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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4화 〉탐식마(貪食魔) (404/429)



〈 404화 〉탐식마(貪食魔)

콰직!
소리가 그에게 실감을 주기도 전에  현이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이상했다.
엉겨 붙어 있는 알 사디크 때문에 모든 힘을 실지는 못했지만,
 현의 괴력과  상태에서는 한계까지 응축한 파쇄권은 이런 손맛이 돌아올 것이 아니었다.

류 현의 완력은 이미 인간을 초월하다 못해 자연계에서 감당가능한 생물이 없을 정도였다.
사이즈 문제나 몸의 내구성 때문에 제한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럴 마음만 있으면 오우거도 그 쉴드를 통과할 최소한의 마력만 있으면 맨손으로 때려죽이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신 나간 수준의 완력에 이제 손가락 단위로도 제어할  있을 정도로 숙달된 파쇄권 터뜨렸음에도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흡사 거대한 곤약을 후려친 듯한 느낌?
아니, 그것으로도 이 감각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접촉과 동시에 투사한 힘이 꿀렁하고 집어삼켜지는 감각은,
괴수의 쉴드의 특유의 반발력이 섞인 것도 아닌 것이었기에,
류 현으로서도 소름끼치게 만들기 충분한 감각이었다.

원리가 뭐 어떻든 간에 무조건 한 발 빼야 한다. 그의 감이 비명처럼 외쳤다.

그는 그렇게 했다.


류 현은 자신의 힘을 흡수하느라 잠깐 굳어진 놈의 손아귀에서 알 사디크를 빼내 그대로 뒤로 집어던졌다.


“어억!”
“알 사디크님!”

알 사디크가 무사히 착지하든 말든 류 현은 바로 다음 스탭을 밟았다.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막힌 주먹에  다시 힘을 쏟아붓는 것으로!


쿠웅! 이번에는 놈도 힘을 집어삼키지 못하고 주르륵 밀려나갔다.
그대로 밀려나가기만 했기 때문에 류 현은  물고 늘어지지 않고 상태를 살피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급하게 달려드느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괴수의 몸뚱이가 이제야 제대로 보였다.

 라시드의 증언과 거의 일치했다.
뭉개진 마네킹보다 약간 개선된 듯 했지만,
변화는 제 몸뚱이와 같은 빛깔의 검을 쥐고 있는 손과 팔의 연장인 어깨정도에 국한된 것.

다른 부분은 정말로 불에 녹은 마네킹처럼 적당적당하게 덩어리져 있어,
그로 인한 대비로 인해 기괴함이 배가 되었다.


거기에,
그 자리에 있음에도 아무것도 느낄  없는 존재감은 비인간스러움의 화룡점정이었다.


상반신을  덮고 거의 무릎 위까지 오는 사슬갑옷도 이질감을 더하면 더 했지 덜어주진 못했다.
검정 일색의 사슬갑옷은 처음 보는 물건임에도 어딘가 어색함이 느껴졌다.

마치 원래 다른 색이었던 것을 아무렇게나 덧칠한 것 같은 어색함.


‘갑옷은...황금색인 부분이 전혀 안 보이는데. 아, 보석이 있군.’

색이야 이전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새카맣게 변했지만,
저 돌출된 조형물은 대충 봐도 그 황금사슬 갑옷의 보석이 떠오를 정도로 흡사했다.
그 색이 기능 문제가 의심될 정도로 완전히 시커멓게 바뀐 것이 켕길 뿐.

‘염병, 거의 확정인가? 갑옷 꼴이 저런 건 놈의 능력인건가?’

생각을 하면서도 류 현은 그대로 몸을 뒤틀어 미들킥을 먹였다.

뻐억! 발등에 온 신경을 집중했지만 처음에 느꼈던 그 감각은 다시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류 현은 이번에도 거의 밀려나지 않은 시커먼 인영을 보고 놀라움을 삼켜야만 했다.

‘뭐지 이거? 그냥 무거운 게 아니라...타격이...’

쉭! 생각을 가다듬기도 전에 시커먼 검 같은 것이 찌르고 들어왔다.
왼쪽 옆구리를 향한 찌르기를 피한 류 현은 자세가 무너졌고,
사람이라면 보일  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손가락 힘만으로 검을 역수로 고쳐 쥐고 내리찍어오는 놈의 검을 그냥 흘려보낼  없게 되었다.

카앙! 가까스로 목을 향한 검은 막은 모양새였으나,
류 현은 이것이 기회라고 여겼다.

후욱! 속을 바늘로 후벼파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검은 안개가 허공에서 갑자기 끌어 올랐다.


류 현은 그것이 팔을 뒤덮자마자 칼날을 비틀어 끊어버려고 했으나,

카가각! 괴수의 손가락이 칼자루에 파고 들것처럼  오므라드니,
칼날이 거짓말처럼 류 현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뭐야? 방금 그건...?’

칼날을 쥐었던 오른손이 저릿저릿했다.
힘을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손바닥이 조각났거나, 넝마꼴이 되었을 터.


더 어이없는 것은 벗어날  쓰인 힘이 정말 별 것 아닌 수준이었다는 것이었다.
과장 좀 보태서 지금 상태의 자신도 콧바람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수준.


그 정도의 미약한 힘인데,
중지 부분이 놈의 마력으로 쿡 찔리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저도 모르게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건 손 안을 갈아버릴 것처럼 이리저리 휘젓던 마력의 감각뿐이었다.
힘의 양으로 따지면 그의 눈썹도 잘라내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저도 모르고 있었던 신체 구조적인 약점을 찔려서 저도 모르게 놓아버리게 된 것이다.


그대로 팔이 잘려도 잠깐 동안은 움켜쥐고 있게 할 자신이 있는 류 현으로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검기(劍技).

류 현에게 이에 근접한 경험이라고 해봐야 승하와 가끔 하는 맨손 대련 정도였다.
점수로 따지면 맨날 압도적으로 지는데,
체력빨로 밀어붙여서 양패구상이나 하게 되는,
그럴 때에나 느껴본 기술적 격차.


네임드 몹을 상대로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각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페릭스’나 ‘살바토르’, ‘비아트리체’ 같은 놈들은 인간을 상대로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가지고 있긴 했었다.

그것이 마법에 국한된 것이라  현이 실감할 일이 적을 뿐.

류 현이 그 기술적 격차를 느끼기에는 마법적 소양이 전무하다는 문제점도 있긴 했지만,


‘거짓말이 아니었군. 진짜 인간 같아.’


인간이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술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질감은 다른 경우를 댈 것이  되었다.

그렇기에 류 현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제 검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커먼 인영을 향해서.

후우욱! 그의 그림자가 늘어지는 것 마냥 걸음걸음마다 검은 안개가 길게 이동흔을 남겼다.
힘을 끌어올릴 때마다 속이 뒤집어지는  했지만 류 현은 이를 악물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냥 시간을 보내게 두면 안 되는 놈이다!’


전투 도중에 제 검을 내려다보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놈의 반응은 신속했다.
대각선으로 검을 치켜들며 가드를 쑥 들이미는 놈의 대응에 류 현은 둘러가지 않고 주먹을 내쏘았다.

‘뭐?’


가드 부분으로 정면에서 막을 것처럼 보였는데,
닿는 순간 슬쩍 검을 뒤로 빼면서 비틀어 검을 그어 올리는 것 아닌가?


퍼엉! 갈  잃은 류 현의 마력과 검은 안개가 빈공간을 때리고도 남는 힘으로 놈의 몸을 좀 먹으려고 들었지만,
놈은 시커먼 마력 덩어리를 맞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류 현이 간발의 차이로 팔을 빼내며 뒷걸음치자,
놈은 그대로 몸을 빙글 돌려 반대방향으로 내려치기를 연결시켰다.

어쭙잖은 인간형상을 괜히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 마냥,
놈의 검술은 인간의  그 자체였다.


오로지 인간이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같은 형상을 한 것을 죽이기 위해서 고심하여 만들어낸 기술이 비인간의 손에서 펼쳐졌다.


‘...무리를 좀 해야겠군.’

어디까지나 쫓아올 것처럼 계속해서 반복되는 올려 베기와 내려치기의 한 치의 틈도 없는 반복.


류 현은 세 번째 내려치기를 피하면서 몸을 80도 가량 뒤틀었다.


그로 인해서 다음 반대방향 올려베기에 반응하기가 어려워졌지만,
그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잡았다!’

놈이 올려베기를 위해 허리를 뒤트는 순간,
류 현은 왼손으로 손목까지 붙잡고 있는 오른손을 힘 있게 움켜쥐었다.


후욱! 쿠왁!
 현이 족적으로 넘겨온 검은 안개가 일순간 모여들며 놈을 구속하는 방이 되었다.
놈이 뒤늦게 검을 휘둘러 그것을 베어내려고 했지만,
검은 안개를 베어내진 못했다.


모자란 양은  현의 몸에서 끊임없이 보충되었다.

그의 눈과 코에서 진득한 피가 배어나왔다.
류 현은  안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네임드 몹들의 기억을 느끼며,
‘강림’의 기운까지 끌어올렸다.


그의 왼쪽 눈 흰자위가 검게 물들며 동공이 찢어지듯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처럼 들썩거리던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방이 순식간에 안정되었다.

‘이렇게 빨리 써먹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전 턴의 네임드  드래곤 두 마리를 상대하고 얻은 성과였다.

놈들이 공간격리라고 지껄이던 수준은 엄두도 못 낼 정도였지만,
상대를 구속하는 것 정도는 문제없이 할 수 있었다.


‘강림’까지 끌어올려야 어떻게든 모자란 기술을 보충할 수 있긴 했지만,
류 현이 보기에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것이었다.


거의  나은 속이 뒤집히고 있는 건 좋지 못한 소식이었지만.

‘...혹시나 해서 가져온 건데. 신의  수가 됐군.’

류 현은 오른손은 움켜쥔 채로,
왼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유성우를 꺼냈다.


 여자가 ‘강림’으로 인한 변화를 느끼고 당장이라도 끼어들려는 기세였지만,
지금은 저걸 무력화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몰래 유성우를 챙겨온 것도,
지시와는 다르게 저는 본 전력을 꺼낸 것도 나중에 잔소리로 돌아올 걸 생각하면 끔찍했지만,
지금은 이게 옳았다.


“스으읍...”

류 현이 각오와 함께 ‘강림’의 기운으로 유성우를 ‘깨우려던’ 때 였다.


뻐엉!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검은 안개의 구의 윗부분이 열리며 ‘그것’이 튀어나왔다.
놈은 갑옷으로 보호된 부분을 제외한 몸 곳곳이  먹혀 꽤나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류 현은 지체 없이 다시 오른손을 휘저어 안개의 구를 거대한 팔로 바꾸었다.
거대한 손아귀가 놈의 오른팔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잡아채었다.


“애먹이기는...?”

스칵! 류 현이 유성우로 추가타를 먹이려던 순간,
놈이 제 팔을 잘라내고는 여태 고집하던 인간 형상마저 포기하고 벽을 타고 줄행랑을 타기 시작했다.

“가긴 어딜가!”


터엉! 류 현의 변화를 보고 당장 달려오려고 움찔거렸지만 그의 지시에 대한 준비는 완벽하게 끝내놓은 화련이 손을 뻗어 그것을 제지했으나,

카가각- 카앙! 놈의 올려 베기와 찌르기 한 번에 그녀가 세워놓은 방벽에 딱 놈이 빠져나갈 만한 구멍이 뚫렸다.

아직 만전이 아니었던 화련은 방벽이 깨진 것의 피드백 때문에 움찔하다가 놈을 제지할 타이밍을 놓쳤다.
언제든 그녀의 텔레포트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던 승하의 기회도 같이 날아갔다.

놈은 순식간에 일행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화련이 뒤늦게나마 놈의 존재감을 찾아내서 텔레포트로 쫓으려고 했지만,
아직 성하지 못한 그녀의 공간장악력은 놈의 도주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화련이 놈이 도망치자마자 달려온 자신의 대장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마스터. 놓쳤어요.”
“...아깝지만 화련 씨가 미안해할 일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성하지도 않은 팀원들을 여기 끌고 온 제 잘 못이 크죠. 놈의 상태도 안 좋아서 다행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류 현은 속으로  숨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기 어려웠다.


‘젠장, 이젠 뭐 저런 놈까지 나오는 거야? 괴수가 맞긴 한 건가?’

대답해 줄이 없는 물음만이 그의 안에서 공허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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