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9화 〉탐식마(貪食魔) (399/429)



〈 399화 〉탐식마(貪食魔)

류 현의 걱정과 달리,
그가 체류한 9일간 영국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틀 전,
정상적으로 터진 던전에서 튀어나온 괴수가 런던 시내로 난입하는 일이 있긴 했으나,
그 자체는 류 현의 관심을 끌기에는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화련이 졸라대는 승하의 성화에  이겨서 그녀를 현장에 데려다 주는 장면이 찍히는 바람에 한차례 소동이 있긴 했으나,
그마저도 수습을 한 건  현이 아니라 협회였으니 체류한 9일간은 대체로 지루한 시간이었다.

류 현이 그 날 뛰쳐나가려는 승하를 말릴 생각도 못한 게 그 증거 중 하나였다.


협회와 합의 한 대로, 첫 날에 화련이 포위인력을 옮겨다주고 나선 무기한 대기상태.
무료함을 견디다 못해 cctv라도 확인 해보려고 했지만,
보기만 해도 의욕이 상당하던 협회 분석팀이 3일차에 놈의 모습을 찾아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찾아낸 놈의 모습도 그리 분석할 거리가 있진 않아서 하루 안에 소재거리가 떨어져버렸고 말이다.


 현이 협회 옥상에 선 베드를 깔아놓고 시간을 때우고 있는 건 그 때문이었다.
자신이 협회 안에 있을 경우,
일을 봐야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눈치를 본다는 사실도 한 몫 했고 말이다.


‘인도에 잠깐 다녀와야 하나?’


9일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 거리기만 한 건 아니었다.


3일째에 ‘그것’의 모습이 찍힌 cctv영상을 찾아낸 분석팀 덕에 그것을 확인하고,
일단 영국에  더 체류하기로 정한 뒤에 이틀 동안 라비 라자 측에 연락을 시도했었다.

협회가 물어다  정보에 의하면 파키스탄-인도 국경에서 깔짝거리던,
칼리프 클랜의 병력과 마람 압둘아지드가 물러난 정도가 아니라 귀국 해버렸다고 들었으니 그 쪽에도 여유가 생겼다 싶어서 연락을 취했다.

돌아온 것은 그가 던전에 입성해서 언제 연락이 될지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이해는 갔다.
첫 방문 이후 정보를 더 모아보니 라비 라자가 놓인 처지는 빈말로도 좋다고  순 없었으니까.

멀쩡히 살아남는다는 가정 하에 괴수와 싸울수록 강해지는 플레이어는 결국 시간이 힘이고,
라비 라자는 그 힘으로 치환시킬 수 있는 시간이 계속 묶여있었어야만 했다.

덤으로 그가 느낀 좌절감도 그의 시간을 단단히 묶어놨을 것이다.

 전까지야 괜찮았겠지,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마람 압둘아지드의 존재는 넘치는 자극이 되었을 터.
그녀와 함께 칼리프 클랜이 귀국했다는 소식은 아마 기회로 여겨졌을 것이다.
라비 라자 본인이 던전 내에서 사고만 당하지 않으면 실제로 기회가 맞을 것이고.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


문제라면 이 부분이 문제였다.
듣기로는 블랙이 아니라 제법 규모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이트 던전에 들어갔다고 했다.


전생과 달리 최상위 던전들의 넓이나 괴수의 숫자가 주러들고 대신 질에 치중한 듯한 성향을 보여서 클리어 시간 자체는 짧아졌다지만,
여전히 넓은 던전은 넓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미로형 던전은 여전히 시간을 잡아먹는다.

라비 라자가 언제 나올지 알 수가 없다는 거다.

‘아직 외부에 노출된 적이 없으니까. ‘그것’한테 습격당하는 일은 없겠지만...지금 어디까지 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


유니크 아티펙트를 탈취해 달아난 놈은 아직 이름이 없었다.
최초 발견자라고   있는 피습당한 팀은 딴 곳에 정신이 팔려있고,
놈을 네임드 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현은 그 모습을 보고나서는 확신을 잃은 상태였다.

네임드 몹이라고 체적이 크라는 법은 없었지만, 작아도 너무 작았다.


작은 만큼 방어력이나 속도, 완력 등이 엄청나다거나 증언대로 지능이 높을수도 있겠지만,
네임드 몹 특유의 느낌이 없었다.


보통 cctv로만 찍힌 영상이니 섣부르게 단언하는 건 지양하고 있긴 하나,

‘그 정도로 힘이 집중되어 있는 놈이면 시체가 제대로 남아있는  이상한 일이지. 괴수가 인간이 시체 처리하는 걸 걱정해줄 것도 아니고. 저주도, 다른 공격 마법도 아니고 완력만으로 뜯어냈으니.’

보이는 정황들이 자꾸 그의 추측을 갉아내고 있었다.


‘...네임드 몹이 아니라도 문제란 말이지. 아티펙트의 위력을 보고 그것만 약탈해가면서 인간의 기술도 훔쳐낼  있는 괴수가 한 개체의 특수성이 아니라 종의 특성이라면...’


며칠  윈스턴 앞에서 말한 것 같은 끔찍한 경우가 ‘그것’과 같은 종으로 인해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네임드 몹이어도 골치 아픈  매한가지. 놈의 이동루트를 특정할 수 없게 된다.’

확연히 티가 날 수밖에 없는 ‘비아트리체’의 전자기기를 손상시키는 오라와는 다르게  경우는 영상의 결락부분을 일일이 확인해야만 했다.


‘아직까지 던전 게이트를 이용해서 게릴라전을 펼친 놈은 없지만, 그  놈들은 죄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랬던거고. 놈이 네임드 몹이라면...’

상상이상으로 골치 아파질 것이다.
대체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놈은 황금 사슬 갑옷을 ‘착용’했다고 했으니까.


놈이 그 갑옷을 찾은 게 우연이 아니고 모종의 감지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라면,


‘그렇다면 놈의 다음 행선지는 인도일 텐데...그렇게 탐지 범위가 넓을 리가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군.’

괴수들에게 걸린 세뇌까지 깨는데 성공한 특이 케이스이긴 하나,
메시지 마법 하나로 지구 전체를 커버한 ‘살바토르’라는 예시가 떡하니 존재했다.


‘진짜로 인도로 가서 협상하는 척 뭉개고 있어야 하나...라비 라자 본인 말고는 이거 정보 줘도 의미도 없을 거고...’


속 시원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문제에 매달리고 있자니 없던 두통이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머리를 감싸 쥐려는 때,

“마스터.”


방금 전까지는 기척도 없던 화련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어왔다.


“오셨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네, 제가 여기 오면서 들었는데 칼리프 클랜이 협회에 항의서한을 보낸 거 같던데요.”

경지가 높아지면서 따라오게 된,
거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도청을 통한 것이었지만 화련도, 류 현도 그런 시시콜콜한 것을 따지는 위인들은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또 영역얘기로 시답잖은 시비를 붙으려고 하나 보군요.”
“아뇨, 그런 거라면 제가 굳이 말도 안 꺼냈죠. 우리가 찾고 있는 게 거기서 나타난 거 같아요.”
“예?”
“그 유니크 아티펙트가 뜯겨나가면서 죽은 리더라는 사람이 착용하고 있던 자잘한 장비도 딸려나갔나 봐요. 칼리프 클랜이 갑옷 찬 묘한 괴수랑 싸웠는데 그놈이 남긴 흔적에 협회 인증마크가 나왔다고 항의해 왔다던데요?”
“...그놈이겠군요.”
“네,  묘한 건 칼리프 클랜에서 그 삼인방  하나가 당장이라도 날아올 기세라는 거에요. 이상하죠?  셋 말고는 그 방어력을 뚫어낼 인간도 없을 텐데. 약점이 뭐냐, 자료가 있으면 직접 가서라도 보겠다. 난리도 아닌 모양이던데요. 이거 좀 냄새 나지 않아요?”
“놈이 노릴만한 걸 가지고 있나 보군요. 아마도 그걸 노골적으로 노려서 한 번에 감을 잡은 것 일테고, 아직 뺏기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하,  그쪽에만 그런 기물이 쏠리는 지.”
“그러게 말이에요.”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너희가 할 소리냐고 항의했겠지만,
그런 항의를 할 이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항의를 듣더라도 사적으로는 유니크 아트펙트를 사용한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류 현은 선 베드에서 일어나며 어깨를 휘휘 돌렸다.
화련이 재빠르게 바로 옆에 서서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끼시게요? 솔직히  별로 같은데.  치들이 이제와서 염치를 알아서 지분 떼어줄 거 같지도 않고.”
“네임드 몹일지 모르는 놈한테 넘어가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페릭스’때처럼 당하는 건 사양입니다.”
“아니, 네임드 몹이면 우리가 먼저 도망가야죠!”

백 번 옳은 말이었기에 류 현은 소리를 꽥 지른 것에 주의도 주지 않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예, 놈이 네임드 몹이 맞다면 그럴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든 간에 확신이 있어야 어느 방향이든 확실하게 정하고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이름을 숨길  있는 네임드 몹이면 다른 사람들 감에 기대하는 건 어림도 없을 거고,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 손에 맡기긴 곤란하니까요. 어떤 노선을 택하든 직접 확인하는  필수니 별 수 없죠.”
“끙...괴수가 무슨 도벽이라도 있는 건지. 아무튼 이름 보이면 잽싸게 도망가는 거죠?”
“그래야죠. 저도 당장 싸우라고 해도 일단 도망부터 가고 봐야할 판인데요.”
“그럼 승하 언니 데려올 테니까 먼저 대 회의실 쪽으로 가계세요. 안 그래도 웨인 씨가 이리로 뛰어 올라오더라고요.”
“...좀 같이 데려와 주시지.”
“번호 차단 안   제 최대한의 인내심이었네요. 연락 올 때마다 골치 아픈 일만 가지고 오는 사람이 뭐가 예쁘다고.”
“...티내시면 안 됩니다. 앞으로도 계속 후열 경호에는 웨인 씨가 붙게 될  같으니까요.”
“제가 무슨 어린애에요? 그런 걸로 티내고 다니게. 그런데 계속 쫓아오겠어요? 지벡 건터 그 인간이야 후회하는 티 팍팍 내도 의지할 곳이 없으니 그렇다고 쳐도.”
“빠진다고 하시면 무릎이라도 꿇어서 설득해야죠. 그 정도 전력을 어디 가서 또 구하겠습니까.”
“진짜  오버하신다. 무슨 무릎을 꿇는다고 그래요? 다른 인간들이 마스터한테 그렇게 해도 모자랄 판에.”


류 현은 빙긋 미소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화련은 그 미소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 숨을 내뱉곤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언니 데려올 게요. 대회의실 근처로 사람들이 모이는  같았으니까 그리로 오시면 될 거에요.”
“예, 먼저 가있겠습니다.”


류 현의 대답을 듣자마자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화련의 모습이 옥상에서 사라졌다.

류 현은 화련이 사라진 자리에 시선을 잠깐 고정하고 있다가,
출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유니크 아티펙트 이려나? 대체 그 근처에서 발견된 아티펙트만 몇 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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