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1화 〉탐식마(貪食魔) (411/429)



〈 411화 〉탐식마(貪食魔)

이전과 같은 가두기 위한 구형 감옥 술식은 아니었다.
척 봐도 불안정하고, 형태만 겨우겨우 잡혀 바람만 불어도 흐트러질 것 같은 검은 덩어리.


그것은,


후르르! 그 강렬한 존재감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안쪽에서 피어오른 불꽃에 살라 먹혔다.
어떤 플레이어나, 괴수가 가진 기운보다도 이질적인 기운을 땔감으로 삼게 된 밝은 불꽃은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었다.


분별하여 태울  있는 현명함과,
분별하여 비출 수 있는 자애로움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검은 기운에 집어삼켜져 함께 살라 먹혔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세상을 원망하는 듯한,
모든 것을 태워버릴 강렬한 열기였다.


저주라도 되는 양 모든 것을 살라먹을 의지가 느껴지는 염원의 불꽃.


검은 불꽃!
‘비아트리체’ 레이드 생중계로 류 현이 그 힘을 깨닫자마자 세상에 이름을 떨친 그의 에이스 카드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그 존재감을 눈치 채지 못할 수 없는 강렬한 열기와 마력의 파동에 모두가 그것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망자의 시신 수습하는 인원과,
기적적으로 사지 중 한 둘만 희생하고 목숨을 건진 이들의 신음과 고성으로 가득하던 사위가 쥐죽은 듯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동시에 그들은  밖에도 내지 못할 공포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비아트리체’ 레이드 생중계  모습을 드러낸 검은 불꽃은,
류  입장에서도 그 때가 첫 발현이었고  위력을 제대로 가늠할 겨를도 없이 마구 끌어  것에 불과 했지만,
외부인들은 대 네임드 몹 결전용 기술로 인지하고 있었다.

이상할  없는 일이었다.
류 현이 ‘비아트리체’ 레이드  중간에 정신줄을 놓고 몸의 제어권을 잃어버렸던 일이나,
‘강림’ 상태에서 휘두르는 검은 기운은 화면 너머로 보면 큰 특별함을 느끼긴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그 싸움에서 그가 동원한  중 가장 눈에 띄는 편이었던 푸른 번개는,
누가 봐도 청뢰의 힘이었으니 검은 불꽃이 가장 뇌리에 남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성우에 대한 정보가 있는 이들도 그것이 해방 유성우로 인한 현상이라는 것은 꿈에도 알 수 없는 일.

그러니까 검은 불꽃을 목격한 칼리프 클랜의 인원들에겐,
지금 자신들의 클랜 본부에서 난장을 부리고 있는 괴물이 네임드 몹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는 의미였다.


아주 틀리지 않는 것을 넘어 결론 자체는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판단을   후에 내렸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쉭! 푸화학!

보고도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인지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검기에 검은 불꽃의 구가 갈라지고,
그 불꽃의 주인이 엉망진창으로 나가떨어지며 외친 소리에 반사적으로라도 반응을   있었을 테니까.


검은 불꽃으로 만든 감옥마저 베어낸 검은 그림자가 날아올랐다.


“피해!”

열기에 반쯤 익어버린 성대가 밀어내는 소리를 빈말로라도 듣기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더 강렬하게 귀에 꽂혔다.


자리한 모두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어?”


뿌드득! 본부에 등장한 괴수가 네임드 몹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지레 잡아먹힌 칼리프 클랜의 생존자들은 그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못했다.

첫 타겟이  자는 자신의 어깨가 늑골채로 뜯겨나갔다는 사실을 인지함과 동시에 ‘그것’의 손에 머리가 뭉개져서 죽었다.


그 옆에 서있던 자는 그대로 ‘그것’이 내지른 발차기에 몸이 두 동강이 났다.
의식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 희생자가 마지막으로 인지한 것은 ‘그것’이 한계까지 벌어진 턱 안쪽의 시커먼 어둠이었다.

콰직! 치이이! 머리통 안에 들어있던 덩어리들과 뇌수가 터져 나오다 말고 열기에 증발했다.

그제야 칼리피 클랜의 인원들은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인지했다.
불구덩이를 탈출한 ‘그것’이 한 호흡동안  명의 동료를 죽이고 뜯어먹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검은 불꽃을 뒤집어쓰고 반쯤 녹은 ‘그것’이 인간을 씹어 먹고 있는 모습은 그들의 이성을 불태우기 충분했다.

“으아아악!”

 비명이 효시였다.
칼리프 클랜의 생존자들은 이전까지 지키고 있던 명성이 무색하게 규율도 뭣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퍼걱! 철퍽! 쉬칵!
‘그것’은 류 현의 외침이 무색하게 무질서하게 도망가는 인원들을 걸리는 대로 쳐 죽였다.

이전까지 용잡이 팀을 상대할 때 순간적으로 보여주던 가속까지 마구잡이로 남발하면서 시야에 보였던 플레이어 반을 때려죽였다.

‘파슈파타’는 누가 이것을 탐을 내겠냐고 자신하는 것처럼 바닥에 꽂아둔 채,
하나 남은 팔과 두 다리 만으로 쉰에 이르는 플레이어를  죽였다.

쉰에 도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분이 채 되질 않았다.


그 살육을 멈추었을 때 놈의 몰골도 그리 멀쩡하진 못했다.
검은 불꽃은 여전히 꺼지지 않은  놈의  곳곳을 녹이는 중이었다.

놈이 영국에서 탈취한 갑옷형 유니크 아티펙트도 녹아내린 상태.
원형인 사슬 갑옷부분이나, 판금갑옷처럼 변형된 부분이나 할 것 없이 구멍이 뻥뻥 뚫려서  구멍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부위의 환부가 들끓는 현상은 이제 자세히 보지 않아도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격화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놈의 움직임은 상당히 거칠어지고 군더더기가 늘어난 상태였다.


어디까지나 화련의 어깨에 기대어 늘어져있는 승하와  현의 시선에서 그랬지만.

놈이 비틀비틀 걸어 자기가 바닥에 박아놓은 ‘파슈파타’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푸화학! 놈의 발치에서 다시금 검은 불꽃이 피어올라 놈을 집어삼켰다.


[----!]


엉거주춤 한 자세로 반쯤 꿇어앉은  오른손 주먹을 움켜쥔  현은,
오른 손 주먹과 손목을 움켜쥔 왼손에 힘을 더하면서도 욕지기를 속으로 뇌까렸다.

‘젠장, 화력이 부족해...’

그의 우려처럼 검은 불꽃은 처음과는 다르게 모이지 않고 자꾸만 형태가 무너지려고 하고 있었다.
불꽃에 삼켜진 놈의 모습이 슬쩍슬쩍 드러날 정도로.

이곳에 올 때부터 몸이 정상이 아니었고,
중간에 내상까지 입고도 그걸 다스릴 시간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만전까지 아니어도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수준만 되었어도,
아까 놈을 붙잡고 검은 불꽃으로 가두었을 때 쫓아내기에 충분한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류 현은 과거의 판단을 후회하면서도 블랙아웃 되려는 의식을 붙잡으려고 애를 썼다.
일부러 혀를 베어 무는 것으로.


그렇지만,
근성만으로 상태를 유지하기에는 그의 몸상태가 ‘그것’과 비견될 정도로 좋지 못했다.
기둥처럼 솟구친 검은 불꽃이 벌어지려던  때,

우웅! 치지지지! 류 현의 어깨에 작은 손이 얻어지니 벌어지려던 불기둥이 오므라들었다.
그의 집중력이 돌아와서는 아니었다.

류 현은 위쪽의 구름까지 증발시켜버리던 열기 또한 갇혔다는 것을 눈치챘다.

류 현은 저 현상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는 몰라도 누가 일으켰는지는 맞닿은 마력의 파동으로 바로 알아챘다.
그는 정신이 가물가물한 와중에도 뒤를 돌아보았다.


승하보다 더 격렬하게 칠공에서 피를 쏟고 있는 화련이 있었다.
그녀의 몸 위로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에 류 현은 이미 말라붙은 목을 쥐어짰다.

“결계를...거두...”
“지금 죽겠으니까 뭐라고 하지 말...”


그녀가 도저히 말을 들을 계제가 아니라는 것도,
그런 것을 가릴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모르지 않는 류 현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화력을 쥐어짰다.
그 반동으로 등에 손을 댄 화련의 몸이 들썩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류 현은 애써 무시했다.

그 또한 안에서부터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우웅! 밖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푸르스름한 빛이 검은 불꽃의 벽 안 쪽에서 새어나왔다.
 현은 더욱 이를 악물며 시시각각 떨어지고 있는 화력이나마 그 곳으로 집중시키려고 했지만,
빛은 약해지기는커녕 시시각각 강해져만 갔다.


우우우- 순식간에 검은 불꽃을 찢고 나올 것 같은 정도로 강렬해진 빛의 구체가 옆으로 죽 늘어나는 가 싶더니 둘로 나눠졌다.


류 현은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예감에 화련에게 결계를 옆으로 늘릴 것을 지시하려고 했으나,

키이이- 그가 말을 짜내기도 전에 떨어져 나온 빛의 구체에서 검은 팔이 쑥 튀어나왔다.

사람보다는 녹다가 다시 굳어진 마네킹같은 피부 질감을 가졌지만,
해부도 마냥 기능을 위한 근육 같은 건 도드라져 있는 왼팔.

그것에 이어 그보단 대충 만들어진 것 같은 왼다리가 나오고,
머리 한쪽 면이 튀어나오자 좌반신도 자연히 따라 나왔다.

거기까지 진행되자 정신이 가물가물한  현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여태 입혀놓은 상처의 흔적이 보이질 않고,
오른 팔마저 멀쩡하게 붙어있으며,
‘드라우프니르’를 포함한 아티펙트를 하나도 차고 있지 않지만 저것 분명히 ‘그것’이었다.


‘‘드라우프니르’...! 괴수에게도 적용이...’

순식간에 다른 반신도 빠져나온 두 마리째 ‘그것’은 제 앞의 ‘파슈파타’를 뽑더니,


쉬릭- 파캉! 후르르! 화련의 결계와 검은 불꽃을 동시에 치워버렸다.

검은 불꽃과 결계가 치워진 곳에 남은 건 반신이 완전히 녹아내려서 이제 원형도 찾기 힘들어진 ‘그것’이었다.


‘파슈파타’를 쥐고 있는 ‘그것’은 원본을 향해 검을 겨누더니,
쉭! 망설임 없이 목을 쳐버렸다.

머리통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놈의 몸은 남은 불꽃에 녹아 없어졌고,
남은 건 유니크 아티펙트 두 점 뿐이었다.


허무하리만치 깔끔한 정리.


류 현은 허탈감에 빠지려다가 갑자기 피부를 찌르는 것 같은 흉포한 기운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의 존재감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하게 느껴졌다.


전에는 어떻게 저런 존재감을 숨겼었나 싶을 만큼.


칼리프 클랜의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이 도망치다 말고 몸을 굳힌 채 벌벌 떨 정도였다.


그러나 류 현은 이 변화가 제약의 해방 같은 것이 아니라는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놈의 몸뚱이에 손가락을 박아 넣고 집어삼키려고 시도 해봤기 때문에.

존재감을 드러낸 현재 놈의 존재감은,
류 현이 서로 접촉했을 때 느낀 것의 반 토막 수준이었던 것이다.
정확히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희생 없는 복제는 아니었던 모양.


‘...작아졌다? 기척을 숨기기 위한 최소한의 힘도 안 남았다는 건가?’


 현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기회를 움켜쥐기 위해 한계에 도달한 몸을 다시 채찍질 하려고 했으나,
일어서려고 한 것만으로 핏물을 한 움큼 토해내야만 했다.


그의 등에 늘어져있던 화련이 기겁을 하면서 뜯어말리려다가 저도 피를 토했다.

류 현이 내장 조각이 섞인 토혈을 하는 동안 놈은 ‘드라우프니르’와 반쯤 녹아버린 갑옷을 챙겨들었다.

  슬쩍 용잡이 팀을 돌아본 놈은,


그 시선에 순간 죽음을 대비한 그들의 각오가 무색하게 그대로 날듯이 뛰어올라 유유히 칼리프 클랜의 본부를 벗어났다.


“...졌군.”

 현은 자평하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