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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7화 〉탐식마(貪食魔) (397/429)



〈 397화 〉탐식마(貪食魔)
처음으로 방문한 윈스턴의 집무실은 생각보다 더 검소했다.
정말로 딱 업무를 보기 위한 최소한의 기능들만 갖춰놓은 느낌.

그 와중에 소파만은 꽤나 고급이라서 어색함이  했다.
윈스턴이 직접 대접한 커피잔을 기울이며 류 현은 그의 말을 기다렸다.


병풍처럼 뒤에 앉아서 정신 사납게 굴고 있는 승하를 내보낼까 고민할 때쯤 초로의 신사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리 바로 와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소. 이 상황을 그리 유쾌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입장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오.”
“빈말로도 좋은 기분은 아니긴 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말이었음에도 방안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집무실에 오기 전부터 움츠러들어있던 웨인은 물론이고,
정면에서 그 말을 받은 윈스턴도 표정 변화가 없을 뿐이지 얼어붙은 건 마찬가지였다.
화련을 상대로 정신 사납게 손장난을 치고 있던 승하까지 움찔하고 그를 주시할 정도로.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기에 류 현은 곧바로 그들을 풀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 저였어도 그랬을 테니까요.”
“변명하는 것처럼 들릴 건 알고는 있지만 이 얘기는 꼭 해야  거 같군. 우리도 확신한 것이 바로 어제 일이오. 확정된 지 24시간이 되기도 전에 일이 터진 것이지.”
“외부인에게 알릴지 말지 결정하시기 에는 좀 많이 촉박하긴 했군요.”

말을 받아주면서도 류 현은 협회가 알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바꾸진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긁어 부스럼 일으키는 짓이었으니까.
소문이 살살 돌고 있을 때 슬쩍 찔러주는 것이면 몰라도.

‘딱히 나한테 잘 못한 것도 아니니까.’
“사실, 아까 말은 그렇게 했습니다만 저도 협회분들의 입장을 아주 모르는 건 아닙니다. 저희팀 때문에 여러 가지로 꽤 곤란을 겪고 있으실 테고요. 정확히는 저희팀이 보유 중인 아티펙트 때문이겠지만요.”

알만한 이들 사이에서는 협회가 종이호랑이 소리를 들어도 플레이어와 던전에 관한 것에는 가장 권위를 가진 곳이니,
당연히 유니크 아티펙트를 두고 오가고 있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의 종착역은 협회일 것이다.

티는 안 내도 끔찍하게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포지션 정하기가 힘든 입장일 텐데,
안팎으로 시달렸을 테니 이번 일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을 터.


‘미국이랑 가까워지면서 이쪽은 소홀해진 감도 없잖아 있고.’


종이호랑이지만 아주 힘이 없지는 않다.

특히 연차가 오래 된 플레이어들은 협회를 보고 뒤통수나 맞고 다니는 멍청이들이라고 비웃을지언정,
협회의 소집령 자체를 의심하진 않는다.

아직 협회는 그 탄생 목적에 위배되는 사건을 터뜨린 적은 없으니까.

플레이어들에게 막연하게나마,
‘저놈들이 그래도 이런 걸로 수작질 부릴 놈들은 아니지.’ 라는 신뢰를 얻고 있으니 말이다.

아프리카 사태에 원정대를 빠르게 꾸릴 수 있었던 건,
유럽 국가들의 소집령에 협회의 보증이 따라붙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류 현이 그 협회의 신뢰도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을 일은 없겠지만,
그것을 등에 업는다고 손해  일도 없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오.”
“그런데, 무례를 무릅쓰고 여쭙는 겁니다만 어떻게 판별하신 겁니까?”
“유니크 아티펙트 말이오?”
“예. 오면서 들어보니 갑옷 형태인  같던데.”


갑옷 형태의 유니크 아티펙트.
류 현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유니크 아티펙트는 없다. 라고 단언하기도 어려운 것이,
류 현이 아는 범위 외의 것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으니 말이다.

최근 신경 쓰고 있던 ‘엑스칼리버’도,
그게 정말 있나? 의심할 만한 정보만 남은 것이 정말로 존재했다.
그것도 류 현의 예상을 살짝 웃도는 수준의, 왜 이런 걸 쥐고도 그렇게 밖에 못 했나 싶은 아티펙트가 말이다.


전생의 정보를 맹신하기에는 너무 예외를 많이 겪기도  터라,
협회의 판단을 의심하기보다는 검증 방식에 더 흥미가 갔다.


“내구도 실험을 했소.”
“내구도 실험이요?”
“용잡이 팀의 청뢰 자료를 우리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지 않소. 그걸 기준으로 같은 양의 에너지를 투사했지.”
“허어.”
“그 목록이 여기 있을 터인데...”

자료를 제공해주긴 했다.
윈스턴이 저렇게 가장 많이 라고 강조할 정도까지 신경 써서 준  아니었고,
협회가 구해다준 던전에서 청뢰 훈련을 할 때 웨인이 측정하는  막지 않은 정도였다.

그걸 넘어서 가끔 화련이나 자신이 계측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것이 유의미한 데이터냐고 묻는다면,
류 현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청뢰를  적을 상대하는 입장도 아니고,
군을 지휘하는 입장도 아니니 활용하기 애매한 정보였다.

방어구형 유니크 아티펙트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금이야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잘도 그런 식으로 검증해 볼 생각을 했네. 동의를 얻어낸 게  용하다.’

윈스턴이 실험에 쓰였다고 열거하는 화기들의 화력을 떠올려본 류 현은 신뢰감보다는 황당함을 느꼈다.

유니크 아티펙트가 아닌가 하고 검증까지 생각해 볼 수준의 아티펙트라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어쩌면 2등급 위를 개척하는 아티펙트가 될 지도 모르고.


유니크 아티펙트는 취급이 아티펙트 분류 체계 내가 아니라 거의 번외취급이었으니.


그런데 그런 물건에 대고 나토군이 출동하지 않을 한계선 내에서 화력을 투사했다니,
얼마나 절박했다는 소리인가.


“물론 마력으로 인한 타격에 대한 내성도 확인을 끝냈소. 충분하다고 하긴 힘들겠지만, 현재 협회 내 대기중인 헌팅레벨 300대 팀이 전력을 퍼부어도 흠집하나  내더군. 순수 물리력에 비해서 검증이 부족하다는  사실이긴 하오만은.”
“그 정도면 충분하지요. 유니크 아티펙트가 워낙 제각기 다르긴 하지만 파일럿 영향을 꽤 크게 받는 편이니.”


어찌 보면 오만한 소리로 비춰질 수도 있었지만,
웨인도, 윈스턴도 아주 자연스럽게 수긍했다.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유니크 아티펙트는 그 위력만큼의 대가를 요구하는 물건이었으니까.
이번에 갑옷형 유니크 아티펙트(추정)를 검증해보면서 기들은 그 사실을 더 확실하게 느꼈다.


헌팅레벨 300대의 마법사가   발동시키는  한계였다.
쥐어짜내면  번까지도 가능했겠지만,
그렇게 쥐어짜내고 나면 그 인원은 짐 덩어리가 되고 만다.


 세 번은 내상을 감수해야만 되는 것이라 마력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들,
용잡이 팀같은 운용은 힘들다는  협회 내의 분석이었다.


“맞소. 우리가 실험 해본 바로는 2번 가량이 한계였지. 아무래도 원 소유자들도 그 때문에 우리에게 검증을 맡긴 것 같았고. 그 친구들의 리더도 해봐야 두 번이 한계 같았고, 출력도 그리 안정적이지도 않았으니.”
“발동 시에만 방호력이 생기는 유형이었습니까?”
“아니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아, 상시 발동형에 추가 스킬이 달려있다고 하면 되겠군. 뭔가 다른 능력이 있는 거 같긴 했는데...그건 확인하지 못했소. 워낙 급박하게 사고가 터진 터라.”

‘엑스칼리버 같은 유형인가. 나쁘지 않은데. 근데 다른 능력이 더 있는 거 같다고?...잠깐.’

“그 팀 리더는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들었는데...착용하고 있지 않았던 겁니까?”
“착용하고 있었다더군. 그런데 증언내용이 좀 묘하오. 아니, 묘하다기 보다는 이걸 믿어야 할지 의심스럽다는   맞겠군.”
“어떤 점이...”
“첫 충돌 때는 아무 문제없이 그것의 공격을 받아냈다고 했소. 팀원 누구도 인지 못한 기습이었으니 갑옷이 받아내지 않았다면 뭐가 공격해왔는지도 몰랐을 테고, 우리도 제보를  받았을 거요.”
“그것? 신종 괴숩니까?”
“증언이 정확하다면 아예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야할 놈이지. 새카맣고 부정형에다가 수축과 팽창이 굉장히 자유로운 놈이라고 들었소. 제 덩치보다  크게 촉수를 뻗어낼 수 있다더군. 그런데 이건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오. 증언이 반만이라도 맞다면 말이지.”


윈스턴은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하던 말을 끊고 하기에는 갑작스럽고 조금 이상한 행동이었기에,
유심히 그를 살핀  현은 턱수염을 만진다기보다는 잡아당기는 것에 가깝다는 사실을 눈치 채었다.

윈스턴 클라우드는 이걸 말해도 되나 싶어서 망설이고 있는 것이었다.

“놈이 다섯 번 가량 공격을 거듭하고 나서 갑자기 공격의 방향성이 바뀌었다더군. 처음에는 정말 죽일 기세로 여러 방향에서 급소만 노려왔는데, 중간부터는 방호 범위를 재는 것처럼 간을 보다가, 팔을 타고 그를 휘감은 후에 갑옷을 벗겼다고 했소.”
“그 갑옷은 타의로는 벗길 수 없는 물건입니다. 그 부분도 확인을 끝마쳤습니다.”


집무실로 오기까지 있는 듯 없는  움츠러들어있던 웨인이 잽싸게 말을 보탰다.


“착용하면 거의 한 몸처럼 합쳐진다더군. 그걸 벗겨내려면 방호력을 깨고 아예 발동을 중지시키거나, 이번 케이스처럼 착용자의 몸을 찢을 각오로 뜯어내야 하오. 이렇게 말이지.”


윈스턴은 현장사진을 내밀었다.
사진 속에는 상반신의 근섬유와 핏줄이 엉망진창으로 튀어나온 시신이 찍혀있었다.

“사실 이렇게라도 벗길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소. 결합정도가 정말 말 그대로  몸이 되는 수준이었으니. 아마 우리에게 맡겼어도 이렇게 뜯어내는 것도 못 했을 거요.”
“애초에 그 증언처럼 팔을 휘감는다는 것도 불가능하지. 갑옷의 방호력이 생각보다 두텁소. 대강 착용자의 팔 두께 두 배쯤 되지. 그런데 증언은 그것이 묘한 짓을 하더니 팔을 직접 휘감았다고 했으니. 우리도 직접 듣고도 이게 맞나 싶었소. 긴급한 상황에 대해서 사람의 기억이 왜곡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소?”


윈스턴이 왜 망설였는지 알 법 했다.
증언 말고는 단서가 없는데, 그 증언이 진실성이 의심되는 상황인 것이다.

“...계속 해주시죠.”

윈스턴은 아까 전 망설였던 것이 거짓말처럼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증언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부분인데...리더의 옆에 있던 스트라이커가 팀 내의 가장 강한 이였는데 검을 쓰는 자였소. 리더가 당한 직후에 가장 빠르게 반응했는데, 놈과 그 친구가 싸우는 모습을 본 이들이 이렇게 말하더군.”

윈스턴은 목이 타는지 남은 차를 모두 비우고는 그래도 모자란  목을 가다듬었다.
웨인이 물을 받아다주자 그것으로 입술을 한 번 적시고 나서 말을 이었다.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한 어조로.

“그 부정형 괴수가 검술로  자와 겨뤄줬다고. 검술로 그를 따라잡자마자, 그를 베고 떠나갔다고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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