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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3화 〉탐식마(貪食魔) (413/429)



〈 413화 〉탐식마(貪食魔)
“어, 음...미안해?”
“...오실 필요 없다고 했잖습니까.”
“어...그게 흥분해서  들었어.”


류 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알 라시드는 그런 류 현보다는 그 옆에 자리한 화련의 눈치를 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럴 만도  것이,
화련의 눈빛이 거의 적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명백하게 저보다 강한 플레이어가,
그것도 마법사가 저런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면 누구라도 알 라시드가 짓고 있는 표정이 되었을 것이다.

화련이 왜 저러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 클랜 내에서 거의 유일한 적극적인 협력자에게 이래서 좋을 것도 없었다.

자신의 요청도 까먹고 요란하게 방으로 밀고 들어와서 모두를 깨워버린  라시드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류 현이 그를 구해주기 위해서 슬쩍 팔꿈치로 화련을 건드렸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돌아온 화련은 시선의 방향만 살짝 돌렸다.
시선 끝에는 벽 밖에 없어 그녀의 불만이 아주 잘 드러났다.

“...화련 씨.”
“뭐라고 하시는 건 상관없는데. 그 전에 밖에 죽치고 있는 놈들 치우고 들어도 되죠?”


류 현의 표정이 기괴하게 구겨지다  채로 알 라시드에게로 향했다.
알 라시드는 저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분명히 오지 말라고 하고 왔...젠장, 진짜 미안해. 지금이라도 돌려보낼 게.”

태연한 채 하곤 있지만,
본인 상태도 좋지 못한 알 라시드도 화련이 지적하고 집중력을 가다듬자 밖에 모여든 인기척들을 느낄 수 있었다.
벌떡 일어난  라시드가 모여든 이들을 해산시키는 사이 류 현은 화련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이렇게 날 세우고 계시면 안 피곤하십니까? 화련 씨 부상도 가벼운  아닐 텐데...”
“언니나 마스터는 완전히 뻗어버릴 정도인데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자기네 은인 대접이 이꼴인 인간들 믿고 뻗을 수가 있어야지.”


그리 말하곤 화련은  현의 옆에서 일어나 승하의 침대에 턱 걸터앉았다.
불만이 없진 않지만 의도는 따르겠다는 제스처에 류 현도  이상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본인이 보기에도 대접이 빈말로도 좋다고는 못할 수준이었으니까.
아무리 최상위 플레이어들 상대로 현대 의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적다지만,
휴게실로 내주었던 방에 가재도구만 더 들여놓은 건 그가 봐도 좀 아니었다.


‘들어올 때 표정을 보면 알 라시드도 앓느라 처음 들어와 본  같던데.’


이상할 건 없는 일.
‘그것’에게 거의 자신의 힘을 밀어 넣기만 한 류 현도 그 마력에 조금 노출된 것만으로도 타격이 없지 않은데,
그보다 훨씬 쳐지는  라시드는 지금 돌아다닐 수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대접이 이 모양이라는 것을 좋게 넘길만한 이유가 되진 않았지만.


화련은 그 사실이 못내 짜증났는지 조금 씨근덕거리다가 한 마디 더 보탰다.

“삼 일 내로 떠나야겠어요.”
“예? 화련 씨 몸 상태가...”
“여기 있으면 화병 나서 그냥 있어도 내상이 도질 걸요. 그냥 미국까지 날아가서  덧난 거 치료하는  훨씬 나아요. 여기 있으면 저도 못 쉬고요.”


그렇게 말하곤 화련은 알 라시드가 해산 시키고 있는 인원들을 향해서 눈을 흘겼다.


“자고 있는데도 알 정도로 아주 대놓고 기웃거리던데요.”
“으음...”
“이번에는 련이 말대로 하는 게 낫겠다. 류 현, 나도 여기선  못 쉴 거 같아.  자는 동안 나도 저것들 때문에 몇  깼어.”
“...알겠습니다. 얘기가 끝나는 대로 떠나죠. 오늘 말고 내일요.”
“...하루 정도는 제가 더 참죠.”


화련은  말을 끝으로 침대 윗부분을 끌어올려 기댄 채로 앉아있던 승하의 옆에 턱 기댔다.

밖의 인원들을 해산시키고 돌아온 알 라시드는 눈을 감고 있는 화련을 한 번 힐끗 보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어디까지 했었지?”
“아무것도 시작 안 했습니다.”
“아, 먹는 진통제가  쎄서 나도 좀 오락가락 하네.”
“당분간 ‘그것’이 여기 올 일은 없을 테니 푹 쉬시는  나을 겁니다. 그런 상처는 잘 못하면 성장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니까요.”
“어어, 그래야지. 그런데 곧 떠날 거 같이 말하네...?”
“이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뻔뻔하기도 하지.”

끼어들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감고 있던 화련은 기어코 한 마디 했다.
류 현은 그녀를 말리지 않고 알 라시드의 반응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그는 좀 찔끔한 표정이긴 했으나 그런대로 수긍하고 있는 듯 했다.


“미안해. 이번 일은 입이 열 개라도  말이 없다. 나도 정신줄 놓기 전에 당부를 해놓긴 했는데...일이 이렇게 됐네.”
“상황이 상황이니 외부인 챙기는 데 신경 쓰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그렇게 말해주니  할 말이 없어지네.”
“값은 나중에라도 확실하게 치르게 해드릴 테니 걱정 마시죠.”
“관계 단절 당하는 것도 각오했는데 그 정도면 싸게 치는 거지. 고마워.”
“전 아직 대가에 대해서 말씀 안 드렸습니다만.”
“이제 유니크 아티펙트도 없는 우리 클랜에 크게 요구할 게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희망적인 얘기겠지.”


혼자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알 라시드.


“그럼 언제 돌아갈 생각이야?”
“아마 다른 일이 없지 않는 이상 내일 돌아갈 것 같군요.”
“내일? 괜찮겠어? 아직 부상도 제대로 수습을...”
“서로 불편한 상태를 유지하는 취미는 없으니까요.”
“...여러모로 할 말이 없네.”
“앞으로 어쩌실 겁니까.”
“응? 그건 내가 하려고 했던 질문인데.”
“그건 미리 대답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내일 미국으로 돌아가서 부상을 추스를 겁니다.”
“나야 뭐...저번에 말했던 걸 실행해야겠지. 이 방 꼴을 보니 망설임이고 뭐고 싹 사라지네. 확실하게  생각이야. 피를 조금 보더라도 말이야...공주님이 내 옆에 붙어있었다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지시를 내렸는데 이런 식으로 개판  줄은...”


방 안을 한 번 휘돌아본  라시드는 다시금 고개 숙여 사과했다.
류 현은 손을 내저어 그의 고개를 들게 했다.


“각오를 굳히셨다면 아까 말한 대가를 미리 말씀드려도 될 것 같군요. 정확히는 부탁이라고 해야겠습니다만.”
“뭔데 이렇게 겁을 줘?”
“칼리프 클랜이 이후에 전력을 추슬러도 다시 파키스탄 방면 국경분쟁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류 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알 라시드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살폈다.
 기대를 담은 눈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광분할 것을 대비하는 것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아무리 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이라곤 해도 칼리프 클랜의 근간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간섭하는 걸 좋게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니까.
대신이라고 뭣하지만 그에 준하는 메리트를,
당근을 직접적으로 이 자리에서 쥐여  생각이었다.

“좋아. 그러지.”
“...예?”
“뭐야 표정이 왜 그래? 그러겠다니까.”

알 라시드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류 현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아니 왜 이렇게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거지?

자신이야 전생에 인도 방면 전선이 무너지며 형성된 언데드 부대가 파죽지세로 중국 서부와 남부를 먹어치운 기억이 있어서 꺼낸 말이었지만,
류  스스로도 제대로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당근을 쥐여 주더라도 그냥 그렇게 하는 채만 하는 것을 계속 닦달해야  거라고 예상했다.
 현이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인도 - 파키스탄 간의 국경분쟁과 거기에 끼어든 칼리프 클랜의 종교적 문제는 쉽게 해소될 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혹시 다른 근처에 다른 파키스탄이...”
“없지. 요 근래에 우리 클랜이 손을 보태고 있는 곳은 거기 한 곳 뿐 이고.”
“그럼...”
“클랜 내부에서도 계속 얘기가 나오던 문제였어. 실익도, 명분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관성처럼 밀어붙이고 있던 거라서. 최근에 공주님을 투입한 건 소문 하나 확인할 겸, 강경파들 고집 꺾을 명분 만들기 용이었고.”
“그런가요.”
“그 소문이 진짜이긴 했는데...문제는 ‘그것’이 쥐고 나타나서  헛짓이 됐네. 어쩔  없지. 삽질 한 번 거하게 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그걸로 설득이 되겠습니까? 제가 알기론...”
“되는가 안 되는 가 문제가 아니고 해야지. 지금 상태에서 인도까지 적 삼으면 답이 안 나오는데. 거기다가 최우선 순위로 우방 삼아야 하는 인사가 그렇게 말하는데.”
“...점점  믿어도 될는지 모르겠군요.”
“처음부터 믿어달라고는 말 안 해. 그냥 아예 시선을 거두지 말고 보다가 저놈 괜찮다 싶으면 껴주는 것만 해도 충분하니까.”

껴달라는 것은 ‘신의 방패’ 같은 건수를 말하는 것이겠지.

‘...어차피 칼리프 클랜은 늦게라도 ‘신의 방패’를 확보할 테니. 협조적인 인사한테 주는 게 낫겠지.’


 현은 ‘가방’에서 꺼내서 쥐고 있던 ‘신의 방패’ 프로토타입 두 알을 만지작거리다가  내밀었다.

“응? 뭔데?”
“그 설득 빨리 끝내길 바라면서 드리는 선입금 입니다.”
“으응? 어, 내가 이런 거에 별 조예가 없어서 그런데 뭐하는 물건인지 말해주면 안 돼?”
“‘신의 방패’ 프토로 타입입니다. 설득하는데 는 충분하겠죠.”

잠시 후,
방에 알 라시드의 새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가 해산시켰던 인원들이 다시 달려올 정도로.

그대로 류 현에게 매달리듯이 절을 하다가 화련에게 걷어차여 쫓겨난 알 라시드는,
다음날 용잡이 팀이 떠날 때가 되어서야 그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화련이 강렬한 눈총을 받으며,
더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엉거주춤 하게 류 현에게 손을 내민  라시드가 말했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할게. 조만간 칼리프 클랜이 미쳤다는 소리가 나오도록.”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요. ‘신의 방패’ 협상 때 뵙기로 하죠.”
“...고마워.”

“출발할게요.”

화련의 텔레포트 발동에 서서히 시야가 빛에 가려지는 와중에도 류 현은,
알 라시드에게 ‘신의 방패’ 협상이 무슨 말이냐며 달려오는 클랜원들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를 향한 것이 아닌, 자신을 향한  웃음이었다.


‘회귀하고 남의 클랜 정치질을 도와주게 될 줄이야.’


슈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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