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내주면서까지 최우선으로 강조할 가치가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두 마리의 네임드 몹,
그것도 북극에 위성사진 상으로도 관측이 될 정도로 거창한 흔적과 함께 미국 본토 동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괴물을 겪었으니 위기감도 느낄 만 하긴 했으나,
정작 그 괴물들을 소멸시킨 이들은 아직도 미국을 떠나지 않고 눌러앉아 있지 않은가.
자기들이 국적을 둔 국가의 수장이 찾아와서 회담을 가지고 떠날 때도 잠깐 얼굴만 비추고 꿈쩍도 하지 않았음을 외교계 인사들은 모르지 않았다.
당사자인 한국에서 열심히 입막음을 다녀서 알만한 이들만 아는 수준에 그쳤을 뿐.
또 다시 본토에 네임드 몹이 나타나는 경우를 상정한다고 해도,
‘본 드래곤’과 ‘엘더 리치’ 때를 생각하면 타국의 지원은 기껏 해봐야 싸움을 치르는 동안 보급을 대는 정도일 것이다.
직접 싸우는 건 각국의 수위를 다투는 플레이어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낼 테고,
그런 인원을 지금 같은 때에 쉽사리 지원해줄 나라는 거의 없다는 걸 미국도 모르진 않을 터다.
보급 지원 정도라면 기존의 협약으로도 충분히 보장받고 있으니,
이건 본토 방어전보다는 토벌,
그것도 본격적인 토벌에 앞서 링을 만들어주는 역할정도를 기대한 조항이었다.
실제 조항 내용도 그러했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선 저급한 괴수들에게나 주효한 화기 지원에 대한 것만 강조된 내용.
지중해에 떴던 검은 리치성을 토벌하러 갈 때 지원 문제로 투덜거렸다던 용잡이 팀의 대장의 입김이 서린 것이 분명한 조항.
조항의 의도와 협상장에 흐르는 분위기와 앞뒤 정황까지 확보한 외교가가 그리 결론 내리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국가들은 ‘신의 방패’에 얽힌 지분율과 사용권 계약의 내용까지 알고 있었다.
연방정부 내부의 연줄뿐만 아니라 상류층 전체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영국 같은 곳이 대표적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도 류 현과 미국으로부터 사용권을 빼돌리기 힘들다는 것을 파악하자마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의 침묵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눈치가 있는 국가들도 입을 다물었고.
그러니,
실질적인 사용권의 주인이라고 할 만한 류 현이 외유를 나갔다가 큰 변고를 당한 것 같다는 소식에 어찌 대처할지는 몰라도,
진상 파악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들쑤셔서 혼란이 퍼뜨리기에는 충분히 다급한 소식이었다.
같은 이유로 대서양 너머의 협회도 비슷한 연락테러(?)를 받는 중이었고,
다른 바다, 태평양 건너에 있는 한국 정부 또한 정도만 다를 뿐 문의 세례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해가 지고,
날짜가 바뀌고,
여명을 넘어 한낮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의문이 의문을 낳는 혼란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냄새를 맡은 언론이 이슈 선점보다,
아직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았는데 이 사실을 퍼뜨려도 되나 하고 고민부터 할 정도로 말이다.
이 외교적 혼란의 창조자는 뭘 하고 있었느냐면,
“죄송합니다. 누나가 도통 떨어지려고 하질 않아서...”
“이해하오. 나라도 내 가족이 그랬다면 나랏일이고 뭐고 신경도 안 썼을 테지.”
미합중국을 이끄는 대통령이 해도 될 법한 말은 아니었지만,
조금 흐트러진 제럴드 던컨의 몰골은 그마저 어울리게 보였다.
빈말로도 중요한 상대와 회담에 나서는 차림새라고는 못해주겠지만,
류 현은 그것을 책잡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단 노골적인 미안함을 내보였다.
이 초로의 대통령이 흐트러진 차림새로 나타나게 된 건 세아가 자신을 놔주지 않은 탓이 컸으니까.
2주여만에 나타난 동생이 내상이 호전되기는커녕,
더 큰 내상을 안고 간헐적으로 죽은피를 토해내는 꼴을 보고나자 세아는 어떤 외부 접촉도 거부하는 농성상태에 들어갔다.
류 현은 그런 세아를 차마 다그치지 못했고,
누이의 의향에 맞춰주다가 본의 아니게 일국의 대통령을 하룻밤을 기다리게 만든 꼴이 되었다.
던컨이 언제 류 현이 대화에 응해올지 모른다며 말단 실무자나 감행할 무한 대기 상태에 들어간 탓이 크긴 했지만,
류 현은 그런 것을 빌미로 상대의 수고를 뭉갤 정도로 뻔뻔하진 못했다.
“...어디까지나 정보 공유 차원에서 하는 질문이오만은, 칼리프 클랜에서 괴수를 만났소?”
원래라면 칼리프 클랜이 습격했냐고 물었을 것이다.
사흘 전 던컨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되돌아온 류 현은 같이 갔던 두 여자만 동행한 상태가 아니었다.
마람 압둘아지드.
NSA와 CIA를 비롯한 국내 모든 첩보기관이 주목하고 있는,
1급 수배범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고 있는 요주의 플레이어.
칼리프 클랜이 숨겨두었던 비수이자,
그 존재가 드러나고 나서의 행보로 추론할 때,
무력으로는 칼리프 클랜 수위를 다툴 것이라고 이야기 되는 여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따라온 것이다.
당연히 맞이하러 나간 이들이 질겁했고,
워싱턴 내부에는 때 아닌 경보가 울려 퍼졌다.
어떻게 이들을 여기까지 날라왔나 싶을 정도로 하얗게 질린 화련이,
칼리프 클랜이 우호의 증거로 붙인 대사이자 임시 경호 인력이라고 설명을 세 번 반복하고 나서야 소란이 수습되었다.
아마 류세아가 류 현을 들쳐 업다시피 하여 병동 안으로 쌩하니 뛰어가지 않았다면,
병동의 경계 병력은 높으신 분들이 와서 수습해줄 때까지 마람 압둘아지드와 무한 대치 상태에 돌입했을 것이다.
마람 압둘아지드의 이름은 대중에게 널리 퍼져있진 않았으나,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 정도의 무게가 있었다.
그런 최중요 인력을 붙여서 보냈으니 당장 칼리프 클랜의 의향을 의심하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제럴드 던컨은 속으로는 류 현이 차라리 칼리프 클랜에게 습격을 당했었다고 대답해 주길 바랐다.
칼리프 클랜이 손쉬운 상대라고는 안 하겠지만,
만전이 아니라곤 하나 류 현과 검성을 동시에 상처 입힐 괴수가 나타난 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
괴수와 달리, 칼리프 클랜을 던컨이 괴롭힐 방법은 정말 넘치게 많으니 말이다.
“예, 괴수였습니다.”
하지만 류 현은 그런 던컨의 소망에 응해주지 않았다.
야속하다는 기분을 느끼기도 전에 이어진 말은 던컨에게 절망감마저 주었다.
“어디까지나 제 감에 근거한 것입니다만, 저는 그 놈을 최대 네임드 급, 최소 준 네임드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놈이 가진 아티펙트들을 감안하면 최소로 잡아도 이전에 나타난 네임드급은 되겠군요.”
던컨의 입장에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네임드 몹에 준하는 존재의 등장을 운운하는 류 현에게 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네임드 몹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없던 편두통이 생겨나는 듯 했으나 그는 결정권자로서 경시할 수 없는 말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가 아는 용잡이 팀의 대장은 별 의미 없는 말을 이런 자리에서 흘릴 이였다.
거기다가 그가 눈도 높다는 것을 잘 아는 던컨은 저도 모르게 더듬더듬 조심스럽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티펙트라니...? 설마...”
“예, 놈은 유니크 아티펙트인 게 거의 확실시 되는 아티펙트 셋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눈을 감지도 않았는데 눈앞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