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6화 〉탐식마(貪食魔)
조금 엉망진창인 웨인의 설명을 듣고 정리까지 해서 그에게 돌려준 류 현은 지금 리버풀에 발을 딛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소식을 전한 웨인,
일행을 여기까지 한 순간에 날라다 준 화련,
화련이 인도행을 준비하러 가는 걸 보고 쫄래쫄래 쫓아왔다가 그대로 합류한 승하가 함께했다.
류 현은 평소의 침착함은 어디다 팔아먹고 온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웨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에게 안정을 찾아주기 위해서 물었다.
“전부 온답니까?”
“예? 아, 예. 부상 중인 인원을 빼곤 전부 온다더군요.”
‘귀찮게 됐군.’
웨인을 향한 생각은 아니었고,
빼앗겼다는 유니크 아티펙트의 전 주인들을 향한 감상이었다.
듣자하니 탈취 당시에 착용하고 있던 리더는 즉사하고,
옆에 있던 측근도 중태라는데 이쯤 되면 그 팀은 존속이 불분명한 상태라고 봐야한다.
리더가 죽고 이인자로 보이는 인원도 일어나고 있질 못하고 있는데 사태 수습보다는 이리로 온다니.
어떻게 좋게 생각해봐도 속내가 뻔했다.
‘팀은 이미 박살난 거나 다름없고, 유니크 아티펙트 이름값은 높아진 상태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은퇴자금이라도 벌어보자 이거겠지.’
은퇴 자금이 굳이 현금일 필요는 없으니까.
유니크 아티펙트의 가치가 ‘비아트리체’ 레이드 생중계 이후 재조명되는 걸 넘어서,
거품까지 붙을 기세니 지분만 쥐고 있어도 충분할 거라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유니크 아티펙트의 중요성을 원래 높게 치고 있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더욱 높게 보게 된 류 현조차 거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관련된 여론들이 광기를 띄고 있었다.
그 중에는 유니크 아티펙트를 어떻게든 확보하고 싶어서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정부의 의향도 있겠지만,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는 이들에게는 쥐고 있던 우량주가 호재까지 만나서 우상향으로 미쳐 날뛰는 정도로만 보일 것이다.
충분히 기회라고 생각할 만한 상황이 아닌가.
실소유주에 가까운 리더는 죽었고, 이인자 같은 이마저 그 상태니까.
회복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관심이 없을 걸 넘어서,
회복하지 않기를 바라도 이상하지 않을 터.
플레이어들이 이룬 팀이나 클랜은 생사를 함께 하는 동료라는 외부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생사를 함께하고 있기에 불만이 한계까지 쌓인 채로 곪아가기만 하는 경우도 흔했으니까.
딱히 불만이 있는 게 아니더라도 눈앞에 있는 물건이 눈이 돌아갈 만한 가치를 지녔으니 이상할 건 없었다.
죽고 다친 이들은 복장이 터지겠지만,
충분히 이해할 만한 전개였다.
그 때문에 자신이 귀찮아지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지만.
‘그냥 모른 척하고 가만히 있다가 일이 더 진행된 후에 올걸 그랬나.’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굴러갈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웨인 씨, 어떻게 할 작정이십니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오고 있다는 친구들 아마도 자기들 소유라고 주장할 거 같은데. 협회 의향은 어떤지 여쭤보는 겁니다.”
“...법적으로는 협회가 끼어들어서 뭔가를 강제하기에는 곤란한 상황이긴 합니다.”
그럼 그렇지.
류 현은 속으로 한 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괴수에게 유니크 아티펙트(추정)를 빼앗긴 건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첫 번째는 그 일이 정말 있었던 일인가에 대한 진위도 불분명하고,
칼리프 클랜이 승하와 류 현, 그리고 세아를 선제공격할 것처럼 군 것 때문에 서로 대놓고 권리를 주장하면서 싸우는 일 없이 흐지부지 마무리 되었다.
칼리프 클랜은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고 소문을 흘리거나 황색언론에 사주하고 있는 듯 했지만,
그네들도 이제 손 쓸 방법이 거의 없다는 걸 알기에 정면에서 항의해오지 않고 있는 것을 터다.
문제는 그 첫 번째 사례가 그런 식으로 끝났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권리를 다투게 되는 건 이번이 처음일거라는 점이었다.
던전에서 몰살당한 팀을 뒤이어 진입한 다른 클랜의 팀이 던전 공략을 끝내고,
전리품으로 가지고 나온 첫 번째 팀의 유품을 두고 법적 공방이 벌어진 적은 있으나 별 참고할 거리는 못 되었다.
결국 클랜이 공략팀에게 돈을 주고 인계 받는 식으로 마무리 되었으니까.
추모의 의미에서 공략팀에서 요구한 돈이 장비 값에 비해서 적은 돈이긴 했지만,
그 대상이 유니크 아티펙트일 경우에도 그럴 거라는 믿음을 가질 정도로 그는 멍청하진 않았다.
남아서 권리를 주장하는 건 유족이 아니라 남은 팀원들이었고,
그렇지 않아도 현재 유니크 아티펙트에 대한 말들로 부글부글 끓는 와중이었으니,
체면 차려서 원만하게 해결할 거라는 기대를 버리는 것이 맞는 판단이었다.
아예 새로운 케이스를 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이 생각을 웨인의 다급함에 떠밀려서 여기 도착한 후에 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시간이 있었다.
아직 확인할 것이 남아있었지만.
“웨인 씨.”
“예, 류 현님.”
“협회에서는 그 아티펙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까?”
웨인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굴을 굳혔다.
말을 고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 표정만으로도 류 현에게는 대답이 되었다.
그의 반응을 걱정하고 있는 웨인의 예상과는 반대로 류 현은 그에 대해 별 감흥이 없었다.
‘바로 알리긴 곤란하긴 했겠지. 이런 사고가 안 터졌으면 아예 안 알렸을 수도 있고.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다가 방금 알았으면 어떻게 유니크 아티펙트라고 딱 찍어서 말했겠어?’
기본적으로 던전에서 얻어 나온 전리품들은 팀의 소유다.
그 소유권이 꽤나 많이 제한되는 편이긴 하나,
어떤 식으로든 그에 준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국가에서 전략물자를 통제하는 식으로 간다.
그렇다면 유니크 아티펙트는?
아무런 기준이 없다.
협회와 UN이 합의한 아티펙트 규약은 기존의 2등급까지가 한계선이었고,
그 위쪽 등급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아티펙트를 분해해서 재조합하면 지금의 한계를 벗어난 화력을 뽑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미래를 점친 선진국들이 손을 쓴 탓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소망은 이루어지기 요원해 보였고 규약은 꽤나 잘 돌아갔었다.
용잡이 팀이 유니크 아티펙트라는 존재를 드러내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아는 나라들끼리 규약을 개정해야하지 않겠냐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물밑에서 물리적 제재를 가하자고 동업할 나라를 찾는 경우도 있었다.
몇몇 곳은 협회의 레이더 망에 감지될 정도라 주시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비아트리체’ 레이드가 생중계 되었고,
거기에 쐐기를 박는 것처럼 ‘신의 방패’의 존재가 유출되었다.
그 이후,
음모를 꾸미던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한 다리 건너서 알던 이들도 그 논의를 숨기기에 급급하게 되었다.
그 논의가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중간에 끼게 되었을 협회 입장에서는 나쁠 것 없는 전개였지만,
그게 새로운 유니크 아티펙트의 존재를 쉽게 생각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비아트리체’ 레이드에서 류 현은 협회조차 몰랐던 유니크 아티펙트의 진면목을 보여줬으니까.
더군다나 이미 소유자가 있는 상황 아닌가?
뺏어다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했다가는 뺏어 가는데 도움을 준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사실,
그렇게 된다고 한들 큰 문제는 되지 않을 터였다.
협회라고 모든 행사가 도덕적 기준에 부합되는 건 아니었으니.
하지만 지금 같이 관심이 끓어오른 상황에서 뭔가 빌미를 줬다가는 꽤 곤란한 상황에 쳐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당장 협회 본부가 자리한 영국의 정부부터가 자국 내의 유니크 아티펙트를 팔아넘겼다고 길길이 날뛸게 뻔했으니까.
용잡이 팀이 2등을 정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이미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영향이 없진 않았고.
‘그건 이해가 가는데...나를 부른 건 좀 어이없긴 하네. 웨인이 분명 ‘페릭스’가 개미지옥을 썼다는 거 말해주긴 했을 텐데. 아, 그래서 더 기겁하고 정신 못 차리는 건가? 네임드 몹 같아서?’
류 현도 상황을 고려해보기 전에 달려온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긴 했다.
갑자기 아티펙트를 훔쳐서 달아날 지능이 있는 신종괴수가 나타났다는 가정보다는,
이미 선례가 있던 일이 새로운 네임드 몹으로 인해서 재발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니까.
거기에 인도에 있는 ‘엑스칼리버’라는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도 한 몫 했다.
다짜고짜 유니크 아티펙트가 탈취 당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엑스칼리버’ 얘기 인 줄로만 알았다.
행선지가 영국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낼 뻔 했을 정도로.
‘...너무 흥분한 건 나뿐이었나.’
설사 범인이 네임드 몹이더라도 당장은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팀원들 중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승하와 화련도 아직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판이니까.
아직 활동범위가 제한된 희란과 백혜라는 네임드 몹 근처만 가도 내상으로 피를 토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류 현 본인도 평소 기량의 반절도 내기 힘든 상태.
체력적 문제까지 감안하면 삼분의 일 수준도 버거웠다.
요즘 들떠 있던 탓에 나온 판단 미스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즘 너무 풀어져있긴 했지. 으음, 일단은 돌아가야 하나. 어느 쪽이든 여기서 뭘 얻어가긴 힘들어 보이는데. 둘 다 탐색을 시키기에는 제 상태도 아니고.’
범인이 네임드 몹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지금 네임드 몹과 맞닥뜨리면 아직 회복도 덜 된 몸에 내상이 더해져서 복귀가 더 늦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탐색은 협회에게 맡겨두고 나설 일이 생겨서 요청이 들어온다면 그 때 나서는 게 지분 문제 해결하기도 좋을 터.
류 현이 원래 행선지였던 인도행을 재검토하고 있을 때였다.
침묵하는 류 현의 눈치를 보다가 걸려온 전화를 받아든 웨인이 통화를 끝마치고 그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예, 예. 알겠습니다. 류 현님?”
“듣고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윈스턴 경께서 실례되지 않는다면 잠시 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함께 가주시겠습니까?”
‘당장은 구체적인 숫자를 꺼내긴 어려울 거 같은데...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보단 약속을 받아내고 가는 게 더 나으니까.’
“예, 그러지요. 당장 저희가 여기서 할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류 현의 대꾸에 그들을 끌어들인 웨인이 움찔했지만,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류 현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찾아주는 대가로 지분 3할 정도면 괜찮으려나? 더 요구하면 협회가 직접 찾겠다고 나설 거 같은데. 유니크 아티펙트에 대해서 좀 오판하고 있는 거 같으니...이거 참 해방 상태에 대해서 까야 하나. 협회가 괜한 곳에 힘 빼면 곤란한데.’
‘뭐, 이것도 네임드 몹이 아닐 때 얘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