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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3화 〉탐식마(貪食魔) (403/429)



〈 403화 〉탐식마(貪食魔)

“‘그거’랑 붙어본 소감? 이렇게 말하면 안 믿을 거 같은데...인간이랑 싸우는 느낌이었어. ‘그거’ 자체가 인간스럽다는 건 아니고, 놈이 검술을 썼는데 그게 꼭...어? 벌써 들었어? 협회놈들 예전이랑 다르네. 이렇게 빨리 일처리 할  있으면서 그 전에는  그랬데?”

 속셈을 드러낸  라시드는 더 이상 거칠 게 없다는 듯이 류 현의 마구잡이 질문에 마구 응했다.
특히 칼리프 클랜을 습격해온 아직도 이름이 없는 괴수에 대해서는 정말 떠오르는 대로  지껄이는 수준이었다.

“내가 검성이랑 붙어본 적은 없어도 유명한 칼잡이들이랑 꽤 붙어봤거든. 아니, 그건 아니야. 그놈들이랑 차원이 달랐어. 그걸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원래 있던 걸 되찾아가는 그런 느낌이었지.”
“저번에 봤을테니 알겠지만 내가 나름 마법사나 검사 중에서 테크니션 애들은  잡는 스타일이거든?”


알 라시드의 격투 기술은 굉장히 직선적이고 단순한 편이었다.
페인트를 간간히 섞지만 그보다는 더 빠르고 무겁게 치는 것에 치중한 스타일.


단순하고 직선적이지만 그렇기에 단단하여 공략하기가 쉽지 않다.
 라시드의 신체능력까지 더해지면 상대하는 이는 육체 스펙이든, 기교든 어느 한 쪽이 압도적으로 높아야 그를 누르기 쉬워진다.

그 부분을 잘 아는 알 라시드는 자신과 엇비슷하지만 조금 더 돌출된 부분이 있는 이들을 인내심과 경험으로 수차례 꺾어왔다.


당연히 그의 보는 눈은 수준급.

“천재 소리 듣는 놈들이랑 지겹게 붙어봤지만 그 어떤 놈들이랑도 달랐지. 끝이 안 보였어.”
“아니, 재능의 격차 그런  아니야.  수준까지 도달하고 나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걸 전혀 모르는 느낌이었어. 당연히 대응했어야 할 주먹에 얻어맞고 나면 기억을 떠올린 것처럼 상상도   그런 반격을 날리는 게 반복이었지.”
“첫 충돌 때는 공방 분배고 뭐고 없었어. 그냥 뛰어들어서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엉겨 붙더군. 몇 번 얻어맞고 나서는 정신이 돌아온 것처럼 내가 공격하면 절묘하게 카운터만 치는데 어이가 없더라.”
“뭐? 아니라니까, 그러네. 애초에 그놈이 자기 촉수로 검 형태를 만들 이유가 뭐가 있겠어? 협회에서 정보 받아보니 처음에는 채찍처럼 썼다던데.”
“아니, 나랑 싸웠을 때는 그런 형태가 아니라 뭉개진 마네킹 수준은 됐었어. 그래. 거 봐. 당신 같으면 그런 불리함을 감수하고 인간처럼 싸우겠어? 놈이 바닥에 바짝 붙어서 부정형 몸뚱이 쭉쭉 늘려가면서 싸우면 나는 유효타 먹이기도 힘들 텐데.”
“체간도 완전히 고정된 상태가 아니었다니까. 그렇다고 나한테 얻어맞고 피드백 얻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나한테 한 대 먹이고 나서도 저 혼자 꾸물꾸물 움직이더라고. 점점 형태가 잡혀가는데 나랑 싸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형태가 검술에 끌려가는 느낌이었어.”
“전완근이랑 삼각근 형태 잡히자마자 손가락 기술 쓰기 시작하더라. 그 때 손가락 잘릴  했다니까. 그래, 진짜 끔찍하더라. 중간부터  되겠다 싶어서 자세 무너뜨리고 파운딩이라도 갈기려고 했는데 도저히 거리를 안 주더라고. 믿어져? 그라운드 기술을  번도 못 봤을 놈이 그 거리까지 재가면서 대응한다는 게?”
“너희가 말한 그런 변형은 한 번도 안 썼어. 아까 말했다시피 제 기억에 끌려가느라 그런  아닐까? 뭐? 아니 말하는 괴수랑도 붙어봤으면서 왜 이건 말이  된다는 건데?”
“마법? 하, 그걸 더 잘 받아치던데? 검 끝으로 휘적 하더니 우리 마법사한테 그대로 불덩이 돌려줘서 통구이로 만들더라.”
“강도? 비교할 만한 게 없는데...지룡 그거 살아있을 때 비늘도 상대가  돼. 몇 배? 아니, 그런 단순 비교가 불가능한 거였다니까. 사슬 갑옷? 아, 맞다. 그게 협회 물건이랬지. 음? 아니라고? 아 대충 넘어가.”
“사슬갑옷은 척 봐도 심상찮아서 내가 피해서 쳤지. 뭔줄 알고 거기에 주먹을 갈기겠어? 내가 말한 건 놈의 본체 부분이야. 치는 순간 이거 생명체는 맞나 싶더라.”
“내가 무슨 초짜야? 언데드나 그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일반인이었을 때 전차 장갑판을 쳐도 이런 느낌은  왔을 걸?  치는데 닿는 부분이 꾸물렁하고 받아넘기는 느낌이...으, 떠올리니 토 쏠리네.”
“...타격이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잠깐 멈칫하긴 했는데 아파서 멈칫했다기보다는 의아해하는 느낌? 색깔도 시꺼먼 놈한테서 그런 느낌이 돌아오니까 진짜 싸우는 와중인데도 움찔하게 되더라.”
“사슬갑옷? 아니 그건 되게 찾네. 어? 그거? 흠...내 기억으로는 황금색이 거의 안 보이는 수준이었는데. 어, 그냥 전체적으로 시커멓던데. 보석? 그런  달려있었나? 흠...하잘이 기억할테니까 나중에 오면 내가 물어보지. 아냐,  기억력하나는 기똥차서 믿을만해. 어, 눈에 확 들어오는 그런 건 없긴 했었지.”
“기운...기운이라. 솔직히 말할게. 내가 당신네들을 부르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그거 때문이거든? 아무것도 못 느꼈어.”
“진짜라니까. 코앞에서 칼을 찌르고 주먹으로 치고받았는데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어. 있는 건 알겠는데, 괴수특유의 그런 흉포한 기운이 없었어. 기습이 주특기인 놈들이랑은 좀 다르지. 그놈들은 가벼우면서 존재감이 희미해지도록 억눌려져있는 거잖아.”
“그건...아예 밀봉된 캔 통조림 같은 거였지. 아무것도  느꼈는데 그건 어떻게 아냐고? 이거 봐. 이 상처. 일주일 됐는데 아직도 이 지경이야. 치료? 이 자리에서 자랑하는 건  그렇지만 우리 칼리프 클랜이거든? 여기 치료에 중형차   정도는 꼬라박았어. 저주 아니냐고? 아니야. 침식형 능력도 아니고.”
“그래. 그놈이 직접 접촉해오는 순간 알겠더라. 왜 내 바디 블로우 먹고도 그렇게 멀쩡한지.”
“그놈은 화이트 뭐 이딴 기준으로 묶일만한 놈이 아니야. X던전 그런 수준조차 아니고.”
“이름은  보였지만  네임드 급. 난 그렇게 보고 있어.”


“너 준 네임드 급이 어느 정도 되는 줄은 알고 그런 소리 하는 거야?”


본인도 자세한 체급 구분은  하는 승하가 핀잔을 주었지만 알 라시드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네임드 몹 근처에도 못 가본 내가 이런  하는 게 우습게 들릴 수 있다는 건 알아. 그런데,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해. 놈은 이미 기존 분류는 이미 이탈했고, 계속 강해질 거라는 거. 난 그걸 감안해서 추측을 내놓은 거고.”
“안에 들여다보지도 못했을 거면서 퍽이나.”

승하가 콧방귀를 뀌어도 알 라시드는 요지부동이었다.
그가 꿈쩍도  하자 김이 빠진 승하는  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쟤 말이 믿겨?”
“...어림 대중이니 수치가 잘 못 될 수는 있어도,  라시드 씨 입장에선 일부러 놈의 전력을 부풀릴 이유가 없긴 하죠.”
“내 말이 그거라니까. 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하겠어?”
“하지만 이해가  가는 부분이 많긴 하군요. 그 정도 힘을 가진 놈이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마구잡이로 힘을 투사하는 게 아니라, 기억에 맞춰서  형태도 고정시키고 있다라.”
“인간이랑 대화가 되는 괴수도 만나봤는데 기억상실 괴수라고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잖아?”
“그거랑 별 개로 놈은 알 라시드 씨와 일행을 그냥 두고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제가 받은 소식이 잘 못 된 겁니까?”
“...도망간 건 맞아. 어떻게든 각을 내보려고 ‘드라우프니르’ 발동시키니까 발광하면서 달려들다가 분신 하나만 남기고 내가 버티니까 좀 눈치 보더니 냅다 튀더라. 진짜 뒤도 안 돌아보고 튀던데.”


류 현이 아무 대꾸도 없이 턱을 천천히 매만지기 시작하자 알 라시드는 눈치를 보다가 재빨리 한 마디 덧붙였다.


“도망가면서 우리가 못 쫓게 우리 애들을 크게 상하게 하고 튀었어. 하는 짓이 경지랑 어긋난 부분이 많아서 그렇지 머리가 비상한 놈이야.”
“...여유 있는 괴수가 인간을 두고 도망갔다는 것 자체가 지능이 보통이 아니라는 증거죠.”


류 현의 고민은 알 라시드의 이야기의 진위 여부가 아니었다.
승하에게 말한 것처럼 이런 것으로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었으니까.
아예 정보를 누락시켜서 위기에 빠뜨리는 식이라면 모를까.

그는 이미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고민하는 중이었다.


‘다가가면 갈수록 네임드 몹이라는 증거만 늘어나는 거 같은데. 어쩐다. 발동시키자마자 발광했다는 걸 보면 ‘드라우프니르’를 여기다가 두고 가면 놈의 손에 넘겨주는 거나 다름이 없고...’
‘그렇다고 당장 칼리프 클랜에 깽판 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으음, 놈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곤 해도 못 해도 준 네임드 급일테니 지금 이 상태에서 맞서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지.’
‘일단 돌아갈까? 우릴 부른 주체가 알 라시드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재정비하고 온다고 한 들...’


 때였다.


콰릉! 돔 지붕에서 흙먼지가 쏟아질 정도의 진동이 일었다.
방 안의 네 명의 플레이어의 고개가 그 진원지를 향해서 돌아갔다.
마력파동으로 인한 진동.
근원지를 못 느끼려야 못 느낄 수가 없었다.

“알 라시드 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알 라시드가 처음 대동하고 나타난 시종 같아보이는 자였다.
지금 차림새를 보니 시종보다는 부관에 가까운 이인 듯 했다.

“하잘, 지금 이게 대체 뭔...”
“습격입니다! 칼리프께서 공격당하셨습니다! 전에 그놈입니다!”

그 본인은 반쯤 정신이 빠진 듯 했으나 압둘 무함마드 알 하잘은 제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알 라시드가 몸을 튕기듯이 일으키곤 문을 향해 내달리려다가 류 현을 돌아보곤 툭 내뱉었다.
다분히 의도적인 발언이었지만 류 현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말이었다.

“팔찌, 영감님이 가지고 있어.”

그 말만 남기곤 알 라시드는 총알처럼 건물 밖으로 튀어나갔다.
 하잘이 숨을  가다듬지도 못한 채로 그 뒤를 따랐다.


남겨진 류 현은 자신만 빤히 바라보고 있는 두 여자에게 한 숨과 함께 지시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화련 씨, 언제든 탈출할  있도록 준비 부탁드립니다. 놈을 억누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놈을 죽이는  아니라 ‘드라우프니르’를 지키는 쪽으로 갈 겁니다. 정 안 되겠으면 그것만 빼내서 튀어야죠.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준 네임드급 같은 놈에게 그런 물건을 넘겨줄 수는 없으니까요. 승하 씨는 기회를 보시다가 될 거 같으면 일단 빼돌리기부터 해주십쇼.”
“오케이. 류  너 무리하면 안 된다?”
“하고 싶어도  합니다.”

그 말은 끝으로 일행들도 방을 뛰쳐나와 내달리기 시작했다.
담을 뛰어넘고, 넘을 수 없는 벽은 그냥 류 현이 선두에서 부숴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안내가 필요 없을 정도로 노골적인 마력파장이 본궁너머 공터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류 현은 다시금 지시사항을 확인했다.


“몸 빼내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준비하고 있을게요.”
“네가 제일 조심해야 되거든?”

승하의 핀잔을 등지고 류 현은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훌쩍 뛰어올라 마지막 벽을 뛰어넘었다.

내려다보이는 시야 속 공터에서는 싸움이 한창이었다.
워낙 둘이 엉겨 붙어있는 터라 누구도 쉽사리 끼어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처럼 보였다.

류 현은 망설이지 않고 자파르 알 사디크에게 들러붙은 검은 인영을 향해 내리꽂혔다.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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