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6화 〉탐식마(貪食魔) (406/429)



〈 406화 〉탐식마(貪食魔)

“스읍...후으으...”


던전 안과 달리 마력이 옅어서 텁텁하기까지  공기.
라비 라자는  텁텁함에 반가움을 느끼며 폐부 깊숙이 들이마신 바깥 공기를 음미하는 것처럼 천천히 내뱉었다.

한차례 바깥공기를 음미하고 나자 어깨가 굳을 정도로 몸 곳곳에 뭉쳐져 있던 긴장이  풀리는 듯 했다.
그는 하나 남은 팔을 슬슬 돌려가며 뒤따라 던전 게이트에서 나오고 있는 인원들을 확인했다.

세상에 던전과 괴수가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던전 보스가 소멸해서 천천히 기능정지 중인 던전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음에도,
그는 언제나 최후미에 있던 인원이 다 나오는 것까지 육안으로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가 1세대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생긴 버릇  하나였다.
이런 저런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 인류는 던전에게 아무런 확신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최후미에 있던 인원까지 게이트에 모습을 드러내고 보고를 끝마치자,
오피스룩 차림의 여성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덤프트럭이 그의 뒤로 향해서 나아갔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뒤처리 팀.

“아르가왈, 내가 들어가 있는 동안 다른 일은 없었나?”
“‘그것’의 움직임이 발견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다만?”
“중앙 쪽에서 뭔가 눈치를 챈 듯합니다. 던전으로 떠나신 날, 비서관 하나가 뵙고 싶다고 찾아왔는데 아직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은 아마 모를 거다. 그쪽은 미국 쪽과의 파이프라인이 빈말로도 좋지 못하니까. 내부 파벌 정리도   놈들이 그럴 정신이 있을 리가 없지. 아마 떠도는 말을 주워듣고 찾아온 것이겠지.”
“그리고 용잡이 팀에서도 연락이 왔었습니다.”
“용잡이 팀?”

‘파슈파타’를 지룡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던 손이 멎었다.
용잡이 팀이라는 이름에는  정도의 무게감이 있었다.
일순간 왜 그것부터 말하지 않았냐는 말을  뻔했지만,
라비 라자는 자신의 충실한 비서를 탓하진 않았다.

중앙정부는 당장 수틀리면 자신들을 공격해올 수 있는 놈들 아니던가?
우선 순위를 좀 달리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래, 뭐라던가? ‘파슈파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가?”
“라비 라자님이 부재중이시라고 전했더니  말하지 않고 조만간 약속을 잡고 싶다는 말만 남기고 끝났습니다.”
“구체적인 날짜는 잡았나?”
“그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연락해온 당시에는 협회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구체적인 목적은 알아낼  없었습니다.”
“협회? 좀 뜬금 없군. 그럼 지금은 다른 곳에 있다는 건가?”
“협회 인원 일부와 함께 칼리프 클랜에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칼리프 클랜으로 갔다고? 몇 명이? 팀 전체가 간 건가? 웨인 크로이츠를 포함해서?”


저가 알기로도 칼리프 클랜과 용잡이 팀은 빈말로도 매끄러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세상사가 보이는 관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그도 모르지 않았다.

 큰 이득을 위해선 원수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게 인간 아니던가?
세계 최강의 남자가 원수와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은 달갑지 않은 소식임은 분명했다.

“그 이상을 알아보기엔 칼리프 클랜에 비상 경계령이 내려진 탓에 쉽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다.  칼리프 클랜에 눈과 귀를 심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그가 당도해서 내려진 비상경계령일까?”
“그건 아닌  같습니다. 갑자기 재생 뿌리와 살살이 점토 구매의사를 협회에 타진했는데 그 양이 그렇게 많진 않습니다.”
“음...하긴 그가 날뛰었다면 주문이 아니라 협회에 중재를 요청했겠지. 협회는 아직 아무런 내색이 없나?”
“그들이 칼리프 클랜으로 간 뒤로 외부활동도 극도로 자제하고 있습니다. 시베리아 봉쇄선으로 향한 지원은 계속되고 있긴 합니다만.”
“그곳에 대한 지원이 멈춘다면 정말로 협회의 존속이 위협받는 상황이겠지. 웨인 크로이츠는? 그도 용잡이 팀과 함께 동행했나?”
“그를 봤다는 목격도 있었습니다. 사진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만...”
“무리하지 말라고 하게. 웨인 크로이츠 얼굴을 잘 못 알아보는 일이 있겠나. 칼리프 클랜이 협회 휘하도 아니고 마법으로 얼굴을 주무른 놈을 본부까지 들일 리 없으니 꼭 물증을 확보하려고 들지 않아도 돼. 문제는 그들의 방문 목적인데...칼리프 클랜이 갑자기 철수한 것과 관련이 있으려나?”
“심어둔 눈과 귀를 그쪽으로 집중시킬까요?”
“아니, 비상 경계령이라면 당분간은 숨죽이고 있는 것이 맞다.  폐쇄적인 클랜 성향을 생각하면 괜히 정보는 얻지도 못하고 심어둔 인원들만 다칠 가능성이 높아. 순혈이 아니니 그쪽에서도 눈 여겨 보고 있겠지. 걸리지 않더라도 향후 활동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높지. 그보단 협회 쪽에 집중하는 것이 맞을  해. 협회가 중재서지 않고서는 다시 한 자리에 앉을 일도 없어보이던 자들이니.”
“그리 하겠습니다.”
“대장! 여기 가죽이 걸려서  올리겠는데. 여기  쳐내줘!”

한창 괴수 사체를 싣고 있던 덤프트럭 쪽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에 여자는 눈을 흘겼다.
그녀가 어찌 라비 라자에게 그런 하찮은 일을 시키냐고 쏘아붙이려는 찰나,
라비 라자가 어깨로 그녀를 날려보냈다.


“악!”

그녀는 잠깐동안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갑자기 시야가 한 바퀴 구르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본 것이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형태가 뭉개졌다가 잡혔다가를 반복하는 마네킹 같은 것이라면 누구든 그럴 터였다.

유감스럽게도 라비 라자는 그보다 더 정신없는 와중에도 머리를 맹렬하게 굴려야만 했다.
그의 가슴께로 간결하지만 치명적인 검격이 쏟아져 내렸다.


카앙! 카가각! 키이잉! 늦지 않게 가죽 주머니에서 ‘파슈파타’를 뽑아낸 라비 라자는 거의 구르듯이 거리를 벌리고선 ‘그것’이 따라붙는  잠깐을 상황을 인지하는 데 썼다.


‘갑옷...? 팔이 하나가 없다!’

놈은 마지막에 봤을 때보다 훨씬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고집하던 인간형상은 윤곽선이 계속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꺼지길 반복했고,
그나마 모양새가 잘 잡혀있던 어깨와 팔도 녹아 붙은 고무 같은 꼴이었다.
오른팔은 어디다 갔다 팔아먹고 온 것인지, 파는 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지,
절단면이 정말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와중이다.

유일하게 멀쩡한 건 어떻게 구했는지 모를 시커먼 사슬 갑옷뿐이었다.

그것을 눈여겨보기에는 사슬갑옷 사이사이로 흘러내렸다가 다시 오므라들기를 반복하는 놈의 몸뚱이가 너무나도 그로테스했다.

처음 보았을  느꼈던 비 생물스러운 면을 고려하더라도 정상과는 거리가 먼 모습.


하지만 라비 라자는 눈앞의 적을 경시할 순 없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정반대로 ‘그것’은 잠깐잠깐씩 이지만 새어나고 있는 흉흉한 기세는,
기세만으로 좌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와 원정을 다녀온 인원들은 뻣뻣하게 굳은 채로 안간힘을 쓰곤 있지만 쉽사리 거리를 좁히진 못했다.
라비 라자는 손을 내저어 그들의 고민을 조금 덜어주었다.

그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와 마찬가질 외팔이 된 ‘그것’이 롱소드 같이 벼려진  몸의 일부를 찔러 들어왔다.

‘파슈파타’를 역수로  채 검면으로 그것을 흘려보낸 라비 라자는 이어지는 공격에 제 판단을 후회하게 되었다.


키이- 카가각! 찌르기가 흘려지자마자 이게 목적이었다는 듯이 검날을 타고 검은 검이 타고 올라갔다.
검은 검날이 가드에 닿자 라비 라자는 놈이 노린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검과 검이  붙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놈의 목적은 ‘파슈파타’ 그 자체였던 것이다.

“놈!”


뻐억! 라비 라자가 노성과 함께 내지른 프론트 킥에 ‘그것’이 뒤로 주욱 밀려나갔다.
‘그것’은 바로 다음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류 현이 보았다면 문제가 생겼다고 기뻐했을 만한 모습이었지만 라비 라자에게는 위기감만 더 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는 ‘파슈파타’에 남은 마력의 8할을 때려 부었다.


부으으! 그의 키보다 두 배는 긴 마력검이 치솟았다.
보는 이를 경도시키기에 충분한 그 모습에 교전 중이라는 것도 잊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으나,
라비 라자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마력검을 끌어 모았다.
그 하얀빛이 선으로 보일 때까지!


자신이 유지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압축률에 도달했을 때,
라비 라자는 그 사이에 회복해 자신을 향해 다시금 찌르기를 들어오고 있는 ‘그것’을 향해 검을 내려쳤다.

치이익! 키기기기!

“크웁...”

명치 아래 부분 전부가 달궈진 부지깽이로 후벼지는 듯한 감각에 눈을 자동으로 치뜨게 된다.

하지만,
라비 라자의 눈에 어린 절망은 제 배를 관통한 검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지금 상태에서 자신이 내보일  있는 최대 위력의 공격에도 굳건히 버티고 있는 ‘그것’의 왼쪽 쇄골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조금의 손상도 없이 굳건한 사슬갑옷에.


그 밑에 있는 ‘그것’의 몸뚱이가 부글부글 끓는 것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완벽하게 막혔다.
라비 라자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전에,

“끄으으...”

‘그것’이 그의 배에 박아 넣은 검을 끌어 올려 그의 생각을 방해했다.


라비 라자는 어떻게든 남은 마력을 쏟아부어 대응하고자 했지만,
‘그것’이라고 마력이 없는 건 아니었으므로 그의 몸뚱이는 ‘대소환’ 이전의,
인간의 몸뚱이는 쇠붙이를 당해낼 수 없는 시절로 강제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검을 타고 꾸역꾸역 밀려드는 무겁고 끈적한 마력을 밀어낼 여력이 그에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무릎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것으로 짧은 대치가 종말을 고하려던 순간,


푸스스! ‘그것’의 오른팔 절단면이 급격하게 들끓어 오르며 오른쪽 어깨까지 그 현상을 확장시켰다.

마치,
감히 어떻게  곳에  눈을 팔 생각을 하냐고 소리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의 오른쪽 어깨 일부분이 끈적한 타르처럼 변해 흙바닥에 흘러내렸다.


[---!]

‘그것’에게도 통각은 존재하는 지,
검마저 놓고 뒤로 비틀비틀 물러나던 놈은,


스칵! 무너지는 라비 라자의 손아귀에서 ‘파슈파타’를 빼내곤 급히 줄행랑을 쳤다.


남아있는 오른손에 발생한 손가락 두 개의 손실을 채 인지하기도 전에 라비 라자는 지면에 얼굴을  박았다.
쓰러지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 뿐이었다.

‘‘파슈파타’가 목적이었나...남은 신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그와...거래를...’

“대장!”
“라자 님!”

하지만 그는 그 생각을  진전시키지도,
 밖으로 내뱉지도 못했다.


보이는 외상 배 이상으로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굳어있었던 동료들이 달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라비 라자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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