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0화 〉탐식마(貪食魔)
병동으로부터 30분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도끼남으로 유명한 존 드류 하원의원이 법무부 장관의 보좌관들을 닦달하고 있었다.
명백한 월권행위였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지적하면서 드류를 쫓아내진 못했다.
그가 조금 과격하지만 애국심 하나는 투철한 인사라는 사실도 작용했지만,
그들의 상관인 법무부 장관이 급한 일로 자리를 비우면서 상원의원이 유력한 드류의 의문을 풀어주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보좌관들은 그 명령이 대통령에서부터 내려왔다는 사실은 몰랐지만 성의껏 드류의 질문에 응했다.
군인 출신인 존 드류는 언사는 과격했지만 설명을 들을 때만큼은 얌전하게 굴어 그들에게 흡족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건 안 됩니다. 괜히 건드렸다간 강 찬 본인 인력이 저당 잡힐 겁니다.”
“젠장 무슨 놈의 계약이 이래? 이거 부당계약 아닌가?”
“유감스러운 얘기지만 전혀 불법이 아닙니다. 의원님. 중국과 EU연합 때문이죠.”
“뭐?”
“EU의 물의 오브는 원래 ‘마탑’과 EU가 공동 개발한 거였죠. 그런데 EU가 설계를 빼돌리고 소송을 걸어서 ‘마탑’의 물의 오브 생산에 제약을 걸었습니다. 생산 제약이 걸린 ‘마탑’은 시장에서 힘을 잃었고, 물의 오브는 EU의 브랜드가 되었죠. 그 다음 파트너였던 중국은 좀 더 심했고요. 둘이서 같이 ‘가방’의 용량을 늘리는 술식을 개발했는데 중국이 투자금을 바탕으로 기여도에 책정에서 억지를 부렸죠.”
“아니 그게 먹혔다고?”
자유와 계약의 성실한 이행이 세상 모든 선을 이룬다고 믿는 드류에게는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국가의 일이 그렇게 깨끗하게 돌아가지만은 않는다지만,
지금 이 이야기는 조금 옹졸하고 추잡스럽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마법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독점하려면 완벽하게 하는 게 가능한데 기술이 풀리면 엄청나게 이런 부분에 취약하거든요. 눈에 딱딱 보이는 구분도 안 되고, 그러니 법적인 허점도 많았던 거죠.”
“그래서? 내 알기론 ‘가방’은 중국 독점이 아닌데?”
“‘마탑’도 한 번 당해봤으니 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기본 설계를 다 뿌려버리고 특허 낼만한 고유 설계는 협회와 사용협약을 맺은 겁니다. 그 대가로 협회랑 같이 UN에 이 협약을 올려버린 거고요. 당시에 이런 사건이 하도 많아서 중국도 대놓고 방해하진 못 했죠. 우리도 적극 찬성했었고요.”
“젠장, 난 왜 몰랐지?”
“드류 의원님은 당시에 시리아에서 블루 퍼플 던전이 터진 거 수습하느라 괴수 머리통을 터뜨리고 계셨을 테니까요.”
“끙...그럼 계약 당사자가 풀어주는 수밖에 없는 건가?”
존 드류를 상대하고 있음에도 별 긴장감이 보이지 않던 보좌진에 갑자기 정적이 내려앉았다.
민감하게 그 변화를 눈치 챈 드류가 주변을 살피자 그에게 설명을 해주던 갈색머리 보좌관이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의원님, 그 생각은 실행에 안 옮기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 대체 왜! 이용허락 부분만 조금 손보면 얻을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개발자 본인도 귀화 과정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친구를 건드리면 강 찬의 귀화고 뭐고 다 어그러질 가능성이 크니까요. 그리고 장관님이 의원님께 설명해드리라던 이유도 같이 어그러질 겁니다.”
“뭐? 대체 무슨 소리야?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게. 제시가 뭣 때문에 나한테 설명해주라고 한 거라는 건가?”
보좌관은 ‘어디 가서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잘 못하면 다 엎어질 수도 있어요.’로 시작되는 당부 후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존 드류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부릅떠졌다가,
결국 법무부 장관이 돌아올 무렵에는 고함 같은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자신이 걸어놓은 이용허락 제한 때문에 소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는 류 현은,
“결국 그냥 두는 건 고려하기도 힘든 선택지야. 네임드 몹 놈들 화력이 너무 강해져서 잠깐 내버려두면 국가 중추도시 몇 개가 그냥 날아가니까. 흉포함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긴 했지만...‘구엘 뒤 굴락’ 같은 놈이 다시 안 나온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세아가 내놓은 네임드 몹 방치 안을 반박하는 중이었다.
화련이 봤다면 경악하다 못 해 세아가 아니고 바꿔치기 당한 것 같다고 주장했겠지만,
류 현은 세아가 그런 생각을 입에 올렸다는 사실에 놀라진 않았다.
세아와는 방향성이 좀 많이 다르긴 했으나, 그도 빈말로도 인명제일주의 라고 하기에는 그런 것과 멀었으니까.
“그렇게 다 개입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잖니. 여태 뜬 네임드 몹도 결국 현이 네가 다 잡은 거고.”
“다른 놈들이 피해가 불어나기 전에 제대로 잡을 수 있고, 그걸 기반으로 치고 올라와주면 모르겠는데...아니, 지금은 그런 가능성도 시험해 보기에는 너무 늦었어.”
“다른 네 전 동료들도? 전 용잡이 팀, 두 명 더 있다고 했잖아.”
“...지금 와서 굳이 그렇게 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어. 그 둘이 따라올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고민을 안 한건 아니었지만 류 현은 그냥 두는 쪽을 택했다.
‘예거즈’의 불안한 내부 때문에 그들과 승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후에 그녀에게 그들이 그냥 잔류를 택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큰 아쉬움을 느끼진 않았다.
그들을 빼내 볼 계획도 짜지 않았다.
그냥 그렇습니까. 아쉽네요. 하고 넘겼을 따름이었다.
전력감이 하나라도 아쉬운 처지에 왜 그랬는지는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지금도 그 감정을 규정하진 못하고 있으나 류 현은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팀으로도 충분하다.
이 팀으로 안 되면 뭘 어떻게 하든 안 된다.
그런 확신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이 팀으로 안 되면 그냥 안 되는 거겠지.”
가만히 류 현의 눈을 들여다보던 세아는 잔잔한 미소를 띠우며 들이밀었던 상체를 뒤로 물렸났다.
“다행이다.”
“응?”
“나야 이런 일에는 문외한이지만 현이 네가 그 정도로 믿을 수 있으면 업계 최고라는 소리잖아?”
“어...뭐 그렇다고 봐야지?”
“...솔직히 현이 네가 그렇게까지 희생해가면서 제대로 돕지도 않은 나라를 구해주는 거, 머리로는 왜 그런지 알겠는데 지금도 받아들이는 건 힘들어.”
“음...”
류 현이라고 속이 편한 건 아니었다.
계속 신경 쓰고 실망하고 해봐야 남는 것도 없고 전투력 손실만 생기니 무정물 대하듯이 접근할 뿐이지.
충격 받고 휘청거리는 건 팀원들로 충분했으니까.
“그래도 현이 네가 그 정도로 믿을만한 동료들이라는 건 확인했으니까.”
“아니, 그럼 전에는 내가 안 믿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야?”
“현이 너 일이란 일은 다 혼자서 처리하려고 하니까. 아까 말한 그 협상 같은 건 더 심했고.”
“...화련 씨가 그래도 도와주긴 했는데.”
“련이도 그런 일이랑 별로 안 맞는다는 거 너도 알고 있잖니. 그리고 련이가 그러던데? 진짜 오물 튈 거 같은 건 혼자서 처리하고 후 통보라 답답해서 죽겠다고.”
“끙...”
팀 내에서 별 불만이 제기되지 않아서 그렇지,
팀원에게 알리는 것도, 표결을 부치는 것도 류 현 자신이 결정하는 독재 그 자체였으니 그런 말을 들으면 할 말이 없었다.
설마하니 화련이 저런 소리까지 했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다닌 건지...”
자연히 흘러나오는 볼멘소리에 세아가 킥킥 웃었다.
“나 달래주려고 좀 호박씨 깐 거니까 징계주고 그러면 안 된다?”
“주고 싶어도 징계 규정도 없네요.”
“...없어? 정말?”
“원래 이 팀이 이렇게 쭉 갈 거라고 생각도 안 했어. 그냥 배분율만 정해놓고 그거 공증 받은 게 전부야. 아티펙트 때문에 약간 수정만 가했고. 그런데 징계 규정 같은 걸 뭐하러 짜겠어? 법적으로도 언제든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야.”
“그렇...구나. 현이 너 그 둘 한테 잘 해줘야겠네?”
왜인지 모를 장난기 섞인 물음에도 류 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없이 진지하게 대꾸했다.
“그래야지.”
“그럼 내일부터 바로 그 ‘신의 방패’ 협상 들어갈 거니?”
“다른 일이 없으면 아마도 그럴 거 같은데. 정부 사람들이 나흘 동안 꽤 뻔질나게 드나든 거 같더라고. 우리끼리는 그렇다고 쳐도 다른 나라랑 협상하는 건 길게 끌릴 테니 빨리 착수해놔야 다음 놈이 튀어나오기 전에 한 나라라도 협력서를 받아내지.”
“그래, 내일부턴 다시 심심해지겠네.”
“그건 아닐걸. 미국이랑 협상 끝나면, 미국이 다른 곳이랑 협상할 때 나는 병풍 역할로 가끔 얼굴이나 들이미는 식으로 갈 테니까.”
“그럼 금방 끝나겠네?”
“어, 그러니까 내일 나랑 같이 가자. 회담장에 대기실 같은 곳이 있거든? 거기서 있다가 끝나고 바로 저녁 먹으러 가자고.”
“어...그런 회담은 오래 걸리는 거 아니니? 그리고 누나 밖에서 혼자 심심해하라고?”
“내가 거기 간다고 하면 혼자 불안해서 병실 뺑뺑이나 돌 거면서. 손해 볼 것도 없는 협상인데. 그럴 바에야 그냥 바로 소식 들을 수 있게 같이 가. 나도 뭘 복잡하게 요구하면서 밀당할 생각도 없어. 내가 복잡하게 조항 채워봐야 저쪽 시선으로 보면 구멍투성이일 텐데 뭐하러 고생을 해? 그렇다고 여기서 변호사 불러들이는 것도 뻘 짓이고. 이익만 좀 챙겨주면 자기들 알아서 채워 넣겠지. 중간중간에 확인은 해야겠지만...어차피 안 뿌릴 수도 없는 물건이야. 재료가 좀 거지같아서 이런 방식을 취할 수밖에는 없는 것뿐이지. 마음 같아서는 그냥 협회 사이트에 확 뿌려버리고 싶은 기분이야. 그러면 무슨 꼴 날지 뻔해서 못 그러는 거지.”
“그래서, 갈 거야? 말거야?”
세아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환한 미소로 인해서 회담장 자리를 준비하던 공무원들이 갑자기 추가된 vvip의 존재로 날벼락을 맞았다는 사실을 그녀를 영영 알지 못했다.