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1화 〉탐식마(貪食魔) (401/429)



〈 401화 〉탐식마(貪食魔)
“‘드라우프니르’?”


그 이름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화련이었다.
생전 처음 듣는 이름에 화련이 반응하자 드러누웠던 승하도 슬쩍 몸을 화련쪽으로 다시 기울였다.

“뭔데? 너 아는 거 있어?”
“...이걸 안다고 해야 하나.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팔찌 이름이에요.”
“북유럽신화? 디게 뜬금없네. 네가 아는 것도 뜬금없고.”
“벽에 막힌  얼마  됐을  수련법으로 신화와 관련한 이미지를 끌어다 쓰면 좋다는 얘기가 돌았었거든요. ‘마탑’발 정보니 어쩌니 했었는데...닥치는 대로 읽었죠.”
“...가만 보면 마법사들이 제일 미신에 집착한단 말이야.”
“어쩌겠어요. 계산을 하니 어쩌니 해도 결과는 초자연현상인데. 그런데 아무 의미도 없이 ‘드라우프니르’ 같은 이름을 붙였을 거 같진 않은데...”

화련은 직접 대놓고 묻기는 꺼림칙한지 알 라시드를 슬쩍 곁눈질 했다.
류 현이 그 말을 받아서 질문을 던지기 전에 알 라시드가 들이밀고 들어왔다.


“맞아. 그게 딱 들어맞아서 그 이름을 붙인 거야. 이것도 반대가 심해서 임시라고 단서를 붙이고 있긴 하지만.”
‘대체 왜?’


가볍게 지껄이고 있는 알 라시드의 태도와 정 반대로  현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꼬여갔다.


칼리프 클랜 내에서 일급 기밀로 다뤄지고 있을 정보를 저리 쉽게 나불거리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실 이렇게 접근해오는 것 자체가 칼리프 클랜의 방식은 아니지.’

전생에서 접한 칼리프 클랜은 책임자 얼굴도 보기 힘든 그런 곳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결론을 내놓고 통보를 했다.
그 통보조차 말단에게 맡겨서 자신들의 우위를 확인하는  당연하게 생각하곤 했었다.


몇 번 데여본 바 있는 류 현으로선 알 라시드의 접근법이 낯설기만 했다.


그러나 알 라시드는 이 정도에 그칠 생각이 없었다.

“능력이 신화상이랑 똑같거든. 날짜 제한은 좀 경우에 따라서 바뀌긴 하는데 복제 능력은 동일해. 무조건 8개씩 늘어나. 신화상이랑 다른 점이 있다면 ‘드라우프니르’ 복사품이 아니라 다른 아티펙트들을 복사할 수 있다는 거지만.”
“복제? 복사기 아티펙트라는 거야?”
“아니 무슨...그럼 밸런스가...”

다시 드러누울 기세 던 승하가 아예 고쳐 앉을 정도로 알 라시드가 내뱉은 말은 놀라웠다.
화련은 알 라시드에게 직접 말을 걸지 않으려던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완벽하진 않아. 사실 우리가 전부 아는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얻은 지 그리 오래 되진 않았거든. 이제 한 달 좀 넘었던가?”

방금 말한 것만으로도  여자의 입을 다물리지 않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유니크 아티펙트의 ‘해방’까지 겪으면서 그 한계를 엿봤다고 자신할 수 있는 류 현은 조금 다른 시점에서 접근했지만.

“복제품에 문제가 있는 겁니까?”
“아하, 바로 찌르고 들어오네. 보통은 어디까지 가능하냐고 묻는데. 맞아. 영구적인 복제가 아니야. 물건에 가치에 따라서 존속기간도 차이가 크고.”
“가치의 기준이라 함은?”
“깃든 마력량. 2등급짜리 아티펙트까지 실험해 봤는데 그건 한나절을 조금 넘기더라. 복제에 들이는 시간을  늘리고, 더 연구하면 어떻게든 늘릴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솔직히 의미 있을 거 같진 않고.”
“물의 오브 같은 것도 해보셨습니까?”


알 라시드는 입가 한 쪽을 끌어올리려 히죽 웃었다.

“어.  번째 복사 실험 때 복사해놓은 게 아직도 있지. 한 번 볼래?”

주머니에서 꺼낸 둥그런 물빛 구슬은 틀림없는 물의 오브였다.
그것도 칼리프 클랜이 아니면 꿈도  꿀, 가성비는 개나 줘버린 것 같은 개량판.


‘진짜 칼리프 클랜에 딱 맞는 유니크 아티펙트군.’

알 라시드는  것 아닌 것처럼 말하긴 했지만 반나절 동안 유지되는 2등급 아티펙트의 복제도 엄청난 것이다.
2등급 아티펙트를 여유롭게 운용할 정도면 칼리프 클랜 내에서도 최정예에 속하는 자들일 것이고,
그런 자들을 시한 제한이 있긴 하나 균일하게 강력한 무장을 갖출 수 있게 만드는 건 돈으로 따지기 어려운 이적.

칼리프 클랜과 사이가 좋지 못한 이들에게는 악몽 이상의 날벼락일 터다.
하루도 채 되지 않는 제한시간이 있긴 하나,
그렇지 않아도 플레이어 세력으로는 최강을 논하던 칼리프 클랜이 거기서 한 단계 더 강화된 전력으로 몰아칠 수 있게 된 것이니까.

‘소모품에는 훨씬 넉넉하게 적용되니 지휘관이 뇌만 있으면 장기전에선 놈들을 당해낼 세력은 없다고 봐도 되겠군.’
‘잠깐, ‘신의 방패’에도 적용되려나? 그럼 좀 피곤해지는데...’

칼리프 클랜이 돈이 부족해서 복제품으로 장사질을 할 곳은 아니었지만,
장사질 대상이 ‘신의 방패’라면 돈으로 그칠 리가 없다.
애초에 류 현이 피곤하게 협상에 뛰어든 것도 그 때문 아니었나.
생존을 가지고 장사질을 하면 전생의 ‘마탑’처럼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지만,
장난질을 치지만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권력이 된다.

미국과 류 현이 뒤에 있는 것을 모르진 않을 테니 어지간하면 눈치껏 저들끼리  것과 동맹들에게 뿌릴 것만 찍어내겠지만,
3차 ‘대소환’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평온하게 진행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그들의 행보에 대한 그 어떤 확신도 무의미하다.


류 현이 본 멸망 직전의 세계는 그러했다.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알 라시드가 묻지도 않는 걸 나불거리고 있는  상황이 이상한 것이다.
류 현은 당장 귀에 들어오는 정보다 완전히 반가워 할 수만도 없었다.

분명 꿍꿍이가 있을 테니까.
힘으로 뭔가를 강제하진 못하겠지만,
‘신의 방패’로 군사 협력 협약을 주고받고 있는 판국에 잡음을 넣고 싶진 않았다.
유니크 아티펙트 건으로 여론이 들썩거리는 것도 모르지 않았고.

“사실 아티펙트 복사는 덤에 가깝지. 유용하긴 하지만 제약도 많고, 다른 유니크 아티펙트에 비해서 임펙트도 작잖아?”
“진짜는 분신체 능력이야.”
“분신체요?”
“복제능력이랑 똑같아. 착용자와 똑같은 분신체 여덟을 만드는 거지.”
“똑같이? 무장상태를 포함해서 무력도 같이 말입니까?”
“에이, 그랬으면 유니크 아티펙트가 아니고 알라의 은총  이런 이름을 붙였겠지. 시간제한도 있고, 분신체 여덟이 다 합쳐서 1인분 정도야. 힘 배분은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지만.”
“미친  밸런스가 이따위야? 누군 개고생해서 위력 짜내고 그러는데...”
“뭐 때문에 억울해 하는지는 알겠는데, 이거 운용하면서 다른 거 쓸 여유 같은  없어. 분신체를 죄다 자기가 운용해야하는 거라서. 한  쓰고 나면 나도 한 삼일은 죽은 듯이 잠만 자니까. 마력도  방에 다 빨리고. 유지하는 것도 컨디션에 따라서 시간이 천차만별이야. 뭣보다 한 번 쓰고 나면 한동안은 아티펙트 자체가 기능이 멈춰버리더라.”
“아니 그 정도 패널티도 없으면 그건 사기지.”

승하의 불평대로 패널티를 감안해도 놀라운 능력이었다.
아주 단순하게만 봐도  라시드 정도 되는 플레이어를  배로 뻥튀기 시켜주는 아티펙트라는 소리니까.

분신체의 조작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어지간하면 그것이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될 가능성은 낮았다.

여차하면 하나에 힘 대부분을 몰아놓고 나머지 일곱은 간보기 용으로 던져주면  것 아닌가?


기능 정지나 사용자의 탈진 상태는 사실 류 현에게는 패널티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청뢰와 유성우의 ‘해방’ 상태를 다 감당하지 못하는  스스로 알면서도 그 위력 때문에 모든 걸 감수하지 않았는가?
알 라시드가 늘어놓은 ‘드라우프니르’의 능력이 반만 사실이어도 모든 걸 감수할  했다.


  본인이 못 쓰더라도 승하나 화련에게만 쥐어줘도 그 효용이 필설 할 수 없는 수준일 테니까.


다만,
류 현은 ‘드라우프니르’의 능력보다는 다른 곳에 신경이 더 갔지만 말이다.

승하에게 ‘드라우프니르’ 발동 당시의 감각을 무용담처럼 늘여놓는 알 라시드를 빤히 바라보던 류 현이 불쑥 찌르고 들어갔다.

“저희한테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사디크의 뜻입니까? 칼리프 클랜의 전체의 뜻은 아닌 거 같은데요...”


 사디크의 뜻은 맞습니까?  현이 삼킨 뒷말이었다.
괜히 정보 제공자를 필요 이상으로 긁는 게 아닌  싶어서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하지만  라시드는 류 현이 삼켜버린 뒷말을 아주 쉽게 캐내었고,

“아니, 이건 내 독단이야. 영감님이 동의한 건 당신들을 초대해서 도움을 청하는 것까지였거든. ‘드라우프니르’의 존재를 드러내는  정도가 영감님이 생가하고 있던 마지노선이겠지.”
“그럼 왜...?”
“그런데, 당신들 그렇게 싸지 않잖아? 우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물건을 지켜달라고 해도 들어줄 의리도 없고.”
“대체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우리도 피곤한 일은 사양입니다.”
“겸손 떨기는. 여기 있는 애들 다 덤벼들어도 당신이 콧김만 뿜어도 다 날아갈 텐데. 영감도 칼리프 클랜 전체가 덤벼도 당신한테서 뭘 뜯어내는  불가능하다는 거 모르진 않아. 위치가 위치다보니 그렇게  수밖에 없는 거지. 그래서 내가 팔자에도 없는 외교관 노릇을 하는 거고.”
“제가 거절하겠다면요? 그러고 보니 아직 대가 얘기는 듣지도 못했군요.”
“그걸 줄게.”
“예?”
“‘드라우프니르’ 말이야. 공식적으로는 그쪽이 지분을 좀 가져가고 최대 주주는 우리인 상태에서 실소유는 그쪽이 하는 방향으로 말이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전에 왜 제가 그 말을 믿어야 합니까? 알 사디크가 나서서 그런 소리를 했어도 믿을까 말까인데.”
“걱정 마. 영감님은 내가 클랜에서 제명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해볼 테니까. 그리고 어차피 지분 확보한 뒤에는 혼란통에 슬쩍 점유하든 아니면 잠깐 쓰겠다고 하고 안 돌아오든 방법은 많잖아?”
“...왜 이렇게 까지 하는 겁니까? 직접 써보기까지 했다면 그 가치를 모르진 않을 텐데.”
“알지. 잘 알아.  시점에서는 아마 영감님보다도 내가 더 잘 알걸? 그래도 말이야. ‘드라우프니르’가 아무리 대단한 물건이어도 클랜 전체랑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 거기에 당신이 실소유주가 되더라도 아예 독점하진 않을 거라는 약간의 기대감?”


다시금 입 꼬리 한쪽만 끌어올려 미소 지어 보이는 남자를 보고 류 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더 귀찮게 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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